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② 플로리스트 되기-경력단절 딛고 플로리스트로 변신한 박현숙(50)씨
“꽃을 만질 때 가장 행복해서 플로리스트의 길 선택했죠”
튀는 자소서 보단, 진정성 있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
중산동 소개울 마을 ‘헬렌스 가든’은 플로리스트 박현숙씨의 꽃 공방이다. 주로 박현숙씨의 꽃 작업과 레슨이 이뤄지는 이 공간은 세 면이 통 유리창에 갤러리처럼 여유로운 배치가 인상적이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더 아늑해지는 꽃 공방에서 박현숙씨는 두 번째의 인생을 만끽하고 있었다. 세 아이의 엄마에서 플로리스트로 변신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가족만 바라보다 늙어 버리지 않을까
“제 생활이나 결혼에 큰 불만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내가 이렇게 아이만 키우고 남편만 바라보다 늙어버리지 않을까, 엄마와 아내 역할이 아닌 또 다른 저의 자아를 발견하고 싶었어요.”
30대 초중반 무렵 박현숙씨를 따라다닌 의문은 ‘자아의 발견’이었다. 맞벌이가 흔하지 않던 시절, 아이 셋을 낳고 키우며 전문직 커리어를 포기하고 가족에게 맞춰 살던 그에게 필연처럼 다가온 질문이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했지만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직장생활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꽃이었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하면서 배웠던 ‘동양 꽃꽂이’에 다시 도전해 3년의 공부 끝에 사범 자격증을 땄다. 다시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유러피안 꽃꽂이’를 배웠다. 꽃에 관한 새로운 분야가 있다면 찾아가 공부하기를 거듭했다. 꽃과 함께 하는 사이에 박현숙씨는 플로리스트가 되어 있었고 꽃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자리에 서 있었다. 모두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다 생긴 일이었다.
꽃을 나누는 작업 공간 열다
많은 꽃 분야에서도 박현숙씨의 마음을 당긴 건 ‘프렌치’ 스타일이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정원에서 막 꺾어 꽂아 놓은 것 같은 자유분방한 느낌. 규격에 맞추지 않았는데도 멋스럽고 편안한 분위기에 마음이 끌렸다.
또 드라이플라워보다는 생화를 선호한다. 작은 꽃송이 하나에 수술이 있고 빛깔의 자연스러운 번짐을 보면 아름다워서 꽃이 주는 살아있는 느낌을 즐기는 순간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헬렌스 가든은 시작부터 꽃을 팔기 위한 공간이 아닌 꽃 다루는 법을 가르치는 곳으로 출발했다. 취미반부터 플로리스트 자격반, 태교반 수업을 하고 있다. 꽃바구니나 부케, 꽃다발 예약은 받지만 즉석에서 생화를 판매하지는 않는다. ‘나를 위한 작업 공간’으로 콘셉트를 잡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박현숙씨는 “공간을 열 때 로드숍으로 갈지 클래스 위주로 할 지 콘셉트를 잡아야 해요. 로드숍 창업 스킬은 6개월이면 배울 수 있지만 클래스를 한다면 더 투자를 해야 하거든요. 돈벌이를 위해 창업을 한다 해도 가장 기본은 꽃을 만지는 게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꽃은 우아한 일? 알고 보면 힘 필요해
“저희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꽃 만지는 일은) 겉으로 보면 우아해 보이지만 힘들다고요. 제가 해보니 정말이에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신선한 꽃을 사러 새벽시장에 가야 하는데 힘 쓸 일이 많죠.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우선은 건강해야 돼요.”
남들은 여자가하기 참 좋은 일이라고 말하지만 꽃 작업은 보기와 달리 감당해야 될 부분이 많았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가장 도움이 되는 건 ‘내가 꽃을 좋아한다. 꽃과 함께 하고 싶다’는 처음의 마음이었다.
“상황이 어렵더라도 꽃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해요. 꽃으로 돈을 벌어야지 생각하면 한계에 부딪히죠. 하고 싶은 분야는 꽃인데 돈 때문에 다른 걸 하면 만족스럽지 않겠죠.”
박현숙씨는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꽃시장에 간다. 좋은 꽃은 누구 눈에도 빨리 띄는 법. 신선한 꽃을 사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하기 때문이다.
꽃을 만진 지 15년. “아직도 새벽시장에 가는 일이 좋고 오늘은 어떤 꽃을 만날까 설렌다”는 그는 어쩔 수 없는 꽃의 사람인가 보다.
꿈을 향하는 용기가 주부의 변신 가능케 해
박현숙씨는 6년 전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헬렌스 가든 안에 꽃과 함께 걸려 있는 유화들이 박현숙씨의 작품이다. 단아하고 따스한 느낌이 박씨를 꼭 닮았다. 가슴 뛰게 하는 일에 계속 도전해온 박현숙씨. 그림을 그리고 꽃을 만지면서 그는 또 앞으로의 삶을 꿈꾸고 있다.
“화분에 화초를 키우는 것보다 흙에 심는 게 좋아요. 작더라도 마당이 있는 곳에 편안하게 야생화를 심어 키우면서 꽃으로 사람들이 쉴 수 있고 마음의 치료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는 말이죠.”
꽃을 만지면 마음과 영혼이 풍부해지는 순간의 느낌이 좋고 그것을 나누고 싶은 박현숙씨. 세 아이의 엄마에서 플로리스트로 변신할 수 있었던 건 꿈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용기 덕분이었다.
위치 일산동구 소개울길 35
문의 031-975-0366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주부 독자의 버킷리스트 “남은 삶은 플로리스트로 꽃과 함께 보내고 싶어요”
아이들 낳고 키우다 보니 어느새 40대 중반. 이제 와서 직장에 다시 다닐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냥 쉴 수만은 없는 어정쩡한 나이가 됐어요. 이왕에 다시 일을 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고 싶은데 고민해보니 꽃이 생각나더라고요.
20대에 취미로 꽃꽂이를 오래 했거든요. 플로리스트 자격증을 따서 남은 삶을 꽃과 함께 보내고 싶은 것이 꿈인데 정작 시작하자고 생각하면 현실의 많은 조건이 발목을 잡아요. 늦은 나이에 플로리스트, 할 수 있을까요? ------ 탄현동 최주현 (45)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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