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싹트는 희망일자리] 대전시 무지개클린사업단

찌든 때 빼며 주름진 마음도 ‘쫙~’

장애인·노숙인 20명 일하는 ‘희망 일터’ … 어려운 이웃 도와 ‘일석이조’

지역내일 2010-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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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최대의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다. 정부는 매월 국가고용회의를 열어 일자리창출을 위한 정책을 챙기고 있다. 하지만 내수시장 성장을 통한 일자리창출은 어려움에 봉착해있다.


따라서 공공일자리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다행히 정부의 공공일자리정책은 진화 중이다. 단순 취로사업 위주의 공공근로와 희망근로사업에서 ‘고용창출’에 방점을 찍은 지역공동체일자리사업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청년창업과 노인일자리 등 지역특성에 맞는 맞춤형 일자리정책도 활성화 조짐을 보인다. 행정안전부와 지자체 일자리정책 중 모범사례를 소개한다.


 


“남들처럼 꿈을 가질 수 있어 행복합니다.”


백문수(53)씨는 다발성경화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장애인이다. 젊어서는 방직회사도 다니고 미장일도 했지만 병이 생긴 뒤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 그는 5년 전부터 한 쪽 다리를 거의 사용하지 못한다. 제대로 치료받을 형편도 못 돼 삶을 포기하려고도 했다. 노숙자 신세로 몇 년간 거리를 헤매다 대전시 ‘무지개클린사업단’ 세탁공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있다.


백씨는 이곳에서 제일 중요한 다림질 일을 맡고 있다. 손기술이 좋아 가장 빨리 일에 적응했다. 이젠 제법 기술자 소리도 듣는다.


백씨의 한달 월급은 84만원. 최저임금 수준이다. 하지만 백씨에게는 출퇴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4대 보험에도 가입돼 있다. 겨우 5개월 정도 일하며 돈도 꽤 모았다.


백씨는 “모은 돈으로 유리공예 같은 새 기술을 배울 계획”이라며 “장애가 생긴 다리를 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정신지체장애 3급인 이재선(여·45)씨 역시 다니던 봉재공장을 그만두고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봉재공장에서 고된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은 한달 50만원 정도. 그나마도 일이 서툴다며 혼나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는 그런 일이 없다.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격려하고 돕는 직장분위기가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이씨는 기계를 이용해 상의를 다리는 일을 맡고 있다. 옷을 기계에 걸고 간단한 버튼 조작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씨는 “병석에 있는 남편을 잘 보살피고, 공부 잘하는 고등학생 딸의 뒷바라지도 잘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이곳에서 일하면서 많지는 않지만 적금도 붓고 있다. 가족의 꿈이 이곳에서 영글고 있다.


 


◆5개월만에 매출 두배로 = 이들의 일터는 대전시 동구 낭월동에 위치한 세탁공장. 대전시가 지난해 11월 취약계층 일자리 창출을 위해 만든 사회적기업 ‘무지개 클린사업단’의 작업장이다. 165㎡의 아담한 조립식 건물에 20명이 일하고 있다. 이곳이 아니었으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갖기 힘들었을 장애인과 노숙인들이다.


이 공장은 대전시가 노숙인 숯부작공장과 화훼사업단에 이어 설립한 세 번째 공장이다. 시는 노동부에서 사회적일자리사업 인건비(2년치) 4억3500여만원과 SK텔레콤, 한국인삼공사,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등으로부터 후원금 3억3500만원을 지원받았다.


이 공장은 처음에는 SK텔레콤·동양강철 등 7개 기업·기관이 맡긴 세탁물을 처리해주고 돈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일반 기업이나 모텔 등에서도 일감이 들어온다. 아직은 직원들이 서툴고 일도 많지 않아 월매출이 700만~800만원 수준이지만 처음 시작할 때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직원들이 일에 숙련되고, 세탁공장이 밖으로 많이 알려져 일감도 빠르게 늘고 있다.


공장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한춘구(38) 팀장은 “비록 지금은 자활을 위한 일자리에 불과하지만 직원들이 일에 적응하면서 일감이 늘고 있어 조만간 제대로 된 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의 배려를 받는 직장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세탁경력 8년차의 세탁기술기능사인 한 팀장도 안면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인이다. 다른 세탁소의 기사로 일하다가 이곳으로 옮겼다. 그는 이곳에서 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자신의 공장을 갖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노인·장애인 4000명에 세탁봉사 = 이들은 단순히 돈버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세탁봉사도 이들의 중요한 일이다. 작업량의 절반은 영구임대아파트 등 취약지구 독거노인과 장애인 이불세탁 등 봉사활동에 할애하고 있다. 대상은 판암·부사·법동 등 취약계층 밀집지역 주민 4000여명. 점차 봉사 대상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한 팀장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매주 60~70명의 노인과 장애인들 세탁물을 책임지고 있다”며 “손빨래가 어려운 분들의 세탁물을 깨끗이 빨아 집까지 배달하고 나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곳 직원들의 아버지 역할을 하고 있는 이홍구(68)씨도 “우리 같은 늙은이가 돈도 벌고 이웃도 도울 수 있으니 더 바랄 게 없다”며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황규홍 대전시 복지정책과 생활보장담당은 “일반 세탁시장 상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틈새시장을 계속 발굴해 공장의 일거리를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며 “일거리가 늘어나면 공장 규모도 키우고 채용 인원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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