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씨 가정폭력 피해 실태 “언어·신체폭력에서 흉기까지”

대책위 “가족모두 가정폭력 피해자, 사회적 근절대책·지원 절실”

지역내일 2001-12-29
가정폭력 피해자 최씨는 결혼 초부터 의처증이 있는 남편 김 모(51)씨의 심한 언어폭력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대책위와 최씨의 두 남매 김수정(26·가명)·명수(24·가명)씨에 따르면 남편 김씨는 해외
에 나가 1년간 일을 하고 한달 정도 집에 머물다 다시 해외로 일을 나가는 생활을 되풀이했
고, 국내에 들어올 때마다 의처증에 의한 폭력을 행사했다.
이런 생활이 20년간 지속됐고 수년전 김씨는 허리디스크와 해외에서 얻은 병 때문에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때부터 김씨는 더욱 심각한 의처증 증세를 나타내며 신체적 폭력을 가했지만 최씨는 남편을 대신해 직장생활을 하며 가정을 돌보기 시작했다.
김씨는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칼을 휘두르곤 했고 최씨와 아들은 키가 작은 아버지의 손이
닿지 않도록 장롱 위 등에 집안의 칼을 숨겨놓아야 했다.
최씨는 올해 초 남편이 휘두른 칼에 허벅지가 찔려 치료를 받은 적도 있고, 주먹으로 맞아
이빨이 부러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나 최씨는 남편의 심한 의처증과 반복적인 폭력에 대응
하지 않고 매번 상황을 피하곤 했다.
아들 명수씨는 군대 제대 후 이런 부모님의 파행적 생활상을 제대로 알게 됐고,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를 위해 이혼을 권유했다. 최씨는 점점 심해지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지
난 3월 이혼했다.
명수씨는 아버지의 의처증을 고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정신병원 요양을 권했다. 가족이 있으면 요양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아들 명수씨는 분가해 호적을 정리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인의사가 없이는 입원이 불가능하고 1년 이상 치료를 받아야 효과를 볼 수 있는데 그럴만한 경제적 여유도 없어 포기하고 말았다.
김씨는 이혼 후에도 변함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알콜중독과 노숙생활로 방황했다. 최씨는 남편을 피해 올해만 세차례나 이사를 했지만 그때마다 김씨는 어떻게 해서든 최씨를 찾아냈고 자식들까지 괴롭혔다.
그러던 중 김씨는 자신의 잘못을 반성했으니 다시 살아달라고 최씨에게 간곡히 요구했고,
최씨는 노숙생활을 하는 남편이 불쌍해 재결합 요구를 받아줬다. 그러나 또 다시 남편의 폭
력은 계속됐고 재결합한지 두달여만인 지난 12월 14일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최씨는 사건 당일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와 술에 취한 남편이 최씨에게 욕을 하며 시비를 걸
어오자 평소처럼 남편을 피해 집 밖으로 나갔다가 남편이 잠든 후 집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이 최씨에게 칼을 휘두르며 최씨의 생명을 위협하자 남편의 칼을 뺏고 실랑이를 벌이다 남편의 가슴을 칼로 찌르고 말았다.
대책위는 최씨가 남편을 살해하게 된 당시 상황이 생명의 위협속에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정
당방위였고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고라며 불구속 수사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대책위 박명숙 상임대표는 “최씨는 이미 수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당시 상황에서 역으
로 최씨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극한 상황이었다”며 정당방위를 주장했다.
김준식 안양YMCA 사무총장은 “사건 당시 상황에 국한하지 않고 전후상황을 보면 충분히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법이 도덕의 최소한이라고 할 때 이런 전후사정과 사회
전반의 정서, 감정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책위는 이번 사건이 최씨와 김씨, 그 가족 모두 가정폭력의 피해자이며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 근절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가족들에 따르면 남편 김씨는 어린 시절 가정폭력의 피해자였다고 한다. 대책위와 최
씨의 두 남매는 “아버지도 가정폭력의 피해자였으나 사회적 관심속에 제대로 교정받지 못
해 가해자가 된 안타까운 경우”라며 “사회적인 대책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곽태영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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