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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20대, 진창에서 구르고 쓰러진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씩 꿈을 안고 산다. 가까운 친구 하나는 만화가가 꿈이었고, 다른 하나는 외교관을 꿈꿨었다. 제도권의 교육을 받으면서도 나름의 개성과 적성을 가늠하며 꿈을 지었다. 우리의 미래 역시 이러한 꿈과 관련된 것만을 그리며, 말 그대로 청운(靑雲)의 꿈 시절. 언제냐고? 나의 경우는 대학을 입학하기 전까지였던 듯. 초등학교 시절부터 조금 더 전 혹은 후까지 부모님의 바램을 꿈꾸다가 사춘기라는 시절이 촉촉하고 거친 바람으로 지나가면 우리는 좀더 구체화되고 현실적인 꿈을 꾼다. 여기까지는 그 정체는 흐리지만 순수한 모양의 꿈이다. 대학을 입학해 사회를 알게 되고, 학벌이나 자격증이 적성이라는 자리를 대체하면서 우리의 꿈은 단순해진다. 취직, 결혼, 안정된 가정, 편안한 노후이런 식으로. 대학엔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사람이 있다. 다양한 사람을 거치면 우리의 개성도 다양화 되야 할 것이 자연스런 계산인데, 여기에는 뭔가 복잡한 것이 있는지 이 다양성을 겪으며 우리는 더 단순해지고 더 빨리 사회화가 된다. 1학년 때 같이 사회를 비판하고, 장구 치고, 연극하던 친구들 3년 만에 모두 도서관에서 머리에 김 나게 취업공부하고 있다. 몇은 지난 대학시절을 후회하고, 몇은 어학연수를 떠나고, 몇은 아직도 방황하며. 학교에서 최고 학년인 4학년이 되니 행동반경도 작아지고 조심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또 키워주신 부모님 은혜도 갚고 싶고, 내 스스로 돈도 벌고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어진다.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면서 우리는 또 후회한다. 앞에 말했던 친구 두 명중 하나는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에서 관광업계 종사자로 꿈을 선회했다. 외교관이 되겠다는 친구는 이제 대기업 비서가 꿈이다. 이 변색된 꿈도 이루기 힘들어 꿈이다. 이 친구들이 사는 게 너무 재미없다고 한다. 한 친구가 먼저 왜 사냐고 물으니까 나머지 하나가 대답한다. 재밌어서 사는 사람 없다.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애늙은이 같은 소리지만 우리는 그 말에서 위안을 얻고, 다시 현실에 몰두했다. 이게 대학 생활이고, 현실일까? 그렇다면 당초에 꿈이나 지망, 모험이라는 말은 왜 있는 걸까? 나 역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남다르지 않다. 매일같이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고 잊다가 다시 떠올리며 평범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대는 진창에서 구르고 실패하는 시기란다. 죽고싶도록 괴롭지만 그 시절이 없으면 나머지 인생도 없다 라는 말을 위안으로 삼으며 아직도 난 실패할 기회가 많이 남아있다고 스스로를 독려한다. 꿈꾸기를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다. 꿈꾸기를 포기하고 단순한 일상에 만족하려 할 때 우리는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도전하지 않고 안정을 찾을 때 마음은 더욱 허전하고 인생의 의미를 잃어 갈 것이다. 지금 상태의 도전과 꿈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것이다. 20대는 그러한 시기이기 때문에. 진창을 구르는 쿼터 백처럼 한 번쯤 온몸이 아프게 도전해 본 뒤에야 그 인생의 맛이 달라지고, 윤이 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해본 뒤에 후회하자. 20대중에서도 최고로 깨지고 거뜬히 다시 일어 날 수 있는 때는 대학 시절 뿐이다. 지금도 무엇이든 할 수 있는데 쉽게 포기하고, 꿈을 잃고, 가슴 한 쪽의 바람을 안주 삼아 인생을 보내지 않아야 한다. 나 역시도. / 조수현 명지대 아랍어문학부 4 2002-01-23
- “출산율 회복정책 도입 고려해야” 인구 고령화에 대비, 출산율을 회복시키는 정책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정책이 건의됐다. 2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현재 1.47까지 떨어진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을 도입할 것을 복지부에 건의했다. 또, 급격하게 떨어진 출산율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인구대책회의’ 구성을 제기했다. 이번 연구는 복지부 연구과제를 보사연이 수행한 것으로 3월에 출판될 예정이다. 보사연은 “고령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출산율 급감”이라며 “한번 떨어진 출산율이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 특징을 고려해 정부가 출산율 회복정책을 도입할 때”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출산율 급감의 주요 원인이 결혼기피로 인한 것이어서 출산율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사연은 내다봤다. 출산율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출산 인센티브와 아동보육비 지급 △직장여성을 위한 보육시설 등 보완 등이 제시됐다. 또, 긍적적인 결혼관 확산 등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건의됐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인당 평균 출생아 수)은 70년 4.5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거치면서 감소해 1985년에 1.7이 됐고 1999년에는 1.42까지 급감했다. 이는 스웨덴(1.6), 캐나다(1.6)보다 낮은 수치다. 현재 인구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은 2.1이다. 출산율 저하는 고령화를 심화시켜 젊은 층이 부담해야할 연금과 의료비를 증가시킨다. 또, 경제활동참가인구를 감소시켜 경제성장에 악영항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보사연 김승권 연구위원은 “인구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경우 더 이상의 출산율 하락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선진국의 경험에서 얻어진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실시했던 프랑스의 경우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출산율인 1.7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인구정책을 맡고있는 보건복지부 여성보건복지과는 별다른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이 ‘출산율 1.57쇼크’가 사회적 이슈가 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2002-02-21
- 출산율 회복정책 도입 고려 출산율을 회복시키는 정책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정책이 건의됐다. 2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현재 1.47까지 떨어진 출산율을 높이는 정책을 도입할 것을 복지부에 건의했다. 또, 급격하게 떨어진 출산율로 인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대처하기 위해 정부 관계부처가 모두 참여하는 ‘인구대책회의’구성을 제기했다. ▶관련기사 8면. 이번 연구는 복지부 연구과제를 보사연이 수행한 것으로 3월에 출판될 에정이다. 보사연은 “고령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출산율 급감”이라며 “한번 떨어진 출산율이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 특징을 고려해 정부가 출산율 회복정책을 도입할 때”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 출산율 급감의 주요 원인이 결혼기피로 인한 것이어서 출산율 회복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보사연은 내다봤다. 출산율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출산 인센티브와 아동보육비 지급 △직장여성을 위한 보육시설 등 보완 등이 제시됐다. 또, 긍적적인 결혼관 확산 등도 병행해야 할 것으로 건의됐다.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인당 평균 출생아 수)은 70년 4.5에서 산아제한 정책을 거치면서 감소해 1985년에 1.7이 됐고 1999년에는1.42까지 급감했다. 이는 스웨덴(1.6), 캐나다(1.6)보다 낮은 수치다. 현재 인구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합계출산율은 2.1이다. 출산율 저하는 고령화를 심화시켜 젊은 층이 부담해야할 연금과 의료비를 증가시킨다. 또, 경제활동참가인구를 감소시켜 경제성장에 악영항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보사연 김승권 연구위원은 “인구정책을 지속적으로 실시할 경우 더 이상의 출산율 하락은 막을 수 있다는 것이 선진국의 경험에서 얻어진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19세기 후반부터 실시했던 프랑스의 경우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높은 출산율인 1.7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인구정책을 맡고있는 보건복지부 여성보건복지과는 아직 별다른 정책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이 ‘출산율 1.57쇼크’가 사회적 이슈가 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김 연구위원은 “짧은 시간에 출산율이 빠르게 떨어질 경우 사회에 미치는 부작용이 막대하다”며 “더 이상의 출산율 하락을 막기위한 대책이 정부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2-02-21
- 복지부, ‘출산율 1.47 쇼크’에도 “묵묵”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인구학자들은 연구보고서에서 저출산이 사회적으로 미칠 여파가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것은 선진국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 속도가 유례가 없을 정도로 빠르다는 것이다. 보사연 김승권 연구위원은 “선진국들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낮아진 출산율을 정책으로 올리기가 쉽지 않다는데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결혼 안해서 출산률 떨어져=최근 우리 나라의 출산율은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다. 가임여성 1인당 평균 출생아수로 표시되는 합계출산율을 보면, 1990년대에 들어 1.5∼1.7명 수준을 유지했으나 1998년에는 1.48명 그리고 1999년에는 1.42명으로 선진국의 평균수준보다 낮아지고 있다. 출산율이 이처럼 급속하게 떨어지는 이유는 기혼자의 출산자녀 수가 즐어드는 것보다는 초혼 연령이 늦어지는 데 따른 것이다. 결혼적령기인 25∼29세 여성의 미혼율은 1970년 9.7%에서 1995년에는 29.6%로 증가됐다. 그러나 기혼자의 출산율은 94년 1.8명, 97년 1.8명. 2000년 1.7명으로 큰 변화가 없다. 김 연구위원은 “미혼남녀의 결혼기피현상이 출산율 저하의 주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정책 지속돼야 출산율 유지=더 심각한 문제는 출산율 회복정책을 실시한다고 해서 출산율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출산율이 급감하자 90년에 출산율 회복정책을 실시했으나 아직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유럽 각국도 출산율 회복정책을 수십∼백년 시행했으나 출산율을 크게 높이지 못햇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정책을 실시할 경우 출산율이 더 떨어지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한다. ◇‘1.42 쇼크’에도 인구정책 변화없어=통계청이 밝힌대로 선진국들이 100년 이상에 걸쳐 고령사회로 진입했으나 우리나라는 19년이 걸릴 것으로 보여 세계 어느나라보다 빠른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는 결국 노인 인구를 부양해야할 젊은 세대의 부담이 증가해 경제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경제학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부담증가는 인구의 자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 연구위원은 “경제활동 인구의 노인층 부양부담이 커지면 우수한 젊은 세대가 해외로 빠져나가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경우 1989년 합계출산율이 1.57명으로 떨어지자 소위 ‘출산율 1.57쇼크’라는 사회적 위기감이 조성됐다. 이에 따라 일본은 출산율 회복정책인 ‘엔젤플랜’등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합계출산률이 1.42까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정책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인구정책을 담당하는 복지부 여성보건복지과는 지난해에서야 보사연에 연구과제를 책정했을 따름이다. ◇출산율 회복 정책 도입해야=우리나라가 산아제한 정책을 공식적으로 포기한 것은 96년이다. 이때부터 인위적으로 출산율을 조절하지 않고 인구의 자질을 향상하는 ‘신인구정책’을 채택했다. 그러나 급격한 출산율 감소가 계속돼 사회적 파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학자들이 현재 우리 나라의 인구는 계속 증가추세에 있다는 이유로 인위적인 출산율 회복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보사연은 “현재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연금과 건강보험,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더 이상의 감소를 막기위해서라도 새 인구정책 도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2002-02-21
- 하모니카, 크로마하프, 기타강습 어릴 적 자신의 꿈을 현실적으로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자신이 꿈꾸었던 이상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꿈꾸었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 현실적인 삶에 여유없이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지. 세상사람들의 성공의 잣대인 물질적인 부로 따질 수 없는 진정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사람, 그는 바로 하모니카 기타 크로마하프 강사 양동인씨로 자신의 꿈을 현실로 이룬 행복한 사람이다. 30여년 전 양동인씨는 지독히도 노래를 못 부르는 음치였다고 한다. 학창시절 가창시험이 늘 고민이었다는 그는 우연히 하모니카를 손에 넣게 되면서 그 이후 30여 년의 인생을 바꾸어 놓게 되었다고. 비록 노래는 못하지만 음악을 무척 좋아했던 그로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하모니카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손에 속 들어오면서 불기만 하면 소리가 나는 쉬운 악기로 처음엔 그저 손쉽게 불 수 있었지만 그이가 배우고 싶어하는 만큼 교사도 교재도 마땅치 않은 시절이었다. 하모니카로 완벽한 음을 표현하고 싶은 꿈도 커갔지만 그도 평범한 사회의 일원이 되면서 자연 하모니카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하지만 늘 그의 가슴속에 있던 하모니카에 대한 미련은 버릴 수 없어 결혼 후 기독교 음악대학 작곡과에 입학하여 전문적 수업을 받았다. 그 이후에 그가 도전한 일은 당연히 음악강사의 길,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어릴 적 자신의 꿈을 어린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일을 시작하면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하모니카라면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인식을 깨는 것도 그렇고 또 배우려는 학생도 건성으로 진지하지 않기 일쑤였다고. 하지만 이제 하모니카 하나로 얼마나 많은 음을 넘나들며 무한한 음악세계를 펼쳐 보일 수 있는지 인정받고 있는 것이 그이가 음악강사로서 인내해온 몇 년의 시간동안 이루어 낸 결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제 그의 남은 꿈은 학생들을 직접 가르치는 현장에서 늘 안타깝게 생각했던 제대로 된 하모니카 교재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가 요즘 하고 있는 일은 초·중·고 교과서를 비롯해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교재들과 하모니카로 연주할 수 있는 많은 곡들을 수집 편곡하고 있는 일이다. 현재 주엽초등학교과 홀트학교에서 3년째 하모니카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YMCA 강사, 예닮 찬양팀의 하모니카 담당, 문산초등학교 기타 강사, 백마중학교 기타강사로 츨강중이고 교회에서 월 1회 정기연주를 하고 있다. 그의 연주 경력은 하모니카만 34년, 클래식 기타 30년, 크로마하프 30년으로 마르카토, 레가토, 스타카토 이외에 독특한 베이스 반주법을 개발하여 많은 학생들에게 강습하고 있다. 하모니카는 일반적으로 소리의 톤에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쉽게 괜찮은 소리가 나오기 때문에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구슬프고 청아한 음에서부터 락이나 블루스, 째즈까지 연주할 수 있는 매력있는 악기로, 크로마하프는 남부독일·오스트리아·스위스 등의 민속악기인 찌터(Ziter)를 보다 간편하고 연주하기 쉽게 개발한 악기로 우리에게는 1972년 요들송가수 김홍철에 의해 최초로 알려지면서 36개줄 21개 건반으로 3옥타브의 음역을 가진 배우기 쉽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매력이라는 양동인씨. 각 급 학교 특기적성교육 강습외에도 개인강습도 하고 있다. 031-948-3554/ 011-9764-8901.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2002-01-16
- 외손녀가 지키는 녹전면 서촌 느티나무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 동제당 느티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사신이란 지명은 행정상의 사용하는 것이며 사람들을 이곳을 서촌이라고 부르고 있다. 아마도 예안 현의 서쪽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어릴 적에 친구가 있어 상급 학교에 진학을 위해 타지로 나돌기 전까지만 해도 꽤 갔었던 마실이다. 친구들과 팔을 벌려 느티나무 둘레를 재어 보기도 하고, 생각 없이 올라가 놀기도 하였던 그 나무가 천연기념물 275호로 지정되어 있었다는 것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 서다. 표지판에는 수령이 600년이며, 높이가 약 32m, 둘레가 9.6m나 되는 노거수라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지정 사유는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이며, 특별한 전설이나 설화는 없으나 마을 사람들이 수호하는 나무로 매년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는 것으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안동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에는 용계동 은행나무, 길안의 소태나무, 임동의 굴참나무, 와룡의 뚝향나무는 이미 알았어도 정작 내가 살았던 녹전의 서촌 느티나무가 천연기념물로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줄은 몰랐었다.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이 가까이 두고도 그 귀중함을 모르고 특별히 책에 올려졌다고 새삼스럽게 부산을 떠는 내가 부끄럽기까지 하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문화재청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기 수백 년 전부터 그 소중함을 알고 수 백년을 모시고 있지 않았는가. 600년의 긴 세월을 한자리에 서서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알고 있는 이 나무는 동제당 신목(神木)으로 모셔지고 있다. 누가 600년전에 심었단 말인가 아니면 자연적으로 자란 것일까. 이 마을에는 영양 김씨들이 들어와 살았다. 그 후에 초계 변씨의 변청원(卞淸源·14C로 추정)이 영양김씨 신주지사(信州知事)를 지낸 김지노(金智老)의 사위가 되어 당시 지명으로 성성현(宣城縣) 마곡(磨谷·사신의 옛 지명)에 정착하게 된다. 변청원의 아버지 변계손(卞季孫)은 조선 태조 때 사간원 벼슬을 했던 것으로 보아 지방에서의 그 위세를 알 수 있게 한다. 아마 이 나무도 이때에 심었을 것이라고 마을의 어른들이 얘기를 한다. 지금은 영양김씨도 없고 초계변씨들도 없다. 다만 그 외손들이 변씨들의 산소를 돌보고 있을 뿐이다. 이 마을에 정착한 변씨들은 변계손에서 그의 손자 변효겸에 이르기까지 벼슬을 하면서 번성한다. 그런데 증손 변효검(卞孝儉)은 딸 6형제를 낳고 아들이 없었다. 이 딸 6형제는 지방의 이름 있는 가문들의 자제를 맞아 결혼을 하게 된다. 동생 변효창(卞孝昌)도 딸 하나만 낳아 함양 박씨 가문의 박사희를 사위로 맞아들이게 되면서 변씨 가문은 외손들에 의해 가계가 이어지기 시작하게 된다. 외손들은 외조상 변씨 가문을 중심으로 서촌에 자리잡고 외조상들의 제사를 받드는 외손봉사를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 그 외손들 가운데 일곱 분을 사신 칠현(七賢·司諫 卞季孫, 司直 金有庸, 倦翁 柳빈, 默齊 朴士熹, 芝嶺 尹寬, 訥薺 金生溟, 樂山 李完)으로 부르고 있다. 17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딸아들 구별 없이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았고 제사도 자녀들이 나누어 지내거나 돌아가며 지냈었다. 고려말에서 조선 전기까지 처향(妻鄕)과 외향(外鄕) 곧 처가 마을과 외가 마을에 정착하여 살았다는 기록이 많이 보인다. 처가나 외가에 가서 살다가 마침내 자기 성씨를 중심으로 동성마을을 형성하기도 하고 서촌 마을처럼 외손들이 외조상을 모시고 사는 경우도 있었다. 옛 지명을 따서 마곡서원을 짓고 외조상을 추모하는 큰제사를 모셨던 것이며, 아직도 남아 있는 위토, 학계 등은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도 그 외손들은 가을 찬 서리가 내리고 나면 변계손을 비롯 여섯 위의 외조상 산소에 모여 정성을 다해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이 마을을 지키는 느티나무 동신은 바로 초계 변씨의 외손녀 허씨처녀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동신도 외손봉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 외조상이 심었을 느티나무를 의지하고 수백년 동안 마을을 지켜온 허씨 처녀의 마음이 서촌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다. 정월 대보름 동제에 올린 제물은 이들 모두에게 신령스런 명약이 된다. 그 중에 백설기를 먹는 사람들은 무병하며 오래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동제사 때 켰던 촛불은 자손의 생산과 번영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은 제관에게 미리 부탁하여 촛불을 얻어다가 기도를 드리면 분명 자식을 얻는다고 이 마을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마을 사람들은 항상 동제관에게 촛불을 예약하고 사람들은 무언중에 차례가 정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때는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그것도 부정이 될까 서로 양보하여 싸우는 일은 없다고 하니 다행이다. 아마도 이 마을 사람들의 올바른 나무신앙이 가져다준 것이 아닐까한다. 이제 산업화에 밀려 농촌 인구는 감소되고 나이 드신 어르신네들만이 외손봉사를 이어오면서, 외조상이 심으신 느티나무를 지키고 계신다. 하지만 나무가 있어 좋고 전통이 있어 좋은 동네 서촌 마을은 오늘도 그 외손들이 전국 각지에서 느티나무의 은덕을 입고 번성하고 있다. 600년 전에 심은 이 느티나무는 이 마을에 살았던 사람은 물론 이곳을 지나간 모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오늘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날에도 서촌 사람들은 이 나무 아래서 무더위를 잊는다. 외지에서 돈 잘 버는 아들이 에어컨을 사 준다고 해도 마을 공동의 에어컨인 느티나무가 있어 사오지 못하게 했다는 마을 한 어른의 얘기는 그늘의 시원함을 실감케 한다. 지면에서 32m 상공까지 뻗은 나무는 햇볕을 차단하여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내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어떤 이는 걸어서, 자전거, 경운기, 자가용을 이용하여 나무 그늘 아래 낮잠도 자고 이야기도 하고 장기 바둑을 두면서 무더운 여름날을 오히려 서늘하게 보내고 있다. 나무그늘 하나 없이 달아오른 시멘트 길을 걸어가는 도시인의 짜증을 모르고 사는 서촌의 사람들은 진정 느티나무의 은덕을 받고 사는 참 행복한 사람들임에 분명하다. 김호태 경일고 교사 2002-02-19
- 새로운 ‘가족 놀이공간’으로 자리매김 아직은 귓불을 가르는 바람이 싸늘한데도 얼음이 풀리는 대지의 소란스러움을 지닌 곳이 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에 있는 강변체육공원의 땀과 에너지가 강 너머로 넘나드는 탓일까. 힘에 부쳐서 낑낑거리다 넘어져도 까르르 웃음이 떠나질 않는 아이의 얼굴에선 벌써 봄이 이만치 다가온 듯 하다. 98년 7월 준공한 동락공원은 여름 휴일이면 하루 3000명∼4000명 정도가 다녀가는 곳. 아직은 날씨 탓인지 주말에만 평균 200명∼300명 정도 이용하고 있다. 새로 꽃길이 조성되고 전자신종 앞의 분수가 5월 준공하게 되면 더 많은 구미시민의 발길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2.5㎞정도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공원의 특성 때문에 공원전체의 시설을 모두 이용해 봤다는 사람은 30% 정도. 그만큼 잠재력이 있는 매력적인 공원이다. 실속파들이 즐겨 찾는 놀이시설 아이들도 그들만의 ‘하위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네들만의 문화를 실컷 누리며 마음껏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놀이동산. 보통 실내놀이동산의 입장료는 4500원선이다. 부모와 아이 두 명이 같이 입장한다면 두세 시간 놀이에 만만치 않은 경비를 지불하여야 한다. 실내 놀이동산이 계절과 기후에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는 게 장점이긴 하지만 땅을 밟을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어야 하는 아이들에겐 실외 놀이도 중요하다. 동락공원에도 이런 놀이시설이 있다. 동락공원을 찾은 요즘 아빠들은 성격(?)도 좋다. 아이들이 노는 공간에서 질서를 잡아주고 밀어 올려주고 붙잡고 내려오게 하는 건 물론이고 사진과 비디오 촬영까지 열심이다. 가기 싫다는 아이를 달래고 협박(?)하느라 진땀빼는 것도 아빠들의 몫. 그에 반해 엄마들은 태평이다.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이들도 있고 느긋하게 벤치에 앉아 아이와 아빠의 가벼운 실랑이를 구경하는 이도 있다. “남편회사가 이 근처에 있거든요. 휴일이어서 아이와 여기서 놀다가 만나기로 했어요.” 신평동에서 ‘다리를 건너 왔다’는 주부 신영옥씨는 일주일후면 둘째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라고. “오늘의 활기찬 풍경들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산후조리기간동안의 답답함을 이겨낼 예정”이라는 그녀는 2시간쯤 후 남편과 만나 부족한 출산용품을 챙기러 나섰다. 모임과 흩어짐의 조화 트랙을 돌기시작한 지 5분도 안돼 ‘엄마 더워’하면서 웃옷을 벗어 던지는 김미림(9)양. 겨우내 아파트 안에서만 생활하다가 오늘 처음으로 나왔다는 정미숙씨(35·진평동)는 “남편은 회사직원 결혼식에 가고 이제 막 롤러스케이트를 배우기 시작한 큰딸을 위해 ‘거금의 택시비’를 지불하며 이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단지 내에서는 위험에서 마음놓고 타질 못했는데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매주 오고 싶다”며 무료로 롤러스케이트를 빌릴 수도 있다는 말에 깜짝 놀란다. 아예 가족 모두가 스케이트장으로 들어서 서로 허리를 잡고 트랙을 돌며 가족사랑을 과시하는 이도 있다. 관리사무소와 전자종이 마주하고 있는 광장 한쪽에는 아이를 풀어놓고(?) 독서를 즐기는 아빠. 잘 놀던 아이가 ‘으앙∼’하면 벌떡 일어서고… 부자의 다정한 오후 풍경이다. 동락공원에서는 배드민턴은 제대로 칠 수 없다. 한참 게임이 재미있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불어오는 강바람의 심술로 정당한 승부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도 틈만 나면 채를 휘둘러 대는 커플들. 젊음을 누릴 줄 아는 이들의 모습이다. 한쪽에는 때 이른(?) 은박지 매트가 깔려있다. 두 명의 여성이 연신 깔깔대는 웃음소리에 햇님도 슬쩍 넘겨다본다. 시누이 사이라는 박혜민(구평동)씨와 강말순(황상동)씨다. “에너지가 넘쳐나는 아이들이 주말이면 온 집안을 북새통을 만드는데, 날이 따뜻해지는 분위기를 직감하고 얼른 동락공원으로 왔다”며 “이곳에 오면 남편과 동생은 가볍게 축구를 하며 몸을 풀고 아이들은 자전거 타고 롤러스케이트를 타느라 하루가 바쁘고, 껄끄럽기 쉬운 시누올케사이도 자연 속에 마음을 풀어놓아 친자매 못지 않은 우애가 싹튼다”고 자랑한다. “아이들이 벗어놓은 외투만 해도 한 짐이다”며 흐뭇하게 노는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에서 ‘가족의 회합장소’로도 손색이 없는 동락공원의 일면을 느낄 수 있다. 한편 동락공원에는 이런 저런 놀이거리도 숨겨져 있다. 가족들과의 봅나들이를 슬슬 준비해 보는 것은 어떨까. ◇국궁장= 1달 회비 3만원으로 정신운동까지 해보는 것은 어떨까. 화살을 5개 쏘고 나서 과녁까지 주우러 가야하기 때문에 다리 품을 팔아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정신집중이 요구되는 고난이도(高難易度)의 스포츠다. ◇민속정원= 정갈하게 가꾸어진 텃밭에 책에서만 보던 곡식과 채소들이 심어져 있다. 태극형 연못과 물레방아는 옛 멋을 그대로 담아놓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족구장과 산책로= 땀을 뻘뻘 흘리며 운동하다가 산책로를 걸으며 시원한 강바람을 맞아 볼 수 있는 것도 동락공원 만의 매력. 남편과 배드민턴이나 게이트볼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김은선 리포터 6k5tod@orgio.net 2002-02-19
- 하이닉스반도체 르포/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아미리 하이닉스 공장. 한 때 한국경제를 찌푸리게 한 ‘뇌관’으로 떠올랐다가 최근 이 회사의 주력 생산품인 D램 가격이 뜨면서 새롭게 기대감이 살아나고 있는 곳. 적어도 하이닉스 이천공장을 찾기 전까지는 최근 D램 가격이 상승하고 세계반도체업계는 물론 전반적인 경기회복의 청신호가 들리면서 이 회사도 공장도 덩달아 활기를 찾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곳에서 만난 직원들과 상가 점주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부발읍 하이닉스 공장 정문과 불과 20~30미터 큰길을 사이에 두고 자리한 이곳 상가의 점주들은 1년 넘게 여전히 한숨을 쉬고 있다. 옛 현대전자 시절 한 때 점심시간에는 자리를 잡기 어려울 정도로 번성했다던 현대시티프라자 주변 식당은 문을 닫는 곳도 나오고 있다. 식당 점주는 “요즘 점심때는 물정 모르고 찾아오는 뜨내기 외지사람들이 찾는 그저 그런 음식점으로 전락했다”며 “겉은 활기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한숨뿐”이라고 푸념했다. 반도체 침체에서도 음식점 등은 그나마 간판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나 술집들의 한숨은 더 컸다. 현대시티프라자에서 레코드가게를 열고 있는 박석정씨는 “이곳 가게들의 최 전성기는 컴퓨터시스템이 386에서 486으로 또 팬티엄급으로 넘어가던 때였다”며 “최근 신문 등에서 반도체 경기가 살아난다는 기사들은 보고 있지만 아직 소비와는 먼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하이닉스반도체는 보통 8일 날이 월급날인 데, 8일 이후는 이곳 상가는 작은 대목을 치를 정도로 활기찼다”며 “그동안 휘황찬란했던 술집 골목이 최근 을씨년스럽게 변했고 심지어는 휴·폐업에 나선 업체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는 한 점주도 “요즘 매출이 활황 때의 20% 수준을 밑돌고 있다”며 “이렇게 소비가 위축된 데에는 하이닉스 직원들의 급여가 줄었다기보다는 직원들이 안고 있는 빚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퇴근길에 거리에서 만난 하이닉스의 직원도 소비위축 현상을 빚 때문이라는 데 뜻을 같이했다. 그는 “반도체 공장분위기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면서 “당시 반도체 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당 1만7000원대에 주식을 매입한 직원이 적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직원가운데서는 당시 고금리인 은행돈을 빌려 억대 가까운 주식을 매입해 요즘 이자 대기에 급급하다”면서 “반도체 가격이 올라야 이를 정리할 수 있을 터인데 매입할 때의 가격을 크게 밑도는 2800원대에 머물러 있어 기대감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7000만원 가량을 자사주 매입에 쏟아 부었다는 한 관계자는 “하이닉스 주식이 1만원대로 회복돼야하는 데 이것은 어려울 것”이라며 “30만원대인 삼성전자 주가가 100만원대를 넘어서는 시점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허탈해 했다. 다른 하이닉스 사원은 “최근 하이닉스 반도체 직원가운데서는 마이크론에 매각된다는 소문 때문에 걱정이 하나씩 늘었을 것”이라며 “생산직은 여직원이 많아 결혼 등에 따른 자연감소인력으로 고용에 대한 불안은 덜하지만 사업부분이 해외에 매각돼 이로 인한 구조조정이야기가 나온다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을 때 하이닉스가 한국 공장(자국 내 공장)은 가동한 대신 미국 유진공장은 잠시 중단했던 사례를 들고, “미국의 마이크론이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한 뒤 그나마 반도체 경기가 살아난다면 괜찮은 데 다시 침체되면 이곳 공장을 우선적으로 중단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2002-01-15
- 발언대 ‘사랑의 스튜디오’와 미팅의 정치학 문형준·중앙대 영어영문 3학년 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일요일 아침마다 남자 넷, 여자 넷이 나와 서로 ‘짝짓기’를 하는 프로그램이다. 벌써 몇 년째인지 모르겠지만 꽤 오래 가는 인기프로그램이다. 처음엔 재밌게 봤다. “오늘은 몇 명이나 될까?” 혹은 “저 둘은 벌써 눈이 맞았군” 하면서. 아마, 대학내일신문의 독자들 중에서도 매주 재밌게 보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라는 텍스트의 구성요소들을 뜯어보면 20대 초·중반의(남자의 경우 후반도 많다) 성인 남녀, 이들의 외모, 직업, 학벌, 성격, 노래실력 등이다. 이 각각의 구성요소들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일단 남녀 모두 외모는 일정수준 이상이다. (내 시각이긴 하지만) 너무 뚱뚱하거나 못생긴 사람은 나온 적이 없다. 특히 여자들은 다들 예쁘고 날씬하다. 직업은 남녀모두 대기업이나 벤처기업 회사원들이 많은데, 여자의 경우는 유치원선생, 학원강사 등으로 훨씬 다양하다. 남자와는 달리 대학 학부생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학벌의 경우 남자는 대개 서울이나 지방국립대 4년제 대학이상이지만, 역시 여자는 훨씬 다양하게 이름 없는 사립대나 전문대졸도 많다. 남녀 공히 고졸은 없다(!). 성격, 노래실력은 논외로 하자. 거칠게 살펴봤지만, 이 프로그램의 구조는 간단하다. 남자는 안정된 직업-괜찮은 학벌이라는 일정한 조건을 갖춘 사람, 여자는 일단 어느 정도 학교만 졸업하면 (혹은 학생이라도) 어떤 직업이든 상관없이 외모가 예쁜 사람이라는 것이다. ‘능력 있는 남자 대 얼굴 예쁜 여자’의 구도. 아무리 학벌 좋고 능력 있는 여자도 뚱뚱하고 못생기면 좋은 남자 만나기 힘들고, 아무리 잘 생기고 체격 좋은 남자도 좋은 대학 못 나오고 번듯한 직장 없으면 결혼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남성성-여성성의 스테레오타입은 이미 사회전반에 널리 퍼져있고, 방송은 매주 재미를 더해가며 기존 구조를 확대재생산 한다. 덧붙여서, 남자의 나이는 언제나 여자보다 3-4년 많고, 남자는 언제나 여자보다 키가 크며, 남자는 언제나 바지를 입고 여자는 언제나 치마를 입는다는 것까지 함께. 시청자들이 이런 짜증나는 폐쇄구조를 읽어내고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로그램 폐지 요구를 한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에서처럼, 남녀관계 혹은 남성성-여성성은 대중매체를 통해 끊임없이 ‘재현(representation)’된다. 이데올로기적 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불완전한 재현과정이지만, 실제 남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 재현이 본질이라고, 실체라고 믿게 된다. 그리고 그 재현은 또다시 실체가 되어 우리 속에서 드러난다. 캠퍼스 낭만의 상징(?)인 미팅과 소개팅에서도 의 법칙은 어김없이 적용된다. 직업은 아직 없는지라, 캠퍼스에서는 대개 학벌과 외모다. 남학생은 학벌로 여학생은 외모로 승부한다. 여학생은 자기보다 더 좋지 않은 학교(라는 것도 얼마나 공허한가!)에 다니는 남학생과는 미팅을 하지 않고, 남학생은 학교 따위는 별로 상관없이 날씬하고 예쁜 여학생을 원한다. 그렇지 않은가? 가 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닮아버린 오늘, 와 미팅이 닮았다고 지적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오늘의 대학은 사회의 가치를 그대로 반영하고, 아니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남녀관계 뿐 만이 아니다. 증권강좌도, 토익과 컴퓨터강좌도 그렇다. 사회에서 필수적인 것이 대학에서도 필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람시 식으로 말한다면, 오늘 한국대학의 헤게모니는 사회가 쥐고있다. 그람시는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상식을 깨지 않고 변화는 없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이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지 않고, 대학 내의 상식을 깨지 않고 현상태를 유지하면서는 대학에서 새로운 삶의 대안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깟 미팅 하나 가지고 내가 너무 비관적인가? 2002-01-15
- 클릭! 이사람- 수필집 <남자를 열광시키는 여자> 펴낸 방송인 이숙영씨 “야하고 대담할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실은 조용한 편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애정당 당수’ 방송인 이숙영씨(44)가 다시 한번 유쾌하게 남녀관계를 탐색한 수필집 〈남자를 열광시키는 여자〉를 펴내 화제다. 이씨의 수필은 제목부터가 도발적이다. 91년 〈애첩 기질 본첩 기질〉을 발간한 이후 꾸준히 글을 써 왔지만 수필집으로는 거의 5년 만이다. 그러나 이번 수필집에서는 이씨에게 재미있는 변화가 읽힌다. ‘톡톡 튀는 여자’ ‘색깔 있는 여자’의 대명사인 그가 열광하는 이의 최우선 조건은 ‘사람의 향기’가 나야 한다. 나이듦일까? 아니다. 이씨는 원래 ‘알부녀(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였다. 책 속에서 이씨는 ‘마누라와 애인’의 차이점을 두고 재미있게 풀어나갔다. ‘마누라는 수다스럽지만 애인은 조용하다.’등등. 이는 ‘결혼 전과 후’라는 유머로 이어진다. 결혼 전에는 ‘이런 사람과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믿을 수 없었다’면 결혼 후에는 ‘결혼한 것이 이런 사람이라고는 믿고 싶지 않다’, 결혼 전 ‘사운드 오브 뮤직’ 결혼 후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 수필집의 제목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 이씨는 워낙 튀다보니 혹시 부부사이가 위험하지 않나 하는 오해를 곧잘 받는다. 그러나 이씨는 현대자동차 상임고문인 남편과 벌써 고등학생, 중학생인 두 딸과 애인처럼, 친구처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씨는 결혼에 대해 “작가 이만교 씨의 말처럼 결혼은 재산과 자식을 공유하는 주식회사잖아요”라며 “곰삭아진 정이랄지, 시간의 세례, 사회적 압력이랄지 그런 것 때문에 잘 헤어지지 못하잖아요”라고 말했다. 또 “나는 헤어지지 못하는 게 아름다운 것 같아요”라며 “그렇다고 진지한 이혼에 대해 선입견은 없어요”라며 자신의 결혼관을 설명했다. 그동안 수많은 이들의 가슴에 ‘사랑’의 불을 질렀던 이씨는 정작 굉장히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또한 이씨는 서로에게 무감각해질 수 있는 부부사이에 에너지를 불어넣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무엇이든지 공짜는 없다. 꼭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지인이 많고 밖에서 재미있게 사는 나는 남편 바가지 긁는 일이 거의 없다”며 “ 지겹지 않도록 늘 긴장하고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내가 치르는 대가”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씨는 “결혼한 여성들에게는 생활을 분산하라고 말하고 싶다”며 “메인디쉬는 자기 인생이니까. 남편에 모든 것을 걸고 살지 말라”고 말했다. 몇 해 전 한 조사에서 ‘페미니스트 하면 떠오르는 인물’ 10명에 포함될 정도로 자기주장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이씨. 그러나 이씨 자신은 결코 페니스트가 아니라고 한다. 이씨는 “전 페미니스트 분들 겁나요. 노선이 좀 틀려요”라며 “제 경우 약은 편이에요. 남자와 부딪히지 않으면서 권리를 더 많이 챙기는 타입이라 할 수 있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동안 게을리 했던 엄마역할에 좀 더 충실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할머니가 될 때까지 방송을 진행하고 꼭 한번쯤은 연극을 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특히 이씨는 50, 60이 되어도 ‘저 나이에도 톡톡 튀네’라는 소리를 듣는 철없음을 유지하면 좋겠다고 한다. /미즈엔 손정미 기자 jmshon@naeil.com 2002-0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