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각종 언론매체 1면에 크게 게재된 사진과 기사가 있었다. 기사의 요지는 아이돌이라 불리는 일련의 가수들이 문화의 본고장임을 자부하는 프랑스에 입성해 성황리에 공연을 했다는 것. 특히, 스포츠에 비할 만큼 체력소모가 큰 춤을 쉬지 않고 추는 그들이 유럽인의 눈에 인상적으로 보인 것이 성공의 한 요인이라고 전했다.
5분 공연을 위해 두 달 연습
세계 문화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K-POP’은 아마추어 댄스팀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것이 아닐까? 경기도 청소년 락·뮤직 페스티발대회에 참가한 안산 경일고 소프트(soft, 리더 이연화)의 공연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11명 참가자가 한 호흡으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은 춤이면서도 춤이 아닌 듯 해 보였다. 오히려 ‘일’ 같은 분위기. 뜨거운 햇빛은 강열한 조명이었고, 뚝뚝 떨어지는 땀방울은 최고의 분장이었다. 빨간 바지에 흰 티를 입고 5분 동안 사력을 다해 춤을 춘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무대를 내려왔다. 예선 과 본선을 통해 그들은 대회 댄스부문 최우수상을 차지했다. 경기도에서 이름난 20여 댄스팀이 자웅을 겨룬 결과 최고의 성적이었다. 팀의 리더이자 유일한 3학년생인 이연화 학생은 그 순간을 “짜릿했다”고 표현했다.
경일고(경일관광경영고등학교로 개명 예정) 댄스 동아리 소프트팀은 안산 뿐 아니라 경기도에서도 제법 유명하다. 창단된 지 올해로 14년째. 창단부터 현재까지 담당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정미란 교사는 아이들의 든든한 후원자이자 버팀목.
“14년 전 한 행사장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이를 우연히 봤어요. 그 아이는 저를 보지 못했지만 저는 그 애가 우리학교 학생임을 알 수 있었죠. 평소 조용한 아이였는데 어찌나 열심히 몰입하며 춤을 추던지….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공부 잘 하는 것과 춤 잘 추는 것이 똑 같은 재능이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이었어요.”
모른 척 몇 개월을 지내다 선생님은 슬쩍 그 아이에게 ‘춤추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아이의 눈이 두 배로 커지더니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그 이유는 다음 날 밝혀졌다. 교무실로 뚜벅뚜벅 선생님을 찾아온 아이는 진지한 얼굴로 무작정 ‘댄스 동아리’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 밤새 고민한 흔적이 뚜렷한 동아리 활동 계획서를 들고....선생님은 동아리 만들기에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은 조건을 제시했다. 첫째 스토리 있는 춤을 출 것. 그리고 새로운 무대를 선보일 것. 주변인들은 음악선생님이 합창부나 합주부가 아닌 댄스동아리를 만들자 모두 의아해 했지만 소프트팀은 창단 첫해, 경기예능발표대회에 나가 1등을 하며 존재감을 알렸다.
공부 못하면 팀에서 퇴출, 자기관리 중요
5분 공연을 위해 2개월 동안 하루 3~4시간을 연습했다는 소프트팀. 음악을 찾고 안무를 구성하는 것은 모두 팀원들의 몫이다. 초등학교부터 춤추기를 좋아했다는 이연화 학생은 리더를 맡으면서 “3학년이 혼자라서 부담감이 컸다”고 했다. 힙합하는 여학생은 ‘명랑, 쾌활’할 것이라는 편견과는 달리 성격도 조용한 편. 하지만 자기만의 색깔로 팀을 잘 이끌고 있다고 한다.
“춤을 추려면 공부뿐 아니라 자기 관리가 돼야 해요. 우리 팀은 규정된 학업성적 이하로 내려가면 ‘강제 퇴출’을 시켜요. 춤을 추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하게 하지요.” 조용하지만 당차게 동아리 정체성을 설명한다.
그러면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을까? 연습시간도 많고 부상 위험도 있어, 그리고 춤에 대한 편견으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긴 쉽지 않았을텐데….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하지는 않지만 다들 마음고생을 한 것 같다. 1학년 황선종 학생은 부모님의 반대와 우려를 노력으로 극복한 경우. 고교 진학 후 소프트에 들어오면서 춤에 관심을 가진 그는 춤을 통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한다. 춤 덕분에 10kg 넘게 몸무게 감량도 했다.
“소프트팀원들은 춤 연습과 공연을 통해 청소년기를 잘 보내고 있습니다. 연말에는 문화 소외단체를 찾아가 공연을 하며 나 보다 더 아프고 돌봐야 할 사람이 있음을 배우기도 합니다. 춤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아이들 너무 예쁘지 않나요?” 창단부터 지금까지 춤추는 아이들 곁을 지키고 있는 선생님의 칭찬에 아이들은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남양숙 리포터 rightnam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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