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류작가인 하련생(54·사진)씨가 윤봉길 의사 의거 70주년(4월29일)을 맞아 충남 예
산에서 거행된 기념행사 참석 차 한국에 왔으며, 5월 3일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윤봉길 의
사를 주재로 한 소설 《천국의 새(상·하)》 번역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미 하씨는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공원 폭탄의거 후 일본의 군경에 쫓겨다니던
김 구 선생의 가흥 피난시절을 배경으로 중국 처녀 뱃사공 주애보를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소설로 구성한 《선월(船月)》을 99년 중국 및 한국어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하씨는 48년 6월 중국 강소성 남경에서 태어났다. 중국작가협회 회원, 중국 신문문화면 연구
회 회원이며, 절강성의 ''가흥일보(嘉興日報)'' 편집국장을 역임한바 있다.
하 작가는 20여 년간 아마추어 중국문학가로 보고문학·TV 특별기획프로·아동문학 등 영
역에서 활동했다. 그녀의 작품 중 《시민 만화》《수요일의 생 중계실》등으로 전국 신문잡
지비평에서 ''좋은 칼럼상''을, 르포문학 《그는 섬이다》《김용의 고향행》등으로 ''좋은 작품
상''을, 중국 중앙방송에서 방영한 《만화 대관》으로 ''금동상'' 등 각종 상을 여러 차례 수상
했다.
작가의 형부는 한국 임시정부 요원(김 구 선생의 경호원)이 중국에 남긴 고아로 어린 시절
을 남경 고아원에서 보냈다. 후에 음악을 공부한 후 입대하고 작가의 언니와 결혼했다(작가
의 형부는 1987년 독립건국훈장을 수여받은 후 서울에서 살고 있다). 이런 특수한 환경과
김 구 선생의 아들인 김 신 장군과의 만남 등을 인연으로 89년부터 임정시기와 관련된 역사
적 자료를 민간에서 취재하면 반세기 이상 묻혀 있던 역사적 사실을 발굴했다. 작가는 또한
이미 TV 연속극《김 구》의 대본을 공동 집필한 경력이 있으며, 사실 문학 《호보유망(虎
步流亡)―김구 중국에 있다》를 북경에서 출판하기도 했다.
하씨는 2일 독립지사 이용상 옹을 찾아 성남에 찾았으며, 4일에 김병량 시장을 만나기 위해
성남시청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난 2일 오후 성남 차병원에서 작가와 만나 그녀가 백범과 매헌에 대해 애정을 갖게된 사
연과 성남을 방문하게된 동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에 대해 남다른 관심이 많은 것 같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김 구 선생의 지도하에 윤봉길 의사가 거행된 32년 4월29일 상하이 홍구공원 폭파의거는 한
국국민과 중국국민들이 굴복하지 않는 민족이라는 것을 세계적으로 선포하는 것이었으며,
한국과 중국이 공동의 목표를 가진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한 계기였다.
개인적으론 역사상 김 구와 윤봉길 의사가 세계에서 제일가는 영웅이라고 생각한다.
김 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는 한국의 영웅인 동시에 중국의 영웅이기도 하다.
나의 책임은 김 구의 애국주의와 윤봉길의 희생정신을 중국국민들에게 알리고, 특히 젊은
중국 청년들이 반드시 알아야할 역사적 인물임을 알리는 것이다.
청년들은 지금 너무 좋은 조건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
다. 그분들의 희생이 있기에 현재가 있다는 것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해주려고 한다.
또한 윤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이후 김 구 선생이 가장 힘들 때 가흥 시민들이 따뜻한 손을
내밀어 김 구 선생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일본군경의 추적으로부터 몸을 피신시킬 수 있었
다.
처녀 뱃사공 주애보(당시 20세)와 그 가족들이 생명을 걸고 피난을 시켰으며, 저보성 절강성
성장과 그 가족들의 배려가 있었기에 김 구 선생과 그 일행들이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나는 또한 이러한 중국사람들의 의로운 이야기를 한국사람들에게 알리고, 한국인들이 영원
히 기억하도록 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한국과 중국의 우호와 우정의 관계가 영원하길 바란다.
《선월》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선월》을 집필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이용상 선생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89년 김 신 장
군(김 구의 아들·백범기념사업회장)과 만나면서 김 구 선생의 중국 발자취를 찾기 시작했
다.
그러던 중 97년 겨울, 나이 많은 이용상 선생께서 김 구 선생의 피난길(상해-가흥-해염)을
따라 김 구 선생의 흔적을 찾는 모습에서 감동을 받았다. 특히 김 구 선생 흉상 앞에서 엎
드려 회한의 눈물을 보이며 일어설 줄 모르는 이용상 선생에게 감동 받았으며, 존경의 마음
을 갖게 됐다.
김 구 선생이 상해-가흥-해염으로 피난했던 그 길을 다시 찾아 똑같이 탐사한 한국인은 이
용상 선생이 처음이었다.
감동과 존경의 마음으로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99년 《선월》을 완성하게 됐다.
《선월》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가
한국과 중국의 우정이 최근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생명과 피로써 맺어왔다는 것, 투쟁을 통
해 얻어낸 우정이라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평화로운 시대엔 우정이 싶지만, 당시 전쟁속에서 피로써 맺은 우정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船)은 피난을 도왔던 뱃사공 주애보를 뜻한다. 월(月)은 달빛처럼 밝게 국민들을 밝혀주
는 김 구 선생을 의미한다. 강위의 배와 하늘의 달은 굉장히 먼 거리지만, 강에 비춘 달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만큼 너무도 가까이 있다. 그러나 물속의 달은 손으로 잡을 수도 없고
건질 수도 없다. 선월은 처녀 뱃사공 주애보와 인간 김 구의 애뜻한 사랑과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를 기록한 《천국의 새(상·하)》집필 동기와 내용은 무엇인가
윤봉길 의사에 대해 글을 쓰게 된 것은 매우 우연한 기회에 쓰게 되었다. 《선월》을 쓰면
서 윤봉길 열사에 대해 감동받고 존경하게 되었다.
언젠가 충남 예산 고향에 가 참배할 기회가 있었다.
향을 피우고, 인사하고 윤봉길 의사의 사진속 눈을 보았을 때,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눈속에서 사나이의 용감함과 슬픈 모습이 보였다.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을 걱정하는 어쩔수 없는 눈물을 보았다.
32년 4월29일 홍구공원으로 떠나기전 "농가에 일하는 기분으로 나간다"며 김 구 선생에게
한 마지막 작별인사 장면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눈에서도 눈물이 나왔다. 감동의 눈물이 흘른 것이다.
그때 다짐했다.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한 젊은 영웅이야기를 책으로 기록해 후배들에게 알려
주어야겠다고.
윤봉길 열사에 대한 자료는 매우 부족했다. 나의 느낌과 생각 그리고 윤 열사가 내게 알려
주는대로 기록했다. 《천국의 새(상·하)》는 문학적 창작의 책이다. 2000년 7월 중국에서
출판했으며, 범우사 윤형두 사장의 권유로 한국어판을 출판하게 됐다.
백왕순 기자 wsp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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