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수정요)

지역내일 2004-03-18

(4) 금융시스템

모래위의 지은 선진금융시스템 위기

“제도는 어느 선진국보다 뒤지지 않지만 문제는 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 고위관계자의 푸념이다. 겉으로 보이는 각종 제도는 해외사례를 바탕으로 도입했지만 실제로 한국풍토에서 정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 미국 등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발전단계가 낮고 시장이 좁은 등 갖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시스템의 큰 축을 이루는 금융당국-금융기관-금융이용자가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한 유기적 관계가 아니라 불신이 배어있는 갑을의 관계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외국계투자자와 외국계금융기관의 영향력이 급속도로 확대되면서 상대적으로 금융당국의 정책효과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때로는 LG카드 사태 등과 같이 외국계금융사들의 반발까지 직면, 새로운 대안모색의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 관치에 멍든 신뢰=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의 관계는 갑과 을의 관계다. 금융기관은 피감독기관이며 재경부를 비롯한 금감위와 금감원은 감독기관에 속한다.
감독당국에서는 예전보다 권위적인 검사는 많이 줄었다고 설명했지만 업계 반응은 대부분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동양화재 이은성 기획담당 이사는 “구제금융(IMF) 이후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유로 많은 제도들이 도입됐지만 과연 그 제도들이 우리에게 맞는가 확인하는 절차가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구본성 박사는 감독당국과 금융기관간의 신뢰가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현재 우리나라는 서로간의 불신이 팽배해져 있다면서 외국에서는 감독당국이 소비자보호차원에서 컨설팅서비스를 하는 곳이며 이에 따라 피감독기관에서도 감독에 대한 이의를 쉽게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 박사는 특히 우리나라 감독당국은 군림하려고 하고 감독의 목적과 사후 또는 사전의 감독목표 등이 투명하거나 일관되지 않다고 지적했다.

◆ 정부와 금융기관에 속는 고객들=우리나라 투자자들이 과도하게 안전투자만 하고 있다. 저금리인데도 불구하고 재테크수단을 은행예금으로 한정짓고 있는 것이다.
은행 총예금은 지난 2000년말 현재 386조원에서 매년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1년과 2002년에는 각각 438조원, 484조원으로 증가했고 2003년말에는 515조원, 올 3월 12일엔 522조원까지 증가했다.
반면 2000년말에 133조원 규모였던 펀드잔액은 2002년말에 163조원까지 증가했지만 2003년말 135조원으로 줄었다. 올핸 소폭 회복, 144조원까지 올라섰다.
투자자들이 은행예금을 선호하는 이유는 주식시장의 불신때문이다. 대우채 카드채 문제 등으로 주식시장에서 쪽박을 경험해본 투자자들이 더 이상 못믿겠다는 것. 따라서 저금리와 질 낮은 서비스, 높은 수수료 등에도 은행을 찾는다.
정부와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은 투자자들이 중장기보다는 단기로 자금을 운용하도록 유인하기도 한다.
굿모닝신한증권 정의석 부장은 “투자자들이 정부의 정책을 따라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정부정책을 불신하게 되고 주식시장에서도 투신권에 맡긴 투자자금에서 원금마저 깨지고 나면 주식투자를 기피하게 된다”면서 한번 무너진 정부와 금융기관에 대한 불신은 쉽게 회복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 새로운 이방인 외국인투자자=외국인들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다. 씨티그룹과 푸르덴셜이 각각 은행과 투신권 장악을 위해 발동을 걸었고 다른 금융권에서도 외국인들의 잠식력이 만만치 않다. 특히 주식시장에서는 17일 현재 43.0%의 시가총액을 가지고 있는 외국인이 대주주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금융기관과 투자자로서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금융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LG카드 문제와 관련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비협조와 환매자제요구를 거부한 행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외국계의 원칙주의는 감독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음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연구원 구 박사는 외국인들이 국내시장에 들어온 것은 금융기관들이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그 부분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것이라며 이들은 원칙주의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는 감독당국의 통제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며 관치와 강압적 감독방향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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