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별 다를 것 같지 않는 내일. 우리네 삶이 영화 속의 주인공의 그것과는 한참 동떨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카메라 한 대가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다면? 남편 반찬 투정에 아이와의 공부 실랑이, 통장잔고를 바라보며 나오는 한숨과 친구가 전해주는 유쾌한 수다는 모두 이야기꺼리가 된다. 때로는 삶의 고단함에 공감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에피소드에 웃음 지으며 보았던 다큐멘터리. 모른 척 하고 싶었던 내 안에 숨어있는 위선과 무관심을 톡톡 건드릴 때,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고개를 끄덕이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다.
●장면 하나, 카메라 들고 나타난 남자
2004년 봄, 그 땐 그랬다. 원주에 살면서 상업영화가 아닌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싶으면 서울로 가야했다. 상업영화 중에서도 흥행이 보증 안 된 영화들은 선택할 기회도 없었다. 한 남자가 카메라 들고 원주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 남자는 다큐멘터리가 보여주는 세상이야기가 마냥 좋은 김성환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동강은 흐른다’ ‘우리 산이야’등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환경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한 김 감독과 다큐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상다큐 동호회 ‘나무’. 비전향장기수들을 다룬 ‘송환’을 처음 보며 시작한 동호회는 지난 2월 상영한 ‘쿠바의 연인’까지 벌써 72번 째 작품을 같이 나누고 있다.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최신작을 주로 상영하는 ‘나무’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도 소중한 모임이다. 원주 프리미엄 아울렛 4층에 마련된 영상공방에서 영상교육을 받고 직접 영상을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면 둘, 다큐멘터리와 사랑에 빠진 여자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저녁7시, 원주영상미디어센터 한쪽 의자에 여자가 앉아있다. 다큐영상 속의 인물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는 그녀는 동호회원 이명신(47)씨다.
그녀가 꼽는 다큐멘터리의 매력은 “삶의 진실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극적인 허구 없이도 재미있고 감동스러운 게 다큐죠. 현실을 찬찬히 바라보며 배우는 게 많아요. 인권과 여성, 외국인 노동자와 같은 우리 사회 단면의 그림자가 더 또렷이 보이기도 하고요. 김성환 감독님 말처럼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문득, 그녀도 씨크릿 가든을 봤을까? 입속에 맴돌기만 하던 질문을 하고 말았다. “첫 회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봤어요”라는 그녀의 대답에 마음이 편해지는 이 기분은?
“다큐는 무겁고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 막상 보면 안 그래요. 표현은 가볍고 따뜻하면서도 그 속에 녹아있는 의미는 진한, 재미있는 다큐가 얼마나 많은데요. 지난번에 상영한 ‘쿠바의 연인’같은 경우도 남녀노소 다 좋아했답니다.” 그녀의 말을 듣노라니 다큐멘터리가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장면 셋, 원주에서 열리는 다큐영화제를 꿈꾸며
올해에는 영상다큐동호회 나무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한다. 원주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제를 여는 것. 다큐영화제를 열고 싶은 이유에 대해 “다양한 시각과 소통의 장인 다큐멘터리 세상에 많은 분들을 초대해 같이 누리고 싶은 것이 첫 번째 목적이고요, 제작의 노력과 기간에 비해 경제적 이익은 많지 않은 다큐제작자들의 기운도 북돋우고 싶어서요”라고 답하는 나무 회원들. 다큐멘터리 애호가가 늘어 다큐얘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한다. 잔잔한 일상 속, 카메라가 돌지 않아도 그들의 꿈은 촬영 중이다.
♣영상다큐 ‘나무’가 추천하는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경계도시 2-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귀국과 간첩혐의를 통해 분단국가 한국의 내면을 들여다 본 작품
○쿠바의 연인-폭탄 머리 쿠바 청년과 한국 여인의 사랑과 결혼이야기
○우리들은 정의파다-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짓밟는 독재정권과 이에 맞서는 여성노동운동의 현장을 다룬 이야기
○동강은 흐른다- 동강 변에서 살던 가족이 영월 댐 건설계획으로 겪는 변화와 아픔을 다룬 작품
○소리아이-집안과 부모는 달라도 판소리 최고의 소리꾼이 되기 위한 열정은 똑같은 두 소년의 꿈과 노력을 담은 작품
문의:010-9158-0099 http://cafe.naver.com/wjnamu
홍순한 리포터 chahyang34@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