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초기' 검색결과 총 9,846개의 기사가 있습니다.
- 국제결혼을 말한다 최근 10여 년 간의 국제 사회의 한류열풍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국제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국제결혼이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다. 국제결혼은 국내결혼에 비해 결혼조건과 비용 등에서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부정적인 인식도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국제화 시대에 보편적인 결혼문화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농어촌 지역 노총각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중국한족이나 우즈베키스탄 여성들과의 결혼관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멀쩡한(?) 남성들도 그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한다. 왜 국제 결혼을 선호하는가? (주)노블웨딩 이태우 대표는 “예전에는 베트남이나 필리핀 여성들에 국한되었던 국제결혼이 이제는 중국을 넘어 우즈베키스탄까지 넘나들고 있다”면서 “꼭 막대한 돈을 들여 배우자를 데려온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날 때”라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 “조건만을 너무 앞세우는 우리나라의 결혼관에 실망한 남성들이 국제결혼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본인이 원하는 훌륭한 배우자를 맞이하고 있다”고 전했다. ◇결혼 조건을 따지지 않는다 =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력이나 외모, 학력, 집안 등이 결혼의 우선 조건이 되므로 이 조건들이 골고루 갖춰지지 않으면 결혼이 힘들다. 하지만 국제결혼은 조건보다는 사람을 보고 결정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데 장애가 많지 않다. ◇해외이민 & 사업에 도움이 된다 = 해외에 진출해 사업을 구상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현지인을 신부로 맞이하게 된다면 여러 면에서 도움이 된다. 국제결혼은 해외이민이나 무역사업진출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선택이다. ◇배우자 선택의 폭이 넓다 = 교수나 공무원, 교사, 번역사, 요리사 등 다양한 직업은 물론 국가별로 특색 있는 외모를 지닌 여성들과의 맞선기회로 선택의 폭이 매우 넓다. ◇외국어교육에 좋다 = 특히 국제결혼을 하는 여성들은 영어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많아 본인의 외국어실력은 물론 자녀들의 외국어교육에도 효과가 크다. 중국한족 여성의 특징 중국은 넓은 땅 만큼이나 각 지역에 따라 빈부의 격차가 크며, 이중 한족이 92%를 차지한다.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한족여성은 대부분이 웃어른을 공경 하는 등의 예의가 바르고 효심이 강한 편. 또 자녀에 대한 애착심 또한 깊어 교육열이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한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참고 이겨내는 점들은 우리나라 여성보다 뛰어나며 남성과의 상당한 나이차도 서로간의 애정만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이에 반해 한족 여성의 단점은 공산주의 체제에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남녀평등 의식이 강해서 집안일과 자녀교육 등과 같은 경우엔 남녀가 똑같이 분담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여성의 특징 우즈베키스탄(이하 우즈벡)여성은 현지에 거주하는 고려인 및 현지 한국기업 덕택에 한국에 대한 거부감이 없으며 경제력과 매너, 성실함을 갖춘 한국남성들을 최고의 신랑감으로 생각한다. 특히 우즈벡 남성에 비해 여성의 교육열이 높아 대부분 대졸이상이고 한국에서 적응을 잘 하고 언어습득 능력이 뛰어나다. 또한 의사, 간호사, 교사 등 전문직 여성이 많으며 이들은 대부분 최고의 신랑감으로 꼽는 한국남성을 만나 행복을 찾으려는 여성들이 대부분. 또 우즈벡 여성들은 서구문화가 유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순수하고 전통적이며 보수적이다. 따라서 다산과 순종을 미덕으로 여기는 편이다. 국제결혼업체 선정 시 주의할 점 국제결혼업체를 고를 때는 사업 대표자의 이름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거나 사업 연륜이 짧은 회사는 피하는 게 좋다. 인터넷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업체의 경우는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또 싼 비용만을 미끼로 어떻게든 모집하고 보자는 식의 업체는 실제 드는 비용의 일부만을 공개하고 모든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양 현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허가된 업체인지, 부당한 추가비용을 요구하지는 않는 지, 사후관리는 철저히 해주는 지 등을 잘 살펴 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이렇듯 국제결혼이 빈번해짐에 따라 중국한족과 우즈벡 여성들과의 국제결혼을 전문으로 운영하고 있는 (주)노블웨딩에서는 최고의 배우자를 찾아주는 데 절대적인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항공료, 국제서류비, 맞선증개비 등과 신부입국 및 결혼행사진행에 필요한 총비용이 660만원. 저렴한 비용도 큰 매력이지만 총책임자(대표)가 직접 인솔해서 동행 출국하며 1:1맞춤맞선으로 성혼성사율 99%를 자랑한다. 도움말 : (주)노블웨딩 이태우 대표 문의 : 052)221-7900(노블웨딩) 서경숙 리포터 skiss72@hanmail.net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1-03
- “배려 통해 한국 위상 세우자” 이명박 대통령은 2일 “(개발도상국에 대한)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우자”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방송된 27차 라디오연설을 통해 “(개도국에) 경제적 이익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진심어린 마음으로 다가서서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는 최근 국내 일각의 외국인 근로자들과 결혼 이민자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개발도상국들에 ‘혐한 기류’를 확산시키는 원인이란 분석을 고려한 언급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최근 동남아 3국 방문을 돌아보며 한국을 발전모델로 삼고 있는 개도국에 대한 ‘따뜻한 배려’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베트남은 냉전 당시 참전이란 아픈 과거가 있는 나라이지만 베트남 국민들은 정말 밝고 따뜻하게 맞아주었다”면서 “베트남 국민들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자세는 우리도 배울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저에게 한국에 있는 캄보디아 근로자들과 결혼 이민자들을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하며 “특히 ‘캄보디아 며느리가 있다고 생각해 달라’고 하실 때 마음이 찡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경제적 이익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고, 진심어린 마음으로 다가서서 그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며 “배려하고 사랑받는 나라, ‘따뜻한 이웃, 번영의 동반자’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다른 한편으로는 변방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면서 “달라진 위상에 걸맞게 당당하게 우리와 관련된 중요한 현안에는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성홍식 기자 hssung@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1-02
- 임신능력을 높이는 한방치료들 ‘저는 왜 4개월이나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 제 친구는 여기서 두 달 만에 임신했단 말이예요. 걔보다는 제가 더 건강한데요..’ 얼마전 불임으로 내원한 환자가 진찰이 끝나고 나서 4개월 정도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내뱉은 일성이다. 들어보니 친구가 아마 자기보다 마르고 왜소하니 덜 건강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불임환자는 마르고 약해서 생기는 경우보다 지나쳐서 생기는 경우가 더욱 많다. 즉 영양분의 부족으로 인해서 생기는 경우보다 영양과잉, 환경호르몬과잉, 자궁내막증, 비만, 스트레스로 인한 호르몬장애등으로 생기는 불임이 더 많다. 부족은 채워주면 되나 이런 경우는 막힌 것들을 뚫어주는 해독의 과정이 더 필요하니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이다. 요즘 불임부부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불임이란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 1년이 지나도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말하는데 가임부부의 10~15%가 불임이다. 여성의 가임력은 25세일 때 최고이며 35세가 되면서 급격히 퇴화하게 되는데 요즘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로 불임부부의 수도 따라 늘고 있다. 초경이 빨라지고 결혼이 늦어지면서 자궁내막증의 빈도가 올라가는 것도 한 원인이다. 불임의 원인은 여성인자와 남성인자 그리고 원인불명으로 나누게 된다. 여성인자(50%)는 난소인자로 무배란인 경우가 20%정도, 난관 및 복막인자인 경우가 20% 자궁경부의 문제가 다시 10% 정도이다. 남성인자의 경우도 35%정도이고 15%는 원인불명으로 분류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나누는 것보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는 것이 더 설명이 쉽다. 첫 번째는 기질적인 즉 구조, 형태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이다. 여성의 경우 자궁내막증이거나 난관의 폐색, 자궁기형 등이고 남성은 정자수와 형태 등에서의 문제다. 두 번째는 기능적인 문제이다. 배란의 장애와 자궁 착상능력의 저하, 남성정자의 운동성저하 등이 바로 기능적인 문제인 것이다. 원인불명의 대부분은 기능저하로 보면 된다. 먼저 기질적인 병변은 그 원인을 수술 등으로 제거해주면 되나 기능적인 병변은 수술로 가능하지 않다. 반드시 자궁과 난소의 기능을 향상시켜서 임신능력을 올려줘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궁근종이나 자궁내막증 같은 경우에는 그 생긴 원인 자체가 자궁골반강의 순환부전과 면역력약화 등의 기능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자궁의 기능 향상 없이 결과물만 없앤다고 해서 임신이 되는 것이 아닐뿐더러 다시 재발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자궁내막증, 자궁근종으로 인한 불임은 자궁, 복강 내의 순환장애를 없애고 면역력을 길러주면 대부분 자연적으로 임신이 된다. 자궁내막증, 자궁근종 치료와 불임치료가 하나인 것이다. 그리고 호르몬의 불균형으로 생기는 배란장애들도 인위적인 호르몬 조절보다는 자연스럽게 몸이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치료를 해줄 때 자연임신이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도움말 경희보궁한의원 박성우원장 김영서 기자 yskim@naeil.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4
- 수원여성인력개발센터, 여성친화우수기업 시상식 개최 지난 22일 수원여성인력개발센터 강당에서는 여성친화우수기업 시상식이 열렸다. 공모전과 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농협수원유통센터(권선구 소재), (주)민진(화장품 용기 제조), 삼성여성병원, (주)유라하네스(자동차부품 제조), (주)유니에스(서비스) 등 여성친화기업 5개 업체가 최종 선정됐다. 시상식은 타 업체에 동기를 부여하고 여성친화기업문화를 확산시키고자 마련됐다. 이날 열린 기업체 간담회에서는 기업이 원하는 여성인력에 대한 정보제공과 결혼, 육아, 가사의 부담으로 오랜 기간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취업지원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논의도 이뤄졌다. 수원여성인력개발센터는 여성의 능력 개발 및 사회경제적 지위 향상과 관련된 사업 수행을 위해 설립된 기관. 여성직업전문교육기관의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면서 09년부터는 여성부와 노동부의 특별사업으로 여성새로일하기센터를 운영,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 촉진 및 취업알선, 취업 후 사후관리 등의 개인별 맞춤형 취업서비스도 제공해오고 있다. 문의 수원여성인력개발센터 031-206-1919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30
- 조기 유학의 성공 조건 우리는 살면서 항상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 조기 유학은 직업 선택이나 결혼과 같이 인생의 중대한 선택 중 하나이다. 연간 조기 유학생이 3만 명에 이르고, 조기유학에 들어가는 연간 비용이 약 5조원이라는 통계가 있다. 유학생 수가 계속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한편으로는 유학에 대한 올바른 대안을 찾고, 다른 한편으로는 유학 결정이 좀 더 합리적으로 내려지고 유학과정이 좀 더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성공적인 유학이 되기 위해서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 지를 알아보자. 성공적 유학의 고려조건 첫째, 성공적인 유학을 위해서는 조기에 선택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준비해야 한다. 어렵게 들어간 학교를 준비 부족으로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준비 없는 유학은 실패로 이어지기 쉽고, 유학의 두려움과 위험을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준비로 많이 줄일 수 있다. 갑자기 유학을 가려고 하면 공부 외에도 언어적 핸디캡 때문에 학생이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은 가중된다. 둘째, 성공적인 유학을 위해서는 유학 준비 뿐 만 아니라 다른 문화에 대한 적응력과 독립심을 높여야하며, 유학 과정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잘 극복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어려움들은 잘 극복하기만 하면 독립심과 사회적 성숙도를 높이고 유학경험이 사회적 성공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셋째, 유학의 준비과정에서 자신의 꿈과 목표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꿈과 목표가 생기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어 어렵고 힘든 유학과정을 인내하며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어 유학의 성공확률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또한 유학의 선택도 부모가 독자적으로 내리기 보다는 학생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동기부여가 되고 자기주도적인 학습태도가 생겨서 좋은 교육적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넷째, 조기유학에서 언어적인 어려움이 많이 가중되면 어린 학생이 혼자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회화 중심의 프로그램보다는 미국 교과서를 가지고 내용 중심으로 읽기, 말하기, 듣기, 쓰기를 통합적으로 가르치는 몰입식 영어 프로그램이 영어실력 향상과 학교 성적을 높이는데 더 효과적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생각을 글과 말로 잘 표현하는 실력이 모자라면 유학생활은 지옥이다. 다섯째, 성공적인 유학이 되려면 자기 관리가 잘 되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장단기 목표와 계획을 가지고 공부와 생활을 하도록 교육해야한다. 이를 위해서 공부 내용을 가르치는 선생님보다는 어떻게 공부하고 자기 생활을 계획적으로 관리해야하는 지를 지도하는 교육컨설팅이 더 중요하다. 이 외에도 학생의 문제를 실질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법적 보호자(guardian)를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며, 관리형 유학의 경우 홈스테이 가정에서 학생의 생활과 공부를 잘 관리하는 가족을 만나는 것 또는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교과외 활동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교과외 활동은 미국의 중고등학교에서 교육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 자신의 교과외 활동을 어떻게 계획하고 선택하며 참여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 미래에 자신이 활동할 사회에서 요구되는 사회성과 리더십을 기르게 될 것이다. 세계시민의 자질 갖출 기회 유학과정에서 단지 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학을 하는 기간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세계와 교육제도를 경험한다. 다른 사회와 문화를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가치관과 사고를 넓히고, 이를 통해서 세계시민으로의 자질과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이자 도전이라 생각한다. 국내에서 공부할 것이냐 유학을 갈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이지 어느 것이 더 자신의 미래에 유리한 지를 지금 시점에서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유학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선택은 자신의 준비와 의지에 따라서 실패로 이어질 수도 있고 인생에 큰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예측되는 위험이 크거나 국내에서 공부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그렇게 하면 될 것이고, 비록 위험과 도전이 많지만 꿈을 가지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을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 유학은 인생의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영상 원장 (02)538-2003 에듀소프트 아카데미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30
- ‘인공치아’ 시술기간 짧고 자연스러워 허브치과의사 정상재 원장 교통사고로 앞니에 금이 갔던 윤 석(29)씨는 곧 있을 결혼식 촬영이 걱정이다. 치아를 빼고 인공 치아를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인공치아를 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그 길다는 치료기간 때문에 사진 촬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고민하던 윤 석 씨가 선택한 치료는 즉시 임플란트. 첫 진료에서 윤 석 씨는 치아를 뽑은 후 임플란트 시술을 위한 인공 치아뿌리를 심었다. 3주 후 두 번째 진료에서는 식립된 인공 치아뿌리에 인공 치아 머리를 장착하여 제대로 된 자기 치아와 같은 인공치아(임플란트)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그 주말의 사진 촬영을 역시 멋지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연 치아처럼 자연스럽고, 무엇보다 씹는 힘이 좋아 각광받는 임플란트. 하지만 일반적인 방식으로 임플란트 시술을 받으려면, 치아를 빼고 완성하기까지 6-9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윤 석씨처럼 바쁜 현대인에게는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임플란트 시술 기간을 줄이는 다양한 시술 방법이 개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즉시 임플란트는 치아를 빼고 바로 임플란트를 심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전체 치료가 3주에서 한 달 정도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앞니의 경우, 치아를 빼고 잇몸 뼈가 얇아지기 전에 바로 임플란트를 식립하는, 즉시 임플란트가 좋은 선택이다. 임플란트 시술을 할 때 잇몸 뼈가 충분하지 않으면 원하는 위치와 각도에 심지 못하게 되므로 심미적, 기능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치아를 뺀 후, 처음 1-2년 안에 30% 정도가 감소하므로 앞니의 경우 즉시 임플란트가 심미적, 기능적으로 유리한 점이 많다. 즉시 임플란트는 SCRP 임플란트 시스템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안정적이다. SCRP 임플란트 는 국내 특허는 물론 국제 임플란트 심포지엄 에서도 인정받은 것으로 치아에 특별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시술이 진행되며 시술 후 바로 일상적인 식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나사 형태로 조여서 결합하는 스크루(Screw)타입과 치과용 접착제를 사용하는 시멘(Cement)타입의 장점만을 결합한 SCRP 임플란트는 특히 사후에 교정 및 관리가 쉬워 10년 이상 임플란트를 사용하게 되는 젊은이들에게 더욱 적합한 시스템이기도 하다. 그러나 즉시 임플란트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잇몸 뼈가 충분한 경우나, 치아가 사고로 인하여 빠지거나 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또는 염증 없이 치주조직이 건강한 경우에만 적용이 가능하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30
- “베를린장벽 무너뜨린건 기자들이었다” 현장 직접 체험한 김정운 교수, 저서 통해 상세 공개 “역사는 우연한 방식으로 변화, 한반도 예외 아닐 것” 세기적 전환이자 현대 세계사의 주요 이정표가 된 베를린 장벽 붕괴. 그 장벽이 무너져 내린 진짜 이유가 뭘까.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21일자 신문을 통해 당시 급작스런 장벽 붕괴를 촉발시킨 진짜 주인공은 ‘동독주재 서방 매체 기자들’이라는 추적보도 기사를 게재했다. 그런데 이 세기적 사건을 현장에서 직접 겪은 한국인 교수가 있다. 그 주인공은 김정운 명지대 교수다. 문화심리학자로 자신을 소개하는 김 교수는 최근 출판한 책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독일에 유학 중이었고 역사적인 11월 9일 밤 서베를린 슈판다우 외곽지역 동독인 난민 수용소에서 경비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로 이 세기적 사건의 생생한 현장을 직접 체험한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그가 출판한 책은 올해 6월 1일자로 발행돼 10월 21일 보도한 ‘월스트리트 저널’보다 넉 달 전에 한국 국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던 셈이다. ◆동독 공산당 대변인의 ‘말실수’에서 촉발 = 김 교수에 따르면 “독일 통일은 정말 코미디처럼 이루어졌다”며 “동독 공산당 대변인이 별 생각없이 답변한 한마디와 독일 사정을 잘 모르던 이탈리아 등 서방기자들의 기사 송고가 겹쳐진 우연성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가 밝힌 베를린 장벽 붕괴의 전말은 이렇다. 사건은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정부가 여행자유화에 대한 정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시작된다. 여행자유화를 요구하는 동독시민들의 시위가 그해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지속되자 동독 정부는 뭔가 시위대를 달랠 정책을 발표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당시 동독 공산당 정치국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Schabow-ski)는 이 기자회견에서 동독인들의 해외여행 절차를 간소화하는 행정 조치를 발표할 계획이었다. 주변국 외에 동서독 국경을 통한 출국도 가능케 하는 것 등이 주요 내용이었는데, 연일 커져가는 시위를 무마하려는 의도였다. 이전의 정책과 비교해 크게 다를 바가 없었고 특별한 내용이라고는 여권 발급 기간을 단축한다는 것뿐이었다. 저녁 6시 58분 샤보브스키는 기자회견을 열어 그 내용을 발표한다. 그러나 문제는 샤보브스키가 새 조치를 숙지하지 못한 상태로 회견장에 나섰다는 점이다. 그는 당 지도부가 새 여행 규정을 결정하는 동안 휴가로 자리를 비웠다가 기자회견 당일에야 문서를 건네받았다. 회견장에는 국내외 기자들이 가득했다. ◆독일어에 서투른 이탈리아 기자의 과잉 해석 한몫 = 그가 여행 자유화에 대해 운을 떼자 기자들이 벌떼처럼 질문을 던졌다. “의미가 뭔가” “언제 발효되나” 등등 쏟아지는 질문에 그는 당황했다. 마침내 그에게 한 이탈리아 기자가 그 정책이 언제부터 유효한지 물었다. 새정책에 대해 별로 아는 바 없던 그는 들고 간 문서를 정신없이 뒤적이며 아무생각 없이 “지금부터 바로!”라고 답변했다. 그의 즉석 답변에 귀를 쫑긋 세운 기자들은 발표 내용이 국경 개방을 뜻하며, 그것도 즉시 효력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대부분 독일기자들은 별 내용이 없는 여행자유화 정책에 시큰둥해 했다. 그러나 독일어에 서툰 이탈리아 기자는 오버하며 본국으로 급전을 쳤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미국기자들도 덩달아 “내일부터 당장 동베를린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을 통과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날 밤 서독 TV는 외신을 짜깁기하여 “동독이 드디어 국경을 개방했다”고 애매한 보도를 내보냈다. ◆여행자유화 정책 발표가 ‘베를린 장벽 무너졌다’로 둔갑 = 뉴스를 시청한 동독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으로 몰려갔다. 국경수비대가 저지했지만 동독 주민들은 “뉴스를 듣지도 못했냐”고 오히려 따졌다. 황당해진 국경수비대는 혼돈에 빠졌다. 그들은 발포를 해서라도 인파를 해산시켜야 하는지를 놓고 옥신각신하던 끝에 결국 검문절차를 포기하고 국경을 개방했다. 동독주민들이 장벽을 올라타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흥분한 일부 주민들은 도끼, 망치를 들고 나와 아예 장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반대편 서베를린쪽 젊은이들도 망치로 벽을 부수기 시작했다. 이로써 베를린 장벽은 역사의 유물이 됐다.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에 따르면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 샤보브스키를 혼돈에 빠뜨린 결정적 질문자가 누구인지를 놓고 다시 논쟁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이탈리아 통신사인 ANSA의 외신기자 리카르도 에르만(Ehrman)의 공으로 간주됐다. 그는 자신이 여행 자유에 관한 첫 질문을 던졌으며, 답변을 듣고서 재빨리 회견장을 떠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는 헤드라인을 송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 타블로이드 신문 빌트-차이퉁의 피터 브링만(Brinkmann) 기자는 자신이 자유화 발표시점에 관해 결정적 질문을 던졌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당시 동독 TV 자료 화면이 진상을 가려줄 단서를 제공하는데 이탈리아의 에르만과 독일의 브링 외에 ‘미국의 소리(VOA)’ 기자도 가세했지만 워낙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내 샤보프스키가 “즉시 지체없이”라는 단어를 내뱉게 한 질문자의 신원은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김정운 교수는 “샤보브스키의 엉뚱한 브리핑 답변이 없었더라면 베를린 장벽을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역사는 필연적 인과관계보다는 아주 황당하고 우연한 방식으로 변화한다”며 “한반도도 분명 예외는 아니다”라며 이야기를 끝맺었다. 안찬수 기자 khaein@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30
- 알리바이까지 준비한 인면수심 아들 알리바이까지 준비한 인면수심 아들 “동생만 편애한다” 방화로 부모 살해 지난 7일 성북구 월곡동 다세대주택 3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2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친 사건의 범인이 아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7일 11시 10분쯤 거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부모를 숨지게 하고 어린 동생을 중태에 빠트린 혐의(현주건조물방화치사상 및 존속살해)로 강 모(28)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화재 현장 감식 결과 휘발유에 의한 방화인 것을 확인, 주변 인물들에 대해 수사를 벌이는 과정에서 큰아들 강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해 추궁한 끝에 범행 일체를 자백 받았다. 강씨는 경찰에서 “부모가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동생만 편애하는 것이 싫었고, 식당을 차려 애인과 빨리 결혼하고 싶었지만 부모가 돈을 대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의 부모는 20여 년 전 재혼한 사이로 강씨는 친어머니와 새 아버지가 둘 사이에 태어난 어린 동생만 편애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며 강씨 혼자 4층 옥탑방에서 생활하면서 평소 외톨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들은 이 집에서 평소 싸움 소리가 나는 것은 듣지 못했으며, 큰 아들이 한 건물에 같이 사는지 모를 정도로 강씨가 이웃 주민들에게 존재감이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강씨는 범행 하루 전 강북구 소재 주유소에서 플라스틱 음료수병 2개에 휘발유 2.5리터를 구입해 자신이 지내고 있는 4층 옥탑방 문 앞에 보관해 오다 사건 당일 가족들이 잠자는 것을 확인하고 거실에 휘발유를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강씨는 또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사건 당일 애인과 헤어진 뒤 친구들에게 “밤 11시쯤 집 근처 치킨집에서 술 한잔 마시자”고 전화를 한 뒤 약속장소에 가기 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3
- <기고> 지난 9월 닐슨컴퍼니코리아의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73.9%가 경기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씀씀이를 줄이고 있다. 경제위기를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으로 ‘절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구두쇠’처럼 아끼기만 하면 우울하고 무미건조한 삶이 되기 십상이다. 하루하루 돈에 쫓기듯 사느라 숨은 턱턱 막히고 주변을 돌아보는 여유도 사는 재미도 잃어버린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가족의 작은 행복마저 포기해야 하는 순간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가족은 삶의 이유다. 우리가 그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 이유도 결국은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다. 가족이 행복하지 않으면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고 졸라매도 희망은 잰 걸음으로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생뚱맞은 제안을 하고 싶다. 가끔씩은 가족을 위한 ‘작은 사치’는 부리며 살자는 것이다. 헤픈 씀씀이는 줄여야 하지만 어느 정도 삶을 즐기는 여유도 필요하다. ‘절약’이 무조건 안 쓰는 것은 아니다. 쓸 것은 쓰면서 아끼는 것이다. 잘 쓰는 것도 절약이다. 잘 쓴 돈은 당장의 만족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여운을 가져다 준다. 뿌듯한 느낌으로 남는 소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소비, 바로 가족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주고 행복을 가져다 주는 ‘작은 사치(Small Luxury)’다. 그렇다고 대단한 ‘과소비’를 하자는 것은 아니다. 작은 사치는 두둑한 현금봉투나 거창한 선물보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적은 돈이라도 가족의 행복을 불러오는 소비에 써보라는 것이다. 올 들어 필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은 지출은 영화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결혼기념일에 찾은 ‘프리미엄 영화관’이었다. 고급 코스 요리를 먹으면서 최상급 화질과 빵빵한 사운드를 갖춘 극장에서 항공기의 1등석처럼 푹신한 의자에 앉아 영화를 본 것이다. 평소에 비좁은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 콜라에 팝콘 먹으려 보는 영화와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극장에 온 건지 호텔 레스토랑에 와있는지 착각할 정도였다. 물론 보통 영화 관람료의 물경 10배에 이르는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내를 보면서 미안한 마음과 함께 진한 감동이 교차했다. 어쩌면 지금까지 해온 수십만 가지 소비 중에서도 가장 가슴 뿌듯한 소비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1년 내내 이런 소비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끔 누리는 이런 호사스런 소비는 가족의 행복을 부르는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때로는 여유를 즐겨야 더 나갈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작은 사치의 진짜 재미는 소비하는 순간보다는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 푼돈이나 자투리 돈을 모아 작은 사치에 들어갈 비용을 만드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요즘 필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갑에 3만원 이상을 넣어 다니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현금을 갖고 있다 보면 아무래도 새나가는 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충동구매를 자극하는 신용카드 대신 체크카드를 사용하고 출퇴근도 될 수 있으면 지하철을 이용해서 교통비도 반으로 줄였다. 술자리가 있는 날에도 늦어도 자정까지는 귀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다 보니 택시 타는 회수도 술자리 차수도 줄어들었다. 돈도 덜 쓰고 술도 덜 마시게 되고 게다가 귀가시간이 일러지면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도 늘어나니 말 그대로 ‘일석삼조’다. 점심식사도 구내식당에서 해결하고 커피전문점에서 폼 나게 마시던 커피도 사무실의 원두커피로 대신한다. 예전에는 시큰둥했던 미용실•패밀리 레스토랑 등의 공짜 쿠폰도 꼼꼼히 챙기고 마일리지 카드를 만드는 데도 열심이다. 요즘 불황으로 인해 고객확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10번 이용하면 한번 무료 등 이용실적에 따라 혜택을 주는 곳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일리지 카드가 있으면 아무래도 단골고객이라고 해서 좀더 신경을 써줄 때가 많다. 한 마디로 ‘절약’을 위해 아니 ‘작은 사치’를 위해 라이프 스타일까지 바꿨다. 물론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약간의 부작용(?)이 따르기도 한다. 때론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주변에서 ‘왕소금’이란 원성을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절약의 진짜 재미를 알게 된다. 이제 절약은 돈을 아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이나 책임감이 아니라 가족의 행복에 한발 짝 다가서고 있다는 보람과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아껴 모은 돈이 가족의 행복을 일구는 텃밭이 되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위기의 그림자가 온 세상에 드리워져 있다. 경제위기는 가정도 비켜가지 않았다. 많은 가정이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고 가족관계도 예전 같지않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럴 때 행복을 사는 작은 사치로 집안 분위기를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박철 국민은행연구소 연구위원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13
- [특별기획 자영업은 해체중]금융위기에 또 무너진 김병호씨 20년 대기업 부도·외환위기로 2번 부도금융위기로 일거리 없어 하층 전락김병호(45·가명)씨는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30분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운다.작업현장인 동두천까지 가려면 지금부터 바삐 서둘러야 한다. 새벽 출근한 지 10년이 넘었건만 지금도 일어날 때마다 좀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내 처지에 무슨…” 생각을 하며 그는 가족들이 깰까봐 조심스레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현관을 나서자 초가을 차가한 공기가 그를 맞이한다. 찬 기운에 그의 몸은 가벼운 경련을 일으킨다.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7시. 아침 해가 아파트 숲 너머로 떠오른다. 인테리어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그는 요즘 3층 건물 하자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오후 6시. 일을 마친 그는 곧장 집으로 향한다. 가끔은 술 한 잔으로 피곤함을 씻기도 하지만 얼마 안되는 술값조차 아까워 자리를 피하기 일쑤다.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어깨가 한없이 무거워진다. 김씨는 가족 6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기에 일을 많이 하고 싶지만 상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하다. 건설경기가 살아나지 않는 이상 일거리가 늘지 않고, 벌이가 신통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에 가슴은 답답하기만 하다.특히 부모 집에 얹혀살고 있는 형편이라 부인과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전셋집이라도 구해야 하지만 아무리 애써도 한 달 생활하기에도 빠듯하다. 월 200만원 벌기가 쉽지 않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그의 손에서는 담배가 떠나지 않는다.일찍이 사업에 뛰어들어 젊은 나이에 의류업체를 설립, 사업이 번창할 때만해도 그는 대그룹을 꿈꿨다. 밤이 새도록 일해도 피곤한 줄 몰랐다. 벌이도 쏠쏠했다. 그의 가슴은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가득했다.그러나 거래하던 대기업 부도 여파로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고, 회사를 살리고자 모든 노력에도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이 부도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한번 무너진 김씨의 삶은 10여년이 지나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대기업 부도-외환위기-글로벌 금융위기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꿈과 희망요? 나도 한때는 꿈과 희망을 가졌었죠. 꿈과 희망이 있어 모든 게 힘들지 않았거든요. 이제는 꿈과 희망이 나에게는 사치입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나의 모든 것이 된지 오래입니다.”김씨는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10년이 지나도록 삶은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큰 꿈을 품고 사업전선으로김씨는 80년대 초 “공부보다 돈 버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다니던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곧바로 서울시 봉천동에 있는 의류회사에 취업했다. 논노 등 브랜드 제품을 하도급 받아 의류를 제조하고 유통하는 회사였다. 보조생활을 시작으로 디자인, 제단, 재봉 등 의류제작 기술을 배웠다. 이곳에서 배운 기술과 인연은 앞으로 설립할 회사의 기반이 됐다.회사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중단한 학업을 마치고 싶어 대입검정고시 공부를 시작, 학원에 등록한지 8개월만에 합격했다. 김씨는 이때부터 자신이 회사를 운영하고 싶었다. 차근히 준비한 끝에 1989년 직원 4명으로 회사를 설립했다. 그동안 다니던 회사에서 논노 등 브랜드 물량을 넘겨받아 일감은 충분했다. 성실히 일한 점을 인정받아 물량은 점차 늘어났다.1990년경 김씨 수입이 월 300만원을 넘었다. 20대 중반을 갓 넘긴 총각으로는 썩 괜찮은 벌이였다. 23평 빌라도 구입했다. “눈에 띄게 회사가 성장하자 꿈도 커졌죠. 대기업들처럼 그룹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하나 하나 준비하자고 다짐했죠.”부도로 아내도 돈벌이 나서김씨의 희망은 얼마가지 않아 위기에 직면했다. 잘나가던 회사가 1992년 논노 부도와 1993년부터 실시된 금융실명제로 인해 휘청거리기 시작한 것.논노가 부도나자 논노와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어음 8800만원이 휴지조각이 됐다. 논노 채권단에 들어가 조금이라도 건져보려 했으나 액수가 적다는 이유로 채권단에 끼지도 못했다.다음해 실시된 금융실명제는 자금사정을 악화시켰다. 금융실명제가 실시되자 사채금리는 올라가고, 진성어음 이외는 어음할인이 불가능 했다. 당시 의류업계 결제 수단은 대부분 어음이었다. 어음을 받은 하청업체는 할인을 해 운전자금으로 활용했다.어음할인이 불가능해지자 할인율은 상상을 초월했다. 보통 할인율이 연 25%였다. 급전인 경우에는 연 50~70%까지 받았다. 자금 여유가 없는 소규모 업체들은 대부분 높은 할인율을 감당하면서 어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소규모 업체들의 연쇄 부도로 이어졌고 김씨 또한 대금으로 받은 어음을 포함 3억원 가량의 부도를 맞았다.그런데도 김씨는 자재값, 인건비 등을 해결해야 했기에 집을 팔고, 방 1개 있는 전세 800만원짜리 집으로 이사를 했다. 가지고 있던 모든 통장을 털었지만 갚아야 할 액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채권자들과 합의해 빚을 청산하고, 회사 문을 닫았다. 이때부터 아내도 돈벌이에 나섰다.“결혼한지 2년만에 회사를 부도 내고 집까지 팔았으니 정말 미안했습니다. 이사한 집이 차고를 개조한 것이어서 환경이 좋지 않아 아이를 처가로 보냈어요. 너무 힘들어 여러 차례 한강에 갔지만 아내와 아이가 떠올라 다시 돌아왔죠.”지금도 그는 아내와 갓 태어난 딸 다정이를 볼 때면 가슴이 찢어진다.IMF에 부서진 꿈모든 것을 잃은 그는 하루도 쉴 수 없었다. 여기저기 일자리를 알아보던 그에게 건설업을 하던 선배는 인테리어업을 권했다. 당시만 해도 건설업이 활황이었기 탓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전혀 모르는 분야였지만 아내와 아이를 생각하면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건설·인테리어 점포를 내고 개인사업자로 나섰다. 건축 붐으로 일거리는 많았다. 집도 구하고 다정이도 데려와야 했기에 하루도 쉬지 않았다. 절망에서 빠져 나오는 듯 했다.1997년 외환위기는 또다시 그를 낭떠러지로 내몰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로 대대적인 기업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대기업이 공중분해 됐다. 건설회사들도 무너지고 건설 붐은 한파를 맞았다.하청을 준 기업이 부도를 내거나, 모텔 상가 주택 등 공사를 하고도 대금을 받지 못한 액수가 2억원이 넘는다. 외환위기로 미수금을 받지 못한 것이다.“당시에는 큰 기업 하청업체들은 계약서 작성하자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어요. 대부분 하청은 계약서 없이 공사를 진행했죠. 특히 공사대금을 보통 70~80%만 결제해줘 공사하다보면 수천만원씩 미수금을 가지고 있었어요.”건설·인테리어업으로 전환한 지 1년만에 두 번째 부도를 맞은 것이다. “더럽게 운도 따르지 않았다”며 김씨는 담배를 물었다.이제는 꿈도 희망도 없다두 번째 사업을 접 2009-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