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구제역이 한 곳이라도 더확산될 경우 위기관리 수준을 ‘심각’ 단계로 격상, 중앙안전재난대책본부를 가동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청사 종합상황실도 가동 준비를 마쳤다.
정부는 3일 충남도에 정용준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관을 단장으로 국무총리실과 국방부, 행안부, 농식품부, 환경부, 국토부 등 유관기관 관계자가 모두 포함된 지원단을 파견했다. 인천·경기 지역에도 정부지원단이 나갔다. 이들은 지자체의 방역상황을 점검하고 필요한 정부지원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역할을 한다.
◆발생지역 관계자 2주일간 격리 = 정부는 이번 구제역 확산원인을 사람을 통한 감염으로 보고 있다. 청양군의 충남도 축산연구소의 경우도 감염경로가 강화나 김포에서 온 차량운전자일 것이라는 추정이다. 현재 진행 중인 방역과 소독만으로는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구제역 발생 지역에 있는 사람들의 이동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방안을 내놨다.
실제 지난 1일 구제역이 발생한 청양의 축산연구소 관계자들은 구제역 발생 이후 단 한 사람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캠핑카까지 동원해 연구소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도록 하고 있다. 방역관계자 등 외부 인원의 출입도 막고 있고, 한 번 들어간 사람들도 앞으로 2주간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주민들 협조가 관건 = 정부는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협조가 관건이라고 보고 있다.
5월 나들이가 많은 계절인데다 지방선거까지 겹쳐 사람들의 이동이 잦을 수밖에 없다.
정용준 행안부 재난안전관리관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역은 구제역 발생지역을 철저히 격리시키는 일”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들이 이동을 자제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구제역 발생 지역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모든 도로에 초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큰 도로는 물론 각종 샛길까지 차량이 오가는 통로는 모두 방역초소를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초소 운영인력이 부족한 곳은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기로 했다.
실제 단일 지역으로는 축산규모가 가장 큰 충남 홍성군의 경우 군청 직원들과 함께 지역 축산농가 주민들이 함께 방역초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 덕분에 외부 인력 지원 없이도 방역초소가 완벽하게 운영되고 있다.
정 관리관은 “홍성지역은 정부가 방역장비와 약품만 제때 공급해주면 방역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라며 “이런 사례를 방역초소를 운영하는 전국 모든 지역에 전파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성군은 2000년 구제역 발생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경험 탓에 발빠른 방역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한편 정부는 강화도와 김포, 충주, 청양 등 구제역 발생이 광범위하게 확산되지 않고 각 지역에서 부분적으로만 발생한 것에 대해 지금까지의 방역 효과가 큰 것으로 보고 있다. 구제역 발생 지역 사람들의 이동을 철저히 통제하면 추가 확산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충청농가 ‘시련의 계절’
냉해에 구제역까지 … 지자체 “피해보상 서두를 것”
이상저온과 냉해로 시름에 젖어있던 충남지역 농가가 구제역까지 발생하면서 ‘시련의 계절’을 겪고 있다.
지난 1월 인천 강화에서 발생한 구제역으로 충남지역 우시장은 3개월 내내 폐쇄돼 있고, 이번 청양의 구제역 발생으로 산지 소값 하락은 물론 소비심리 위축까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청양 구제역 발생 이후 충남도내 소·돼지·산양 등 우제류 267만7445마리 가운데 3일까지 5891마리가 살처분·매몰됐다. 충북 충주에서도 지난달 말 1만2620마리의 우제류가 살처분됐다.
냉해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배·사과·복숭아 등 지역 과수농가에서는 올해 4월 기온이 예년보다 평균 10도 이상 떨어지면서 대부분 농가가 냉해 피해를 입었다. 충남의 전체 과수농가 4500여㏊ 가운데 260㏊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신고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 농가가 늘어나는 추세다. 충북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충북 음성군 소이면에서 복숭아를 재배하고 있는 신명인씨는 “냉해로 복숭아나무가 대부분 죽어버렸다”며 “앞으로 4~5년은 수확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한숨을 내셨다.
보상 문제도 걱정거리다.
과수농가의 냉해피해는 지난 달 말부터 피해조사가 진행 중이지만 열매가 맺었는지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한 이달 중순이 지나야 정확한 조사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최대한 보상해 준다고 해도 농가의 실제 피해액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특히 나무 자체가 죽어버린 복숭아 농가 등은 앞으로 4~5년은 수확을 할 수 없는 처지여서 농가피해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다.
축산농가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당장 살처분한 소·돼지의 보상도 문제지만 앞으로 몇 년간 소득이 없어 심각한 생활고가 예상된다.
충남도 관계자는 “지역농가의 이중고를 아는 만큼 피해보상과 생계안정자금 지원을 서두르겠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토종 씨수소를 보호하라”
천안 국립축산과학원·서산 한우개량사업소 초비상
국내 토종 가축의 종자를 보존·공급하는 충남 천안의 국립축산과학원 축산자원개발부와 씨수소 200여 마리를 보유하고 있는 서산의 농협 한우개량사업소 등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이번 구제역은 일반 축산농가가 아닌 방역 체계가 잘 갖춰진 전문 연구기관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이들 기관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천안 축산자원개발부는 지난 1일 구제역 발생 직후 외부인의 출입을 전면 차단했으며 직원들의 구제역 발생 인근 지역으로의 출장과 주말 외출을 금지했다. 또 개발부 안에서 진행 중인 건물 증축과 내부 수리 공사도 중단했다. 외부 음식물 반입조차 금지한 채 구제역 추가발생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축산과학원 관계자는 “이미 씨종자 분양이나 정액 등의 반출은 금지된 상황”이라며 “청양 축산기술연구소와는 60㎞ 이상 떨어져 있지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이중삼중의 방역망을 구축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곳은 우수 축산 품종을 개발·보존하며 전국에 종자를 보급하는 국내 유일의 축산 전문기관으로 고능력 젓소, 종축돼지, 토종오리 등 우리나라 대표 종자들을 보유하고 있다.
서산 한우개량사업소 역시 발생 당일인 1일 후보 씨수소 150여마리 중 34마리를 경북 영양군 내 축협 생축장으로 급히 분산했으며, 2일에도 추가로 16마리를 영양군으로 이동시켰다.
한우개량사업소는 이미 포천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지난 1월 초 사업소에 보관 중인 수소 정액 44만여 스트로 중 절반이 넘는 30만여 스트로를 대전시 인근의 보관창고로 분산해놓은 상태다.
사업소 관계자는 “씨수소들을 추가로 분산시키려 해도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가 1982년 유전적으로 우량한 한우를 만들고자 설립한 한우개량사업소는 전국 한우 암소 100만여 마리에 정액을 공급하는 씨수소 57마리와 후보 씨수소 150여마리, 일반소 2400여마리를 보유한 한우 유전자원의 보고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이순신 축제도 취소
구제역 여파로 5월 각종 행사 취소 잇따라
아산 성웅 이순신 축제가 49년 만에 처음으로 취소됐다. 이순신 장군 탄신일인 지난달 28일부터 개최하기로 했던 이 축제는 천안함 사고로 오는 14~18일로 늦춰졌으나 충남지역 구제역 발생으로 결국 취소된 것.
아산시는 지난 4일 축제 취소 결정을 공식 발표했다. 이번 이순신 축제 취소 결정은 최근 인근 청양군에 있는 충남축산기술연구소에서 구제역이 발생하는 등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구제역이 지역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는 차원에서 이뤄졌다.
축제의 일부 프로그램인 문화콘텐츠공모전, 학술대회 등은 구제역이 진정된 뒤 일정을 잡아 열기로 했다. 이순신 축제가 취소된 것은 1961년 축제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아산시 관계자는 “지역의 대표 축제인데 천안함 사고와 구제역 여파로 결국 개최하지 못하게 됐다”며 “사태가 진정된 이후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계승할 다양한 행사 개최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천안함에 이어 구제역까지 확산되면서 5월 열릴 예정이던 각종 행사의 취소·연기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5일 예정됐던 어린이날 행사는 충남과 충북 대부분 지역에서 취소됐다. 8일을 전후해 열려던 어버이날 행사도 모두 취소됐다.
지난달 구제역이 발생한 충북 충주와 인접해 있는 음성군은 지난달 25일 열려던 반기문마라톤대회를 전격 취소했다. 올해 다섯 번째로 열릴 예정이던 이 행사는 참가 희망자만 1만4000여명이나 되는 대규모 행사였다. 에코원선양이 9일 대전 계족산 황톳길에서 열기로 했던 선양마사이마라톤대회도 10월 3일로 연기됐고, 충남 서산시가 다음달 11~13일 해미읍성 일대에서 열 예정이던 ‘서산 해미읍성문화축제’를 9월로 연기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난해에는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와 신종플루 때문에, 또 올해는 천안함 사고와 구제역 때문에 지역 축제를 연거푸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며 “행사를 준비한 사람으로서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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