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시험에서 평가의 내용은 각 대학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략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논의의 대상으로 제시된 제시문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요약할 줄 아는 능력, 제시문 간의 관계성 속에서 다양한 관점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문제점을 도출할 줄 아는 분석적 능력, 그리고 추상적 명제를 구체적 사례에 적용하여 출제자의 요구에 맞게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종합적 사고 능력이 그것이다. 어느 대학의 논술시험 출제의도를 참고하여 나열해 본 것인데 이 내용들이 너무 복잡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느 철학자의 개념을 빌려 간단히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를 만들 줄 아는 능력이라 요약할 수 있겠다.
사유한다는 것은 인식능력의 자연스런 실행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사유하지 않는다. 사유하지 않는다니? 생각으로 인해 머리가 복잡하다 못해 아프기까지 하는데 무슨 말이냐고 항의하고 싶을지 모른다. 우리가 평소에 하는 생각은 대부분 사유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일들을 ‘기억’으로 떠올리거나 아니면 ‘지금 여기’에는 분명히 없는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기억이나 걱정을 ‘사유’라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수험생일 경우 이 두 가지는 가장 경계해야 하는 망상이다.
수험생은 말 뜻 그대로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이니 주어진 모든 시간을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로 채워나가면 된다. 그런데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일로 걱정한다면 쓸데없는 짓이 된다. 난 평소에 학생들에게 ‘그냥’ 공부하라고 하지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하려는 마음도 망상이다. 공부하는 지금 이 순간에는 ‘열심히’ 라는 부사가 붙을 자리가 없다. 그런 부사는 나중에 평가의 의미로 덧붙여지는 수식어인데 지금 공부하는 이 시간에는 불필요한 사족일 뿐이다.
다시 주제로 돌아오면 우리는 평소에 생각을 하는 대신 망상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생각다운 생각은 하지 못한다. 인간을 사유하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이는 생각하길 좋아하는 철학자들이 만든 수식어에 가깝다. 후회와 걱정을 제외하고 우리가 생각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개념에 대한 ‘확인’이다. 이를 어려운 말로 ‘재현’이라고 하는데 진정한 사유라고 볼 수 없다. 저것은 책상이야, 이건 철수가 준 선물이지 라고 하는 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책상과 선물이라는 개념을 다시 꺼내 확인해 보는 작업일 뿐이다. 그렇다면 사유는 언제 일어나는가?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들뢰즈의 말을 인용하면, 인간은 어떤 돌발적인 충격 속에서야 사유하게 된다.
어떤 낯선 ‘상황’ 속에서 내가 알고 있는 개념으로는 이해가 불가능할 때, 이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한 작업을 사유라 할 수 있다. 낯선 상황이라고 하니 사막이나 정글이라도 탐험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고민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보지 못한 수학문제를 마주하고 있을 때를 떠올리면 쉽게 알 수 있다. 가령 1+1=2로 답이 나오는 문제를 풀 때는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을 가지고 ‘반복’하기에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1+1의 답이 0인 상황을 마주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사유라는 것을 하게 된다.
논술 문제를 마주하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논술 답안을 작성할 때 우리는 일상에서는 마주하지 못하는 추상적 개념을 가지고 구체적 사례를 설명해야 하는 ‘낯선’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 모든 일들이 제시문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긴 하지만 수험생에게는 문명을 이루는 기본단위인 추상적 사고력이 발동되면서 제시문 분석이라는 개념적 작업을 구체적인 사례들로 연결시키며 창의적인 문제해결을 수행하게 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들의 반복인 재현이 아닌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를 논술답안을 통해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매순간 하나의 문장이 쓰여질 때마다 수험생의 내면에서는 새로운 사유의 이미지가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인문논술이든 수리논술이든 모두 동일하다. 다만 논리적 서술을 하는데 어떤 도구를 사용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논술공부의 어려움이라는 것도 사실 창조적인 작업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부산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이는 자신의 잠재력뿐만 아니라 인류의 잠재력도 향상시키는 일이 된다. 왜냐하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고유한 보편성을 전달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작업은 우리가 인류라는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소중한 자산이 되기 때문이다.
파주 운정 대입논술전문 스카이논술구술학원
김우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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