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색 지붕의 아담한 집이다. 넓은 흙 마당가로 농기구들이 꼼꼼하게 정리된 걸 보니 주인의 평소 성격이 엿보인다. 남편 이연호(33)씨와 부인 박정애(30)씨가 바로 이 집의 주인. 이연호씨는 동네에서 가장 젊은 농사꾼이다. 요즘 모내기를 앞두고 동네 논갈이에 아주 바쁘단다. 다행히 점심 먹기 전 집에 잠깐 들렀다. “뭐가 그리 신기해서 신문에 싣는다는 거예요?” 무뚝뚝한 그의 말 한마디에 할 말은 못하고 몇 개월 전의 일이 생각났다.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우연히 한 아기 엄마를 만났다. 몸집도 작고 애띤 얼굴이었다. 돌 정도 지난 아기를 데리고 매주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다. 월곶 어디에서 남편과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렇게 많이 이야기를 해 볼 기회는 없었지만 그녀의 야무지고 성실한 모습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그녀가 바로 박정애씨였다. 기회가 된다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것은 아마 ‘농촌에서는 살기 쉬워도 농사를 짓고 살기는 힘들다’고 하는 진리(?)를 깨는 장본인이었기에...
박정애씨가 남편 이연호씨를 만난 건 1999년 이 곳 김포다. 남편 이씨는 형님과 어머님이 사시는 고향(월곶면 갈산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박씨는 연고도 없는 김포에서 농민회 간사로 일하면서 농민회 회원인 이씨를 만나 사랑이 싹텄다고 한다. 박씨는 “처음부터 내가 무슨 농사꾼이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농사도 삶의 한 방식이잖아요. 결혼할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으니까 저는 농사꾼의 아내이자 농사꾼이 된 거죠.”라며 당연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이 가족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이씨는 동네에서 가장 젊은 농사꾼이라 집에 있는 트랙터나 이앙기 콤바인으로 동네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한다. 대부분 남의 논밭을 빌려서 가계 수입의 근간이 되는 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이씨네 집 뒤 작은 텃밭은 식구들 먹을 여러 가지 채소를 기른다. 결혼하기 전까지 한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아직도 모든 게 서툴다는 부인 박씨는 파종부터 순지르기 수확까지 책만 보고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동네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작년 이 맘 때 돌아가셨어요. 1년 여 동안 아픈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그 때는 참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워요. 농촌에 사는 게 농사짓는 것 말고 할 게 많잖아요. 당장 장 담그는 일부터...” 꼭 고추장, 된장 담그는 일은 직접 해 볼 거라고 한다.
며칠 전, 밭에 고추를 심었다고 한다. 대게 판로 계획이 세워져야 그 해 농사 계획이 이루어지는데 올해는 무작정 고추를 심었다고 한다. 수매가 안되면 직거래를 해서 물고추로든 고추가루로든 직접 팔 계획이다. 이같은 무계획에는 작년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군부대에 납부할 계획으로 무와 감자를 심었다가 가져가지 않아 몽땅 갈아엎었다고 한다. “정말 속상했어요. 농사가 정말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죠. 하루 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더군요.”
박정애씨는 바쁜 농사일이 아니면 어김없이 한 주에 한번은 김포 도서관으로 그림책 모임에 나간다. 그녀에게 그림책 공부는 농사짓는 것 말고 또 다른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석형이(3세)는 물론 남편에게도 그림책을 읽어 준다고 한다. 한글이나 숫자 등 조기교육을 강조하는 요즘 분위기에 그림책은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다. “석형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함께 어울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에게 진짜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알았어요.” 하지만 석형이에게 늘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다름 아닌 살고 있는 동네에 또래 아이들이나 형, 누나들이 없어 늘 혼자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내년엔 꼭 석형이에게 동생을 만들어 줄 계획이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이씨 부부는 이 곳에 살면서 앞으로 할 일이 많다. 환경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사실 올 해 유정란을 생산할 수 있는 닭을 키우고 싶었는데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 시도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기농법을 이용한 작물 재배도 관심이 있지만 몇 년 더 농사 경험을 쌓고 공부해서 그들에게 맞는 작물을 찾고 싶다고 했다. 농사꾼으로 바라는 희망을 물으니 박씨는 “농사를 짓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문화적인 혜택도 골고루 받고 농산물 가격으로 농민들이 고민하지 않는 세상이면 더 바랄게 없겠죠.”라며 석형이를 업고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와 주었다. 집 뒤 텃밭에 직접 심은 수박과 참외가 익을 무렵 꼭 놀러 오라는 말을 하며...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고 살아가는 젊은 농촌지기, 이들의 용기 있는 모습과 정직한 땅을 일구며 소박하게 사는 그 가족의 착한 눈빛이 두고 두고 생각날 것 같다.
최선미 리포터 mongsil0406@hanmail.net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공부하는 모임에서 우연히 한 아기 엄마를 만났다. 몸집도 작고 애띤 얼굴이었다. 돌 정도 지난 아기를 데리고 매주 1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온다고 했다. 월곶 어디에서 남편과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렇게 많이 이야기를 해 볼 기회는 없었지만 그녀의 야무지고 성실한 모습이 강하게 인상에 남았다. 그녀가 바로 박정애씨였다. 기회가 된다면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 생겼다. 그것은 아마 ‘농촌에서는 살기 쉬워도 농사를 짓고 살기는 힘들다’고 하는 진리(?)를 깨는 장본인이었기에...
박정애씨가 남편 이연호씨를 만난 건 1999년 이 곳 김포다. 남편 이씨는 형님과 어머님이 사시는 고향(월곶면 갈산리)에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박씨는 연고도 없는 김포에서 농민회 간사로 일하면서 농민회 회원인 이씨를 만나 사랑이 싹텄다고 한다. 박씨는 “처음부터 내가 무슨 농사꾼이 되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농사도 삶의 한 방식이잖아요. 결혼할 사람이 농사를 짓고 있으니까 저는 농사꾼의 아내이자 농사꾼이 된 거죠.”라며 당연한 선택이었음을 강조했다.
이 가족의 하루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이씨는 동네에서 가장 젊은 농사꾼이라 집에 있는 트랙터나 이앙기 콤바인으로 동네 일을 도맡아 하다시피 한다. 대부분 남의 논밭을 빌려서 가계 수입의 근간이 되는 벼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이씨네 집 뒤 작은 텃밭은 식구들 먹을 여러 가지 채소를 기른다. 결혼하기 전까지 한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아직도 모든 게 서툴다는 부인 박씨는 파종부터 순지르기 수확까지 책만 보고서 할 수 없는 것들을 동네 어르신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시어머니가 작년 이 맘 때 돌아가셨어요. 1년 여 동안 아픈 시어머니를 모시면서 그 때는 참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워요. 농촌에 사는 게 농사짓는 것 말고 할 게 많잖아요. 당장 장 담그는 일부터...” 꼭 고추장, 된장 담그는 일은 직접 해 볼 거라고 한다.
며칠 전, 밭에 고추를 심었다고 한다. 대게 판로 계획이 세워져야 그 해 농사 계획이 이루어지는데 올해는 무작정 고추를 심었다고 한다. 수매가 안되면 직거래를 해서 물고추로든 고추가루로든 직접 팔 계획이다. 이같은 무계획에는 작년 쓰라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군부대에 납부할 계획으로 무와 감자를 심었다가 가져가지 않아 몽땅 갈아엎었다고 한다. “정말 속상했어요. 농사가 정말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실감했죠. 하루 아침에 빚더미에 올라앉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더군요.”
박정애씨는 바쁜 농사일이 아니면 어김없이 한 주에 한번은 김포 도서관으로 그림책 모임에 나간다. 그녀에게 그림책 공부는 농사짓는 것 말고 또 다른 즐거움이자 기쁨이다. 석형이(3세)는 물론 남편에게도 그림책을 읽어 준다고 한다. 한글이나 숫자 등 조기교육을 강조하는 요즘 분위기에 그림책은 그녀에게 유일한 위안이다. “석형이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함께 어울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아이에게 진짜 무엇을 주어야 하는지 알았어요.” 하지만 석형이에게 늘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한다. 다름 아닌 살고 있는 동네에 또래 아이들이나 형, 누나들이 없어 늘 혼자라는 게 마음에 걸린다. 내년엔 꼭 석형이에게 동생을 만들어 줄 계획이라며 쑥스럽게 웃는다.
이씨 부부는 이 곳에 살면서 앞으로 할 일이 많다. 환경 농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사실 올 해 유정란을 생산할 수 있는 닭을 키우고 싶었는데 초기 자본이 많이 들어가 시도하지 못했다고 한다. 유기농법을 이용한 작물 재배도 관심이 있지만 몇 년 더 농사 경험을 쌓고 공부해서 그들에게 맞는 작물을 찾고 싶다고 했다. 농사꾼으로 바라는 희망을 물으니 박씨는 “농사를 짓더라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면 좋겠어요. 문화적인 혜택도 골고루 받고 농산물 가격으로 농민들이 고민하지 않는 세상이면 더 바랄게 없겠죠.”라며 석형이를 업고 마을 어귀까지 따라 나와 주었다. 집 뒤 텃밭에 직접 심은 수박과 참외가 익을 무렵 꼭 놀러 오라는 말을 하며...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고 살아가는 젊은 농촌지기, 이들의 용기 있는 모습과 정직한 땅을 일구며 소박하게 사는 그 가족의 착한 눈빛이 두고 두고 생각날 것 같다.
최선미 리포터 mongsil040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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