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갑내기 부부인 이영호·김경화 부부의 전직은 그래픽 디자이너다. 광고회사를 다니던 두 사람은 1998년 IMF를 겪으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을 하게 됐다. 처음엔 불안했지만 하나 둘 일을 맡으면서 인정을 받게 됐고 차츰 일도 많아져 나중엔 대기업의 오더까지 받을 정도로 바빠졌다. 하지만 일이 바빠질수록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고 도심의 생활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럴수록 ‘자연 속에서의 여유로운 삶’을 동경했다는 부부는 2003년 지금의 풍동 민마루 주택에 터를 잡았다. 그리고 그들의 직업도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천연비누 공방지기로 바뀌었다.
자연 속의 삶을 찾아 ‘민마루’에 터를 잡다
“결혼 후 서울 필동에서 살다가 일산 백석동의 오피스텔에 살았는데 큰 아이를 임신하게 됐어요. 그때 오피스텔 원룸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애견(골든 리트리버)과 함께 이곳에서 어떻게 살지 하는 생각이 들었죠.”
창의적인 끼가 많았던 부부는 늘 도심의 빡빡한 생활보다 자유롭고 여유로운 전원생활을 꿈꾸어왔지만 당장 아이를 위해 오피스텔은 적합하지 않았다. “당시 매년 MBC건축박람회의 디렉토리 북과 홍보물 제작을 맡고 있었는데 그때 우연히 풍동의 민마루 단지 지주를 만나게 됐어요. 그래서 오피스텔 한 채 값으로는 턱도 없었지만 덜컥 일을 저질렀죠. 건축박람회 일을 하면서 건축과 관련된 일을 자주 접해서 그런지 집 짓는 일이 별로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겁이 없었죠(웃음).”
아내 김경화씨의 말에 남편인 이영호씨도 “우리가 사는 건 이렇게 해야겠다 하고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아니에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왔죠. 2000년에 우연히 땅은 샀지만 집 지을 엄두도 못 내던 때 이웃의 건축가님이 젊은 부부가 이곳을 왔다 갔다 하니까 궁금하셨나 봐요. 꽤 이름이 알려진 분이셨는데 저희 부부가 작업실이 있으면 좋겠고 아이와 애견이 놀 수 있는 집을 짓고 싶다고 하니까 평소 하고 싶었던 작업이라고 하시면서 흔쾌히 집을 설계해주셨어요. 참 인연이고 감사한 일이지요”라고 한다. 2003년 민마루 주택 입성기는 그렇게 우연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래픽 디자이너에서 천연비누 공방 대표로~
턱없이 부족했던 건축비에 압박을 받긴 했지만 자연에서의 생활은 도심생활과는 사뭇 달랐다. 아이가 태어나고 애견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부부는 2면이 유리창으로 둘러싸인 전망 좋은 작업실을 얻었다.
“프리랜서 디자인 일이란 것이 있을 땐 밤새는 일이 많지만 공백기도 있어요. 둘 다 만들고 배우는 것을 좋아해 공백 기간 동안 목공도 배우고 북아트, 천연비누 등을 찾아다니며 체험활동을 많이 했죠.” 목공을 즐기게 된 남편은 유아용 탁자를 사러 다니다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빠표 탁자를 만들었고 지금 ‘솝꼽’에 있는 작업대며 테이블도 직접 다 만들었다. 또 하나, 부부가 흥미를 느꼈던 것은 ‘천연비누’.
“당시에는 ‘천연’이란 단어도 생소하던 때였어요. 그런데 저희는 수입 천연화장품 패키지 작업을 많이 해서 좀 일찍 ‘천연제품’에 관심을 갖게 됐고 배울수록 재미있고 흥미로웠어요. 직접 써보니 내 몸과 피부가 좋아지는 걸 느꼈고 그래서 지인들에게 만들어 선물로 주기도 했지요.” 선물을 받은 사람들이 좋다는 것을 느끼자 하나 둘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하게 됐고 지인에서 지인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주문이 많아졌다.
“나중엔 디자인 작업보다 비누 만드는 일이 더 바빠졌어요. 둘 다 일 욕심이 있어 무엇을 하든 소홀한 건 못 견디는 성격이라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한 끝에 ‘천연비누’를 선택했죠. 디자인은 때로 우리의 아이디어보다 광고주의 요구를 많이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천연비누는 온전히 ‘우리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Fun보다 Joy, 조금 불편하지만 심플 라이프가 좋아~
2005년 천연비누 공방 ‘솝꼽’은 그렇게 탄생했다. 비누의 ‘솝’과 ‘눈곱’의 기름기라는 의미를 지닌 ‘꼽’의 합성어인 ‘솝꼽’은 소꿉놀이 하듯 사는 부부의 모습이기도 하다. ‘솝꼽’은 먹기도 아까울 정도로 품질 좋은 100% 천연오일을 사용해 계면활성제나 기타 화학첨가제 없이 만드는 건강한 비누를 지향한다. 무엇보다 ‘솝꼽’의 천연비누의 매력은 ‘일관성’이다. “수제이기 때문에 모양이나 색상이 똑같을 순 없지만 만들 때마다 효과는 똑같아야지요. 솝꼽에서는 많은 종류의 비누를 만들지 않는 대신 품질과 효능만큼은 일관성 있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또 하나, 솝꼽의 생 비누는 4주간의 숙성기간을 기다려야하는 슬로우 비누다. 하지만 그런 기다림의 불편함조차 기꺼이 감수하는 ‘솝꼽’의 마니아는 많다. 직접 써보면 ‘솝꼽’의 천연비누가 피부를 자연 그대로의 상태로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들기부터 포장까지 모두 둘이 직접 하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절대 못해요. 주문이 밀릴 때면 미처 숙성을 못하고 발송해드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때는 반드시 포장에 적힌 날짜까지 숙성시켜야 한다고 말씀드리죠. 처음엔 받고도 바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이해 못하던 분들이 나중엔 솝꼽의 단골이 되는 일이 더 많아요.”
비가 오면 땅이 걸쭉하고 미끄러운 마루턱같이 된다고 해서 ‘민마루’란 이름이 붙을 정도로 흙투성이 땅에 집 한 채 없던 민마루에 집을 짓고 산 지 13년 째, 감수해야 할 불편함은 있지만 부부는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한다. “요즘 전원주택을 꿈꾸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저희 집이나 사는 모습을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게 여유롭지도 않고 마냥 우아한 것만은 아니에요. 작업실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보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즐거움은 있지만 우리도 치열하게 삽니다(웃음). 하지만 우리 가족은 편리함이 주는 재미보다 불편하지만 그 속에서 진정한 즐거움을 느끼는 자연 속의 여유를 좋아하고 만족하죠. Fun보다 Joy, 그런 면에서 우리 부부는 뜻이 잘 맞는 것 같아요.” 부부는 앞으로 이전에 서울 필동에서 살 때 동네의 작은 슈퍼나 세탁소 등 오래된 가게를 단골 삼았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살던 ‘마을문화’를 ‘솝꼽’을 통해 만들어나가고 싶다고 한다. 솝꼽의 천연비누는 ‘고도원의 아침편지’가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 ‘꽃피는 아침마을(http://www.cconmausa.com)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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