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46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홀로 남은 이희호의 순애보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이희호 여사는 지난 20일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입관식에서 생의 반려자이자 동지로 ‘동행’했던 47년을 떠올리면 써내려간 이러한 내용의 편지를 안겨 보냈다. 이 여사가 자랑스러워한 김 전 대통령의 영욕의 삶은, 김 전 대통령이 생전 “아내가 없었다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되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여사 자신의 삶이기도 했다. 유복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화목한 유년기를 보낸 이 여사는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드물게 미국 유학까지 한 엘리트 여성운동가였다. 1951년 피란지 부산에서 지인의 소개로 김 전 대통령과 몇 차례 대면했던 이 여사는 10년 뒤 첫 부인과 사별한 그를 재회, 1962년 운명적인 결혼에 이르게 된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계속된 출마와 낙선으로 빈털터리 정치적 낭인에 불과했지만 이 여사는 가족과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결혼을 선택했다. 이 여사 스스로 “꿈이 큰 남자의 밑거름이 되자고 결심하고 선택한 결혼”이라고 밝혔듯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를 때는 옥바라지로, 미국 망명 때는 후견인으로, 가택연금 때는 동지로, 야당 총재 시절에는 조언자로 정치 역정을 함께 했다.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사건으로 남편이 진주교도소에 구금되자 이 여사는 진주와 서울에서 일주일씩 지내며 남편 곁을 지켰다. 면회는 한 달에 한번뿐이지만 가족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이 여사는 수감중인 남편에게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다. 겨울에도 안방에 불을 넣지 못하게 했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남편이 영하의 감방에서 떨고 있는데 혼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내란음모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이 사형 판결을 받았을 때는 지미 카터 미 대통령에게 구명을 청원하는 편지를 보내는 등 국제사회를 향해 구명 운동을 벌였고, 각종 선거 때는 전국을 누비며 헌신적으로 지원유세를 펼쳤다.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퇴임 후에도 늘 공식석상에 남편과 함께 했다. 2007년 재보선과 2008년 총선에서 차남 홍업씨를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지원유세에 나서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저서 ‘내가 사랑한 여성’에서 “내가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바로 아내와의 헤어짐이 너무도 아쉽고 슬프기 때문일 것입니다”라는 말로 아내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러나 2009년, 남편이 병마와 사투를 벌일 때 87세의 연로한 몸으로 매일같이 눈물로 기도하며 병상을 지켰던 이 여사는 결국 생애를 공유했던 반려자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게 됐다. 연합뉴스 김정은 기자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8-24
- [밥일꿈]소원을 말해봐? 소원을 말해봐? 정은영 (PCA생명 마케팅팀 부장) 어릴 적엔 꿈이 많았던 것 같다. 노래도 하고 싶고, 의사도 되고 싶고 해서 초등학교 시절 나의 꿈은 노래하는 의사였던 것 같다. 그 꿈이 황당하긴 했지만,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시절이고, 열심히만 하면 다 가능할 것 같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미래에 대한 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나의 모든 인생계획은 한달 단위이다. 이번 달에 어떤 어떤 일들을 처리해야 하고, 이번 달에 얼마만큼의 생활비를 써야 하고, 이번 달에 얼마큼의 저축을 해야 하고 …. 이제 모든 일은 꿈보다는 하루 하루를 처리하는 데 집중되고 있다. 일단 아무 생각하지 말고, 돈을 모으자. 돈을 모으면 만사 오케이다. 어느 퇴직한 공무원 이야기 남 부러울 게 없는 퇴직한 공무원. 공무원 연금을 받으며 사시는 그 분은, 소위 시부모 0순위이시다. 요즘 결혼할 때, 제일 먼저 보는 조건이 연금받는 시부모란 애기가 있다. 늙어서 자식들에게 손 안 벌리는 시부모가 혼수 제1 조건이 되어버렸다. 며느리와 자녀에겐 일등 아버지, 시아버지가 되셨지만, 정작 본인은 어떨까?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딱히 할 일이 없으신 그 분은 매일 동네 뒷산을 돌고 온 후, 아침 드라마를 보는 게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아침 드라마를 다 보아도 11시밖에 되질 않았다. 오후시간은 더 막막하다. 집에서 인터넷 바둑을 하고,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낮잠을 잔다. 그리고 늦은 오후가 되고 아내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6시쯤 돌아온 아내가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저녁 TV을 보다 일찍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일은 무얼 해야 하나 …. 젊은 시절 열심히 일했고 은퇴 후에 무엇을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모았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은퇴하고 보니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자니 자신이 없고 두려울 뿐이다. 30~40대에, 60대의 은퇴 후의 삶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지 않은 사람은 위의 퇴직한 공무원처럼 하루하루를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게 될 것이다. 다시 꾸는 꿈 [매직넘버] 은퇴 후에 골프를 원없이 치겠다, 여행을 가겠다라는 것은 은퇴 후 꿈이 아니다. 한달 30일 중에 골프 2~3일, 해외여행 5일을 갔다 온다고 해도 나머지 20일은 무엇을 하면 보낼 것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막연히 ‘시골로 내려가 농사 지으며 살겠다’가 아니라, “[55]세가 되면 경기도 여주에 [500평]의 농장을 마련하여 남편과 귀농해서 살겠다”라고 나만의 [매직넘버]를 만들어보자. 나만의 [매직넘버]로 소원을 말해보자. 매직램프의 지니가 올지도 모른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9-09
- 주말을 여는 책] 일본 사회, 일본 문화 허영섭(칼럼니스트) 일본문화의 원류를 파헤친 ‘일본사회 일본문화’ 이토 아비토 지음/ 임경택 옮김/ 도서출판 소와당/ 1만 8000원 북쪽 오호츠크 해안에 얼음 덩어리가 떠다니는 겨울철에도 남쪽의 태평양 제도 일대에는 산호초 사이로 열대어가 헤엄쳐 다니는 나라가 일본이다. 높은 산맥으로 가로막힌 혼슈 서쪽 지역에서 눈이 2m나 높게 쌓이는 동안에도 관동지방에서는 건조한 계절풍으로 오히려 화재 예방책이 논의되곤 한다. 이처럼 다양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일본인들의 문화적 특질을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의 생활양식이나 사고방식이 기후와 지리적 여건에 밀접하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흔히 거론되는 사무라이 기질도 서로 깍듯이 예의를 지키면서도 어느 한쪽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야만 칼을 거둘 정도로 극단적인 양상을 지닌다. 때로는 겉과 속이 다르다며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를 얘기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어느 일면에 대한 평가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국화와 칼‘이라는 저서를 통해 일본인의 예술적 소양과 예의범절 및 무(武)에 대한 숭상의식을 중요한 특징으로 지적했으나 역시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다. 우리가 일본을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역사.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도 쉽게 간파할 수 없는 문화적 속성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쿄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인 이토 아비토(伊藤亞人)가 써낸 ‘일본 사회, 일본 문화’는 일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초적인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동안 현장답사를 통해 두루 습득한 몽골과 중국에 관한 연구의 비교로 인해 더욱 설득력을 지닌다. 한국에서의 연구 업적도 상당하다. 특히 전남 진도를 대상으로 오랫동안 답사연구를 진행했는데, 스스로 진도를 ‘제2의 고향’이라 부를 정도다. 지난 2003년에는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우리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이 책의 번역은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전북대에 재직중인 임경택 교수가 맡았다. 일본 문화현상을 바라보는 저자의 결론은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일본이 과거 중화문명의 세계관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했으며 이로써 지금까지도 토착적인 신앙에 기반을 둔 민속문화가 생활의 준거틀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동아시아 대륙과 떨어져 있었으므로 문화도 주변에서 맴돌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불교만 해도 언어적 논리에 따라 교의를 받아들였다기보다 다도(茶道)나 꽃꽂이 같은 물적 표상이나 실천을 매개로 감각적이며 즉물적으로 스며들었다는 얘기다. 이렇듯 불교가 제 모습에서 벗어난 토착 종교로 변모한데다, 기독교도 100여년 간에 걸친 선교활동에도 불구하고 개종자가 그렇게 늘어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유교의 정신세계를 제대로 수용한 것도 역시 아니다. 결정적인 요인은 모든 분야에서 논리성과 체계성을 은근히 거부하는 몸에 밴 습성 때문이다. 심지어 일본사회에서는 언어적 논리에 능란할수록 다른 사람을 현혹시킬지도 모른다는 경계의 눈초리를 받기 십상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정연한 논리보다는 다원적이며 종합적인 사고가 존중받는 풍토다. 일본이 메이지(明治) 이래 서구 문물을 적극 받아들였으면서도 여전히 전통사회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이를테면, 섬나라라는 주변적 위치에 언어적 논리보다 즉물적 감각에 더 의존하려는 습성이 일본 문화를 좌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이에(家)’다. 우리말의 ‘집’이나 ‘가족’, 중국어의 ‘지에(家)’, 또는 영어의 ‘family''와도 미묘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자는 굳이 ’이에‘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생산.소비 활동을 포함해 지역사회의 기본적인 구성단위로 간주됐으며 의식주와 노후 봉양까지 일상생활을 공유하는 터전이라는 점에서는 우리의 가족관계와 비슷하다. 그러나 가내 상점의 경우 혈연관계가 아닌 외부인까지도 오래 동거하여 신뢰도가 높아지면 친족 이상의 일원으로 간주한다는 점이 다르다. 일본 TV드라마에 곧잘 등장하는 오랜 전통의 상가나 요릿집, 여관 등 시니세(老舖)의 가업전수 얘기들이 바로 이러하다. 반면 실제로 핏줄을 나눈 가족관계라도 후계자로 지목된 경우를 제외하면 집에서 떨어져 나가 별도의 ‘이에’를 창설하든가, 아니면 다른 ‘이에’에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본래 속했던 ‘이에’에서의 발언권을 상실하는 것은 물론이다. 가족이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위치에 걸맞는 발언권을 인정받는 우리와는 사정이 딴판이다. 상점의 이름도 ‘이에’의 고유 명칭을 사용하게 되며 특정인을 가리킬 때도 개인의 이름보다는 ‘이에’의 이름을 써서 ‘OO네 큰아들’, ‘OO네 며느리’ 등으로 부르는 게 보통이다. 개인의 개성이나 실력보다는 그가 속한 ‘이에’를 준거로 평가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이나 중국과 달리 부계(父系) 계통에 기초한 계보적인 조상관이 발달하지 못했다. 조상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는 것은 황실이나 귀족, 또는 일부 무가(武家) 정도에 한정되어 있다. 그나마도 직계의 계승 라인을 보여주는 것으로 직계에서 갈라진 방계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수준에서 머무는 게 일반적이다. 주변 물건에 대한 인식도 독특한 편이다. 민간신앙에서는 자연계의 나무와 바위, 동물에도 나름대로의 영적인 주체를 상정해 왔다. 풀꽃을 단순한 장식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서양 사회에서처럼 소득이 늘어난다고 덩달아 꽃의 소비 확대를 바라기 어렵다. 특히 집안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빗자루와 짚신, 부채 등에는 무언가 영적인 것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부녀자들이 바느질하다가 부러진 바늘을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한꺼번에 위로의 공양을 올리는 것이 그러한 사례다. 붓이나 식칼, 젓가락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식이 이뤄지는데 신사나 절의 경내에 바늘이나 붓, 부채 등의 무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재일 조선인에 대해서도 일본 사회로의 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재일교포라는 범주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민족에 대한 귀속의식, 혈연관계, 언어생활 등에서 세대에 따른 차이가 크고 중층적이며 다의적인 구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결혼문제만 하더라도 의식적으로 혈통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곤란한 상황을 초래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9-10
- 부부의 성 부부의 성(性)은 행복한 가정으로 통하는 문과도 같다. 그러나 그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굳게 닫힌 경우가 있어 그 열쇠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이 많다. K씨는 50세의 중소기업 사장으로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도 호황을 누리는 활동적인 기업인이다. 그런 K씨에게도 최근에 남모르는 고민이 생겼다. 10년 전에 부인과 사별하고 남매를 키우며, 회사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회사는 안정 기반을 갖추었으며, 1년 전부터는 30대 후반의 여성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이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 하면서 발기가 되지 않는 문제점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나 이런 경우가 몇 차례 반복되면서, 결혼을 생각하던 K씨는 큰 실망을 했다. 평상시에는 영화를 보는 중에도 간혹 발기가 되곤 해 이런 일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것이 임포텐스, 즉 발기 부전증이다. 성인이면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으로, 기질성 원인이 30-40%이고, 심인성 원인이 60-70%를 차지한다. 기질성 원인의 첫째는 당뇨, 노화, 술, 담배 및 약물 남용 등이다. 특히 당뇨는 음경 동맥경화를 정상인보다 10년 정도 앞당기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둘째는 음경혈관장애, 뇌종양, 파킨슨씨병, 다발성 경화증 등 신경계 장애나 척추 손상으로 인해 생긴다. 셋째는 테스토스테론 및 프로락틴 호르몬의 부족이다. 심인성 원인은 섹스에 대한 불안감으로 생기는데, 정신적 요소 또는 인간관계의 요소, 종교적 및 문화적 영향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K씨의 경우도 심인성 원인으로 생긴 발기 부전이다. 기질성이냐 심인성이냐 하는 것을 구별할 때는 수면 중의 발기상태를 보면 알 수 있다. 부부생활에서 발기 부전증을 호소해도 수면 중에 발기가 일어나면 이것은 기질적 원인이 아니라 심인성 장애인 것이다. 한방에서는 임포텐스의 원인을 과도한 자위나 섹스로 인해 열 에너지원이 고갈되어 생기는 신양허, 지나친 근심, 걱정으로 심장과 비장을 모두 손상하여 생기는 심비양허, 초조, 불안 및 두려움에 의해 신장을 손상한 경공상신, 비만한 사람이 기름진 음식과 술을 지나치게 즐기면서 생기는 습열하주 등으로 보고 각각의 원인에 따라 우귀환, 귀비탕, 정지환, 용담사간탕 등을 처방한다. K씨도 한방 치료를 통해 약 3개월후에는 완전히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되어 생활에 활기가 생기고 자신감을 되찾았다. SH한의원 한상협 원장 김영서 기자 ys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9-09
- 기고 “등록금 빚더미 걱정은 더 커졌다!” 안진걸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 (성공회대 외래교수)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자산은 ‘사람’이다. 사람을 잘 챙겨야 국민도 살고 나라도 산다. 사람을 챙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교육과 보육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누구나 이야기 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육의 실상, 사람챙기는 실상을 보면, 너무나 답답하기만 하다. 교육과 관련해 소름끼치는 경쟁교육, 공포의 교육비를 떠 올리는 것은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희망과 연대가 넘치는 교육, 부담없이 누구나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교육비 정책이 왜 우리는 안된단 말인가. 그런 와중에 반가운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제도’가 시행된다는 것이다. 집집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동록금 고지서라는 말이 나돌고, 대학생 신용불량자가 1만 4천여명이 넘어서는 황당한 상황에서, 취업 후 일정소득이 발생한 시점부터 등록금 원금과 이자를 상환하는, 사실상의 ''등록금 후불제''가 도입된다고 하니 다들 일단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생-학부모와 참여연대, 교수노조, 등록금넷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간절하게 등록금 후불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해왔다. 돌이켜보면 ‘등록금 천만원 시대’라는 표현은 부정확한 표현이었다. 정확히는 ‘등록금만 천만원 시대’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주요 대학 보통의 대학생들이 1년에 납부해야할 등록금이 천만원을 넘어선 것뿐만 아니라 실제 그들이 부담해야할 학습비, 교통비, 생활비, 주거비 등을 감안하면 1년에 대학생들이 2천만원 안팎의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다가 해외연수라도 하게 되면... 그래서 국민들 사이에서, ‘정말 교육(비) 때문에 너무 힘들다’라는 말이 절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이는 2008년 기준 1.19명대로 추락한 출산율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번에 정부가 도입하겠다고 밝힌 것은 ‘등록금 후불제’뿐이다. ‘등록금 상한제’ 관련해서는 어떠한 언급도 없다. 등록금 후불제는 등록금 상한제와 함께 가야 그 실효성이 확보되는 제도이다.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등록금 후불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밝힌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도 모두 등록금 상한제를 함께 실시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초고액 등록금과 등록금을 10% 안팎 과도하게 올리는 관행을 개선하지 않고 등록금 후불제만 도입하게 되면, ''등록금 빚더미 시대''가 근본적으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빚더미 시대''가 졸업 후 돈 번 이후로 미뤄지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학들이 등록금을 더 많이 올릴 가능성이 높아졌기에 ‘더 많은 빚더미 시대’가 될 우려가 매우 커지고 있다. 졸업 후 겨우 취업을 해서 효도도 해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아이도 키워야 하고, 내 집 마련도 해야 하는데 매달 몇 십만원씩, 몇 십년간 학자금 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청년 세대들에게 또 다른 부담과 고통을 주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의 입장에서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번 등록금 후불제도의 경우, 학생이 필요로하는 등록금액 전액을 정부가 한국장학재단의 예산과 채권 발행을 통해 빌려주고 이자의 일부를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기에 등록금 원금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정부의 재정 부담이 증가하게 된다. 이 정부 들어 정부의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해서라도, 등록금 후불제가 안착하기 위해서라도 등록금 후불제는 등록금 상한제와 한 몸처럼 도입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한나라당 정부의 원래 공약이었던 ''반값 등록금''도 사실은 국가의 재정 지원을 늘려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것으로 그 맥락상 ''등록금 상한제''와 유사하다. 현재 국회에는 민주당 안민석 의원과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등이 제출한 등록금 상한제 관련 법률이 계류 중에 있다. 가계 소득의 일정 범위 이상으로 등록금을 책정할 수 없도록 합리적으로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고(독일처럼 한 학기에 70만원 상한선이 규정돼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매년 오르는 등록금 인상률도 물가인상률 이상으로는 오르지 못하게 제한하는 것도 부수적으로 담고 있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취업후 상환시 이자율을 얼마로 할 것인가가 큰 문제이다. 정부는 5% 안팎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초고액 등록금이 뒤로 이전되는 가운데, 이자까지 5% 안팎을 지불하게 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이 땅의 청년들은 취업 후 결혼이나 내 집 마련은 꿈도 꿀 수 없는 ''청년 빚쟁이''로 전락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왕 한국장학재단을 만들었다면 과감하게 무이자로 원금만 상환 받는 정책이 절실한 것이다. 등록금 상한제와 함께 하는 등록금 후불제 도입, 등록금 후불제와 함께 상환 시 과감함 무이자 정책이나 선진국처럼 최소 금리 적용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등록금 문제가 해결됐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이명박-한나라당 정권은 부자감세와 4대강 죽이기로 2010년 예산에서 민생 예산, 그중에는 대학생 장학금 예산도 깎는 것으로 돼 있어 벌써부터 많은 국민들을 걱정하게 만들고 있다.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8-20
- 동작구 ‘첫돌맞이 무료 건강검진’ 동작구 ‘첫돌맞이 건강검진’ 서울 동작구가 첫돌이 지난 영유아를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동작구는 12~14개월된 영유아를 비롯해 미숙아와 특수시설 아동을 대상으로 매달 두차례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있다고 20일 밝혔다. 검사는 2·4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보건소 내 ‘첫돌 검진실’에서 진행된다. 혈액검사로 빈혈 간염 간기능 등을 살피고 소아과 진찰과 각종 신체계측도 한다. 검진 후 수두나 일본뇌염 등 예방접종을 하고 빈혈이 있거나 저체중인 어린이에게는 철분제와 영양제를 지급한다. 이 서비스는 사전 예약해야 이용할 수 있다. 한편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와 가임여성은 보건소 건강증진센터에서 무료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 빈혈 당뇨 간기능 신장기능 고지혈증 등 50개 항목이다. 풍진검사 B형간염 성병검사 등도 가능하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8-20
- 돈이 보이는 올바른 영수증 관리법 신용카드 영수증, 현금 영수증, 공과금 영수증 등… 그야말로 영수증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버리자니 찜찜하고 보관하자니 그 양이 엄청나다. 그래서 알아봤다. 골치 아픈 영수증 보관, 속 시원한 해결법. # 카드와 현금 영수증, 과감히 버려도 OK! 결혼 9년 차 김은정(37·서울 마포구 상수동)씨는 요즘도 신용카드 영수증과 현금 영수증을 받으면 버릴까말까 고민한다. “하루 영수증 한두 장이라 해도 일주일 쌓이면 어느새 지갑이 두둑해진다. 가계부에 일일이 붙이거나 중요한 지출 영수증만 메모해두고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도 영수증 관리에 대한 정답은 잘 모르겠다.”국세청 납세홍보과 조영택 조사관은 “영수증 관리의 핵심은 소득공제와 세금 신고에 있다. 신용카드 영수증은 카드사에서 전산 입력하기 때문에 연말정산 때 출력해서 제출하면 된다. 현금 영수증은 국세청에서 관리하므로 둘 다 버려도 된다”고 전한다.# 영수증 잘 버리는 법이 따로 있다?! 주 1회 정리 그렇다면 영수증을 잘 버리는 방법이 있을까? 에듀머니 박종호 팀장의 설명을 들어보자.“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영수증을 받아 금액이 정확한지 확인한 뒤 지갑 속에 넣어두고 주말에 시간날 때 한꺼번에 가계부에 옮겨 적는다. 영수증에 있는 지출 금액만 옮겨 적으면 몇 분 걸리지 않는다. 가계부에 적을 때 콩나물 얼마, 두부 얼마까지 세세하게 적을 필요는 없다. ○○마트 얼마, ○○식당 얼마 식으로 적어두면 편하다. 그런 뒤 소소한 일상생활 속 지출 영수증은 일주일 단위로 과감히 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단 물가 변동을 확인하기 위해 마트 영수증을 한두 장 따로 분류해 놓는다면 생활비 예산을 잡을 때 유용하다.”# 의료비 영수증, 공과금은 버리지 말고 장기 보관 영수증은 굳이 보관할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 하지만 공과금이나 의료비 영수증 등 예외 항목도 있다. 조영택 조사관은 “신용카드 영수증은 할부 구매를 했거나 교환과 환불할 때 필요하기 때문에 기간만큼 보관하는 것이 좋다”며 “특히 의료비 영수증은 연말정산 때 병원에서 통보해주지 않고 누락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연말정산 때까지 꼭 보관해야 한다. 각종 공과금과 세금 영수증 또한 전산 체크가 되더라도 보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칭 타칭 주부 9단 이수정(34·서울 관악구 난향동)씨는 “카드 영수증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카드사 홈페이지에서 찾아보면 상호가 정확히 나오지 않아 답답할 때가 있다. 그래서 결제일까지 한 달 정도 지퍼백이나 작은 상자에 보관한다”고 말한다. 이수정씨는 또 “인터넷 쇼핑 뒤에도 영수증을 출력, 보관한다. 돈의 흐름을 알기 위해서 그밖에 식비, 생활용품비, 교육비 등도 종류별로 지퍼백이나 나무집게, 작은 상자 보관함 등에 넣어둔다”고 덧붙인다. 이은아 리포터 identity94@naver.com부동산 취득·등록세 One-Click 인터넷 서비스“편리함은 기본, 법적 효력까지 챙겼다” ?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등 구청 방문 필요 없어서울시는 세금 납부 영수증을 인터넷상에서 보관해주는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물론 1999년 이후 10년 간 세금 납부 영수증을 모두 전자보관함에 보관하고 있지만, 종전에는 전자영수증이 법적 효력은 없었다. 그래서 세금 납부 증명서나 등기시 첨부해야 하는 등록세 영수증을 위해 부득이 해당 구청을 다시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하지만 지난 5월 14일부터(‘지방세법시행규칙’ 개정 시행) 전자영수증에 대한 법적 효력이 부여, 이러한 불만이 해소됐다. 부동산 실거래가 시스템을 연계한 ‘부동산 취득·등록세 One-Click 인터넷 서비스’(etax.seoul.go.kr)를 통해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 취득·등록세 신고 납부 등 24시간 언제든지 편리하게 할 수 있다. ? 서울시 세금 영수증 전자보관함에 보관, 언제든지 사용 가능해서울시에서는 세금 영수증을 전자보관함에 보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출력, 세금 납부 증명서로 활용할 수 있다. 종이 영수증을 보관할 필요가 없어진 셈. 서울시는 부동산등기도 인터넷에서 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국민주택채권 전자매입시스템’과 ‘부동산 인터넷 등기시스템’ 등 외부 시스템과 연계해 부동산 취득에서 등기까지 인터넷에서 할 수 있도록 할 계획. 또 현재는 개인 간 유상 거래로 취득하는 공동주택과 토지에 한해서만 취득·등록세 인터넷 신고 납부가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과표 계산이 복잡한 상가 건물이나 일반 주택 등도 인터넷으로 신고 납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 부동산 취득·등록세 One-Click 인터넷 서비스 이용법은?홈페이지에 접속한 뒤 회원 가입, 공인인증서를 통해 로그인한다. ETAX 시스템 메인 화면의 상단 메뉴 중 ‘신고납부’, 좌측 메뉴의 ‘취·등록세(부동산)’를 차례로 클릭한다. 부동산 취득·등록세 신고 화면에 부동산 거래 신고 당시 부여받은 ‘신고필증 일련번호’를 입력하면 납세 의무자의 인적 사항, 취득 부동산 상세 정보, 취득가액 등을 보여준다. 해당 내용을 확인한 뒤 ‘세액 계산’ 버튼과 ‘신고’ 버튼을 차례로 클릭하면 부동산 취득·등록세 신고는 끝난다. 화면 하단의 ‘취득세 납부 바로 가기’나 ‘등록세 납부 바로 가기’ 버튼을 클릭하면 인터넷으로 세금 납부도 가능하다. 2009-08-19
- <김대중 전 대통령 연보> ▲1924년 전남 하의면 출생▲1943 목포상고 졸업▲1946 차용애 여사와 결혼.슬하에 홍일.홍업 두아들 둠▲1948 목포일보 사장▲1952 흥국해운 사장▲1951 한국 해운조합연합회 이사▲1954 3대 민의원 선거 목포출마.낙선▲1957 민주당 중앙상임위원▲1959 4대 민의원 재선거 강원도 인제 출마.낙선▲1960 민주당 기획위원겸 대변인.차용애 여사 사망▲1961 제5대 민의원▲1962 이희호 여사와 결혼▲1963 제6대 국회의원▲1965 민중당(민정.민주 통합야당) 대변인▲1967 제7대 국회의원▲1970 신민당 대통령 후보.경희대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1971 제7대 대통령 선거 출마.낙선.제8대 국회의원▲1972 일본 동경서 유신 반대 첫 성명 발표(1차 망명)▲1974 민족회복 국민회의 참여▲1976-1978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1978 가석방 후 가택연금▲1979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결성▲1981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1982 미국 망명(2차 망명)▲1983 재미한국 인권문제연구소 창설▲1985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1987 4월 통일민주당 상임고문▲1987 10월 평화민주당 총재 겸 대통령 후보▲1988 제13대 국회의원▲1991 신민당 총재▲1992 제14대 국회의원.14대 대통령 선거 낙선.정계은퇴 선언▲1993 영국 케임브리지대 객원교수▲1994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 이사장▲1995 새정치국민회의 창당▲1997 제15대 대통령 당선▲1998 제15대 대통령 취임▲2000 새천년 민주당 총재.남북정상회담.노벨평화상 수상▲2002 새천년 민주당 탈당 ▲2003 제15대 대통령 퇴임.김대중도서관 개관▲2004 내란 음모사건 재심 무죄 선고▲2006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2009 서거(끝)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8-18
- 김준규 후보자 청문회 통과할까 추가 위장전입, 장인 5억원 증여 출처 논란 신뢰성 도마에… 김 후보자측 “큰 문제 없다”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김 후보자 측은 두 차례에 걸쳐 리허설을 갖는 등 청문회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들이 결정적 하자로 이어지지 않는 이상 청문회를 통과할 것으로 조심스럽게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 자질과 능력, 리더십 검증에 주력하겠다던 민주당이 태도를 바꿔 김 후보자의 도덕성과 재산문제를 면밀히 파고들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이번 청문회도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청문회 당일 김 후보자를 가장 곤혹스럽게 할 검증 대목은 위장전입이다. 김 후보자는 두 자녀를 강남 소재 학교에 보내기 위해 두 차례 위장전입을 했다. 92년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 살았던 김 후보자는 초등학교 6학년인 첫째 딸을 서초구 반포동에 위치한 세화여중에 보내기 위해 1년간 부인과 딸의 주소를 서초구 반포동 지인의 집으로 옮겼다. 또 김 후보자는 97년 주미 대사관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하다 귀국하면서 가족 전체의 주소를 반포동에 있는 또 다른 지인의 집으로 옮겼다. 두 딸을 반포동 학교로 보내기 위한 목적 이었다. 이는 주민등록법상 허위 신고에 해당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처할 수 있는 위법행위다. 김 후보자는 “잘못된 행동이었다”고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했다. ◆후보자는 서울에, 부인과 딸은 장흥에 전입 = 김 후보자가 추가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요청안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87년 전남 장흥지청으로 발령을 받은 후 자신의 주소지를 서울 동작구 상도동 장인 집으로 옮겼다. 부인 이 모씨와 딸은 장흥지청 검사 관사로 전입했는데, 세대주인 김 후보자는 옮기지 않은 것이다. 김 후보자 측은 “지방발령이 잦은 검사 업무 특성상 실제 거주지로 전입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세대주가 사실대로 신고할 것을 규정한 주민등록법을 위반한 것은 마찬가지다. 김 후보자의 부인인 이씨가 장인으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무기명 채권 5억원도 논란거리다. 장인 이 모씨는 98년 5년 만기 액면가액 5억원짜리 무기명 채권을 딸에게 증여했다. 당시 정부는 지하자금 등을 끌어내기 위해 한시적으로 비과세 무기명채권을 발행했었다. 일반자산이었다면 1억원 이상의 증여세를 냈어야 했으나, 이씨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정부 정책에 따라 증여세를 낼 의무가 없었던 것이다. 이씨는 5년 후 무기명 채권을 현금화해 모 종금사에 5억7000만원을 고스란히 예치했다. 김 후보자의 장인이 상속세를 내지 않기 위해 딸에게 거액의 무기명채권을 증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자금 출처에 의심쩍은 부분이 있다. 장인은 70년대초에 공군 장성으로 전역했다. 결혼한 지 20여년된 딸에게 5억원을 증여한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지만, 장인은 80년대에 당시 시가로 1억원이었던 상도동 대림아파트에 살았다. 82년 12월에 사 89년 11월에 팔았는데, 아파트에는 4500만원의 근저당권이 설정돼 있다.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딸에게 무기명 채권을 준 98년도에 이 아파트 시가가 2억5000만원 정도였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 측은 “장인의 생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뿐더러 개인의 사생활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답변했다. ◆실무자가 연말정산 처리, 이중공제 몰라 = 김 후보자가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연말소득공제에서 배우자 공제를 신청해 매년 100만원의 세금을 되돌려 받은 것도 문제다. 부인 이씨는 당시 종로 경운동 상가의 임대료 수입과 펀드 수익 등으로 인해 세무서에 종합소득신고를 하고 소득세를 냈다. 이중소득공제는 소득세법 위반에 해당한다. 김 후보자 측은 “늘 하던 대로 연말정산을 실무자가 조치해줘 그 같은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해명이라고 하기에는 궁색한 면이 없지 않다. 김 후보자가 부인의 소득을 몰랐을 리 없을뿐더러 실무자가 연말정산 처리를 해줬다고 해도 마지막 확인은 김 후보자가 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김 후보자의 신뢰성이 쟁점으로 형성되고 있다. 김 후보자는 호화 취미 논란이 일었던 요트에 대해 부산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훈련을 받은 후 부산서 통영까지 딱 한차례 협회 임원, 선수들과 함께 다녀왔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몇 차례 요트를 탔던 것으로 해명이 바뀐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김 후보자는 취미였던 풍수지리에 대해 93년 제천지청장 시절 이후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2007년 대전지검장 시절 대전대학교 철학과 교수 주선으로 대학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이 문제되자, 그 교수와의 교류를 인정하는 것으로 물러섰다. 그 교수는 주역학회와 동양철학학회 회장을 지낸 인사다. 김 후보자 측은 “신뢰성 문제는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해명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해일 뿐”이라며 “미스코리아 심사위원료나 강연료 등을 받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있는데, 돈 자체를 받은 일이 없다”고 밝혔다. 청문회 당일 김준규 후보자가 여야 국회의원들의 검증공세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해진다. 선상원 기자 wo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8-14
- 떡&샤브샤브 전문점 ‘어가행렬’ 유은희 대표 결혼은 여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요즘처럼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많지 않았던 40~50대의 여성들에게 있어 결혼은 자신의 이름보다는 아내와 엄마라는 이름에 안주하는 경계선인지도 모른다. 15년 넘게 궁중떡 전통죽 폐백이바지 사찰음식 푸드코디네이터 테이블세팅 차문화 약선음식 등 음식에 관한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장항동에서 퓨전 떡 카페 ‘어가행렬’을 운영하다 현재 파주 금능동 샤브샤브 전문점 ‘어가행렬’을 운영하고 있는 유은희 대표. 그는 결혼 후에도 계획을 세우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다. 경계선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출발선, ‘아줌마’란 의미는 안주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 더 뚝심 있게 나아갈 수 있는 ‘힘’이라는 그를 만났다. 10년 내다보고 미래 계획 세워 “한 번 계획을 세우면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뚝심은 좀 있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여는 유은희 대표. 무슨 일을 하던 그는 단기적인 것보다 적어도 10년을 내다보고 목표를 세운다고 한다. “자아실현이든 물질적 이득을 위해서든 주부들 대부분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다 갖고 있지만 짧은 시간에 어떤 결과물을 얻으려고 하다 보니 결국 얻는 것 없이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그는 “1~2년 해서 전문가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하면서부터 10년 후의 미래 계획을 세웠다는 그가 처음에 선택한 것은 유아교육. 아이들을 위해 그 공부가 유용하지 않을까 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과연 내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바로 ‘음식’이었다. 똑같은 재료로 만들었는데도 유독 그가 만든 음식은 “참 맛있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던 터라 한식 양식 중식 베이커리 등 생활음식을 배우고 홈파티부터 시작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하나를 하더라도 확실하게 배우고 끝까지 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국전통음식연구원의 윤숙자 교수 밑에서 전통음식과 사찰음식 폐백이바지 떡 장 담그기 등 음식 전반에 걸친 전문성을 키웠다. 단아하고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음식에 관한 한 누구보다 강한 의지와 열정으로 매진해 온 그는 세계음식요리경연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는가 하면 고양문화재단 킨텍스 등이 주최하는 전시회·공연에서 내외빈들을 위한 파티플랜을 맡는 등 대외적으로도 음식전문가로서의 입지를 굳혀왔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아 처음 음식 공부를 시작하면서 “10년은 해야 한다”고 마음먹고 들어선 길이지만 결혼을 하고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면서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도 많았다. 음식을 배우고 나면 그에 맞는 푸드스타일을 배워야 하고, 푸드스타일을 하기 위해서는 테이블세팅에 필요한 풍선장식과 꽃꽂이 등을 배워야 하는 등 하면 할수록 끝이 없는 것이 음식 공부라고 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지만 주부로서의 역할도 어쩔 수 없이 소홀해질 때가 많았고 물질적으로도 투자가 많아지는 등 힘들 때가 많았다는 유은희씨. 그에게 가장 큰 적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토로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15년 외길을 걸어오면서 힘든 적은 있었어도 좌절하거나 포기한 적은 없었다고. 넘어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거듭하면서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아줌마이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한 때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시민단체에서 간사로 활동한 바 있는 그는 “남성들과의 차별화나 힘겨루기가 아닌 여성들 스스로 비사회적 존재로 상당부분 왜곡되어 있는 아줌마 상을 바로 잡고 소극적인 삶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일은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포기할 수 없었고,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깨우쳐나가는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다.” 이쯤 되면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고 행복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의 남편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진다.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 못할 것”이란 말 그대로 그의 남편은 뒤에서 묵묵히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든든한 백그라운드다. 아이들 공부시키는 것도 아니고 아내의 공부를 위해 싫은 소리 한번 한 적 없는 남편과 늘 “우리 엄마 대단하다”고 격려해주는 아이들, 가족이 그에겐 또 다른 힘이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전문병원 세우고파 윤 대표는 지난 해 원광디지털대학 한방건강학과를 졸업하면서 ‘약선사’ 자격을 취득했다. 약선이란 음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학문. 배움에 끝이 없다는 것을 일을 하면서 많이 느낀다는 그는 “다양한 분야에 공부를 많이 해놓으면 작업을 할 때 자유롭게 응용하고 창조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떡 카페를 거쳐 지금은 샤브샤브 전문점까지 낸 그의 화두는 “먹는 음식으로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 오랫동안 꿈꾸어왔던 하나를 이루기 위해 그는 그가 머무르는 과정마다 최선을 다해 음식을 만들고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엄마의 신념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졌는지 딸은 중의학을, 아들은 침구를 공부하고 있다. 아직도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 10년 후의 그의 꿈은 아이들의 전공과 약선을 접목한 전문병원을 만드는 것이다. 그를 만나고 나니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간다. 나도 ‘我줌마’니까!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