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곳은 다 같은가 봅니다. 지구 반대편 저쪽 아르헨티나에 있는 텔로라는 숙박시설에 관한 영국 BBC-TV 현지특파원의 보도를 소개합니다.)
모두를 텔로에 대해서는 쉬쉬한다. 나도 지금까지 텔로라는 것이 있는지 조차 몰랐으니까. 누군가가 저기가 텔로라고 말해주는 것을 듣고서야 골목안이나 수상쩍은 동네에 슬며시 숨어있는 텔로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항상 닫혀있는 입구에 간판이 걸려있긴 했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고 창문도 없거나 있더라도 커텐 등으로 잘 가려져 있다. 차를 갖고 오는 손님은 건물 뒷쪽이나 지하에 있는 차고로 숨어 들어가야 한다. 텔로는 호텔도 아니고 사창가도 아니다. 싸구려도 있고 영화배우나 정치가가 이용하는 호화로운 텔로도 있다. 그렇지만 텔로의 목적은 단 한가지, 밀회남녀를 위해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인의 섹스에 대한 관점은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 남자들은 광활한 팜파스 평원을 가로질러 말을 타고 달리는 근육질의 카우보이를 더할 데 없이 사나이답다고 하고 혹은 흐느끼는 듯한 탱고 선율의 주제가 되기도 하는 잘 차려입은 도시남성의 멜랑콜리를 우상화하기도 하는데 나무기둥에 칼로 새겨 표시한 정복한 여성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남성답다고 생각한다.
한편 여성들은 여전히 성모 마리아를 경배하면서 자신들도 어머니들만큼이나 정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 에비타에서 미국의 마돈나가 역을 맡았던 여성정치가 에바 페론을 어떤 사람들은 성 에비타라고까지 부르며 우러러 보았지만 한편에서는 잠자리를 출세의 방편으로 삼은 헤픈 여자라고 비난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마라도나는 양쪽 팔에 매춘부를 한명씩 매달고 늦은 시간 식당문을 나서면서 입으로는 자기 아내의 정숙함을 떠들어댔다.
이런 사회풍토에 어울리게 남녀간의 밀회가 빈번한데 그런 밀회들은 대부분 텔로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꼭 부정한 남녀들만이 텔로를 찾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도 텔로의 고객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집에서 기거하는 이들은 공원보다는 안전하고 아늑한 텔로를 더 선호한다. 아직도 동성연애를 백안시하는 이곳에서 동성애자들이나 좁아터진 아파트에서 시부모나 아이들 틈에서 눈치잠을 자야 하는 부부들이 몰래 찾는 곳 역시 텔로다.
친구 하나가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했다. 처가집에서 며칠을 지내고 나니 마침 결혼기념일이 닥쳐왔다고 한다.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은 이들 부부는 외식을 핑계로 집을 나섰다. 마침 텔로는 식당가는 길목에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를 이리저리 살핀 후 두 사람은 잽싸게 텔로로 뛰어들었다.
여관지기는 반투명유리 뒷편에 어슴프레 형태만 보이고 있었다. 25불 30불 40불짜리 중에서 어떤 방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 친구는 당황하여 물어보지도 않고 얼른 30불을 건넸다.
방은 깨끗하고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었으며 침대는 크고 의자는 부드러운 모피로 덮혀 있었다. 음료를 전화로 주문하니 벽에 나 있는 조그만 구멍으로 나왔다. 손님도 종업원도 피차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사방은 거울로 되어있고 포르노영화 등을 볼 수 있는 TV 옆에는 고객의 불만과 서비스 개선사항을 묻는 설문지가 놓여 있었다.
나가는 길에 어쩌다 다른 방 손님과 마주쳤는데 서로 씽긋 웃었을 뿐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어떤 텔로는 건전한 영업장소처럼 보일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평판이 좋아질 수가 없다. 원래 그런 곳은 좀 음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하기조차 하니까. 완고한 영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천행욱 리포터 chunlim@naeil.com
모두를 텔로에 대해서는 쉬쉬한다. 나도 지금까지 텔로라는 것이 있는지 조차 몰랐으니까. 누군가가 저기가 텔로라고 말해주는 것을 듣고서야 골목안이나 수상쩍은 동네에 슬며시 숨어있는 텔로를 알아볼 수가 있었다.
항상 닫혀있는 입구에 간판이 걸려있긴 했지만 눈에는 잘 띄지 않고 창문도 없거나 있더라도 커텐 등으로 잘 가려져 있다. 차를 갖고 오는 손님은 건물 뒷쪽이나 지하에 있는 차고로 숨어 들어가야 한다. 텔로는 호텔도 아니고 사창가도 아니다. 싸구려도 있고 영화배우나 정치가가 이용하는 호화로운 텔로도 있다. 그렇지만 텔로의 목적은 단 한가지, 밀회남녀를 위해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인의 섹스에 대한 관점은 사람에 따라 크게 다르다. 남자들은 광활한 팜파스 평원을 가로질러 말을 타고 달리는 근육질의 카우보이를 더할 데 없이 사나이답다고 하고 혹은 흐느끼는 듯한 탱고 선율의 주제가 되기도 하는 잘 차려입은 도시남성의 멜랑콜리를 우상화하기도 하는데 나무기둥에 칼로 새겨 표시한 정복한 여성의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남성답다고 생각한다.
한편 여성들은 여전히 성모 마리아를 경배하면서 자신들도 어머니들만큼이나 정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 에비타에서 미국의 마돈나가 역을 맡았던 여성정치가 에바 페론을 어떤 사람들은 성 에비타라고까지 부르며 우러러 보았지만 한편에서는 잠자리를 출세의 방편으로 삼은 헤픈 여자라고 비난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영웅 마라도나는 양쪽 팔에 매춘부를 한명씩 매달고 늦은 시간 식당문을 나서면서 입으로는 자기 아내의 정숙함을 떠들어댔다.
이런 사회풍토에 어울리게 남녀간의 밀회가 빈번한데 그런 밀회들은 대부분 텔로에서 이루어진다. 하지만 꼭 부정한 남녀들만이 텔로를 찾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도 텔로의 고객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집에서 기거하는 이들은 공원보다는 안전하고 아늑한 텔로를 더 선호한다. 아직도 동성연애를 백안시하는 이곳에서 동성애자들이나 좁아터진 아파트에서 시부모나 아이들 틈에서 눈치잠을 자야 하는 부부들이 몰래 찾는 곳 역시 텔로다.
친구 하나가 아내와 두 아이를 데리고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방문했다. 처가집에서 며칠을 지내고 나니 마침 결혼기념일이 닥쳐왔다고 한다. 두 사람만의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은 이들 부부는 외식을 핑계로 집을 나섰다. 마침 텔로는 식당가는 길목에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 눈치를 이리저리 살핀 후 두 사람은 잽싸게 텔로로 뛰어들었다.
여관지기는 반투명유리 뒷편에 어슴프레 형태만 보이고 있었다. 25불 30불 40불짜리 중에서 어떤 방을 원하느냐는 질문에 그 친구는 당황하여 물어보지도 않고 얼른 30불을 건넸다.
방은 깨끗하고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었으며 침대는 크고 의자는 부드러운 모피로 덮혀 있었다. 음료를 전화로 주문하니 벽에 나 있는 조그만 구멍으로 나왔다. 손님도 종업원도 피차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사방은 거울로 되어있고 포르노영화 등을 볼 수 있는 TV 옆에는 고객의 불만과 서비스 개선사항을 묻는 설문지가 놓여 있었다.
나가는 길에 어쩌다 다른 방 손님과 마주쳤는데 서로 씽긋 웃었을 뿐 눈은 마주치지 않았다. 어떤 텔로는 건전한 영업장소처럼 보일려고 애쓰기도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평판이 좋아질 수가 없다. 원래 그런 곳은 좀 음침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하기조차 하니까. 완고한 영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나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천행욱 리포터 chunl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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