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탐방길-전주 남고산성
봄바람 난 아줌마 남고산성 성벽 밟으며 마음 달래
천년 역사 전주를 한눈에 담으며 혼자 때론 둘이 걷는 재미 쏠쏠!
앙상한 나뭇가지에 새싹이 움트는 계절 3월.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던 겨울은 며칠새 향기로운 꽃이 피는 봄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려 하는 듯 추위가 주춤하다.
햇살이 살포시 내려앉은 겨울의 끝자락, 아줌마들의 마음속엔 이미 봄이 자리했다. 배낭을 꾸리고 모처럼의 짧은 여행을 나서본다. 늘 가까이 있어 그 소중함을 모르는 듯,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며 전주시민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곳. 화사한 봄꽃은 없지만 복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과 여유, 맑은 공기 마시려 남고산성으로 고고씽!
* 남고사 대웅전
남고산성 아래 터 잡은 산성마을 벽화로 새단장하고 눈길 끌어
남고산성 초입에 이르기 전 꽤 오래된 조그만 마을 하나가 있다. 이름 하여 산성마을인데 이곳은 얼마 전만 해도 그저 작고 오래된 하천을 끼고 도는 평범한 시골마을이었으나 아름다운 벽화마을로 탈바꿈 하게 되면서 전국적인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산성마을의 벽화는 2011년도 행안부가 실시한 ''친환경 생활공간 조성'' 사업 공모에 선정돼 오래된 담장에 아시아 태평양과 한국 그리고 전주의 문화가 어우러진 삶, 백제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남고산성과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 자연과 즐거움이란 주제로 표현되었다고 한다. 건물 벽과 담장에 그려진 그림들은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며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 보는 이의 상상력과 동심을 자극한다.
함께 한 아줌마들이 엉덩이를 쑤욱 내밀고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그림 벤취에 앉아 포즈를 취하는 등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미소를 날린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가볼만한 벽화 마을’로 소개받아 산성마을과 남고산성을 연계한 젊은 친구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으며, 타 지자체에서도 산성마을 벽화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일부러 찾을 정도로 그 명성이 대단하다.
* 산성 따라 걷는 관광객
전주의 천년 역사와 삶을 한눈에 ‘남고산성’
산성마을을 지나 남고사 방향 안내판을 따라 가파른 길을 300미터 정도 오르면 남고산성(사적 제 294호)의 입구가 나타난다.
남고산성은 전주 남쪽에 있는 고덕산과 천경대, 만경대, 억경대로 불리는 봉우리를 둘러쌓은 산성이다. 남동쪽으로는 남원·고창으로 통하는 교통상의 중요한 곳을 지키고, 북쪽으로는 전주를 내려다보는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이곳에 고덕산성을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견훤이 쌓았다고 하여 견훤산성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 후 조선 순조 13년(1813)에 성을 고쳐 쌓고 남고산성이라 했다. 당시 보수공사가 있을 때 성 안에는 4군데의 연못과 25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민가 100여 채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 성의 둘레는 남고사를 중심으로 약 3킬로미터 가량 이어져 있다. 남고산성은 후백제의 자취는 물론 전주의 아름다운 사계절 풍경과 전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고, 더더욱 좋은 것은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산성 성벽을 따라 한 바퀴를 돌아 원점회귀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맘껏 봄기운을 느껴보기로 했다. 서문지를 출발한 성벽이 경사져 숨을 몰아쉬게 하지만 억경대에 오르자 전주 시가지에 한눈에 펼쳐지니 가슴 속이 뻥 뚫린 듯 시원하다.
남고사에는 사천왕상이 없는 사천왕문이 있다?
남고산성은 성이긴 하나 완전 원점회귀는 불가능하다. 옥경대, 천경대를 지나는 성벽을 따라 한바퀴를 돌고 남고사(전라북도 기념물 제72호)를 찾아야겠다는 계획은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다. 남고산성 밟기의 시작과 끝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다시 가파른 300미터를 올라 남고사를 오르는 길은 제대로 된 운동이다. 그래서인지 남고사에 다다른 아줌마들은 오늘따라 더더욱 마음의 평온함을 느낀다.
남고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로 남고산성 안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문무왕 때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스님 보덕의 제자 명덕이 창건했다라고 전해지는데 원래는 남고연국사라고 이름했으며, 연국은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로 산성 내에 있는 절 이름에 많이 쓰인다. 언제 남고사로 바뀌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조선 영조 때 편찬된 한 문헌에 남고사로 표기되어 있다. 전주의 사방에 사고의 진압 사찰이 있는데, 이 절은 남쪽에 위치하여 남고사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해진다.
“이상하다! 사천왕문에 사천왕상이 없어! 사천왕을 그린 탱화만 모셔 뒀는데?” 함께한 일행이 소곤댄다. 천년 세월에 걸맞지 않게 현대화 된 사찰이라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전주8경의 하나라는 해질녘 남고사의 저녁 종소리를 들어보고 싶어진다.
후백제의 시조 견훤, 견훤하면 전주와 떼어놓고 얘기할 수 없지만 전주에 사는 우리들은 그를 너무 멀리한다. 햇살 좋은 봄날, 가벼운 산책으로 역사정신도 고취하고 건강도 챙길 겸 남고산성으로 봄마중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김갑련 리포터 ktwor04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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