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이름으로’
김순용(38세·화정동)씨가 미용계에 입문한지는 16년. 이제는 토탈뷰티 전문가로, 네일아티스트와 헤어아티스트 강사로 업계에서 그녀의 이름은 꽤 알려진 편이다. 얼마 전에는 네일코디 아카데미를 설립, 활동범위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김씨는 지금도 처음 미용학원 문을 두드리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한다. “제가 다니던 미용학원은 종로구에 있는 역사가 깊은 학원이었죠. 그 시절에는 미용 학원생 중 나이가 제일 어렸는데 선생님께서 용기를 참 많이 주셨습니다. 정말 제가 배우던 시절에는 수건 빨래도 손으로 해야하는 시절이었고 교육 환경도 미약하여 혼자 나름대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일을 배울 때는 무서운 것 없이 도전하다보니 지금의 나를 가능케 한 것 같아요. 각종 미용대회에서 받은 상에서 얻은 자신감과 나의 솜씨를 100%보여 주었을 때 손님이 200% 칭찬해 주는 그 힘은 ‘정말 내가 해냈구나’하는 성취감을 듬뿍 안겨주고 힘든 하루 일을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김씨는 자신의 직업을 무척 사랑한다. 특히 10년 전부터 학원강사를 병행하면서 ‘가르치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그녀는 결혼 직후 4년간 미용 일을 그만둘 당시 임신과 출산 육아의 어려운 시기에도 강사 일은 한번도 놓지 않았을 만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기술의 세계에는 나이가 없다
김씨는 지금껏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첫 기회를 마련해준 자신의 미용학원 선생님처럼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선사하고 싶어한다. 지금은 미용학원 외에 5년 전부터 한신코아 문화센터 네일아트반, 그랜드 백화점 문화센터 네일아트반, 엘리트 문화센터, 무궁화 문화센터, 세이브존 백화점 문화센터 Top Hair Style 전임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녀가 주부들을 많이 만나는 문화센터 강의시간에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기술의 세계는 나이가 없다는 것. 기술하나만 있으면 언제 닥칠지 모를 위기의 순간을 자신 있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IMF 당시 남편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가정경제가 휘청했지만 당시 제가 가진 미용기술로 모든 어려움을 단순에 극복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큰 힘이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이지요. 그 이후 전 주부들에게 기술하나는 꼭 익혀두라고 말한답니다. 그러나 창업을 하고 난 후에는 돈 욕심보다는 일 욕심을 내라고 하지요. 미용분야는 특히 고집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네일아티스트라는 새로운 분야를 보급하며 그녀의 가르침을 통해 창업한 제자들도 꽤 되는데 소규모로 창업이 가능한 아이템이라 주부들의 도전이 꾸준한 분야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네일아티스트 분야만큼은 휠체어 장애인이 교육받을 수 있는 혜택을 마련하고 싶다는 김씨.
그러나 가정에서는 직장인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일요일까지도 수강생들을 위해 기꺼이 교육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기만 하다. 지금도 엄마가 많이 놀아줬으면 하는 막내딸 때문에 늘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다행이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이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어 많은 안심이 되고 있다.
일을 갖고 있어 아이와 가정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김씨. 앞으로도 주부로서 전문가의 길을 걸으며 10%의 손재주, 90%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을 위해 그녀의 열정의 강의는 계속 될 것이다.
전미정 리포터 flnari@naeil.com
김순용(38세·화정동)씨가 미용계에 입문한지는 16년. 이제는 토탈뷰티 전문가로, 네일아티스트와 헤어아티스트 강사로 업계에서 그녀의 이름은 꽤 알려진 편이다. 얼마 전에는 네일코디 아카데미를 설립, 활동범위를 더욱 넓혀가고 있다.
김씨는 지금도 처음 미용학원 문을 두드리던 그 시절을 떠올리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한다. “제가 다니던 미용학원은 종로구에 있는 역사가 깊은 학원이었죠. 그 시절에는 미용 학원생 중 나이가 제일 어렸는데 선생님께서 용기를 참 많이 주셨습니다. 정말 제가 배우던 시절에는 수건 빨래도 손으로 해야하는 시절이었고 교육 환경도 미약하여 혼자 나름대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일을 배울 때는 무서운 것 없이 도전하다보니 지금의 나를 가능케 한 것 같아요. 각종 미용대회에서 받은 상에서 얻은 자신감과 나의 솜씨를 100%보여 주었을 때 손님이 200% 칭찬해 주는 그 힘은 ‘정말 내가 해냈구나’하는 성취감을 듬뿍 안겨주고 힘든 하루 일을 기쁘게 마무리할 수 있었지요.”
김씨는 자신의 직업을 무척 사랑한다. 특히 10년 전부터 학원강사를 병행하면서 ‘가르치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을 발견하고부터는 더욱 그러하다. 그녀는 결혼 직후 4년간 미용 일을 그만둘 당시 임신과 출산 육아의 어려운 시기에도 강사 일은 한번도 놓지 않았을 만큼 가르치는 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기술의 세계에는 나이가 없다
김씨는 지금껏 즐겁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첫 기회를 마련해준 자신의 미용학원 선생님처럼 후배들에게 많은 기회를 선사하고 싶어한다. 지금은 미용학원 외에 5년 전부터 한신코아 문화센터 네일아트반, 그랜드 백화점 문화센터 네일아트반, 엘리트 문화센터, 무궁화 문화센터, 세이브존 백화점 문화센터 Top Hair Style 전임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그녀가 주부들을 많이 만나는 문화센터 강의시간에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기술의 세계는 나이가 없다는 것. 기술하나만 있으면 언제 닥칠지 모를 위기의 순간을 자신 있게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IMF 당시 남편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가정경제가 휘청했지만 당시 제가 가진 미용기술로 모든 어려움을 단순에 극복 할 수 있었어요. 사실 저 자신도 그렇게 큰 힘이 될 줄은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이지요. 그 이후 전 주부들에게 기술하나는 꼭 익혀두라고 말한답니다. 그러나 창업을 하고 난 후에는 돈 욕심보다는 일 욕심을 내라고 하지요. 미용분야는 특히 고집과 인내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네일아티스트라는 새로운 분야를 보급하며 그녀의 가르침을 통해 창업한 제자들도 꽤 되는데 소규모로 창업이 가능한 아이템이라 주부들의 도전이 꾸준한 분야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네일아티스트 분야만큼은 휠체어 장애인이 교육받을 수 있는 혜택을 마련하고 싶다는 김씨.
그러나 가정에서는 직장인들에게도 기회를 주기 위해 일요일까지도 수강생들을 위해 기꺼이 교육시간을 할애하는 바람에 남편과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기만 하다. 지금도 엄마가 많이 놀아줬으면 하는 막내딸 때문에 늘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다행이 초등학교 5학년인 큰딸이 일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어 많은 안심이 되고 있다.
일을 갖고 있어 아이와 가정을 더 사랑하게 된다는 김씨. 앞으로도 주부로서 전문가의 길을 걸으며 10%의 손재주, 90%의 노력을 아끼지 않는 이들을 위해 그녀의 열정의 강의는 계속 될 것이다.
전미정 리포터 flnari@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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