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따라 신분따라 ‘귀족결혼’ 성황

결혼정보회사 등 앞장서 주선 … “신분제 재현” 비판

지역내일 2002-02-15 (수정 2002-02-16 오전 11:24:38)
“미혼인 판·검사나 의사, 회계사를 찾아라”
사법연수원 수료와 대학 졸업식 등이 몰린 2월을 맞아 결혼정보회사들의 발걸음이 부쩍 바빠지고 있다. 수백만원대의 회비를 아끼지 않는 여성 특별회원들이 선망하는 전문직 남성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전문직 남성과 재력가 집안의 여성이 서로의 외적 조건만을 쫓아 만나는 ‘귀족 결혼’이 결혼정보회사 등을 통해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귀족결혼의 부작용이 일부 불거지면서 “신분제의 재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귀족결혼 실태= 상류층간 만남은 과거 ‘마담뚜’들에 의해 암암리에 이뤄지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주로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한층 양성화된 모습으로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다.
유력 결혼정보회사들은 각각 수백, 수천명의 상류층 특별회원을 별도 관리하는가하면 일부는 아예 귀족결혼 전문회사로 성업중이다.
이들 특별회원의 자격은 남성의 경우 전적으로 ‘사’자가 들어가는 본인의 직업에 달렸다. 여성도 비슷한 직업을 가지면 가입이 가능하지만 무엇보다 재력이 첫번째 조건으로 꼽힌다. 일부 회사는 여성 부모가 △30억원 이상의 재산 보유 △2급 이상 고위공직자 △30대 기업 이사 등의 조건을 갖출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유력 결혼정보회사 홍보팀장은 “특별회원의 가입조건은 상류층이 결혼 상대자에게 요구하는 일반적 기준일 뿐”이라며 “남성 회원 중 일부는 변호사 사무실이나 병원 개업을 회원 가입서에 결혼조건으로 명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금융기관까지 귀족결혼 확산에 일조하고 있다. 모 시중은행은 지난해 1억원 이상의 평균잔고를 기록한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했는가 하면 수십억원대의 예금 실적을 가진 고객 자녀의 중매를 서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부작용 없나= 객관적 조건만을 따지는 귀족결혼은 성사도 쉽지 않지만 오히려 성사 이후에 잡음이 끊이지 않는다는게 결혼정보업계의 설명.
경력 3년차인 커플매니저 조 모(29·여)씨는 “서로간의 애정은 배제한채 조건만 꿰어 맞추다보니 나중에 속았다는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이 적지 않다” 고 말했다.
지난해말 서울지검 소년부에 불구속기소된 법조계 인사의 가정폭력 사건은 귀족결혼이 빚은 대표적 비극. 사법연수원 시절 결혼정보회사의 소개로 만난 재력가 집안의 여성과 3개월만에 결혼한 이 모(30) 변호사는 지참금 명목으로 수억원대의 아파트 두채와 수천만원의 혼수를 챙겼다.
그러나 이에 만족못한 이 변호사는 아내에게 “시댁의 채무를 갚아달라”며 상습적으로 구타를 일삼거나 욕설을 퍼부은 것으로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심지어 자신의 성적 취향을 이유로 가슴확대수술을 강요했는가하면 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는 아내를 또다시 구타해 병원에 실려가도록 했다.
프랑스에서 오래 생활했던 작가 홍세화씨는 “상류층끼리만의 결혼문화는 유럽에서는 상상키 어려운 특이한 한국적 상황”이라며 “결혼 등으로 맺어진 이들 사회귀족은 외부견제를 봉쇄해 구조적 부패의 원인이 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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