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은 ‘어린이들만을 위한 책’이 더 이상 아니다. 단순해 보이는 글과 그림은 장문의 글보다 오히려 많은 것을 함축할 수 있어 누구나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다. 자신만의 그림책은 또 어떤 재미가 있을까. 주엽어린이도서관에서 열린 그림책 강좌가 최근 화제다.
주엽어린이도서관은 내 인생을 돌아보고 이를 한 권의 그림책으로 만들어보는 인생 그림책 창작 프로젝트 <고맙습니다, 내 인생>을 진행 중이다. 60세 이상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프로그램은 그림책이 단지 어린이들을 위한 것일 거라는 선입견을 과감히 탈피했다. 한번쯤은 자신의 인생을 어떠한 방법으로든 남겨보고 싶은 어르신들. 그 소망을 조금 더 편하고 쉽게 이뤄드리기 위한 방법으로 자신만의 인생 그림책을 만들어보는 시간으로 기획됐다. 김중석 작가, 이갑규 작가, 최덕규 작가(그림책 작가)가 매주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각 요일별로 진행하고 있다. 남미경(글 작가) 작가도 특강을 진행했다. 주엽어린이도서관 전미란 팀장은 “한 반 당 10명씩 모집할 계획이었지만 정원을 초과할 정도로 호응이 좋았다. 현재 최고령자인 90세 어르신도 있을 만큼 어르신들의 열정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리포터가 찾은 최덕규 작가의 목요일 강좌.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작가가 추천하는 오늘의 그림책이 ‘재밌다’며 경청하는 모습이 신선하다. 작가는 그림책 두 권의 글과 그림을 비교해가며 어떠한 그림이 쉽게 다가오는지, 그림책의 글과 그림이 어떠한 기능을 해야 하는지. 표현의 기법 등에 대해 쉽게 설명한다. 최덕규 작가는 “60세 이상의 어르신들과 공감할 수 있는 그림책을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일상을 되짚어보는 시간이다”며 “나와 가족, 친구 그리고 타인으로 확장되고 타인의 모습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글과 그림으로 표현해보며 그림책이라는 형식으로 완결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수업이다”고 소개했다.
오늘의 주요 활동은 스토리가 담긴 사물 그리기다. 미니 항아리, 시계, 사진 등 각자의 추억과 감정이 깃든 물건들을 그려보는 손길들. 김영주씨는 “우리 나이대가 되면 예전과 달리 열정이라는 게 많이 사라지기도 하고, 가족 혹은 주변 환경의 결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의되기도 하죠. 하지만 이 시간은 그런 것을 배제하고 오롯이 나를 들여다보게 돼요”라며 “수업에 참여하면서 순간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발견을 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나의 인생이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서투르고 어색하지만 한 장 한 장 스케치북에 채워지는 어르신들의 글과 그림들이 엮어 탄생할 그림책이 벌써 기대된다.
주엽어린이도서관은 이번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될 인생 그림책들을 17개 고양시립도서관에 등록해 많은 이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최덕규 작가
“그림책은 보편적 공감대 형성할 있어”
그림책이 가지는 글과 그림의 단순한 형식으로 인해 아이들에게 쉽게 읽혀질 수 있지만 그림책이야말로 삶을 함축하며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해낼 수 있어 연령의 구분이 없다고 봅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과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이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듯 같은 점도 많더라고요. 글과 그림이 조화롭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완성도 높은 작품에는 모든 연령이 좋아합니다. 다만 아이들의 관심사와 어르신들의 주된 관심사가 달라 소재에서 오는 호불호가 있을 뿐입니다. 수업 종료 후에도 그림책을 찾아보며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수업을 들으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임으로 이어졌으면 더 좋겠지요.
김정희씨(대화동)
“ 그림책이 이렇게 재밌는 줄 그간 왜 몰랐을까요”
“호수공원 꽃 전시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강좌 포스터를 보게 됐죠. 마음이 끌려 무작정 신청했어요. 강의에 참여하고 나니 그림책의 세계를 새롭게 알게 됐죠. 이렇게 재밌는 그림책들이 많을 줄 몰랐어요. 지금은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일부러 빌려다가 6개월밖에 안된 손녀에게 읽어주는 재미에 푹 빠져있어요. 그림을 잘 그리진 못하지만 내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시간도 함께 주지요”
최창묵씨(화정동)
“잊었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 돌아보는 시간…참으로 귀중한 경험!”
“무엇보다 자성의 시간을 갖게 돼 참으로 귀중한 경험이라고 봅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물건 하나에도 관심이 가고 그 속에서 지난 나를 발견하게 됐죠. 불과 몇 달 전에 적어 두었던 수첩 하나에서도 잃어버렸던 나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그로 인해 내 안에 메말랐던 부분이 촉촉한 기운으로 채워지는 기분이랄까. 어떤 그림책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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