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 앞에서 약속해놓고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상황은 바뀐다. ‘당신 없이 못 살아’는 ‘당신 때문에 못 살아’로 바뀌고, 남편은 집 안의 방관자로 전락하며 아내는 잔소리꾼이 된다. 늘 부딪히며 살다 보니 신혼 초 꿈꾸던 결혼 생활은 저만치 멀어진다. 그 정점이 되는 계기가 대략 결혼하고 10년이 지난 시점이라는데…. 과연 우리 집만 그럴까? 다른 집은 어떻게 사는지 들어봤다.
여보! 우리 집에
고춧가루가 없나 봐
결혼 11년 차 성현우(42)씨는 두 아이(네 살, 두 살)의 아빠. 경제적 여유를 위해 맞벌이하느라 다른 친구들보다 아이를 늦게 얻었다. 매번 사 먹는 음식에 물릴 때쯤인 1년 전 아내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퇴직했고, 성씨는 따뜻한 아내표 밥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성씨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식탁에서 붉은색은 찾을 수 없었다. 아직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덕분에 몇 달 동안 맹맹한 반찬만 먹다가 아내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 집에 고춧가루가 없나 봐? 난 얼큰한 음식이 먹고 싶은데, 아이들도 이제 김치랑 매운 것 좀 먹을 때 되지 않았나?”
며칠 뒤 김치 대신 깍두기가 상에 올랐는데 그 크기가 옥수수 알맹이만 했다. 아이들 먹이기 위해 크기를 줄였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수라상은 아니라도 언제나 정갈한 밥상을 차려준 아내였기에 서운함도 있지만 육아에 치인 아내의 수고를 알기에 투정은 안 한다고 한다.
“치사하게 먹을 걸 가지고 트집 잡는다지만, 하루 한 끼 집에서 먹는데 남편만을 위한 밥상이 생각나거든요. 아이들이 좀더 크면 가능하려나….”
수다스러워진 남편,
언니랑 사는 것 같아!
한지영(40)씨는 결혼 전 과묵한 성격에 말하기보다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듣던 남편의 모습이 그립다. 부지불식간에 지나간 결혼 생활 12년. 빠르게 지나간 시간만큼 남편의 모습도 변했다. 과묵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퇴근 후 집에 오면 회사에서 벌어진 일들을 쉴 새 없이 전한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 반찬에서 머리카락이 나온 일, 누구 대리가 집에서 부인과 다툰 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까지….
“심지어 설거지를 하면 옆에 서서, 빨래를 개키면 앞에 앉아서 얘기해요. 그러다 별 호응이 없으면 화를 내기도 하고. 이제는 내용은 건성으로 들어도 적당한 타이밍에 호응하는 수준이 되었답니다.”
그뿐이랴. 집안의 모든 일은 본인이 반드시 알아야 했고, 가까운 마트에 가려 해도 따라나서 장바구니를 드는 것도 거리낌이 없다. 한씨는 가끔 남편이 아닌 언니랑 사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남편의 잘못된 습관
아들에게 그대로
“여보, 욕실 전구 하나가 나갔어요.” “어, 조금 있다가 갈아줄게. 아직 하나 남았지?” “여보, 화분 좀 옮겼으면 좋겠는데 도와줘요.” “어, 이것만 보고 조금 있다가.”
매번 미루는 남편 때문에 이하경(38)씨는 천하장사에 맥가이버가 되었다. 신혼 초에는 작은 장바구니도 못 들게 하던 남편이 변한 것이다. 언제 남편의 무거운 엉덩이가 움직여 해결해줄지 기다리다 못해 결국 직접 해결했다. 결혼하고 13년. 세 아이를 둔 지금 못 박기, 전구 갈기, 케이블선 연결하기까지 전파사 아저씨의 도움 없이 웬만한 일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남편의 이런 모습에 어느 정도 포기할 때쯤 열두 살 큰아들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봤다.
“이것 좀 도와줄래?” “네, 엄마. 그런데 좀 있다가 하면 안돼요?” 순간 이씨는 1만 볼트 전류에 감전된 듯했다. “닮지 말라는 것은 용하게 닮는다더니 우리 아들이 그럴 줄 몰랐어요.”
소파에 배를 대고 누운 모습까지 흡사해 깜짝 놀란 적이 많다는 이씨는 드디어 담판을 짓기 위해 남편과 마주 앉았다. 아빠의 잘못된 습관이 아이들에게 스펀지처럼 흡수된 일을 얘기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집 안에서 모든 행동을 조심해달라는 것, 지금 해야 할 일을 ‘나중에’라는 말로 미루지 말 것 등 부부는 정말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물론 중간에 남편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이씨의 울먹이는 목소리 때문에 잠시 대화가 중단되기도 했다.
결혼 10년,
이제는 척 봐도 알아?!
하선호(39)씨는 요즘 들어 아내의 모습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결혼 전, 아니 출산하기 전만 해도 아내의 세수하기 전 모습은 볼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긴 머리를 단아하게 관리하고,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흐트러진 모습을 찾을 수 없었죠.”
그래도 간혹 모임이 있거나 외출할 때는 예전의 단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놀토인 어느 날, 어김없이 세수도 안 하고 집에 있는 아내에게 하씨가 물었다.
“친구들이랑 만난다는 날이 오늘 아닌가?” “아니, 내일이야. 당신이 애 좀 봐줘야 해.” “그럼 오늘은 안 씻겠다는 말이네?” “빙고! 근데 이상해. 2~3일에 한 번씩 세수하니까 피부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아.”
하씨는 이제 이런 아내의 모습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니 좋은 점도 많다고 한다. ‘어, 내가 그거 필요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바로 이런 것. 결혼 초 열심히(?) 싸운 덕에 서로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고 언제쯤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화가 나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잘 안 씻으면 어때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아내와 안락한 가정이 있는데. 하하하.”
최은영 리포터 solcp@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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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 집에
고춧가루가 없나 봐
결혼 11년 차 성현우(42)씨는 두 아이(네 살, 두 살)의 아빠. 경제적 여유를 위해 맞벌이하느라 다른 친구들보다 아이를 늦게 얻었다. 매번 사 먹는 음식에 물릴 때쯤인 1년 전 아내가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퇴직했고, 성씨는 따뜻한 아내표 밥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성씨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한 식탁에서 붉은색은 찾을 수 없었다. 아직 매운 것을 먹지 못하는 아이들 덕분에 몇 달 동안 맹맹한 반찬만 먹다가 아내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우리 집에 고춧가루가 없나 봐? 난 얼큰한 음식이 먹고 싶은데, 아이들도 이제 김치랑 매운 것 좀 먹을 때 되지 않았나?”
며칠 뒤 김치 대신 깍두기가 상에 올랐는데 그 크기가 옥수수 알맹이만 했다. 아이들 먹이기 위해 크기를 줄였다고 해도 이건 너무했다.
수라상은 아니라도 언제나 정갈한 밥상을 차려준 아내였기에 서운함도 있지만 육아에 치인 아내의 수고를 알기에 투정은 안 한다고 한다.
“치사하게 먹을 걸 가지고 트집 잡는다지만, 하루 한 끼 집에서 먹는데 남편만을 위한 밥상이 생각나거든요. 아이들이 좀더 크면 가능하려나….”
수다스러워진 남편,
언니랑 사는 것 같아!
한지영(40)씨는 결혼 전 과묵한 성격에 말하기보다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듣던 남편의 모습이 그립다. 부지불식간에 지나간 결혼 생활 12년. 빠르게 지나간 시간만큼 남편의 모습도 변했다. 과묵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퇴근 후 집에 오면 회사에서 벌어진 일들을 쉴 새 없이 전한다.
점심시간에 구내식당 반찬에서 머리카락이 나온 일, 누구 대리가 집에서 부인과 다툰 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있었던 일까지….
“심지어 설거지를 하면 옆에 서서, 빨래를 개키면 앞에 앉아서 얘기해요. 그러다 별 호응이 없으면 화를 내기도 하고. 이제는 내용은 건성으로 들어도 적당한 타이밍에 호응하는 수준이 되었답니다.”
그뿐이랴. 집안의 모든 일은 본인이 반드시 알아야 했고, 가까운 마트에 가려 해도 따라나서 장바구니를 드는 것도 거리낌이 없다. 한씨는 가끔 남편이 아닌 언니랑 사는 느낌이 들 정도라고.
남편의 잘못된 습관
아들에게 그대로
“여보, 욕실 전구 하나가 나갔어요.” “어, 조금 있다가 갈아줄게. 아직 하나 남았지?” “여보, 화분 좀 옮겼으면 좋겠는데 도와줘요.” “어, 이것만 보고 조금 있다가.”
매번 미루는 남편 때문에 이하경(38)씨는 천하장사에 맥가이버가 되었다. 신혼 초에는 작은 장바구니도 못 들게 하던 남편이 변한 것이다. 언제 남편의 무거운 엉덩이가 움직여 해결해줄지 기다리다 못해 결국 직접 해결했다. 결혼하고 13년. 세 아이를 둔 지금 못 박기, 전구 갈기, 케이블선 연결하기까지 전파사 아저씨의 도움 없이 웬만한 일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올랐다. 남편의 이런 모습에 어느 정도 포기할 때쯤 열두 살 큰아들에게서 남편의 모습을 봤다.
“이것 좀 도와줄래?” “네, 엄마. 그런데 좀 있다가 하면 안돼요?” 순간 이씨는 1만 볼트 전류에 감전된 듯했다. “닮지 말라는 것은 용하게 닮는다더니 우리 아들이 그럴 줄 몰랐어요.”
소파에 배를 대고 누운 모습까지 흡사해 깜짝 놀란 적이 많다는 이씨는 드디어 담판을 짓기 위해 남편과 마주 앉았다. 아빠의 잘못된 습관이 아이들에게 스펀지처럼 흡수된 일을 얘기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집 안에서 모든 행동을 조심해달라는 것, 지금 해야 할 일을 ‘나중에’라는 말로 미루지 말 것 등 부부는 정말 오랜만에 많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물론 중간에 남편의 언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이씨의 울먹이는 목소리 때문에 잠시 대화가 중단되기도 했다.
결혼 10년,
이제는 척 봐도 알아?!
하선호(39)씨는 요즘 들어 아내의 모습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결혼 전, 아니 출산하기 전만 해도 아내의 세수하기 전 모습은 볼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긴 머리를 단아하게 관리하고,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흐트러진 모습을 찾을 수 없었죠.”
그래도 간혹 모임이 있거나 외출할 때는 예전의 단정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놀토인 어느 날, 어김없이 세수도 안 하고 집에 있는 아내에게 하씨가 물었다.
“친구들이랑 만난다는 날이 오늘 아닌가?” “아니, 내일이야. 당신이 애 좀 봐줘야 해.” “그럼 오늘은 안 씻겠다는 말이네?” “빙고! 근데 이상해. 2~3일에 한 번씩 세수하니까 피부가 더 좋아지는 것 같아.”
하씨는 이제 이런 아내의 모습이 익숙해졌다. 그러나 결혼하고 10년이 지나니 좋은 점도 많다고 한다. ‘어, 내가 그거 필요했는데 어떻게 알았지?’ 바로 이런 것. 결혼 초 열심히(?) 싸운 덕에 서로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고 언제쯤 무엇을 하고 싶어하는지, 화가 나면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잘 안 씻으면 어때요? 눈빛만 봐도 통하는 아내와 안락한 가정이 있는데. 하하하.”
최은영 리포터 solcp@hana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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