“노숙자보다 못한 증권맨”

회사선 실적강요·구조조정 ‘칼바람’

지역내일 2004-07-28 (수정 2004-07-29 오전 11:45:16)
최근 증권가 메신저에는 증권맨들의 우울한 현실을 빗댄 우스개소리가 나돌았다.
내용은 이랬다. “여성이 꼽은 결혼상대 선호 상위권은 의사와 변호사, 국민연금 징수부 직원, 충남 농민 아들 이 차지했다. 50위권을 넘어서면서 땅없는 농부와 배없는 어부, 카드사 직원이 등장하더니 66위 증권사 본사직원 67위 대졸 실업자 68위 서울역 노숙자 순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증권사 영업직원은… 노숙자보다 못한 69위였다.”
이 우스갯소리를 기자에게 보낸 30대초반의 증권사 직원은 “증권맨으로서 희망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주가야 잠시 떨어질수도 있지만 시장 자체가 생기가 없어지고 불신만 잔뜩 쌓이면서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는 것. 이 직원은 “적잖은 젊은 영업직원들이 증시 부진으로 100만원 안팎의 월급을 손에 쥐게되면서 ‘이게 아닌데’라고 생각하지만 청년 실업자가 쏟아지는 현실에서 전직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사실 증권사 직원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증권가 탈출선에 몸을 싣고 있다. 브릿지증권이 최근 명예퇴직 신청을 받자 전체직원 550명 가운데 무려 58%인 320여명이 퇴직신청서를 냈다. 대형증권사 대리급 직원은 “요즘처럼 자리보존도 위태로운 분위기에선 목돈만 챙겨준다면 당장 짐싸들고 나설 직원이 적잖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증권사직원들은 인원감축이라는 구조조정 위협에 전면 노출돼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1월말 현재 3만5283명에 달했던 증권맨들은 이후 3만3485명(2003년 6월말) 3만2562명(2003년 12월말) 3만1680명(2004년 5월말)으로 줄어든 상태다. 1년반만에 3600여명의 증권맨들이 자의반 타의반 증권가를 떠난 것이다. 증권사들은 경비절감 차원에서 영업점포 숫자도 줄이고 있다. 지난해 1월말 1714개에 달하던 증권사 영업점은 1650개(2003년 6월말) 1613개(2003년 12월말) 1578개(2004년 5월말)로 축소됐다.
실제 증권맨들의 구조조정 위기감은 더욱 생생하다. 한 유력증권사 지점장은 “본사에서 영업할당액을 못 채우는 직원들을 압박할 것을 지시한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직원들을 몰아세울 수밖에 없다. 이런 침체된 장에서 직원들이 어디서 영업을 하겠나. 결국 나가라는 소리밖에 안된다”고 토로했다. 증권사들은 본사직원들을 대거 영업점으로 내몰기도 한다. 명분은 영업점 강화라지만 일선 직원들이 느끼는 체감도는 다르다. 30대 초반의 영업직원은 “영업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본사직원들을 어느날 영업점으로 발령내는 것은 사표쓰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의 위협에 직원들은 상품 판매 할당이라는 이중고까지 겪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는 대리급 직원에게 회사가 내놓은 상품 2000만원 상당의 실적을 요구했다가 5000만원까지 늘리기도 했다. 다른 대형증권사는 대리급 직원에게 6000만원선의 과도한 실적을 요구, 직원들이 대출까지 받아 상품에 가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익명을 요구한 한 직원은 전했다.
이 직원은 “관계기관에서 증권사 직원들에게 상품판매를 강요하는 행위를 금지시킨다고 들었지만 실제로는 점점 심해질 뿐”이라며 “증시가 활황일때도 팔기 어려운게 상품이지만 인사불이익 때문에 불평도 못한다”고 말했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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