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 가족까지 동참해서 회사 살렸다
노조, 경제노동운동 주창 … 회사, ‘건설 명가의 자존심 되찾는 중’
지역내일
2004-02-26
(수정 2004-02-26 오후 4:00:33)
한국경제가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든 가운데 외환위기 당시보다 심각한 내수위기가 진행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어 기업과 가계는 허리띠를 바짝 죄는 상황이다. 이러한 속에서 협력적 노사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이전보다 나은 경영 환경을 구현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몇몇 대기업 노사는 임금·단체협약에 생산성 향상을 명문화하는가 하면, 노동조합이 앞장서 작업장 혁신에 참여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추세다. 노동자가 주주로 참여하여 경영권 안정과 매출 신장을 동시에 성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협력적 노사관계를 실현하는 기업들을 찾아가 보았다. 과거의 명예를 회복하고자 노사가 합심한 지 오래다. 현대건설은 지난날 현대그룹의 모태이자 우리 경제의 고속성장을 이끌어 온 상징적 존재로 인식되어 왔다. 경부고속도로는 현대건설이 맨손으로 일궈낸 근대화를 상징하며, 한국경제의 대동맥으로 지금도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는 이러한 현대건설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렸다. 방만한 확장과 무리한 계열사 지원에 시달리던 현대그룹이 이 기간에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달았고, 거액의 해외공사 부실채권이 누적되고 있던 현대건설도 그룹에서 분리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마침내 2000년 들어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결의하면서 회사의 경영권도 채권단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사 모두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고통분담을 감내해야만 했다.
인원감축, 감자에 임금동결까지
당시 채권단은 대규모 인원감축을 요구했으며, 노조는 희망퇴직에 동의했다. 그리고 사업부문을 분사하는 조치도 뒤따라, 7200명 안팎이던 전체 종업원 수는 한때 3600명까지 줄었다.
희망퇴직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감자가 실시되어, 직원들은 막대한 자사주 투자비용을 날리기까지 했다. 최고 2만4700원까지 나가던 주식을 사들인 직원들이 그야말로 깡통을 찼고, 결혼자금을 날린 여직원도 한둘이 아니었다.
임동진 노조위원장은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감자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가 도저히 생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노조는 99년부터 2001년까지 상여금 200%를 반납했으며, 2002년까지 매년 임금을 동결했다. 학자금 폐지 등 각종 후생복지의 후퇴는 고통분담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급속하게 호전되는 경영 여건
노조가 앞장 서 자구 노력을 계속해 온 결과 2002년 들어서면서 회사는 빠른 속도로 정상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말 감자 후 6325억원이던 경상적자는 273억원의 경상이익으로, 2조9805억원에 달하던 천문학적 액수의 당기순손실은 192억원의 당기순이익으로 전환되었다. 이듬해 들어서자 완연한 흑자경영으로 돌아서, 2003년도에는 영업이익 3016억원, 순이익 79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흑자로 전환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역시 빠른 속도로 호전된 건설공사 수주 상황. 2001년 6조 안팎에 머물던 수주액은 2002년 6조9000억원대, 2003년 7조1000억원대를 기록했다. 이자비용도 2001년 3573억원에서 2002년 1608억원, 2003년 1309억원으로 대폭 축소됐다. 부채비율 역시 2001년 163%에서 2002년 156%, 2003년 117%로 줄어 재무 구조 전반에 걸쳐 건전성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경영상태가 나아지자 노사는 지난해 5.4%의 임금인상에 합의했고, 신규채용도 이뤄져 현재 직원수는 3800여명에 이른다. 회사측 관계자는 ‘이제 남은 것은 잃어버린 건설명가의 자존심을 되찾는 일’이라며 향후의 지속적인 성장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리 건설업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98년 4%에서 이듬해 2.3%까지 떨어졌다 조금씩 증가, 최근 3%대를 회복하고 있는데다, 1997년 이래 세계 건설시장이 매년 증가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이 회사는 최근 이란 사우스파 지역에서 총 22억달러짜리 초대형 가스처리시설 공사를 따냈고, 인근 중동국가들에서만 올해 12억달러에 이르는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중동은 현대가 20세기의 대역사라 불리던 사우디 주베일항의 신화를 일군 곳이 아니던가.
역지사지로 노사정(勞社庭) 화합을
그렇다면 이러한 고통분담을 치르면서까지 노조가 양보를 거듭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현 임동진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노조의 독특한 운동노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노사 모두 별 이의가 없다.
노조가 강조하는 ‘경제노동운동’의 핵심은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는 회사나 노조 누구도 만족할 수 없으며, 노사가 입장을 바꿔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경제노동운동은 미래 세대와 노사 모두를 위해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 노사간 ‘역지사지’ 뿐 아니라 노사와 가족이 함께 하는 노사정(勞社庭) 운동으로 회사의 역량을 총결집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노사는 단체교섭 및 노사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함은 물론, 상대가 필요한 경우 수시로 접촉을 갖고 각종 경영정보의 교환과 회사발전을 위해서 허심탄회하게 만나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아울러 2002년 4월 ‘노사평화 공동선언’, 2003년 2월 ‘노사합동 수련대회’, 2003년 5월 ‘노사합동 산업안전 패트롤 운영’ 등 각종 노사합동 행사를 통해 협력적 노사관계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에 힘입어 지난 해 9월에는 ‘신노사문화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선태· 백만호기자 / kst@naeil.com
하지만 IMF 외환위기는 이러한 현대건설의 명성을 하루아침에 허물어 버렸다. 방만한 확장과 무리한 계열사 지원에 시달리던 현대그룹이 이 기간에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치달았고, 거액의 해외공사 부실채권이 누적되고 있던 현대건설도 그룹에서 분리되는 등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되었다.
마침내 2000년 들어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결의하면서 회사의 경영권도 채권단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노사 모두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고통분담을 감내해야만 했다.
인원감축, 감자에 임금동결까지
당시 채권단은 대규모 인원감축을 요구했으며, 노조는 희망퇴직에 동의했다. 그리고 사업부문을 분사하는 조치도 뒤따라, 7200명 안팎이던 전체 종업원 수는 한때 3600명까지 줄었다.
희망퇴직과 함께 두 차례에 걸쳐 감자가 실시되어, 직원들은 막대한 자사주 투자비용을 날리기까지 했다. 최고 2만4700원까지 나가던 주식을 사들인 직원들이 그야말로 깡통을 찼고, 결혼자금을 날린 여직원도 한둘이 아니었다.
임동진 노조위원장은 “가장 가슴 아픈 것은 감자과정에서 이를 반대하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회사가 도저히 생존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노조는 99년부터 2001년까지 상여금 200%를 반납했으며, 2002년까지 매년 임금을 동결했다. 학자금 폐지 등 각종 후생복지의 후퇴는 고통분담의 일부분에 불과했다.
급속하게 호전되는 경영 여건
노조가 앞장 서 자구 노력을 계속해 온 결과 2002년 들어서면서 회사는 빠른 속도로 정상화하기 시작했다. 2000년말 감자 후 6325억원이던 경상적자는 273억원의 경상이익으로, 2조9805억원에 달하던 천문학적 액수의 당기순손실은 192억원의 당기순이익으로 전환되었다. 이듬해 들어서자 완연한 흑자경영으로 돌아서, 2003년도에는 영업이익 3016억원, 순이익 792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흑자로 전환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역시 빠른 속도로 호전된 건설공사 수주 상황. 2001년 6조 안팎에 머물던 수주액은 2002년 6조9000억원대, 2003년 7조1000억원대를 기록했다. 이자비용도 2001년 3573억원에서 2002년 1608억원, 2003년 1309억원으로 대폭 축소됐다. 부채비율 역시 2001년 163%에서 2002년 156%, 2003년 117%로 줄어 재무 구조 전반에 걸쳐 건전성이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경영상태가 나아지자 노사는 지난해 5.4%의 임금인상에 합의했고, 신규채용도 이뤄져 현재 직원수는 3800여명에 이른다. 회사측 관계자는 ‘이제 남은 것은 잃어버린 건설명가의 자존심을 되찾는 일’이라며 향후의 지속적인 성장에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우리 건설업계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98년 4%에서 이듬해 2.3%까지 떨어졌다 조금씩 증가, 최근 3%대를 회복하고 있는데다, 1997년 이래 세계 건설시장이 매년 증가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자신감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이 회사는 최근 이란 사우스파 지역에서 총 22억달러짜리 초대형 가스처리시설 공사를 따냈고, 인근 중동국가들에서만 올해 12억달러에 이르는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중동은 현대가 20세기의 대역사라 불리던 사우디 주베일항의 신화를 일군 곳이 아니던가.
역지사지로 노사정(勞社庭) 화합을
그렇다면 이러한 고통분담을 치르면서까지 노조가 양보를 거듭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현 임동진 위원장을 중심으로 한 노조의 독특한 운동노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 노사 모두 별 이의가 없다.
노조가 강조하는 ‘경제노동운동’의 핵심은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는 회사나 노조 누구도 만족할 수 없으며, 노사가 입장을 바꿔서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하자”는 것이다.
임 위원장은 “경제노동운동은 미래 세대와 노사 모두를 위해 파이를 키우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 노사간 ‘역지사지’ 뿐 아니라 노사와 가족이 함께 하는 노사정(勞社庭) 운동으로 회사의 역량을 총결집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대건설 노사는 단체교섭 및 노사협의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함은 물론, 상대가 필요한 경우 수시로 접촉을 갖고 각종 경영정보의 교환과 회사발전을 위해서 허심탄회하게 만나는 구조를 정착시켰다.
아울러 2002년 4월 ‘노사평화 공동선언’, 2003년 2월 ‘노사합동 수련대회’, 2003년 5월 ‘노사합동 산업안전 패트롤 운영’ 등 각종 노사합동 행사를 통해 협력적 노사관계를 더욱 심화시켰다. 이에 힘입어 지난 해 9월에는 ‘신노사문화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선태· 백만호기자 / ks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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