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의 맛집 거리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애니골. 저마다의 특색을 갖춘 멋진 외식공간들이 들어서 있는 이곳에서도 유독 눈에 들어오는 곳이 있다. 일산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노(PINO)’가 바로 그곳.
야트막한 3층 건물 앞에 잘 꾸며진 정원의 아름다운 외관도 그렇지만 문을 열고 들어서면 곳곳에 자리 잡은 조형작품들이 마치 갤러리처럼 느껴진다. 남다른 예술 감각이 느껴지는 이곳의 주인장은 조각가 김희성 배순교 부부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met
20년 전 애니골에 작업 공간 마련해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던 남편 김희성 작가는 아내 배순교 작가와 사제지간으로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미국 시카고에서 유학을 마치고 은사님의 권유로 대구 영남대 미술대학에 내려갈 때만 해도 한 2~3년 있다 서울로 올 생각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집사람을 만나다 보니 다른 곳에 갈 생각도 못하고 정년퇴직까지 하게 됐습니다. 인연이겠죠.(웃음)”
함께 조각가로 활동하던 김희성·배순교씨는 20년 전에 애니골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고양시에 터전을 잡았다. 1995년 신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때 분당이냐 일산이냐를 두고 고민하던 부부는 두 사람 다 여행을 좋아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김포공항이 가까운 일산을 선택했다고 웃는다.
그러니까 지금의 ‘피노’가 있는 자리는 부부의 작업공간이었던 곳. “당시에는 지금의 애니골 모습과는 달리 주변이 허허벌판이었죠.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라 작업하기 좋은 곳이었는데 차츰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면서 작업공간이 나중엔 섬처럼 홀로 상업공간이 아닌 예외의 장소가 됐죠. 작업을 하고 있으면 나들이 나왔던 이들이 한 번씩 들여다보고 뭐하는 곳인가 호기심으로 문을 열어보기도 했지요. 의도하지 않게 궁금증을 자아내는 공간이 된 겁니다.(웃음)”
조각가의 남다른 조형감각 돋보이는 ‘피노’
각자의 예술영역을 갖고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하던 두 사람은 생각지 않게 작업공간이 노출되면서 조각가로 작품과 소통하는 것도 좋지만 공간을 오픈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나누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1층 작업실을 개조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노’가 문을 열었다. ‘피노’는 이탈리어어로 ‘소나무’라는 뜻. 부부는 작업공간을 마련하면서 주변에 한 그루씩 나무를 심었고 지금 ‘피노’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는 자리를 옮겨 다니며 꿋꿋하게 살아 준 터라 부부가 특히 아끼고 정성을 쏟는다고 한다.
“막상 레스토랑을 오픈하려고 마음먹으니 어려운 점이 많았어요. 두 사람 다 조각을 하다 보니 예술을 하는 사람들 특유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어요. 그러다보니 인테리어는 물론 집기 하나하나 예사롭게 넘어가지 않고 고급스럽고 독특한 것을 고르게 됐죠. 무엇보다 중요한 요리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재료부터 조리 과정, 데커레이션까지 공을 많이 들였어요.”
이런 부부의 완벽하고 남다른 감각이 담긴 ‘피노’는 들어서는 순간부터 한 차원 높은 품격이 곳곳에서 빛난다. 부부의 재능을 물려받은 조각가 아들의 대학 졸업 포트폴리오 작품이 걸려있는 입구를 지나면 바닥과 벽에 김희성 작가의 모던하고 미니멀한 조각품이 갤러리처럼 펼쳐진다. “예술하는 사람은 예술만 해야 된다는 통념을 깨지 못하는 이들은 아마도 레스토랑 경영은 예술가의 외도라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 생각은 달라요. 해보니 레스토랑 경영이 조각과 다르지 않아요. 공간배치, 인테리어, 소품, 음식의 맛, 음악 등 모든 장르의 예술이 다 소용되는 곳이 레스토랑입니다. 물론 레스토랑은 합리적인 가격에 맛이 좋으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부부는 좀 유별나게 고집을 부리는 부분이 있지요.”
‘피노’는 뭔가 다르다는 칭찬에 보람 느껴
부부는 자신들의 남다른 고집 때문에 2~3년은 찾아오는 손님은 많았지만 수지타산은 맞지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피노’가 문을 연 지 5년, 그냥 레스토랑이 아니라 견실하고 일하고 싶은 중소기업으로 만들고 싶다는 부부의 바람은 하나씩 실현되고 있는 중이다. 찾아오는 고객들도 일산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일부러 찾아오고 조각가 부부의 갤러리 같은 공간은 ‘신사의 품격’이나 ‘야왕’ 등 드라마 촬영장소로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뿐만 아니라 맛을 위해서 아내 배순교 작가는 직접 바리스타자격증을 따고 이탈리안 요리 등 다양한 요리수업을 받아 직접 소스를 개발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로 다양한 시도를 거듭한다. “제가 직접 요리를 만들진 않지만 8명의 셰프들이 맡고 있는 일을 다 알아야 고객에게 최선의 맛을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알지 못하면 셰프들과 메뉴를 논의할 수 없으니까요.”
‘피노’의 파스타 중에서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꽃 피자. 바삭하게 구운 씬 도우에 라코타치즈와 꿀에 절인 무화과로 맛을 낸 피자에다 정원에 핀 식용 꽃을 올려 하나의 수채화 같은 피자다. 또한 ‘피노’의 빵은 매일 굽고, 식재료도 하루 판매량씩 매일 들여와 그날 모두 판매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데 이는 모두 일정한 맛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
5월 13일 갤러리 ‘피노 프리미엄’ 오픈
부부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노’ 옆에 ‘카페 애니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피노’ 와 ‘카페 애니골’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면서 부부는 또 하나의 문화공간을 오래 전부터 구상해왔다고 한다. 그것을 위해 2층에 갤러리 공간 ‘피노 프리미엄’을 마련했다는 부부는 오는 5월 13일 갤러리 오픈 기념 ’박찬용 초대전‘을 연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아요. 특히 신진작가들은 전시회 한 번 여는 것도 힘들거든요. 저도 그런 과정을 겪었고요. 그래서 ‘피노 프리미엄’에서는 물론 제 작품전도 열겠지만 6개월은 신진작가 3명을 초대해 2개월씩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늘 아쉬웠던 것은 일산에 예술인들이 많은데 그들이 전시를 할 갤러리 공간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예술가의 창작공간을 위해 제가 일산에 애정을 갖고 20여 년 넘게 터전을 삼아 살아온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의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레스토랑 경영으로 3년 정도 작품을 많이 하지 못했다는 두 사람은 이제 ‘피노’ 건물 3층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품 활동도 활발히 펼칠 계획이다. 위치 일산동구 애니골길 72, 문의 031-903-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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