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째, 주말을 집에서만 보낸 김 모씨. 그동안 편히 잘 쉬었는데 이번 주말마저 ‘방콕’을 했다가는 신상이 해로울 것 같다. 전 국민이 나들이에 나선 것처럼 떠들어대는 뉴스를 보고 그에게 예리한 눈초리를 날리는 가족들의 시선도 그냥 넘겨 버리기에는 도가 넘쳤다. 그러나 어쩌라! 이번 주도 어영부영 휴일 오후를 맞이했으니, 주방에서는 그릇 부딪치는 소리가 커질 수밖에…. 태연한 척 소파에 앉아 있는 그의 머릿속은 ‘최단시간, 그렇지만 장거리 여행 느낌이 나는 곳’을 생각해내기에 여념이 없다. 마침내 분연히 일어난 그. 짧지만 긴 여행을 위해 가족을 진두지휘(?)하며 나선다. 그가 가는 곳은 어디?
다이내믹한 서해안 낙조와 칼칼한 칼국수의 오이도
행선지는 오이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조용필의 ‘여행을 떠나요’도 크게 틀었다. 중학생 딸은 이승기의 ‘여행을 떠나요’를 듣고 싶다고 난리다. 평양 감사도 제 맘이듯 음악 트는 건 디제이의 마음.
‘30여분만 오면 다른 세상 같은데 왜 올 생각을 안 했지?’ 할 정도로 오이도는 이국적이다. 어스름한 바닷가 풍경과 넘쳐나는 간판들, 웃음들.
많은 음식점 중에 들어갈 곳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눈 꾹 감고, 화려한 네온이 장식된 식당을 골라 들어간 그는 면장갑 낀 전사로 변신, 뜨거운 불을 이기지 못하고 아우성치는 조개들을 어르고 달래며 배고픈 식신들을 위해 아낌없는 노력 봉사를 한다. 각종 해산물이 단체로 입욕한 큰 그릇의 칼국수마저도 싹 비워낸 가족에게 필요한 건 식후 경(景).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 했으니 이제부터 눈 즐겁게 하는 일이 남았다. 둑에 올라 등대 쪽으로 걸으니 동해 일출보다 더 아름답다는 서해 낙조가 향연을 펼친다. 빨강을 시샘하는 주황이 빨강 끝에 색을 드리우자, 황금 노랑이 재빨리 구석구석 빈자리를 채운 듯 아름다운 석양이 펼쳐진다. 그 빛을 배경으로 선 가족의 모습이 감동스러워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오이도 빨간 등대는 오이도의 랜드마크로 실재 등대역할은 하지 않은 관광용이다. 등대에 올라가보면 좀 더 다이내믹한 서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사진 찍기 좋은 자리는 경쟁률이 높다.
등대에서 내려오면 바닷가 쪽으로 배 이름을 상호로 내건 작은 횟집(?)이 쭉 이어져 있는데, 광어가 많은 편. 몇몇 가게는 벌써 철수를 했고, 아직 연 곳에서는 당일 잡아 온 싱싱한 생선을 직접 떠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방금 식사를 하고 왔지만 싱싱함에 끌려 광어 한 마리를 2만원에 구입. 바닷물이 닺는 곳에서는 갈매기 소리를 들으며 방금 사 온 회를 먹는 사람도 많이 있다.
Tip-등대색은 멋으로 칠하는 게 아닌 항해 ‘언어’. 흰색은 배 유인 등대로, 빨강은 오른쪽에, 녹색은 왼쪽에 장애물이 있다는 표시. 노란색은 소형선박을 유인 한다고 한다.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경기미술관과 화랑유원지
식후 경(景)의 연장으로 선택한 곳은 경기미술관. 풍경 감상으로 맑아진 눈에 예술 작품까지 선보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경기미술관은 연중무휴로 시민들이 멀리 가지 않고도 수준 높은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곳. 입장료도 없다. 게다가 야간개장으로 이용 시간도 넉넉하다. 평일은 오후 8시까지, 주말이나 공휴일은 10시까지 문을 연다. 올해 첫 기획전시인, 미술관의 소장 작품을 기획 전시하는 ‘친절한 현대미술’이 4월부터 전시되고 있다. 미술관 컬렛션으로 미술관이 지향하고 있는 바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 3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또 다른 전시는 가족이 보기 편한 ‘쉼’전. 하늘과 나무, 숲과 폭포를 주제로 한 60여점이 편안한 휴식을 준다.
가로등 조명 아래 보는 야외 조각도 낮과는 다른 분위기. 조명으로 3차원의 조각이 더욱 입체적으로 빛난다. 미술관 앞의 화랑유원지에는 푸릇푸릇한 갈대와 물풀, 연꽃잎이 한창이다.
아직 연꽃은 안 폈지만 새 소리와 바람 따라 기울어지는 물풀의 흔들림이 장관이다. 탄성 좋은 산책로를 걸으며 그 동안 부족했던 가족끼리 대화도 하고, 걷기에도 좋은 곳이다.
남양숙 리포터 rightnam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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