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신문이 만난 사람 - 여성 마라토너 황순옥 씨

“운동복 입고 나서면 몸이 알아서 뛰어가요”

지역내일 2011-05-23 (수정 2011-05-23 오후 9:01:03)

살다보면 자신이 전혀 몰랐던 분야에 재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성 마라토너 황순옥(37세) 씨가 바로 그렇다. 마라톤을 시작한지 2달 만에 10km 대회에 나가 1등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대회 출전 15회에 딱 한번만 빼고 다 상위에 입상했다. 직업병을 고치려고 시작한 마라톤이 새로운 인생을 가져다주었다.

마라토너 황순옥 씨와 만난 곳은 저녁나절 시낭운동장이다. 동호회(안산로드레이스)에서 연습을 하는 날이라고 했다. 멀리서 볼 때 황 씨는 중고등학교 육상선수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별로 근육질도 아닌데다 무척 가냘픈 몸매의 여성이다. 키 160cm에 몸무게가 43kg이라니, 이거야, 고등학생 아이를 둔 아줌마 몸매라기엔 너무하지 않은가. 원래는 상체와 복부에 살이 좀 있었는데 마라톤을 하면서 3kg 빠졌다고 한다.

비염 때문에 조깅을 시작하다
황순옥 씨의 본업은 네일 아티스트다. 사람들의 손톱을 예쁘게 가꿔주는 일이지만, 8년씩이나 가루로 된 네일아트 재료를 가까이 하다 보니 비염이 심해졌다. 약을 먹어도 안 낫던 차에 한의원에서 유산소운동을 권하기에 집 앞 공원에서 조깅을 시작한 것이 마라톤 입문 계기다. 그런데 마라톤 시작한지 두 달 째 되던 지난해 9월부터 올해 5월 사이에 15번쯤 대회 나가서 14번을 상위 입상했다. 달리는 운동이라곤 초등 3학년 때 육상부에 들어갔다가 큰 사고가 나서 1년도 안 돼 그만 둔 게 전부다. 집근처 호수공원에서 조깅을 하다 보니 비염 증세가 차츰 좋아짐을 느낀 황씨. 내친 김에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을 했다.
“처음에는 회원들을 따라 뛰기만 했죠. 오늘은 한 바퀴 따라 뛰고, 다음날은 두 바퀴… 오늘은 몇 킬로를 내일은 좀 더 뛰어봐야지, 이런 식으로 연습했죠. 저보고 재능있다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지도해주신 분도 계셨기 때문에 그게 감사해서 힘들어도 끝까지 같이 뛰었어요.”
그렇게 훈련한 지 두 달 만에 파주 평화마라톤 10km대회에 출전, 예상치도 못한 1등을 했다. 기록은 43분대로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1등을 하니 자신감이 솟았다. 지난해 9~10월, 올해 4~5월에는 매주 대회에 참가하다시피 했다.
올해는 10km 마라톤 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성적을 내고 있다. 4월부터 한 달 사이에 6개 대회에 참가해 서산마라톤 예산벚꽃마라톤 반기문마라톤, 삼척황영조국제마라톤, 하이서울여성마라톤  등 5개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5월 5일 화성 효마라톤대회에서는 6위를 했어요. 고수들이 참가한 대회라서 좀 욕심을 내다가 오버페이스를 했죠. 마라톤은 자기 페이스대로 안하면 바로 몸에 반응이 오거든요. 숨이 차지 않아도 발이 안나가더라구요. 처음으로 이게 오버페이스구나 느꼈어요.”

칭찬이 나를 1등 하게 했다.
흔히 마라톤은 고독한 운동이라지만 황 씨의 생각은 다르다. 평소 회원들이 늘 같이 뛰고, 끊임없이 격려하고 칭찬해주는 말이 대회에서도 힘이 되기 때문이란다. 
“잘 한다, 잘 한다, 하는 말을 들으니까 더 잘하게 돼요. 처음엔 55분이 걸렸는데 주부치고 50분대면 안산에서 몇 번 째다, 라는 거예요. 그 말에 신나서 더 열심히 했지요. 그러다보니 여기까지 왔죠. 이 나이가 돼도 칭찬이 사람을 바꾸더라고요.” 
황씨는 마라톤을 하면서 건강해진 것은 물론 인생에서 중요한 것을 배운다. 욕심내지 말고 자기 페이스 지키기. 긍정적인 마음. 칭찬과 격려 등. 엄마가 열심히 해서 뭔가 이뤄내는 모습을 보면서 딸아이도  더 엄마 말을 잘 듣고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네일아트는 고객의 손을 잡고 눈을 보며 하는 좋은 직업이지만 늘 고객이 만족하도록 예쁘게 해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다는 황씨. 예전에는 그런 스트레스를 친구 만나 술 마시고 수다 떠는 것으로 풀었는데 이제는 마라톤으로 건강하게 스트레스를 푼다. 앞으로 하프마라톤에도 도전하겠다는 목표도 가지고 있지만 천천히, 욕심내지 않고 나아갈 생각이다.   
“운동을 하니 잡념도 없어지고 몸이 개운해요. 기록이 좋아지면 더 재미있죠. 대회에 나가서 경쟁하는 기분도 새롭고요. 몸이 피곤해도 비염이 또 도질까봐 매일 조금이라도 달리게 되는데, 오늘은 10분만 뛸까, 하다가도 어느새 계속 뛰고 있는 나를 발견하죠. 일단 운동복을 입고 공원에 나가면 몸이 알아서 가요.” 

박순태 리포터 atasi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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