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탐구 24시- YMCA 우리글배움터 교사 김영자씨

“한글을 가르치며, 그들에게 삶을 배웁니다”

지역내일 2001-12-10
“우리나라 이름이 뭐라켔죠?”
“김대중 아이라요!”
“김대중은 우리나라 대통령 이름이고, 나라 이름 말입니더.”
YMCA 우리글 배움터는 수업시간 내내 웃음보 터질 일이 끊이지 않는다. 엉뚱한 답변에 가르치는 선생님도 웃고, 배우는 학생도 웃는다.

8년째 한글수업 자원봉사 교사로 활동
YMCA 우리글 배움터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는 김영자씨(57). 방금 가르친 내용을 안 배웠다며 우겨대는 할머니들 앞에선 그녀도 당할 재간이 없어 보인다.
김영자씨는 YMCA 우리글 배움터의 자원봉사 선생님이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60을 바라보는 김영자 씨가 한글수업 봉사를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 구미상록학교와 인연을 맺으면서 한글반 교사로 활동해오다가 지난 95년부터 YMCA로 자리를 옮겨 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처녀시절 특수학교 교사였던 그녀는 결혼 이후에도 집 주변 노인정에서 한글을 가르쳤고, 지난해까지 구미시청 청소년 상담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 집에서 필요없다고 내놓은 옷가지들을 필요한 집에 갖다주며 그렇게 살았죠. 왜 남들 좋은 일만 하고 다니냐면서 남편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어요. 하지만 내가 조금만 움직이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걸 아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겠어요.”

사회복지학 전공하는 졸업반 대학생이기도
장성한 아들과 딸에, 손자까지 본 ‘할머니’ 김영자 씨가 매일 저녁 꼭 가는 곳이 있단다. 바로 학교다. 그녀는 구미1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졸업반 대학생이다.
“남들을 제대로 가르치려면 나부터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입학하게 됐어요. 나이가 뭐 중요한가요. 배움에는 때가 없는 거니까요. 아들, 딸 같은 학생들과 어울려 공부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나이가 많다고 특별 대우 받는 건 싫어요.”
교수님들의 배려(?)를 거절하는 일이 더 어렵다고 말하는 그녀는 2년 동안 평점 4.0 이상의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우등생이다.

봉사는 나 자신을 위한 행복한 일
그 동안 그녀에게 한글을 배우고 간 사람만도 수백명. 세금 고지서가 나올 때마다 글을 몰라 더 나왔네 덜 나왔네 하며 집주인과 티격대던 할머니, 자신의 임종을 앞두고 며느리에게 통장을 맡기면 남겨진 아내가 괄시받을 것 같아 글을 배우게 하려 했던 할아버지, 아이가 커 갈수록 문맹의 아픔이 뼈저리게 다가왔다며 글을 배우기 시작한 어느 주부에 이르기까지 소설을 써도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의 아픈 사연을 곁에서 지켜봤다.
“제가 직접 가르친 학생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정말 날아갈 것 같아요. 그 행복감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죠. 봉사는 남을 위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소중한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절 이렇게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으니 말이죠.”
더 이상 나오지 말라는 얘기만 아니면 언제까지고 한글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는 김영자 선생님.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면서 그녀는 그들에게 또 다른 삶을 배워가고 있다.
YMCA 우리글배움터 ☎(054)452-2321



우리글배움터 교사 김영자씨의 24시

오전 8시- 헬스와 수영으로 체력 단련
나이가 들수록 건강관리는 기본. 내 몸이 건강하고 편해야 남을 위한 일도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매일 아침 헬스와 수영으로 체력을 키우고 있다.

오전 9시 30분∼12시 30분- YMCA 한글 수업
공부도 즐거워야 효과적이라는 생각으로 박수를 치거나, 노래를 하면서 놀이를 응용해 재미있고 즐거운 수업을 꾸며간다. 그녀의 입담과 편안함으로 할머니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오후 2시∼5시- 한글 수업 개인 교습
YMCA에 나와 한글을 배우기 곤란한 사람들을 따로 가르친다. 문맹의 부끄러움 때문에 밖에서 배우길 꺼리는 이들인만큼, 마음에 상처입지 않도록 각별히 신경쓴다.

오후 6시 30분∼10시 40분- 학교에서 강의듣기
학교에 가면 20대의 학생들과 허물없이 웃고 떠드는 평범한 대학생이 된다. 친구처럼, 언니처럼 편안하게 대하는 같은 과 학생들이 고맙기만 하다.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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