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말은 중세 시대 사형수가 양동이(Bucket) 위에 올라서면 걷어차서(Kick) 교수형을 집행했던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요즘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이나 달성하고 싶은 목표의 목록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마음 속 꼭꼭 적어 둔 주부들의 버킷리스트를 듣고, 이를 먼저 실천한 사람을 만나 노하우를 물었다. 삶이라는 양동이 위에서 하루하루 서성이기만 하다 운명에 차이기 전에 우리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구릿빛 피부에 잘 다듬어진 몸매는 40대라고 믿기 힘들었다. 웃을 때 살짝 보이는 덧니가 동안 매력을 더했다. 헬스 트레이너 김나영(42)씨는 놀랍게도 15살 아들과 10살 딸을 키우는 주부였다. 둘째를 낳고 70kg에 육박한 체중을 빼보려고 찾아간 피트니스 센터에서 웨이트트레이닝에 재미를 느껴 시작한 운동이 그를 이른바 ‘몸짱’의 세계로 이끌었다.
출산 후 다이어트하며 운동 시작
김나영씨가 일하고 있는 풍동 은행마을 1단지 내 ''범휘트니스''에는 그의 운동 전 후 사진이 붙어 있었다. 운동 전 사진은 누가 보아도 평범한 아줌마다. 그러나 운동 후 사진은 운동 좀 하는 ‘센 언니’의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을 상상한 건 아니었다. 2008년 봄에 운동을 시작한 건 그저 다이어트때문이었다.
“모유수유를 하면 다 빠진다는데 둘째를 낳고 돌이 될 때까지 살이 안 빠졌어요. 무릎이랑 허리도 아프고 우울증이 심해졌어요. 애기는 봐야 되고 몸은 무겁고, 안 되겠다 해서 찾아간 게 동네 헬스장이었죠.”
처음에는 웨이트보다 GX 프로그램을 자주 이용하며 에어로빅, 태보 등을 배웠다. 그러다 센터 내에 웨이트 운동 그룹 수업이 생기면서 다섯 명의 주부들이 무료로 그룹 수업을 받게 됐다. 몇 개월 간 꾸준히 운동을 하고 식단을 지키다 보니 살 빠지는 데 속도가 붙었다. 김나영씨를 지켜보던 트레이너가 “잘할 것 같다”며 트레이너을 권했고 본격적으로 웨이트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첫 대회의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아
머슬아카데미라는 트레이너 준비 과정을 수료하고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따면서 트레이너로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눈을 돌린 게 보디빌딩 대회였다.
"트레이너라면 한 번 쯤은 몸을 만들어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합을 준비했어요. 사람마다 복근 모양이 다른데 내가 평생 이 일을 하려면 복근의 모양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나름대로 운동과 식단 조절을 병행하며 정성껏 첫 대회를 준비했다. 하지만 다른 출전자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걸 알았다.
"저 사람들은 저런 몸이 나오네. 나도 한 번 쯤 도전해서 만들어봐야지. 이런 마음이 들었어요. 연예인들이 무대에 서는 것 같은 느낌도 좋았죠. 내 몸이 잘 나오진 않았지만 무대에서의 당당함은 잃지 않으려고 했어요. 첫 대회를 치르고 좌절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고 매년 대회를 준비해왔어요."
주부 트레이너가 시합 1등 되기까지
두 번째 대회에서는 전문가에게 선수 트레이닝을 받았다. 일반식과 유지방까지 배제한 극단의 식단으로 철저하게 준비했다. 대회 무대에서는 몸 근육의 결 하나하나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막바지에는 수분을 끊는 선수들도 있다고.
"독기를 품고 엄격하지 않으면 준비할 수 없는 것이 보디빌딩 대회예요. 저는 젊을 때 시작한 게 아니고 30대 중반에 방향을 정한 거라 좀 더 철저하게 자신을 절제해야 했어요."
그 결과 좋은 결과를 얻기 시작했다. 올해에는 특히 상복이 많았다. 인천보디빌딩대회 우먼피지크 -163cm체급 1위, 파주보디빌딩대회 보디빌딩 부문 -52kg체급 2위에 파주 보디빌딩 대회 우먼피지크 -165cm체급 2위를 차지했다. 광명시 보디빌딩대회에서는 일반부 여자 -52kg체급 1위와 그랑프리전 우승의 영예를 안았다.
꾸준함과의 동행을 모토로
좋아서 시작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주부에게 트레이너라는 직업은 쉽지 않았다. 4시 반에 일어나 출근을 준비하는 삶은 고단했다. 시어머니와 남편이 힘을 보태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여자이고 주부이면서 힘든 운동을 하다 보니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묵묵히 일하며 매년 시합을 준비한다.
"남들에게 저는 자신을 잘 가꿀 줄 아는 사람이라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대회 때면 꼭 따라와서 챙겨주는 딸아이와 아들에게도 멋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엄마인 것이 감사해요."
김나영 씨에게는 소박한 꿈이 있다. 동네 사랑방 같은 피트니스 클럽을 운영하는 것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살을 빼고 싶어도 방법을 몰라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재능기부를 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꾸준함과의 동행''을 인생 슬로건으로 삼고 있다는 김나영 씨. 강하게 자신을 단련시켜온 그이기에 자신의 남은 꿈도 척척 이뤄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문의 010-6812-2759
주부 독자의 버킷리스트 "몸짱 아줌마 돼서 보디빌딩 대회 나가보고 싶어요"
53세의 권영아럽주부는 "나잇살을 빼보려고 찾아간 헬스클럽에서 웨이트 운동의 재미를 느꼈다"며 "죽기 전에 한 번 쯤 몸짱 아줌마가 돼서 대회에도 나가보고 싶은데 트레이너가 어렵다며 말린다"고 호소했다. 김나영 트레이너는 "일반인들이 대회에 나가려면 극단적으로 식단을 제한해야 하니 권하고 싶지는 않지만 목표가 있고 평생에 한 번 해보고 싶다면 도와줄 수 있는 트레이너를 만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긍정적이고 진심으로 대하는 트레이너를 만나 꾸준히 준비하면 가능성이 있다. 요즘은 60대의 여성 보디빌더도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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