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 산 지 11년… 아프리카 사람에 대한 인식 바꿔주고 싶어
지난 7일, 검은 피부의 버지니아 (37.여)씨가 여행용 캐리어를 끌고 호원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섰다. 콩고민주공화국(이하 콩고)에서 온 버지니아씨는 안산시외국인주민센터의 다문화강사다. 오늘 이 학교 2학년 3반에 ''찾아가는 다문화체험 일일교실'' 수업을 하러 왔다. 다문화수업은 청소년들에게 외국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 목적이다.
콩고 인사하면서 친해지기
“콩고에서는 인사할 때 볼에 뽀뽀를 3번씩 해요. 선생님이랑 콩고인사 한번 해 볼 사람~ ” 한 아이가 나와 버지니아 씨와 뺨을 대며 인사를 하자 다른 아이들도 줄을 선다. 버지니아 씨는 콩고의 전통의상인 ‘리뿌따’를 꺼내 허리에 둘러 치마로 입고, 머리두건, 포대기로 이용하는 시연을 한다. 흑인들의 레게머리처럼 아이들의 머리를 땋아주기도 한다. 콩고식 인사와 등에 업거나 머리를 땋아주는 스킨십을 통해 버지니아 씨는 아이들이 ‘아프리카 사람’과 친근한 마음을 가지기를 바란다.
어릴 때 대사관에 근무한 아버지를 따라 네덜란드 벨기에 프랑스 등 유럽에서 살았던 버지니아 씨. 12살 때 콩고로 돌아가 살았지만 오랜 내전 때문에 경제가 어려운 콩고를 떠나 2000년에 한국으로 왔다. 처음엔 반월공단 작은 공장에서 일했는데 피부색이 검어서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열심히 일 해야 했다. “공장에 다닐 때 고생을 많이 해서 생각하는 것조차 싫다”며 버지니아 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프리카 사람도 똑같은 사람
유럽에서 살아 프랑스어와 영어가 능통하고,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전공한 엘리트지만 검은 피부색으로 한국에서 살기는 힘들었다. 십년 전만 해도 밖에 나가면 ‘아프리카 사람’이라고 아이들이 따라왔고, 복잡한 전철에서도 버지니아 씨의 양 옆 자리는 비어 있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이후 흑인을 보는 시선도 많이 달라졌다.
버지니아 씨는 성격이 긍정적이고 밝은데도 한국에 11년이나 산 사람치고 우리말이 서투르다. 그 이유는 한국인 친구들이 영어를 배우려고 해서 늘 영어로 말했기 때문이란다. 공장생활은 3개월쯤으로 접고 이후 7~8년 동안 영어강사로 서울로 오가며 열심히 살았다. 다문화강사로 활동한지는 1년이 됐다.
“나 피부색 때문에 일 하는 거 정말 힘들었어. 이렇게는 안 돼, 사람들 생각을 바꿔줘야겠다, 생각했어. 아프리카 사람 안 무서워. 오해 풀어야 해. 다문화수업 너무 좋아.”
다문화강사 일은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일을 잘 하는 버지니아 씨에게 꼭 맞는 일이다. 다문화 수업에는 11년간의 한국생활에서 경험한 일들이 생생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국 아줌마 대박! 진짜 열심히 살아요~”
버지니아 씨에게는 올해 9살이 된 아들 다니엘(한국이름 승리)이 있다. 원곡초 2학년인 다니엘은 한국어와 영어가 다 유창하다.
“다니엘은 자기가 한국 사람이라 생각해. 콩고는 엄마 고향이지 내 고향은 아니야, 해.”
한국에서 태어나도 한국국적을 갖지 못하는 다니엘을 보면서 버지니아 씨는 오래 고민했지만 최근 생각을 바꿨다. 자신이 한국 국적을 따서 다니엘을 한국 사람으로 키우기로 한 것. 그래서 한국어 공부를 하고, 일도 더 열심히 하려고 한다.
버지니아 씨에서 한국 살아보니 한국아줌마들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새하얀 이를 드러내 웃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나도 지금 한국아줌마야~. 우리 한국아줌마는 다 예뻐요. 한국아줌마는 다른 나라 아줌마보다 열심히 살아. 남편, 아이 생각 많이 해. 한국아줌마 진짜 대박이야.”
박순태 리포터 atasi22@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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