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경제 교실

부채의 늪’에서 탈출하는 법

지역내일 2010-08-31
“절대 저축하지 마라. 저축은 인생을 즐길 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사고 싶은 대로 다 사라. 신용카드 대금이 밀려도 걱정할 필요 없다. 신용카드를 하나 더 만들면 그만이다.” 미국의 변호사이자 배우 벤 스타인이 저서 <당신의 인생을 망치는 방법(How to Ruin Your Life)>에서 꼽은 ‘인생을 망치는 십계명’ 중 일부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가 이 ‘패가망신의 계명’을 너무 충실히 따르지 않는가 하는 걱정이 든다. 우선 ‘저축률’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일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세계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2010년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을 3.2퍼센트로 전망했다. 회원국 평균 8.5퍼센트보다 무려 5.3퍼센트 낮다. 순위는 17개 회원국 가운데 일본과 함께 최하위다. 1990년대까지 세계 1위를 달리던 저축률이 어느새 꼴찌 수준으로 전락했다.
대신에 신용카드 이용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신용카드 보유 수는 지난 20년 사이 7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신용카드는 안전하고 편리한 결제수단이다. 하지만 신용카드의 또 다른 얼굴은 누구나 순식간에 빚더미에 앉게 할 수 있는 ‘빚 카드’라는 점이다. 신용카드는 “버는 범위 내에서 쓰고 수입 안에서 지출한다”는 경제생활의 기본 원리를 잊게 만든다. 신용카드가 ‘지금 쓰고 나중에 갚는(buy now, pay later)’는 대표적인 ‘후불 시스템’이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다.
우리 생활에 뿌리내린 후불 시스템은 또 있다. 바로 ‘마이너스 통장’이다. 마이너스 통장은 요구불예금 계좌에 신용 한도를 설정해놓고 필요할 때마다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찾아 쓸 수 있다.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은 ‘내 돈’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갚아야 하는 ‘남의 돈’이다. 실제로 요즘 신용카드와 마이너스 통장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가계 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가계부채는 2009년 말 현재 약 734조 원으로 최근 2년간 103조 원이나 늘었다. 2008년 말 현재 우리나라는 명목 GDP 대비 가계 부채 비중이 78.2퍼센트로 OECD 국가 평균(64.4퍼센트)을 훌쩍 넘어섰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 등 선진국에서 과소비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가계 부채를 줄이려는 노력이 한창인 것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렇게 대책 없이 빚이 늘다 보니 가계의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4인 가족 기준 1년간 이자로 나가는 돈만 평균 200만 원이 넘는다.
부채를 줄이려면 신용카드나 마이너스 통장 같은 ‘후불 시스템’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우선 신용카드는 이용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신용 한도만 정해놓고 한도 내에서 사용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한다면 불필요한 사용 한도는 축소하는 게 바람직하다. 신용이 쌓이면 사용 한도는 언제든지 다시 늘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당장 쓰지 않는 마이너스 통장도 과감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부채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용카드나 마이너스 통장을 마치 내 돈인 양 생각하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갑에 꽂혀 있는 신용카드나 마이너스 통장에서 돈을 꺼내고 싶은충동이 들 때마다 그게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이라는 생각을 떠올려야 한다.

박철 연구위원
(KB국민은행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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