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있는 선택, 특성화고 문을 열다 ①
내일을 알 수 없는 미래는 미지수다. 또한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은 불안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학생들이 있다. 모두가 대학이라는 목표로 달리고 있지만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은 꿈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찌감치 꿈을 찾은 학생들은 별다른 방황 없이 미래를 건실하게 설계한다. 남과 다른 길을 가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직업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내실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학생들이 바로 특성화고 학생들이다. 내일신문에서는 소신있는 선택으로 특성화고의 문을 연 학생들을 만나 보았다.
양지연 리포터 yangjiyeon@naver.com
일곱 살 때부터 간직해 온 꿈
듬직하고 공부도 잘하는 아들이 불쑥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선뜻 너의 꿈을 응원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게다가 남들 다가는 인문계고 대신 특성화고를 선택하겠다고 하면, 내색하진 않아도 마음속에 있던 낡은 편견이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할 것만 같다. 특성화고 원서접수 일주일 전, 대송중학교 3학년 김민기 군은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요리사가 되기 위해 특성화고에 진학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민기 군의 이야기에 놀란 건 담임선생님이나 엄마나 마찬가지였다. 평범하고 성적도 우수한 민기 군이 다른 학생들처럼 인문계고에 진학해 대학을 목표로 공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기 군의 결정은 하루 이틀 사이에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고, 그 만큼 절실하고 확고했다. 조용한 성격 탓에 내색은 안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어 했던 민기 군은 자신의 꿈을 위해 신중하고 소신있는 선택을 한 것이다.
민기 군이 요리사의 세계에 눈을 뜬 건 일곱 살 때라고 한다. 몸이 아파 잠시 출근을 하지 못한 아빠를 위해 계란후라이를 만들어 준 유치원 아이. 어린 아들이 아빠를 위해 고사리 손으로 만든 계란후라이에 아빠는 감동했고, 그 감동은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 때 요리를 한다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 이후 줄 곳 요리사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어요.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일은 요리사만이 가능한 일이잖아요. 평소에도 가족이나 친구들을 위해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음식을 먹고 기뻐하면 저도 기분이 좋아지고... 그러니 요리사가 제 적성에 잘 맞겠다 싶었지요. 무엇보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이 항상 재미있었어요.”
가족과 친구 위해 음식 만들며 요리사의 행복 깨달아
민기 군은 웬만한 가정식 요리는 척척 만들어 낸다. 그것도 요리학원을 다니며 배운 것이 아니라 엄마가 요리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며 터득한 것이다. 아들을 요리학원에 보내줄까 생각하는 엄마에게 민기 군은 엄마를 도와주고 엄마가 만드는 것을 보며 배워보겠다고 했다. 이렇게 엄마 곁에서 요리를 배운 민기 군은 지금은 엄마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만들 줄 알고, 한결 맛있게 요리를 만든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엄마를 위해 반찬도 만들고, 식사 준비도 즐겨 한다. 민기 군이 가장 자주 하는 요리는 떡볶이다. 민기 군이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해 친구들이 집으로 자주 놀러 오는데, 친구들이 가장 좋아하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요리가 떡볶이기 때문이란다. 얼마 전엔 아픈 친구를 위해 닭가슴살 버섯죽도 만들었다. 아픈 친구에게 죽을 끓여다 줬더니 친구가 정말 고마했다고 한다. 지난해엔 처음으로 엄마의 생일상을 직접 차렸다.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잡채와 불고기, 미역국과 전까지 부쳐 소박한 생일상을 차려냈다. 아들이 차려 놓은 생일상에 감동하는 엄마를 보며 민기 군은 요리사의 행복이 어떤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이렇게 음식을 만들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민기 군의 특기이자 취미이고, 재능이다.
특성화고 선택은 꿈을 이루는 지름길
한국조리과학고에서는 1학년 때는 한식과 제과제빵을, 2학년 때는 양식과 향토요리를, 3학년 때는 양식 일식 중식 요리를 배우게 된다. 아직까지 요리 수업을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는 민기 군은 학교 수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교과 과정을 이수하며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대학은 호텔조리학과로 진학하고 싶단다. 민기 군은 퓨전요리와 새로운 요리 개발에 관심이 많다. “한식 중식 양식을 체계적으로 배운 후 음식의 조화를 살려 새로운 요리를 개발해 보고 싶다”며 “주특기로 양식을 공부해 호텔조리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전한다.
내년 3월 입학을 앞두고 있는 민기 군은 집을 떠나 학교 근처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서 생활해야 한다. 학교 선택부터 합격자 발표까지 두 달 동안 숨 가쁘게 달려오고 나니 이제야 집을 떠난다는 현실에 눈을 뜨게 됐다.
“엄마 아빠가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중학교 친구들도 보고 싶을 것 같구요. 그래도 제가 선택한 길이고, 꿈을 향해 가는 길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동안 힘이 돼주신 부모님과 김현점 담임선생님, 특별한 추억을 함께한 3학년 5반 친구들 모두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이들은 ‘최고’나 ‘1등’이란 말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할 뿐이다. 민기 군 또한 세계 최고의 요리사를 꿈꾸지 않았다. 요리를 배우고 음식을 만들어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선택이 큰 행복이기 때문이다.
민기 군은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에 상관하지 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찾았다면 과감히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며 “자신의 꿈에 맞는 특성화고를 선택하는 것이 꿈을 이루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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