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러 올라가면 스승의 날에 교사에게 선물하는 관행은 ‘훈장시절’부터였다. 천자문이나 명심보감을 끝내면 책걸이란 명목으로 떡을 빚어 훈장의 노고에 보답했던 풍속이 있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초고액, 호화선물로 변했고 ‘선물’의 의미가 자기자식을 잘 봐달라는 뇌물성을 띠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남 모 교사(경력 4년)는 “대부분의 교사들은 스승의 날 선물을 부담스러워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은 ‘정성’을 보이고 싶다. 그래서 일선 학교 교사들에게 물어봤다. 정말 난감했던 선물과 최고로 고마웠던 선물을.
내가 받은 최고의 선물
자취하는 교사에게 밑반찬 선물
중학교 김 모 교사(경력 7년)는 자취생이다. 그녀가 받았던 최고의 선물은 학부모가 정성껏 보내온 반찬세트였다. 그녀의 고향은 시골, 학부모는 어떻게 알았는지 촌에서나 먹음직한 반찬들을 보내왔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동료 교사들도 저를 얼마나 부러워했다구요. 반찬도 반찬이지만 일일이 재료 손질하고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을 그 어머니의 정성에 더 감복했죠. 몇 년 전 일이지만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제 교사 생활 최고의 선물이었어요”라는 김 교사.
그렇다고 결혼한 교사에게 덥석 김치나 반찬을 안기지는 말자. 아무리 정성이 들어간 밑반찬이라도 부담스러워하는 교사들도 있다는 설명.
교사 몰래 준비한 깜짝 파티
초등학교 권 모 교사(경력 5년)는 생일과 스승의 날이 며칠 차이나지 않던 해를 떠올렸다. 6학년 담임을 맡았던 해였다. 스승의 날 전날 교실에 들어섰는데 온 교실이 파티장 분위기였단다. 풍선이 매달려있고 칠판에 ‘선생님, 사랑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등 온갖 글이 써 있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반 아이들이 저 몰래 파티를 준비했더라고요. 방과 후에 다른 데 모여서 종이접기도 하고 풍선도 불고, 그날은 일찍 등교해서 교실을 꾸미고 했답니다. 그걸 준비하는 아이들을 상상하니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정말 감동한 기억이 있습니다”고 말하는 권 교사.
권 교사는 부모 돈으로 사 들고 온 싱싱한 카네이션보다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아이의 어수룩한 편지가 더 정겹다고 전한다.
이런 선물 난감해요
짝퉁 지갑, 어찌하오리까
중학교 이 모 교사(경력 15년)는 ‘지갑’ 선물을 받고 난감했던 기억을 말했다. 학부모가 스승의 날 선물이라고 지갑을 놓고 갔다. 사양하는데도 기어이 손에 쥐어주고 갔단다. 자꾸 거절하는 것도 학부모 입장에선 난감할 것 같아 받아뒀다.
이 교사는 “제 지갑이 마침 새것이라 교환해서 부모님을 드릴까 했죠. 그래서 그 상표 매장에 가지고 갔더니 정품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좀 민망했던 걸로 기억합니다”고 말한다.
반대로 당당하게 ‘짝퉁’임을 밝히고 선물한 학부모도 있다. 중학교 최 모 교사(경력 8년)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난감했던 일이 있었다. 그해, 어떤 선물도 사양한다는 안내문이 학부모에게 전달됐는데도 굳이 선물을 가져 온 학부모가 있었다.
최 교사는 “절대 받을 수 없다고 했더니 그 학부모가 ‘짝퉁이어서 받으셔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도 안 된다고 사양했더니 오히려 화를 내시면서 ‘짝퉁’이어서 안 받으시냐고 흥분하시는 통에 받았죠. 그러곤 그 제품 매장에 가서 진짜 ‘짝퉁’이 맞는지 감정을 받았다”며 웃지 못 할 선물이었다고 말한다.
당당하게 내미는 현금
초등학교 남 모 교사(경력 4년)과 초등학교 이 모 교사(경력 7년)은 학부모들이 너무도 당당하게 내밀던 현금과 상품권을 꼽는다.
남 교사는 “선물을 바라는 교사는 잘 없습니다. 그런데도 현금을 들고 오셨던 학부모가 계셨죠. 교사 입장에선 정말 자존심상하고 화가 납니다. 무시하는 것도 같고. 아직도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선 얼마를 줘야 하는가로 이야기가 오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절대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고 말한다.
상품권이나 고가의 선물도 마찬가지다. 이 교사는 “현금은 너무 노골적이니까 상품권이나 그에 상응하는 고가의 선물을 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도 사양합니다. 바라지도 않지만 대책 없이 그런 걸 받았다가 곤란해지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기 때문입니다. 학부모들의 시각도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고 전한다.
교사들은 “스승의 날이 선물로 왈가왈부 되는 것 자체가 섭섭하다”고 입을 모은다. 스승의 날에 휴교하는 학교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겠지만, 휴교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물을 가져오라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라고.
또 “학기 초에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장이 ‘스승의 날 선물 관련한 명확한 언급’이 없었다고 선물을 해야 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학부모가 있는데, 절대 그러지 말았으면 한다”고 당부한다. 이젠 그런 언급 없어도 될 만큼 학부모들의 인식전환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때문이란다.
허희정 리포터 summer0509@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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