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46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강원여성/ 한국여성경제인협회 강원지회 이사 플로아트 박경숙 사장 스물일곱에 무작정 시작한 꽃사업 춘천시청 앞에서 11년째 자리 잡고 있는 플로아트(47.사진) 박경숙 사장은 ‘주는 마음’을 우선으로 화훼시장을 조용히 이끌고 있다. 결혼 전 보험회사 총무부에 근무하며 수동적인 일보다는 자신이 직접 할 수 있는 사업을 생각하던 차에 스물일곱이 되던 해, 회사를 그만두고 춘천시 육림극장 맞은편에 아주 작은 꽃가게를 시작으로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어떻게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모르겠어요. 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앞으로 꽃시장이 전망 있다는 말만 듣고 시작했죠. 그 다음부터 꽃꽂이 학원에 가서 자격증을 취득하고 참 용기 있고 기특한 일이었어요.” 자기이름으로 된 사업을 한다는 것은 박 사장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무엇인가 목표를 가지고 열정을 바칠 수 있는 에너지가 자신도 모르게 나오게 되고 나름대로 목표를 세운다는 것 자체가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11년 전 지금의 시청 앞 자리로 옮겨 사업을 확장했을 때는 주위에서 많은 우려를 했어요. 그때 당시에만 해도 지금 이 자리는 하루 종일 몇 사람 오고갈 정도로 한적한 곳이었고 특별히 마케팅을 위해 할 생각이 없었지요. 그런데 결혼 전부터 거래하던 고객들을 바탕으로 열심히 했습니다.” 박 사장은 지금도 아침 8시면 정확하게 출근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고 있다. 그것은 고객과의 약속이고 곧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한데 한결같이 ‘변화없음’을 고집하고 있는 탓이기도 하다. 꽃보관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플로아트에서는 꽃보관 냉장고를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꽃도 음식과 같아서 한번 냉장고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은 신선도에서는 유지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품질면에서는 유지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바깥온도와 항상 같은 꽃을 유지하고 남은 물건에 대해서는 단골고객에게 서비스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매일같이 꽃 도매시장을 다니는 것은 고객들에게 좀 더 나은 품질을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플로아트에 이런 경영철학을 알고 있는 고객들은 다시 한번 더 플로아트를 찾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성전에 바치는 꽃은 염가에 판매하고 있으며 불우이웃에 대해서도 남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주는 마음은 받는 마음보다 우선해요. 남들은 사업을 좀 더 확장하라는 말도 하지만 지금 가진 것에 감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지려고 해요.” 1년 연중무휴로 고객을 위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때문에 좋아하는 운동이나 모임도 자제하고 있는 박경숙 사장. “변함없이 지킨 자리”는 고객들에게는 가장 큰 믿음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춘천 원보경 리포터 pkwon1@hanmail.net 2002-08-17
- 일산주부 파이팅-상담자원봉사자 심연자씨 “비록 돈을 버는 일이 아니더라도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이일은 우리 가족의 제일 큰 자산이고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일이야.” 주부 심연자(36·탄현동)씨는 바쁜 일상으로 식구들에게 미안해 할 적마다 수시로 자신을 격려해주는 남편의 말 한마디가 고맙기 그지없다. 심씨가 남편의 아낌없는 배려 속에 요즘 매달리고 있는 일은 바로 자원봉사. 10년 넘게 다니던 여행사를 그만두고 전부터 관심을 두고 있던 상담공부를 위해 현재 사회복지대학원을 다니며 자원봉사를 함께 병행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인터넷 사랑의 전화에서 사이버 상담을 해오던 심씨는 인터넷에서 상담을 요청해오는 연령층이 줄어드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오프라인으로 나와 아동과 노인들을 위한 단체에서 상담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5월부터 아동학대 예방 프로그램에 참여, 일주일에 한번 학교로 지도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아동학대예방을 위한 아동 교사 부모 통합교육프로그램으로 좋은 효과를 얻고 있는 아동 힘 키우기 서비스 (CES-Child Empowering Service)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얼마 전부터는 일산노인복지회관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노인들을 위한 상담을 해오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남을 위한 일 인 것 같으나 실제로는 저에게 제일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상담 횟수가 늘어나면서 남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고 아무리 화가 나도 한번 더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되다보니 아이들이나 남편에게 화내는 일도 거의 없어 진 것 같아요.” 부부가 같은 꿈을 향해(소제목) 남편과는 같은 여행업에 종사한 인연으로 결혼에 골인한 경우. 심씨는 처음 결혼 할 때부터 돈보다 더 가치 있는 일에 삶의 상당 부분을 바치고자 하는 남편의 가치관이 마음에 들어 더욱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두 사람은 언젠가는 맞벌이 부부가 마음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어린이 시설을 만들고 싶어하는 꿈을 함께 키워가고 있다. 그들 역시 큰 아이가 6살까지는 친정어머니에게 양육을 맡길 수밖에 없었고 작은아이를 임신한 후에는 회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다보니 누구보다 맞벌이 부부의 애환을 잘 알 고 있다. 더구나 퇴사 후 둘째 아이의 젖먹이 시절엔 공부와 병행하며 자주 밤을 세워야 하는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엄마는 할 수 있어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라며 어른스럽게 자신을 격려해주는 10살의 큰 딸. 지금도 가끔 깜짝 파티로 엄마의 간식까지 챙기며 감동을 주는 딸아이가 너무나 고맙고 자랑스럽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상담으로 큰 용기를 얻어 새 삶을 개척하게 되었다는 메시지를 접할 때마다 그 동안의 어려움이 모두 사라진다는 심연자씨. 어쩌면 본격적인 자원봉사로는 출발점에 서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가족의 든든한 지지 속에 직장인에서 자원봉사자로 바뀐 아름다운변신에서 오는 커다란 기쁨이 한껏 묻어 났다. 전미정 리포터 flnari@naeil.com 2002-08-15
- 시민합동결혼식 신청자 모집 성남시가 경제적 사정 등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하고 사실혼 관계에 있는 부부에게 결혼식을 올려주어 정신적 안정감을 부여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지속시켜 주기 위하여 시민합동결혼식을 실시할 예정이다. 합동결혼식은 전액무료(신랑양복 및 피로연 본인부담)로 오는 11월중에 있으며 계획인원은 10쌍으로 결혼식장소는 시민회관대강당이다. 성남거주 시민으로 합동결혼식을 희망하는 신랑신부는 10. 5일까지 신청서와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하고 성남시청 여성복지과(729-4120∼3)로 신청하면 된다. 백왕순 기자 wspaik@naeil.com 2002-08-09
- <신문로 칼럼>‘서울대 위기론’과 시장주의 논리(유팔무 2002.07.30) ‘서울대 위기론’과 시장주의 논리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김영삼 대통령 시절부터 우리사회에서는 세계화시대니, 무한경쟁시대라는 말들을 많이 해 왔다. 그만큼 외압이 심해졌고, 우리 내부에서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하는 식으로 국민들 끼리의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펴왔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였다. “능력 없는 자는 대학에서도 퇴출당해야 한다.” 그런데, 며칠 전 서울대 신임총장이 된 정운찬 교수가 한 TV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서울대 신입생을 수능시험 쿼터, 내신 쿼터, 지역 쿼터 등으로 나누어 뽑는 방안을 검토, 도입하겠다고 발언하여 반향을 불러 오고 있다. 이러한 쿼터제는 여성인력할당제나 지역인제할당제 같은 것들이 그렇듯, 능력에 따라, 시장에서의 자유경쟁 결과에 따라 자리를 차지하는 순수한 형태의 능력본위나 시장주의, 경쟁주의 논리와는 다른 성질의 것이다. 정 총장은 IMF 직후, 재벌체제와 우리나라 경제성장체제의 개혁이 필요함을 강조한 개혁적인 인물로서, 이번에 밝힌 쿼터제는 개혁적인 측면이 있고, 그래서 일부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벌써부터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학서열화와 학벌피라미드 구조의 문제 그러나, 사실 퀴터제 같은 것만으로는 서울대 자체의 문제 뿐 아니라 서울대로 상징되는 대학입시 문제 등 일련의 ‘서울대 증후군’을 해결하는 데에는 그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울대 증후군은 문제의 뿌리와 범위가 깊고도 넓다.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학벌문제와 취직문제, 두 축으로 되어 있다. 서울대는 그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본래 서울대가 소위 일류대학으로 발돋움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국립이었고 대부분의 대학들, 즉 사립대학들보다 등록금이 훨씬 쌌기 때문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주로 가난한 집 출신의 소위 똑똑한 학생들이 죽기살기로 국립을 갔고, 높은 성적을 증명하지 못하면 낙방했다. 서울대에 합격하고 졸업한 소위 ‘똑똑한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사법시험, 행정고시, 그리고 ‘언론고시’ 등에서 가장 높은 합격률을 자랑하게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분야에서 요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서울대 출신’ 하면, 일단 ‘똑똑한 사람’, ‘능력을 믿을만한 사람’, ‘품질이 보증된 사람’ 하는 식의 이미지가 형성되었고, 이같은 이미지는 다시 취직에는 물론, 결혼하는 데에도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 결과, 서울대 출신들은 한국사회의 요직을 독점하다시피 하였고, 이를 통해 이득을 보고 패권도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가 흐르는 사이, 우리 사회에는 서울대를 정상으로 한 대학의 서열화 및 학벌 피라미드가 형성되었다. 또, 지방도시들에서는 지방 명문고 출신들을 정상으로 한 피라미드와 독점 및 패권의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 모든 문제를 우리는 ‘서울대 증후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대가 최정상에 놓여 있고, 많은 이들의 지상목표가 되어 있으며, 거기에 이르기 위한 사교육비 투자와 치열한 입시경쟁, 경제적-교육적 낭비 등이 포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증후군이 서울대 자신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서울대를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 좋은 일자리를 향한 치열한 경쟁시스템, 이런 데에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핵심이 되는 것은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거국적인 경쟁이며, 이 경쟁은 다음과 같은 연속적인 과정들로 되어 있고, 그 정상에 서울대가 있을 뿐이다. 좋은 학교, 좋은 학벌 -> 좋은 일자리 -> 요직의 독점과 패권 -> 재생산과정 과외비, 학원비 투자 -> 입시위주교육 -> 성적향상 -> 좋은 학교, 좋은 학벌 -> 좋은 일자리 -> 요직의 독점과 패권 -> 반복 재생산 경쟁보다 상호 부조정신으로 위기 극복해야 그동안 제기된 ‘서울대 해체’론이나 ‘대학평준화’론 같은 것들은 결국 이러한 피라미드구조를 해체하고 평준화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서울대 비판들에 대해 보수-기득권층 사람들의 반론은 한결같이 “그거 사회주의 아니냐”, “빨갱이 아니냐”, “하향평준화 아니냐”, “능력있는 사람도 함께 못살자는 것이냐” 하는 식이었다. 이들의 사고에 바탕이 되어 있는 것은 바로 서울대문제를 떠받치고 있는 시장주의, 경쟁주의 논리, 바로 그것이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결코 문제를 풀어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반대로 공공의식과 상호부조의 정신에 입각해야 하나씩하나씩 풀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2002-07-31
- 인터뷰 - 최규성 목사(제5대 대한민국청소년보호대상 수상자·성남제일실업학교장) “자신을 잊고 사는 초아(超我)의 삶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 동안 해온 일이 개인적 아집이 아니라, 현실에서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니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용기가 새롭게 솟아오른다.” 지난 16일 국무총리실 청소년보호위원회와 문화방송, 중앙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5대 대한민국청소년보호대상’을 수상한 성남제일실업학교 교장 최규성 목사(60·활민교회)의 수상 소감이다. 최 교장은 “나는 촛불의 심지에 불과하며,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됐다”며, “71년부터 지금까지 32년간 도움의 손길을 보내온 수 천명과 지금도 성금을 잊지 않고 보내주는 100여명의 후원자에게 보람과 기쁨을 돌리고 싶다”고 한다. 또한 “결혼한 후 25년간 가장으로서 월급 한번 내놓은 적이 없으며 자식들에게 등록금 한번 주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신앙심으로 가계를 꾸려오고 나의 일을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 목사는 서울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중인 부인 김수강씨와 결혼해 1남2녀를 두었다. 큰딸은 대학을 졸업했으며, 둘째딸은 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다. 7살인 막둥이는 하나님이 보내주신 기쁨과 행복의 선물로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다. 언젠가는 큰딸의 의상발표회에 구경갔다, 소리 없이 울기도 했다고 한다. 수상은 후원자와 가족들의 보람이자 기쁨 정부는 70년부터 청계천과 중랑천 변 판자촌을 강제로 철거해, 상·하수도, 학교 등 기본적인 사회기반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성남시로 집단 이주시켰다. 국가는 기본적인 사회기반시설의 제공없이 납세를 요구했다. 판잣집과 천막에 살던 주민들의 분노가 71년 8월10일 폭발했으며, 이 사건이 바로‘광주대단지 항쟁’이다. 당시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최 목사는 수도권 모든 대학에 위수령이 내려져 휴교 상태가 되자, 성남에 내려와 참혹한 참상을 몸소 겪었다. 최 목사는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학교를 포기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야학을 시작했다. 당시 광주대단지 달나라 별나라(현 중원구 은행동)에 들어가는 판자촌 마을 입구 시유지에 천막학교를 세우고, 석유램프를 천장에 달고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고 희망을 심어주었다. 학생들이 300여명으로 늘어나자 천막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흙벽돌을 찍어 교실을 짓고 벽돌 모으기 운동을 벌여 밤마다 담을 올렸으나, 무허가 건물이라고 해 철거당하기 일수였다. 심지어 건축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으며, 판사들의 선처로 선고유예, 기소유예, 집행유예 등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한번은 벌금 30만원의 실형이 내려졌다. 그런데 벌금을 내기도 전에 40만원이 익명으로 날아왔다. 우체국에 확인한 결과 벌금형을 내렸던 판사가 보내준 돈이었다. 그 판사는 “행정재판이란 때로는 억울할때도 있다. 적은 금액이지만 일하는데 보태어 사용하라”는 격려의 말을 전했다고 한다. 천막에 석유램프로 야학 시작 40여 차례의 재판 태풍이 불었지만, 학생들의 향학열과 지역사회와 대학생 선생들의 자원봉사로 1일 3부제 수업(오전, 오후, 야간)과 철야산업체 근로청소년을 위한 일요 중·고등하교까지 운영했다. 그 동안 대략 5000여명의 학생들이 천막학교인 현 성남제일실업학교를 거쳐갔으며, 수많은 졸업들이 검정고시에 합격 대학을 진학하는 등 사회 각분야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최 목사가 가장 보람을 느끼고 기뻤을 때는 당시 고아였던 학생이 자라 당당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자신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기도를 드릴 때라고 한다. 그 집을 들어설 땐, 마치 천국문을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또한 조그마한 구멍가게라도 마련해 개업하는 제자와 함께 예배와 기도를 드릴 때 그 기쁨을 형용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타까운 일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학생들은 연락이 오고 찾아오지만 살아가기가 퍽퍽한 학생들은 연락이 없어 항상 마음속에 무거운 짐이 되었다. 졸업생들이 찾아오는 것이 가장 큰 보람 99년 30년간 정이 들었던 은행동의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다. 시유지인 관계로 성남시가 시영아파트 건립을 추진한 것이다. 최 목사는 노정현 박사(전 연세대 교수), 증경총회장 림인식 목사(서울노량진교회), 후원회 이사장 최병곤 목사(청주동산교회) 등 많은 인사들의 도움으로 ‘성남제일실업학교 살리기운동’에 들어갔다. 그 결과 수정구 신흥2동에 300명의 부지를 마련하고, 건축에 들어가 현재 공정율 80%로 내년 봄 개교할 계획이다. 최 목사는 처음 천막교실에 매달았던 석유램프를 추켜들고 전국교회를 돌며 ‘땅한평사주기운동’을 전개하며, 모금운동을 벌였다. 최 목사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제2단계 청소년사업을 펼치겠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 와선 이혼하는 부부가 급증(이혼율 30%)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최 목사는 “매년 13만여명의 청소년이 학업을 포기하고 있으며, 연간 낙태 200만건과 미혼모 발생 2만건이 발생하고 있다”며 “가난하고 배고파서, 공부를 포기했던 과거와는 청소년 문제가 판이하다”며 안타까워했다. 최 목사는 성남제일실업학교의 기능을 지금까지 지식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주었다면, 이제는 지식뿐만 아니라 인성을 계발하는 등 학교와 부모, 따뜻한 가정의 역할을 하는‘청소년교육문화복지센터’로 운영할 계획이다. 국가가 해야할 청소년 교육과 선도를 한 개인이 주위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32년간을 해왔다는 것은 이시대의 귀감이 아닐 수 없다. 자원봉사나 후원이 가능한 사람은 031)734-7718로 연락하면 된다. 백왕순 기자 wspaik@naeil.com 2002-07-25
- 여성부, 전업주부 유망직업훈련 실시 여성부는 올 8월부터 연말까지 전국 32개 여성인력개발센터를 통해 전업주부 재취업유망직종에 대한 교육훈련을 실시한다고 24일 밝혔다. 총5억원의 여성발전기금이 지원되는 이번 사업은 전업주부 879명을 대상으로 웨딩플래너, 실버시티, 상·장례여성지도자양성, 웹콜마케팅 등에 관한 교육으로 진행된다. 이번 사업은 결혼, 임신, 육아 등의 이유로 노동시장 참여가 배제되고 있는 주부들에게 취업 및 창업 능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교육생 1인당 지원금액은 약 57만원이다. 여성부는 앞으로도 여성인적자원 활용 제고를 위해 비경제활동상태에 있는 전업주부의 능력개발과 사회참여지원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2002-07-24
- <클릭! 이사람> 동북아비즈니스 핵심 인천시청 박연수 기획관리실장 “올 초 대통령 연두교서 발표를 보고 정말 기뻤지요.” 박연수(48) 인천시청 기획관리실장은 시원한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날 오랫동안 미뤄졌던 동북아 비즈니스센터를 세울 수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80년대 중반, “인천은 버림받은 땅이었다”고 박 실장은 회상했다. 정부는 수도권 억제정책과 안보 취약지라는 이유로 일체의 개발을 불허했다. 냉전 시대의 항만은 경쟁력을 잃었고 중화학공업 의존도가 극심한 산업구조는 장래가 보이지 않았다. 인천은 위기의식을 느꼈고 무언가 살 길을 찾아야 했다. 그 살길은 지역발전을 위하면서 동시에 국가 발전의 핵심이 될 수 있는 것이라야 실현 가능할 터였다. 그래서 입안된 것이 현재의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 구상이었다. 국제비즈니스 중심도시 구상은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했다. 당시 수도권 신공항은 청주로 결정돼 토지매수가 이미 진척된 상태였고 더욱이 공항이 입지해야 할 최적의 조건을 갖춘 영종도 지역은 인천이 아닌 경기도 관할이었다. 관계부처의 설득은 불가능했고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해야 했는데 이 때 발휘된 인천시민의 단합과 역량은 대단했다는 것이 박 실장의 회상이다. 시 관계자는 박 실장을 ‘동북아 비즈니스 계획의 핵심 브레인’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인천이 발전 방향성을 설정한 80년대 중반, 기술고시 14회 출신인 박 실장은 시 도시계획과장으로 처음 인천에 발을 들여놓았다. 이 후, 인천시 도시계획국장을 거쳐 공영개발사업단장, 동구청장, 재무국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인천의 비전을 제시하고 구체화했다. 그 뒤 중앙부처에서 5년을 거친 후 2001년 1월에 인천시 기획관리실장으로 돌아온 후에는 중앙부처와 인천시간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다 뛰어난 국제통으로 게일사의 127억달러 외자유치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귀띔이다. 대학 시절 서클 동기와 8년 연애 끝에 결혼한 그는 두 딸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있다. 자신은 태권도 4단, 검도 4단에 부인 또한 검도 4단으로 합하면 12단이나 된다. 박 실장은 동북아 비스니스센터가 정착되는 날이 자신이 다리를 쭉 펴고 잘 수 있는 날이라며 매일같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인천 박정미 기자 pjm@naeil.com 2002-07-29
- 인터뷰 - (재)경기도2002년월드컵수원경기 추진위원회 한인석 집행위원장 - 월드컵 대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대회를 마친 소감은 무엇보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 진출이라는 우수한 성적을 올린 것이 대회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수원 경기장의 경우, 한국전이 없었지만 좌석 점유율이 평균 92%에 달했다. 그러나 안전사고 하나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3800여명의 자원봉사자와 치안, 질서요원 등 모든 분야의 일꾼들이 제 역할을 다 해준 덕분이다. 시민들이 보여준 높은 관전의식과 차량2부제 실천 등 질서의식에 감사드린다. 특히, 개최도시인 수원시민들의 높은 참여의식이 돋보인 대회였다. - 대회 준비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면 큰 어려움은 없었다. 월드컵 대회 직전에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걱정이 많았다. 실전이란 자세로 준비했고 사실상 수원 월드컵 준비수준을 평가하는 자리였다고 볼 수 있었다.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취재진이 경기장을 찾았고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된 경기였다. 그러나 너무 잘 치렀다. 경기가 끝난 후 대통령도 월드컵 대회 진행이 수원정도만 되면 좋겠다고 평가했다. 이날 평가전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또 하나, 월드컵구장에서 경기가 아닌 응원전을 펼치기로 했을 때 안전사고 등에 대한 우려가 컸다. 경기관람은 입장객의 좌석과 준비물 등을 철저히 검문하지만 응원전 방문객은 통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모차까지 끌고 올 정도로 가족단위 방문객이 많았고,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 자원봉사자와 서포터즈 활동은 전체 39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 중 1000명 가량은 한국월드컵조직위에서 운영했고 2897명을 우리가 운영했다. 자원봉사자들은 장내·외로 나뉘어 배치됐고, 교통질서, 통역, 광관안내, 미아보호 등 8개 분야에서 일했다. 장내 봉사자들도 경기에 눈을 돌리지 않고 맡은 바 역할에 충실했다. 서포터즈는 인터넷을 통해 4196명을 모집, 3경기에 적절히 나눠 배치했고, 국기와 응원도구를 지원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성공적인 대회개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들은 향후 축구붐을 이어가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자원봉사자와 각 지역 서포터즈대표들에게 감사와 월드컵 붐을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노력하자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 사후 경기장 활용방안은 무엇인가. 수원월드컵구장와 진입도로를 포함해 국·도비, 시비를 합해 약 4000억원이 투입됐다. 시민들의 돈으로 짓고 운영되는 만큼, 시민들이 자유롭게 큰 부담없이 이용토록 해야 할 것이다. 경기장 활용방안과 관련, 용역을 실시한 결과, 연간 35억∼40억원의 유지비가 필요하다. 더 이상의 시·도비 투입은 없어야 한다. 결국, 공공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우선, 수원구장은 삼성블루윙스의 홈 구장으로 계약을 맺었다. 입장수입의 일부를 받게 되며 청소비 등 관리비는 별도로 받는다. 구장의 구조상 한쪽방면에만 방이 있어 타지역 전용구장에 비해 빈공간이 많지 않다. 라커룸 의무실 등 축구경기에 필요한 공간을 제외하면 공간임대는 한계가 있다. 반면 타구장에 비해 관리비가 적기 때문에 사후관리가 유리하다. 공개적으로 평면도를 놓고 임대 희망자를 모집, 최대한 공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계획이다. 경기장 외부공간은 종합스포츠센터가 건립 중이며 부지내 부대시설에는 유소년 축구클럽운영, 야외결혼식, 암벽등반장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시설 이용은 사용자와 목적에 따라 차등을 둬야 한다. 합리적인 선에서 수익성을 확보해 나갈 것이다. - 향후 추진위의 활동전망은 이제 본격적으로 재단 본래의 사업이 시작된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은 명칭과 모든 기능이 월드컵지원에 맞춰져 있었지만 관리 운영개념 중심으로 명칭과 조직을 바꿔야 할 것이다. 추진위는 경기운영직영체제를 구축할 계획이다. 일상관리인원은 최소화하되 경기개최시 외부 전문인력·회사를 이용해 효과를 극대화 시켜야 한다. 수원구장은 서울, 인천과 인접해 있어 A매치 경기 유치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그동안 A매치 등 23경기를 치르며 노하우도 쌓았다. 앞으로 12경기가 계획돼 있고 중간중간에 월드컵대회 성공경축경기로 한-일 국가대표전, 도지사배 대학축구 등 각종 경기를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밖에도 중국 요녕성 등 국제 자매도시를 비롯, 미국, 호주, 네덜란드 등 국제적인 팀을 유치하고 각종 이벤트와 마케팅을 결합할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한마디 전 도민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 속에 월드컵 대회를 훌륭하게 마쳤고, 세계속에 경기도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었다. 불굴의 투혼으로 국민들에게 꿈을 심어준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대회 관계자들에게도 감사드린다. 앞으로 재단법인은 경기지역의 축구붐을 이어가고 수원구장의 효율적인 관리·운영으로 도민들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대담 이상선 수도권1본부장 정리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2002-07-22
- 인터뷰 - 성남 제일실업고등학교 최규성 목사 “자신을 잊고 사는 초아(超我)의 삶은 고독하고, 외로움을 많이 느끼게 된다. 그 동안 해온 일이 개인적 아집이 아니라, 현실에서 필요한 일이었다는 것을 인정받게 되니 하나님에 대한 감사와 용기가 새롭게 솟아오른다.” ‘제5회 대한민국청소년보호대상’을 수상한 성남제일실업학교 교장 최규성 목사(60·활민교회)의 수상 소감이다. 최 교장은 “나는 촛불의 심지에 불과하며,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여기까지 오게됐다”며, “71년부터 지금까지 32년간 도움의 손길을 보내온 수 천명과 지금도 성금을 잊지 않고 보내주는 100여명의 후원자에게 보람과 기쁨을 돌리고 싶다”고 한다. 또한 “결혼한 후 25년간 가장으로서 월급 한번 내놓은 적이 없으며 자식들에게 등록금 한번 주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신앙심으로 가계를 꾸려오고 나의 일을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70년부터 청계천과 중량천 변 판자촌을 강제로 철거해, 상·하수도, 학교 등 기본적인 사회기반시설이 마련되지 않은 성남시로 집단 이주시켰다. 판자와 천막에 살던 주민들의 분노가 71년 8월10일 폭발했으며, 이 사건이 바로‘광주대단지 항쟁’이다. 당시 연세대학교 신학과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던 최 목사는 수도권 모든 대학에 위수령이 내려져 휴교 상태가 되자, 성남에 내려와 참혹한 참상을 몸소 겪었다. 최 목사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학교를 포기한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야학을 시작했다. 당시 광주대단지 달나라 별나라(현 중원구 은행동)에 들어가는 판자촌 마을 입구 시유지에 천막학교를 세워 석유램프를 천장에 달고 청소년들에게 배움의 한을 풀어 주고,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 동안 대략 5000여명의 학생들이 천막학교인 현 성남제일실업학교를 거쳐갔으며, 수많은 졸업들이 검정고시에 합격 대학을 진학하는 등 사회 각분야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99년 30년간 정이 들었던 은행동의 학교가 문을 닫게 되었다. 시유지인 관계로 성남시가 시영아파트 건립을 추진한 것이다. 최 목사는 노정현 박사(전 연세대 교수) 등 수 많은 인사들의 도움으로 ‘성남제일실업학교 살리기운동’에 들어갔다. 최 목사는 처음 천막교실에 매달았던 석유램프를 추켜들고 전국교회를 돌며 ‘땅한평사주기운동’을 전개하며,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수정구 신흥2동에 300명의 부지를 마련하고, 건축에 들어가 현재 공정율 80%로 내년 봄 개교할 계획이다. 최 목사는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제2단계 청소년사업을 펼치겠다고 한다. 과거와 달리 현대에 와선 이혼하는 부부가 급증(이혼율 30%)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청소년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최 목사는 성남제일실업학교의 기능을 지금까지 지식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주었다면, 이제는 지식뿐만 아니라 인성을 계발하는 등 학교와 부모, 따뜻한 가정의 역할을 하는‘청소년교육문화복지센터’로 운영할 계획이다. 2002-07-18
- "황혼이 아름답다" 미2사단 쿵푸단장 박지문씨는 조금 몸이 불편해 보이긴 했지만 71세 노인이라고 하기에는 아직도 건장한 장년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듯 하다. 박지문 단장은 제2사단 내에서 미군들에게 쿵푸를 가르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4년전 부인이 암으로 앓아 누워 있는 동안 그에게는 심장병이 찾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아내가 떠나간 집에서 욕심 없이 홀로 생활하고 있다.. 쿵푸는 그의 전부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미군을 가르치다 보니 한국인 제자보다 미국인 제자가 더 많아 미국에 가서도 별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런 그에게 요즘 신이 났다. 25년 전에 헤어진 미국인 제자가 태평양을 건너 스승을 찾아온 때문, 현재 미국 알라바마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며 스승의 뜻을 이어가는 보기 드문 제자라고 한다. 로저(ROGER D, HAGOOD)씨는 25년 쿵푸의 스승을 찾아 온 동두천이 낯설지만은 않다고 한다 . 그러나 지금의 동두천 보다 25년 전의 동두천이 그립다고 한다. 비록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인정이 있었고 맑은 산천과 젊음이 있었기에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고 했다. 박지문 단장은 이렇게 찾아와 준 제자가 고마울 따름이라며 감회에 젖는다. 로저씨가 아직 미혼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는 듯 좋은 사람이라며 칭찬이 진지하다. 그들은 서로 보고 웃으면서 스승이 결혼할 것을 을 권하자 "좋은 사람 만나면 내일이라도 당장 결혼할 생각입니다"라며 능청스럽게 대답을 한다. 로저씨는 이미 단련된 입맞으로 한국의 영양식이나 토종음식도 맛있게 잘 먹는다고 얘기해준다. 로저씨는 박 단장에게 자신이 운동하는 모습을 찍어온 비디오 테입을 보여주며 서로 정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마치 아버지와 아들 같다.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 이곳에 오니 아버지 집에 있는 것 같아요." 이렇듯 한국에 대한 애정은 남다른 듯 이야기하며 안타까워하는 건 미국으로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서라고 귀뜸해 주는 박 단장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돌아가야 하는 건 알라바마에 그의 일터가 있고 지금 까지 해왔던 일이지만 세계 각 국을 다니며 이 운동을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이란다. 박 단장은 이제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자상한 아버지이며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필경 여느 부모와 다를 게 없다. 그리고 그의 황혼이 아름다운 건 그의 곁에 함께 사랑할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또 이렇게 긴 세월동안 잊지 않고 먼길도 마다 않고 찾아와 주는 제자가 있어서가 아닐까. 굿바이 소 롱…. 아쉬운 이별은 아마 떠나야하는 로저씨가 더할 것이다. 백숙현 리포터bsh22100@hanmail.net 2002-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