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15일 한국인 18명이 예멘에 관광을 갔다가, 세이윤(Sayon)에서 알카에다 10대 조직에게 폭탄테러를 당해 4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어떻게 치안도 불안한 예멘의 사막의 와디지역을 단체로 관광하게 되었을까. 지리학적으로 가치 있는 답사였다. 예멘의 서부는 사막지역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그러나 예멘의 중부 사막에 하드라마와트(Hadramawt) 와디가 있다. 건기에는 작은 관목이 강바닥에 자란다. 우기에는 와디에 물이 흐른다. 지하수를 쉽게 얻을 수 있다. 와디를 따라 쉬밤(Shibam), 세이윤(Seiyun), 타림(Tarim), 알구라프(Alfhuraf)같은 작은 도시가 발달해 있다. 쉬밤(shibam)의 진흙벽돌 건물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고, 9층 높이의 흙벽돌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기원전 3세기경 하드라마우트(Hadhramout) 왕조의 도읍지였다.
동인도회사와 모카커피
1869년 수에즈운하가 개통되면서 홍해의 중요성이 높아졌고, 홍해와 인도양을 면하고 있는 예멘의 지정학적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20세기의 전환기에 오스만제국을 대체하는 해양세력, 영국이 이 지역의 패자가 되었다.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은 대형 증기선으로 소위 3C정책(Cairo-Capetown-Calcutta)식민지 정책을 폈다. 식민지를 경영하기 위해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동인도회사는 국가가 투자하고 운영하는 회사이다. 영업이익을 위해 회사가 군대를 동원했다.
3C의 중앙에 예멘의 아덴이 있다. 예멘의 위치가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영국의 보호령이 됐다. 영국은 아덴항과 모카항을 중심으로 식민지경영을 했다. 모카커피, 다즐링차, 카시미어 코트가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은 영국의 판매회사를 통해 전 세계에 팔려나갔기 때문이다. 가공과 판매는 영국의 회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좋은 책이 잘 팔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출판사를 만나야 좋은 책이 되는 것과 같다.
예멘의 모카(Mocha)는 15세기~18세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의 수출 항구였다. 모카커피는 초콜릿 향이 나는 고급 커피이다. 커피에 초콜릿과 우유를 섞어 내는 커피를 ‘모카커피’라고 한다. 커피는 중동에서는 오래전부터 마셔왔던 음료이다. 나는 6·25전쟁 중에 미군의 C 레이션에 들어있는 커피를 처음 보았고, 맛을 보니 써서 모두 버렸던 기억이 난다. 커피는 6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생소한 기호품이었다. 근년에 들어와서 한국은 연간 12만톤(2016년)을 수입, 세계 6위 커피수입국이 되었다. 한국인은 1년에 240잔, 일본인 207잔, 미국인 369잔을 마신다. 수입원은 베트남, 브라질, 콜롬비아 순이다. 원조는 모카커피이다. 모카커피는 콜럼버스와 함께 전 중남미에 소개되었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식민지 국가의 운명
민족의 역량이 없이 식민통치를 당한 나라는 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예멘도 한국과 같이 식민지였다. 그러나 오스만제국도, 영국도 제대로 지배하지 못했다. 북쪽은 사나(Sana)를 중심으로 왕국이 일어났고, 남쪽은 아덴(Aden) 항구를 중심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사나는 왕족과 군부의 권력다툼 끝에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예멘아랍공화국(Yemen Arab Republic, 1967)이 됐다. 아덴을 중심으로 한 남쪽은 영국의 식민지는 영국의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 항만 노동자를 중심으로 전투를 하여 예멘인민공화국(People''s Democratic Repulic of Yemen, 1968)이 성립됐다. 나누어진 예멘은 남북 간 갈등이 일어났고,
전쟁도 했다. GCC(만 연안 제국 회의 : Gulf Coast Conferenc)의 조정으로 휴전이 체결되고, 1990년 드디어 양쪽의 권력자는 합의하여 통일이 됐다. 북쪽의 대통령 살레(Saleh)가 통일 대통령이 되고, 남쪽의 베이드(al Beidh)가 부통령이 됐다. 한반도의 통일이 안 된 것에 대해 외세와 이데올로기를 문제 삼고 있지만, 그 보다도 권력담당자인 이승만과 김일성의 권력욕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통일 예멘은 잘 되어가는 듯했다. 그러나 살fp 대통령은 영구집권을 시도하고 아들을 참모총장으로 추대하고 아들에게 권력이양작업을 하려 했다.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실업과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정권을 타도하려는 반란이 일어났다. 아덴에서 아랍의 봄바람을 타고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혁명군을 지휘한 호우티(Houthi)는 북으로 진격하여 수도 사나를 장악했다. 살레 대통령은 사우디로 도망가고 뒤를 이어 하디가 대통령이 되었다. 하디 대통령은 물러나지 않고 아직도 버티고 있다. 거기에다 외세가 거들고 있다. 시민혁명을 두려워하는 사우디왕국과 GCC는 하디 대통령을 지지하고 공중포격으로 지원하고 있고, 호우티 혁명군은 이란정부가 지원하고 있다. 안정을 찾기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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