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잘 읽지 못하는 어린이가 주로 보는 그림책을 성인이 읽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에는 성인들만을 위한 그림책 전문서점이 문을 열어 그림이 주는 힐링을 느끼는 치유의 공간으로 자리잡고 있다. 양천구 갈산공공도서관 수요문학회에서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민들레는 민들레>의 저자이자 이야기꽃 출판사 김장성 대표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었다.
하산수 리포터 ssha71@gmail.com
그림책은 ‘책’이자 ‘미디어’이다
수요일 오후 7시 반, 양천구 신정동에 있는 갈산공공도서관 4층 배움방에는 둥그렇게 모여 앉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있다.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마다 개최되는 수요문학회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오늘의 초청강사는 <민들레는 민들레>의 저자 김장성씨. 김 작가는 1991년부터 25년간 그림책을 기획하고 편집해 만든 이야기꽃 출판사 대표이기도 하며 10년 전부터는 그림책 창작론을 강의하고 있다.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일과를 마치고 참석한 직장인, 주부 등 문학애호가들이 김 대표의 강연에 귀 기울인다.
1980년대는 사회과학 서적의 활황기였다. 어린이 책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붕괴가 일어난 1990년대 사회과학 서적의 수요 급감으로 인한 출판사들의 대체재였다. 책과 교육을 통해 현실을 깨달았던 386세대들이 자녀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자 어린이를 위한 책을 만들어 보급했다. 역사적으로 어린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중세 농노사회에서 어린이란 미숙한 노동력에 지나지 않았다. 부르주아 계급이 등장하면서 어린이를 위한 책과 옷 등이 생겨나고 소비자로서의 어린이가 대두됐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전자책이 점차 대중화되면서 종이책의 생산량은 점점 줄고 있다. 또한 책 외에 소비할 미디어가 너무 많아졌다. 이러한 추세에도 종이책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림책이다. 고대 벽화나 <오륜언해>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보여주며 말하기를 오래 전부터 실천해 왔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글밥은 전혀 없이 그림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책, 가로로 긴 책, 세로로 긴 책 등 책의 모양과 크기를 달리해 작가가 주는 메시지를 표현하기도 한다.
답이 아닌 질문 던지는 그림책, 독자와 소통하려 노력해야
인생에 대한 사색을 간결한 그림으로 표현한 <기다립니다>는 가로로 긴 책이다. 거울 속에 비친 나를 보며 자의식을 깨닫는 <거울 속에 비친 나>, 엄청 커진 고구마가 우리를 기다릴 거라는 유치원 교사의 말에 기대와 희망을 갖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아주아주 큰 고구마> 등의 그림책은 아이들 뿐 아니라 성인이 읽어도 감명받을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림책 작가로 유명한 Eric Carl과 일본작가 Kazuo Iwamura가 함께 만든 <Where are you going? To see my friend!>는 앞에서 펼쳐보면 영어로 된 이야기가, 뒤쪽에서 펼쳐보면 일본어로 된 이야기가 나오는 이중 언어 책이다. 동서양 문화의 만남을 표현하는 이 책은 결국 가운데에서 이야기가 만나게 된다. 책을 넘기는 방향도 표현의 무대나 감상의 매개가 될 수 있다.
그림책은 미디어로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일방적인 광고 메시지가 아닌 예술작품으로 독자들이 의미를 상상하게끔 가능성을 열어둔다. 김장성 대표가 2005년에 출간한 <민들레는 민들레>는 우연히 도로 중앙분리대 시멘트 사이로 활짝 피어난 민들레꽃을 발견한 작가가 느낀 감상을 그림과 간결한 글로 표현했다. 언제 어디서든 민들레는 민들레인 것처럼 잘났든 못났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나는 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김장성 대표는 “그림책은 예술작품이자 출판 상품”이라며 “독자에게 일방적인 답을 주는 상품이기 이전에 독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예술작품으로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라고 끝을 맺는다.
<참석자 질의응답>
1. “젊은 시절 대학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유치원을 운영했던 사람으로 지금은 창작동화작가로 활동 중입니다. 그런데 제가 창작한 동화를 그림책으로 펴내기가 무척 힘듭니다. 출판사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출간될 책을 선정하나요?
“대다수의 출판사들이 대표의 철학에 부합하는 책이나 대중에게 인기를 모을 만한 책을 선정해 출판하지요. 그러나 책 내용이 주는 신선함이나 기타 다른 이유로 출판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보통 그림책 3,000부를 제작하는데 1천만 원 정도 소요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2. 대표님이 소개해 주시는 그림책을 보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편안한 마음으로 그림책을 읽어주고 싶은데 간혹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은 어떤 게 있을까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책 읽어주는 것을 좋아하지요. 책 읽어주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은 그 상황이 피하고 싶었나봅니다. 어느 상황에서 어느 장소에서 책을 읽느냐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상도 달라집니다. 교훈적인 내용을 가르치려고 하기 보다는 내가 살아가고 싶은 길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장성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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