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46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북파공작요원, 야시장 설치 요구 북파공작원 출신 HID회원들이 성남시 종합운동장 주차장에 야시장 설치를 요구하며, 성남시와 절충을 벌이고 있 으나,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8일 이대엽 시장을 만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던 HID회원들은 11일 오후 성남시 종합운동장 주차장에 야시장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격돌했다. 12일 오후 2시 이대엽 시장과 면담이 있었으나, 부시장을 비롯 관계자들이 강력히 반대해 야시장 허가에 대해 답 변을 주지 않았다. 15일엔 부사장실에 모여 야시장의 설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HID 나판수 성남시지부장 “지금도 산속에서 죽어가고, 생계 유지를 위해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는 미망인과 가족들을 위해 10일 정도만 야시장을 열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하는 것”이라며, “대화가 되지 않을 경우 행동 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성남시 관계자는 “만일 HID회원들에게 야시장을 허용하게되면, 상의군인회, 고엽제 전우회, 장애인협회 등 계속되는 민원을 해결할 수 없으며, 무허가 포장마차의 상행위를 막을 명분이 없다”며 허가 불가 방침을 명확히 했다. 한편 HID회원들은 18일부터 21일까지 국가정보원 정문앞에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백왕순 기자 wspaik@naeil.com HID 북파공작원은 누구인가 육군첩보부대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북파공작원은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71년 8월 23일 발생한 실미도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북파공작원은 노무자 합숙소, 취업알선소 등의 물색조를 통해 입대했다고 한다. 서울, 부산에서 주로 활동한 물색 조는 공통적으로 첩보대임을 숨기고 ‘입대와 전역 시 각각 수백만원을 지불하며 1년6개월만 복무하면 된다’는 미끼를 내걸었다. 혹은 “돈 많이 주고, 미래도 보장해 준다”, “집과 직장도 주고, 결혼도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많은 사람들이 공작원이 됐다. 이들은 1년 동안 30㎏짜리 모래배낭과 2.5㎏짜리 발목 아대를 차고 1시간만에 산길 12㎞를 주파하도록 훈련받았 다. 하루 평균 16시간을 뛰어야 하는 훈련기간 동안 면회나 외출 외박은 단 한번도 없었고, 돈은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기본훈련 끝에 폭파·납치조와 수집·촬영조로 나뉜 이들에게는 5~6개월의 조별 훈련 후, 북파의 임무가 떨어졌 다. 군번과 월급은 제대 후 주어졌으며, 북한군에 발각 시 민간인이라고 잡아떼기 위해 권총도 한국전쟁 이전 것 인 양 녹슬게 해 지급됐다고 한다. 가명을 썼고 기록도 전무하니 첩보대에서 부인하면 끝이라고 한다. 그 동안 고된 훈련과 부상사고의 후유증에 대해서도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복무 중 보훈병원을 이용한 기록도 깨끗이 지워져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39 조2항은 왜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느냐”며 북파공작원이 울분을 토했다.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취직이 불가능했으며, 사회에 적응해 살기에는 격리된 세월의 골이 너무 깊어져 버린 것이 다. 이들이 사회인으로 다시 나설 때 사회적응 교육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버려졌으며, 사회의 이방인으로 살아 왔다. 지금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산 속에 혼자 숨어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성남에 살고 있는 나판수씨는 “자가진단을 해 보면 북파공작원 99%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폐증 환자”라 고 설명했다. 이들이 냉전 조국에서 청춘을 빼앗겼으며, 국가차원의 보상이 될 때만이 상처 치유와 명예회복이 가능하다. 2002-07-16
- 북파공작요원, 야시장 설치 요구 북파공작원 출신 HID회원들이 성남시 종합운동장 주차장에 야시장 설치를 요구하며, 성남시와 절충을 벌이고 있 으나, 난항이 예상된다. 지난 8일 이대엽 시장을 만나 긍정적인 답변을 얻어냈던 HID회원들은 11일 오후 성남시 종합운동장 주차장에 야시장을 설치하려고 했으나, 공무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격돌했다. 12일 오후 2시 이대엽 시장과 면담이 있었으나, 부시장을 비롯 관계자들이 강력히 반대해 야시장 허가에 대해 답 변을 주지 않았다. 15일엔 부사장실에 모여 야시장의 설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HID 나판수 성남시지부장 “지금도 산속에서 죽어가고, 생계 유지를 위해 하루하루 어렵게 살아가는 미망인과 가족들을 위해 10일 정도만 야시장을 열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하는 것”이라며, “대화가 되지 않을 경우 행동 으로 보여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성남시 관계자는 “만일 HID회원들에게 야시장을 허용하게되면, 상의군인회, 고엽제 전우회, 장애인협회 등 계속되는 민원을 해결할 수 없으며, 무허가 포장마차의 상행위를 막을 명분이 없다”며 허가 불가 방침을 명확히 했다. 한편 HID회원들은 18일부터 21일까지 국가정보원 정문앞에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백왕순 기자 wspaik@naeil.com HID 북파공작원은 누구인가 육군첩보부대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북파공작원은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으나, 71년 8월 23일 발생한 실미도 사건으로 세상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북파공작원은 노무자 합숙소, 취업알선소 등의 물색조를 통해 입대했다고 한다. 서울, 부산에서 주로 활동한 물색 조는 공통적으로 첩보대임을 숨기고 ‘입대와 전역 시 각각 수백만원을 지불하며 1년6개월만 복무하면 된다’는 미끼를 내걸었다. 혹은 “돈 많이 주고, 미래도 보장해 준다”, “집과 직장도 주고, 결혼도 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많은 사람들이 공작원이 됐다. 이들은 1년 동안 30㎏짜리 모래배낭과 2.5㎏짜리 발목 아대를 차고 1시간만에 산길 12㎞를 주파하도록 훈련받았 다. 하루 평균 16시간을 뛰어야 하는 훈련기간 동안 면회나 외출 외박은 단 한번도 없었고, 돈은 단 한푼도 받지 못했다. 기본훈련 끝에 폭파·납치조와 수집·촬영조로 나뉜 이들에게는 5~6개월의 조별 훈련 후, 북파의 임무가 떨어졌 다. 군번과 월급은 제대 후 주어졌으며, 북한군에 발각 시 민간인이라고 잡아떼기 위해 권총도 한국전쟁 이전 것 인 양 녹슬게 해 지급됐다고 한다. 가명을 썼고 기록도 전무하니 첩보대에서 부인하면 끝이라고 한다. 그 동안 고된 훈련과 부상사고의 후유증에 대해서도 아무런 보상이 없었다. 복무 중 보훈병원을 이용한 기록도 깨끗이 지워져있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병역의무의 이행으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39 조2항은 왜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느냐”며 북파공작원이 울분을 토했다. 사회에 나온 사람들은 취직이 불가능했으며, 사회에 적응해 살기에는 격리된 세월의 골이 너무 깊어져 버린 것이 다. 이들이 사회인으로 다시 나설 때 사회적응 교육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버려졌으며, 사회의 이방인으로 살아 왔다. 지금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산 속에 혼자 숨어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성남에 살고 있는 나판수씨는 “자가진단을 해 보면 북파공작원 99%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폐증 환자”라 고 설명했다. 이들이 냉전 조국에서 청춘을 빼앗겼으며, 국가차원의 보상이 될 때만이 상처 치유와 명예회복이 가능하다. 2002-07-16
- “천지창조 주인공은 율려” <문화-섹션 사진 있음> 우리 민족의 역사에는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가 2333년이나 있다. 그런데, 고대사에 대한 기록은 미진하다. 다행히 ''한단고기''가 있어 당시의 역사를 추론하게 한다. 그런데, 1945년 해방 이후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결과, 우리나라 사학계는 식민사학자들이 주도하면서 ‘한단고기’가 공인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때, 삼국시대 신라의 충신이었던 박제상이 쓴 ''부도지''가 한글로 번역되어 나온 것은 반가운 일이다. ''부도지''가 처음 번역된 것은 1986년이다. 안타갑게도 ''부도지''를 처음 번역한 김은수 선생은 다음해 작고하셨다. 올해 1월 광주교대 김재수 교수가 도서출판 ''한문화''의 도움으로 개정판을 냈다. 부도지는 단군 역사의 열쇠 박제상은 신라 내물왕 때인 363년에 태어났다. 내물왕의 다음 왕 눌지왕 때에 박제상은 일본에 볼모로 잡혀있는 눌지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하고 대신 볼모로 잡혔다. 일본왕이 일본에 귀화할 것을 권유했으나 "신라의 개돼지가 될지언정 왜왕의 신하가 될 수 없다"고 말해 화형을 당했다. 박제상이 부도지를 쓴 때는 414년경으로 신라 삽량주를 담당하는 관리로 있었을 때이다. 조선시대 김시습은 박제상이 보문전 태학사로 재직할 당시 열람했던 자료와 가문에서 전해져 온 비서를 정리하여 저술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신라가 건국된 것은 기원전 1세기 경이다. 불교가 신라에서 공인된 것은 6 세기 초엽이다. 따라서 부도지는 불교가 국교로 인정되기 전 신라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세계관과 우리 민족 고유의 가르침인 ''하늘 땅 사람이 하나라는 삼원사상''의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부도지는 단군조선시대 역사의 열쇠인 것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천지창조의 주인공은 ''율려''이다. 율려를 세 가지로 구태여 요약한다면 ''빛, 소리, 진동''이다. 율려가 몇 번 부활하여 하늘이 처음 열리고 우주에 별들이 나타났다. 율려를 통해 지구의 영혼 ''마고''가 잉태되었다. 마고는 두 딸 궁희와 소희를 낳았다. 파미르 고원으로 추정되는 ''마고성'' 궁희와 소희는 네 천인과 네 천녀를 낳았다. 율려가 다시 부활해 땅에는 육지와 바다가 생겼다. 기, 화, 수, 토가 서로 섞여 조화를 이루면서 풀과 나무와 새와 짐승들이 태어났다. 네 천인과 네 천녀가 결혼하여 각각 삼 남 삼 녀를 낳았으니 이들이 지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인간의 시조이다. 이들은 몇 대를 걸치면서 1 만 2 천명이 되었다. 이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마고성''이라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역자는 부도지의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중앙아시아 ''파미르 고원''의 남동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게 ''마고성''이라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인간들은 이후 지소씨가 포도를 먹게되면서 타락하게 된다. 부도지에서 기록된 ''오미의 변''과 ''자재율의 파괴''로 인간은 오욕칠정에 사로잡히고 사사로운 감정에 휩싸인다. 근본적으로 사람이나 나무나 풀이나 짐승이나 모두 ''하나''임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부도지에 의하면 이때 ''마고성''의 가장 큰 어른이며 천성을 잏지 않은 ''황궁''씨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의 이치를 다시 깨달게 해 마고성과 같은 이상세계를 세울 것을 하늘에 서약한다. 황궁씨는 마고성에 살던 네 무리 중 한 무리를 이끌고 가장 춥고 위험한 북쪽의 천산주로 떠난다. 황궁씨는 사람들에게 만물의 근본이 하나임을 깨달게 하고 큰 아들 ''유인''씨에게 ''천부삼인''을 주어 세상을 밝히게 한다. 유인씨는 불을 일으켜 어둠을 밝게 비추고 불로 음식을 익혀 먹고 몸을 따뜻하게 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유인씨의 아들 ''한인''씨는 천부삼인을 이어받아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밝혔다. ''한단고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한인시대''부터 기록하고 있다. ''부도지''에서 독자들은 민족이동경로와 한인시대 이전의 역사를 연구할 수 있는 단초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우리민족 고유의 창세신화를 알게되면서 인류의 시원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독자들은 부도지에서 우리민족 고유 사상인 ''하늘 땅 사람이 하나되는 삼원사상''의 조화와 상생에 의한 인류 평화의 메세지를 느낄것이다. 또한,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적 세계관이 아닌, 연관과 통일에 의한 삼원론적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승희 리포터 asisure@naeil.com 2002-07-12
- ''만인의 연인'' 줄리아 로버츠 결혼하다 오스카상 수상자인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그녀의 카메라맨이었던 다니엘 모더와 결혼했다. 이 커플은 목요일 아침 뉴멕시코의 타오스에 있는 줄리아 로버츠의 별장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줄리아 로버츠에게는 이번이 두 번째 결혼식이다. 그녀의 첫 번째 결혼 상대는 가수인 라일 로베트였으며 21개월의 결혼생활 후 이혼했었다. 줄리아 로버츠의 홍보담당자인 엥겔맨씨에 의하면 이들 커플은 아침에 가족들과 친구들이 도착하기 전에 한밤중에 둘만의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신부의 드레스와 결혼식의 형태 등 자세한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했다. 결혼식 전날인 수요일 오후에는 줄리아 로버츠의 별장에 흰색의 커다란 텐트가 보였으며 타오스 시내는 기자들로 넘쳐났다. 이들중 일부는 줄리아 로버츠의 별장 입구에 진을 치기도 하였다. 이번 한 주동안 이 결혼식을 둘러싸고 많은 소문들이 있었는데 영국의 브리티쉬 뉴스페이퍼지는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50명의 스타들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뉴멕시코로 올 예정이라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 보도에 의하면 50명의 스타중에는 영화 ''Ocean''s 11''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함께 주연을 맡았던 조지 클루니도 포함되어 있으며 초청객들은 모두 흰색옷을 입기로 했다고 한다. 줄리아 로버츠는 과거 1991년에 키에퍼 수더랜드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었지만 그 전날 헤어졌다. 이후 이 노팅힐의 스타의 애정행각에 대해 많은 추측기사들이 나돌았다. 또한 작년에는 4년간 사귀어 온 벤자민 브래트와 헤어졌는데 그녀와 헤어진 벤자민 브래트는 올해 4월에 여배우 텔리사 소토와 결혼식을 올렸다. 이외에도 줄리아 로버츠는 제이슨 패트릭 딜란 맥드모트 매튜 페리 리암 네슨 등 많은 사람들과 염문설을 뿌렸다. 성관계를 가지면 수명이 줄어든다 성관계를 가지는 것이 건강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이번 연구결과 짝짓기를 하는 곤충이 평균수명이 더 짧으며 이는 특정한 호르몬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이번의 연구결과가 사람을 포함한 다른 생명체에도 적용이 되는 지의 여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세필드 대학의 젠스 로프 박사와 마이클 시바 조디 박사가 수행을 하였으며 그들은 애완동물로 키우는 파충류와 새들의 먹이로 주로 쓰이는 딱정벌레를 실험 대상으로 하였다. 그들은 실험결과 딱정벌레들은 짝짓기 후 호르몬이 분비가 되며 이 호르몬은 면역 기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효소에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하였다. 따라서 짝짓기를 하는 딱정벌레들은 면역 체계가 파괴될 확률이 높아져 쉽게 질병에 걸리게 되며 또한 수명이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미 예전에 짝짓기를 하는 곤충이 평균수명이 짧다는 것은 밝혀졌었지만 그 이유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바 조디 박사는 짝짓기를 많이 하는 종일수록 그 종은 보다 우수한 개체를 생산하기 때문에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성공하지만 짝짓기를 하는 그 개체는 평균수명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또한 짝짓기를 할 때 곤충의 면역체계가 저하된다는 이번의 연구결과를 해충을 박멸하는 데에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람들도 성관계를 가질 때 면역체계가 저하되는데 이 때문에 성관계시 성병 등이 쉽게 전염이 되며 전염된 성병으로 인해 수명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한다. 핸드폰 사용하면 두통 유발 세계보건기구(WHO)는 부모들에게 자녀들이 너무 오랜 시간 동안 핸드폰을 사용하게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세계보건기구의 그로 할렘 브런틀랜드 이사는 핸드폰이 미치는 손상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까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자녀들에게 매일 몇 시간씩 핸드폰을 사용하게 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다. 몇몇 실험결과 핸드폰을 자주 사용하는 장소에서는 그렇지 않은 장소에 비해 전자기파가 높게 나온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까지 핸드폰을 사용하는 것이 미치는 장기적인 효과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없다. 그로 할렘 브런틀랜드씨는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제네바에 있는 그녀의 사무실에서는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녀는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며 핸드폰을 사용하면 두통이 생긴다고 말했다. 핸드폰은 비교적 최신 기술이기 때문에 핸드폰이 미치는 장기적 영향에 대해서는 연구결과가 없다. 2년전 영국정부는 조사결과 핸드폰이 미치는 건강상의 부정적인 효과는 없다고 발표했지만 어린이들의 핸드폰 사용에 대해서는 좀더 많은 사실들이 밝혀질 때까지 연기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최근 핀란드에서는 핸드폰에서 나오는 방사선이 두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는데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핸드폰에서 나오는 방사선에 노출된 세포는 피에 있는 유해한 물질들이 두뇌로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는 신체의 보호 기능을 파괴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핸드폰 통화는 가능한한 짧게 하고 오랜 시간동안 통화를 할 때에는 핸즈프리 등을 사용하는 것이 핸드폰 피해를 줄이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말했다. 중국 만리장성 이후 최대의 프로젝트 시작 중국은 만리장성 이후 중국의 가장 큰 토목사업중의 하나로서 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건설하기로 하고 사업에 착수했다. 이 대규모 프로젝트는 두 개의 큰 정유회사가 맡고 있으며 중국의 가장 큰 정유회사인 페트로차이나사는 이번 사업을 위해 앵글로 더치 에너지 그룹과 컨소시엄 협정을 체결했다. 이번 사업으로 인한 송유관은 중국 북서쪽의 사막 지대에서 동쪽의 해안지대에 위치한 상하이까지 연결이 되며 중국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토목사업 중의 하나이다. 현재 중국 정부는 삼협댐 건설에 250억 달러를 투자하고 있는데 이 사업만이 금액에 있어서 이번 송유관 사업을 앞지르는 정도이다. 이번 사업은 2004년까지 연장 4000km의 송유관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공사가 완공되면 송유관은 중국의 9개의 성과 양쯔강 황하강을 가로지르게 된다. 또한 이 송유관을 통해서 매년 120억 입방미터의 기름이 신장에서 상하이로 흐르게 된다. 페트로차이나사는 신장에 거대한 기름 저장고를 가지고 있는데 이 지역은 지형이 매우 험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기름을 운송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또한 그동안 과다한 석탄 사용으로 인해 중국의 많은 도시가 스모그 현상으로 고통을 겪었는데 이번 사업으로 인해 그러한 문제점들도 어느 정도는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양자간의 이해관계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예상 소요 경비는 200억달러(24조원)라고 한다. ( BBC 홈페이지에서 발췌 ) 형상수 리포터 gk310@hanmail.net 2002-07-10
- ‘장 상씨 선택’, 현 정부로선 최선 7·11개각의 하이라이트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을 국무총리서리로 임명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화여대 장 상(63·여) 총장이 총리서리로 임명된 데 대해 “아들들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김대중 대통령으로선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평가 또한 많았다. 여성계 한 인사는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총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라며 “난마처럼 얽힌 현 정국에서 누가 총리를 하던 간에 역부족일 수 있어, 헌정사상 최초로 여성을 총리에 기용한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장 총리서리 발탁이 ‘깜짝 인사’였던 것도 사실. 총리실 관계자들은 11일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후임 총리들이 모두 남성뿐이어서 여성이 발탁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선한 충격”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화여대는 “우리나라 여성 전체의 기쁨”이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장 총리서리가 지난 96년 총장으로 취임한 이후 과감한 추진력으로 학교 발전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올해로 104년째인 이대 역사상 첫 기혼 총장이었다. ‘재학 중 결혼’을 금기시해 온 학내 분위기를 무릅쓰고 결혼한 대학원생을 위해 교내에 탁아소를 만드는 등 수완을 보였다. “대학 총장도 경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며 총장 공관으로 각계 인사들을 초대해 끈질긴 설득으로 상당한 학교발전기금을 모았고, 이화SK관, 아산공학관, 이화포스코관 등의 건립을 추진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즉각 실행에 옮기는 것도 장 총리서리의 장점이다. “다른 대학에선 일반화돼 있는 전과(轉科)제도가 왜 이대에는 없느냐”는 지적이 나오자 이를 합리적이라고 판단, 즉각 전과제도를 도입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난 2000년 6·15남북정상회담 때는 여성계를 대표해 김 대통령과 함께 북한을 방문했고, 사회활동이 왕성해 직책이 무려 22개나 됐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평북 용천 출신으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 아래서 자랐다. 62년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연세대 신학과에 다시 입학했고, 지난 70년 미국 예일대 유학시절 박준서(62) 연세대(신학과) 교수와 결혼했다. 역설적인 것은 김 대통령이 두 아들 비리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상황에서 장 총장을 총리서리로 임명, 국면 전환을 모색했는데, 장 총리서리가 ‘큰 아들의 국적 문제’로 논란거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유학시절 미국서 낳은 큰 아들 찬우(29)씨가 미국 시민권자로, 지난 77년 귀국 당시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는 국적법에 따라 아들의 한국 국적으로 포기한 것. 장 총리서리는 ‘총리직을 제의받은 후 아들의 국적 문제 때문에 주저하거나 고민하지는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지는 않았다”면서 “내가 그 시절 총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면 (한국 국적 포기를) 안했을 것”고 해명했다. 국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은 올해 5월 병장으로 제대했다. 2002-07-12
- 노출의 계절을 더 아름답게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지난달. 열광적인 붉은 악마들은 저마다 멋들어진 보디페인팅과 패션문신으로 온몸 응원을 펼쳤다. 문신하면 무시무시하고 끔찍한 문양, 폭력배나 건달들이 주로 하는 것으로 생각됐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패션문신은 노출을 더 아름답게 해주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연출하도록 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또 축구스타 베컴의 문신 사진이 공개되면서 문신을 하고 싶은 남성이나 여성들 사이에 타투의 인기는 더욱 높아 가고 있다. 문신은 피부나 피하조직에 상처를 내고 물감을 들여 글씨 그림무늬 등을 새기는 일이다. 문신의 풍습은 원시시대부터 있었는데, 성년식을 할 때나 할례를 할 때 결혼이나 출산 시나, 때론 호적을 대신하기 위해 문신을 하기도 했었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문신은 직접 몸에 상처를 내서 만드는 문신이 아닌 스티커 문신. 이 스티커 문신은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문신으로 이번 월드컵 기간 중 열풍을 일으켰다. 월드컵용 타투는 월드컵 축구공 무늬, 월드컵 참가국 국기 무늬, 응원문구 태극문양 등으로 어른에서 아이까지 거부감 없이 패션 문신을 즐길 수 있었다. 월드컵용 이외에도 꽃무늬나 각종 만화캐릭터 동물문양 등 다양한 타투가 있다. 일회용 스티커를 붙일 때는 스티커의 종이 부분에 충분히 물을 묻힌 다음 스티커의 끈끈한 부분을 피부에 밀착시켜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려준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3∼5일 정도 유지된다. 물에는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클렌징 크림이나 로션으로 문지른 뒤 떼어 낸다. 아세톤을 사용해도 되지만 피부가 약하거나 알레르기가 있는 경우는 피하는 것이 좋다. 또 오일이나 로션을 바른 상태도 피해야 한다. 일회용 문신은 지난 월드컵 때 옥션(www.auction.co.kr)과 인터파크(www.interpark.com) 등에 최고의 인기상품으로 떠올랐다. 태극기 한반도 축구공 등 8가지 모양으로 이뤄진 패션 문신이 9천900원에 판매되었다. 타투박스(www.tattoobox.co.kr)는 패션문신 판매 전문 싸이트로 소원을 이루어 주는 문양, 태극문양 월드컵 응원용 문신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은 2,500원 정도.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2002-07-10
- 주부 파이팅 열 다섯 번 째 이야기 김명옥(42세 ·성사1동)씨. 천주교 신자인 그녀의 기도 속엔 건강에 대한 감사가 넘쳐난다. 그녀가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지는 약 20년. 그 동안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모습의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기까지는 건강한 육체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하루는 새벽 미사가 있는 날이면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성당에서 연계되는 사회봉사 외에 일주일에 한번은 덕양노인종합복지관에서의 한글교실, 원당사회복지관에서의 도시락 배달에 이은 이동목욕봉사, 일주일에 두 번은 늦게 시작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가야하는 일과로 짜여져 있다. 이 모든 일을 다하면서도 살림 또한 빈틈없는 솜씨로 남편의 퇴근이나 중학교 3학년인 딸과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항상 귀가하여 식구들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어 그녀가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자정을 넘기기가 일쑤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에는 아이들을 동반하여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김씨. 이는 자신의 의지도 있지만 아이들을 혼자 두지 말고 잘 보살펴야 한다는 친정어머니의 간곡한 당부가 늘 뇌리 속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편은 같은 성당에서 봉사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며 김씨의 생활을 적극 도와주고 있고 아이들은 방학이면 어김없이 김씨와 봉사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봉사가 생활화 된 가족이다. 그래도 칭찬을 받기엔 별로 한일이 없어 부끄럽다며 겸손해하는 김명옥씨. 동네 어른들과 함께 한 따뜻했던 어린 시절(소제목) 김씨는 장애인 등 불우 이웃을 위한 여러 일에 참여하고 있지만 그녀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외로운 노인들이다. 지금도 한글교실에서 노인들을 만날 때 행복하다는 김씨. 어려서부터 또래와 이야기하는 것보다 어른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더 즐거웠다고 회상한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직장에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동네 아주머니들의 정겨운 말 한마디 한마디가 무척이나 고마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일까. 김씨는 결혼 후 자녀들이 걸음마를 시작할 무렵부터는 늘 동네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정자 아래로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 노인들의 시중을 들어들이고 말벗 역할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의 심성이 누구보다 따뜻하고 생각의 폭 또한 넓고 깊은 것 같다는 김씨. 그 당시 특별한 교육 목적을 둔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그 당시를 추억하며 기억 하나 하나를 아름답게 떠올리는 아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정말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엔 아파 누운 노인 댁을 방문하여 청소와 살림 등을 봐주는 도움에서 시작, 이제는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장소와 기회를 제공해주는 중간역할까지 하게되면서 봉사의 개념을 다시 정립하고 체계적으로 사회복지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는 김씨. 언젠가 국가의 의료혜택과 지원을 받기 위해 생계가 막연한 시어머니를 위해 고의로 며느리가 자식들을 남기고 가출을 해야했던 가슴아픈 사연을 이야기하며 현실과 법의 모순됨을 피부로 느끼며 더욱 공부에 뜻을 두게 되었다고 전한다. “지난 시간동안 진짜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법에 묶여 아무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가슴아픈 경우를 접할 때마다 공부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것 같아요. 또한 돈이 많았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봉사 과정에서 물질적인 도움 또한 적지 않게 해보았지만 개인이 감당하기엔 한계가 있어 좌절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앞으로 저희 부부의 바램은 능력을 성장 시켜 불우 이웃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면서 더불어 살고 싶어요.” 전미정 리포터 flnari@naeil.com 2002-07-10
- 홍성에서 ‘오리 입식 행사’ 김포여성민우회 생협 회원 참가 한여름 대낮 농촌마을 푸른 논에 논두렁마다 어린 아이 키만한 그물망이 설치되어 있고 논 한구석엔 작은 움막들이 있다. 바로 이 움막은 논에서 생활하는 오리들을 위한 작은 집이다. 꽉 꽉 꽉 꽉 꽉. 3∼40여 마리 오리들이 오리집에서 논에 들어갈 준비를 하며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은 오리 한 마리씩 집어 들고 “오리야, 농사 잘 지어. 가을에 또 만나자” 아이들은 귀여운 아기오리가 마냥 신기한지 한참이나 들고 있다가 조심스레 논에 집어넣는다. 오리는 재빨리 흙탕물을 만들며 잘 자란 모 사이로 헤엄쳐 간다. 김포 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 회원 40여명은 지난 6일,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유기농산물 생산지 충남 홍성군 홍동면 금평리 김애마을에서 ‘오리 입식 행사’를 가졌다. 농민들 쌀 농사, 농약 없는 오리 농군 선택 홍동면은 홍성 풀무원 생협이 있는 곳으로 여성민우회 생협과 가장 먼저 산지 직거래를 시작한 마을이다. 제초를 위해 94년부터 오리농법으로 쌀농사를 짓고 있다. 오리농법은 보통 10평당 1마리 이상의 오리를 넣게 되는데 일반 집오리보다 몸집이 작은 청둥오리를 이용한다. 모내기가 끝나고 10일 정도 지난 뒤인 6월 초에 오리를 넣어 주면 오리가 벼 사이 고랑을 다니며 잡초와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논을 비옥하게 해주어 병에 대한 저항력을 높여 준다. 또 오리가 벼 포기 사이를 다니며 부리와 갈퀴 및 온몸으로 논바닥을 헤집고 다녀 물을 탁하게 하여 피가 삭이 트지 않도록 하고 논을 갈기도 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있다. 또 야생동물로부터 피해를 막기 위해 아침에 오리를 논에 풀어놓았다가 저녁에 불러들인다. 현재 홍동면에 있는 470여 농가에서 118만평 규모의 논에서 오리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 오리 수는 7만 마리나 되고 이 오리들이 한 해 37만톤의 농약을 대신하고 있다. 김애마을 이장 이찬종씨는 “올 해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담배를 끊듯 농약을 끊고 오리농으로 전환했습니다. 제초제의 간편함을 일부러 멀리하고 힘들고 어려운 오리농군을 선택했습니다”라고 말했다. 환경을 지켜 주는 쌀 농사로 소비자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이 날 행사에는 오리입식 외에 풍물 한마당, 감자캐기, 소비와 생산자가 결혼하는 행사도 가졌다. “생산자는 농약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신부인 소비자의 안전한 먹거리를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소비자는 슈퍼마켓에서 유혹하는 수입 농산물을 멀리하고 우리 농산물을 지키겠습니까”라는 주례자의 질문에 그 곳에 모인 농민들과 회원들은 엄숙하게 모두 대답하였다. 이 마을의 작목반장으로 있는 박종원(홍성풀무원 생협 이사)씨는 “우리가 이렇게 웃으며 농사지을 수 있는 건 소비자는 생산자의 생활을 생각하고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명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항상 책임 있는 농업을 짓겠다”고 말했다. 가족 단위로 오리입식행사에 참여한 회원들은 직접 생산지 견학을 통하여 다시 한번 우리 밥상에 오르는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생각을 하였고 가을 나눔잔치 때도 다시 이 곳에 올 것이라고 말했다. 생협 담당자 안재헌씨는 “오리입식 지원금과 오리입식행사의 진정한 의미는 함께 짓는 농사의미로 생산자에게 유기농을 위한 오리를 소비자들이 부담하여 사주고 오리를 직접 풀어 주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간의 유대를 강화하는데 있고 오리쌀 생산과정을 소비자가 알게 해 주는데 있다”고 말했다. 회원들은 오리입식 지원금 1구좌 1800원씩 내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열 마리 이상 산 회원들은 오리 두 마리씩을 받게 된다. 최선미 리포터 mongsil0406@hanmail.net 2002-06-10
- <클릭! 이사람> 아들 사망보상금 1억원, 농민회에 기탁한 이호원씨 한 농민운동가가 산업재해로 숨진 아들의 보상금 1억원을 농민회에 내놓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경남 고성군 마암면에서 100마지기 쌀농사를 짓는 농민 이호원(55)씨가 그 주인공. 고성군농민회 창립멤버이기도 한 이씨는 고성민주단체협의회 상임의장을 맡으며 사회운동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이씨는 이달초 고성농민회(회장 김환구)계좌로 1억원을 입금시켰다. 계좌를 정리하던 총무부장이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되자 “농민회 발전기금으로 써달라”는 말이 전부였다. 농민회에 따르면 이 기탁금은 울산의 모 건설현장에서 크레인기사로 일하던 장남(26)이 지난 5월 중순 작업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로 숨진후 지급된 산업재해보상금 전액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아들은 결혼은 앞둔 시점이어서 안타까움은 더했다. 이 충격으로 호방한 성격의 이씨는 몇주간 절집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는 후문이다. 고성농민회 관계자는“평소 아들이 아버지 뒤를 이어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농민운동을 할 것이라고 밝혀 의장께서 보상금을 농민회에 기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농사를 짓겠다던 먼저간 아들의 뜻일 뿐이다”는 것. 이 관계자는 또“의장께선 평생을 농민운동을 하셨고, 세상을 버리면 모든 재산을 농민회에 기탁하기로 말하는 등 사심 없이 농민회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농민회는 “이같은 숭고한 뜻이 담긴 거금의 기탁금을 소중히 사용하기 위해 다각도로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76년 카톨릭 농민회 활동을 시작해 30년째 농사와 농민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경남지역 농민운동의 산증인. 지난 87년 소값파동 당시 전국에서 처음으로‘소몰이 투쟁’을 고성에서 주도하다 고초를 겪기도 했다. 당시 100여마리의 소를 몰고 시위에 나섰던 고성군 마암면 두호리에는 이를 기념한 민주공원이 조성돼 있다. 91년 고성군농민회를 창립하고, 최근까지 5년 동안 회장을 역임했다. UR협상이 한창이던 92∼93년에는 전국농민회 경남도연맹 의장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전농 및 경남도연맹 지도위원과 참여와자치시민연대 회장, 10여개 사회단체로 구성된 고성민주단체협의회 상임의장을 맡아 지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성 원종태 기자 jtwon@naeil.com 2002-07-09
- 카톨릭의 ME(부부 일치) 운동 25주년 E(MARRIAGE ENCOUNTER)운동은 결혼한 부부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자신들의 관계를 돌이켜보자는 카톨릭의 부부 일치 운동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그 역사는 195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소년 선도 활동을 하던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가 가정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세미나를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어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1977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약 2192회의 ME가 개최되었고 약 11만2000명이 참가했다. 프로그램 내용에 종교적 색채가 없기 때문에 참가자들 중 15% 정도는 카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라고 한다. ME는 금요일 오후 7시부터 일요일 오후 6시까지, 44시간 일정으로 천주교 피정 시설에서 열리며 보통 25∼30쌍의 부부가 참가한다. 이들은 신부 한 명과 세 쌍의 봉사 부부로부터 혼인 생활에 대한 관찰 소감과 체험담, 부부 대화의 방법 등을 듣고 부부끼리 따로 대화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들을 돕는 봉사 부부는 먼저 ME에 참가했던 부부 중 지원자로 구성되며 현재 전국에서 약 500쌍이 활동하고 있다. 봉사부부들은 참가자들에게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배우자에게 털어놓도록 충고하며 심지어 효과적으로 싸우는 방법까지 제시해준다. 김영복(경기 서부 지구 ME대표)씨는 “일산이 전국에서 가장 ME운동이 활성화 된 곳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문제가 있는 부부를 위한 것이 아니고 건전한 모든 부부에게 더욱 행복한 부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지요.”라고 이 프로그램의 취지를 밝힌다. 그러나 간혹 인생의 막다른 선택의 기로에 선 부부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이혼의 위기를 넘기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한 60대 부부는 “우리 두 사람 평생 서로의 맘을 오해한 채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한 적이 없다는 걸 이 프로그램을 통해 깨달았어요. 살아온 날들이 참 후회스럽지요. 좀 더 일찍 ME에 참가했더라면…”하는 아쉬운 맘을 토로하기도 한다. 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원하는 부부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으나 결혼생활 5년 이상 된 부부가 참가하는 것이 효과가 더욱 크다고 한다. 물론 이 프로그램 참가 이후에도 배운 대로 행하고자 하는 실천의지는 필수 요건. 부부간의 좀 더 진지한 대화 방법을 모색 중인 부부들에게 ME를 권한다. (011-327-2076) 조수진 리포터 jinjean@orgio.net 2002-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