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발머리 찰랑이며 교복 입던 여고시절은 믿어줘도 긴 생머리에 미니스커트 입던 아가씨 시절은 아무도 안 믿어주는 이제는 3·4·50대 아줌마. 루비족에 별별족이 다 있는 세상 그저 그런 아줌마족으로 살아가는 여자에게도 꽃처럼 싱그럽고 별처럼 반짝이던 시절이 있었다.
인생의 반은 추억이라고 했던가. 아직도 추억 속에서는 10대 20대 때의 낭만과 꿈이 살아 있다. 긴 육아의 터널을 빠져 나와 아이들 공부에 매달리는 아줌마도 봄비 촉촉이 내리는 늦은 아침이면 추억 속에서 소녀가 되고 아가씨가 된다. 아니 참~ 되고 싶다.
추억도 만들어 가는 것. 젊은 시절 즐겨 찾던 곳에서 추억 위에 추억을 덧칠 해볼까? 어떤 빛깔이 나올까? 친구, 아이들, 아니면 애인(?) 같은 남편 팔짱 끼고 추억의 거리에 나서본다. 곳곳에 그리운 추억의 조각들이 반짝인다. 눈물겹게 그리운 얼굴들이 겹치는 그곳, 추억의 거리에서 잃어버렸던 그 무엇을 찾을지도···
호떡 하나에 영화 한 편
부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라면 추억의 반은 역시 남포동이다. 시험 끝나면 친구들이랑 무작정 나갔던 남포동. 영화 한 편을 보든 밥 한 끼를 먹든 남포동을 나가야 노는 맛이 났다.
특히 영화는 남포동이라는 김지희(38·우동)씨. 고등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이브 남포동 부영극장에서 친구들과 그 당시 최고의 화제작 ‘사랑과 영혼’을 봤던 추억을 잊을 수가 없단다. 어둠이 깔리는 시간 남포동 거리에서 영화표를 사고 기다는 동안 극장 앞 찹쌀호떡 한 개는 코스였다.
영화관도 바뀌고 거리의 풍경도 바꿨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20년 전통의 찹쌀호떡 아저씨. 그 시절 호떡 만들던 현란한 아저씨의 손동작은 조금 둔해졌지만 그때 그 아저씨가 분명하다. 여전히 줄지어 사 먹는 호떡. 뜨거운 호떡 속 더 뜨거운 꿀이 줄줄 흐르던 그 맛이 생각난다. 지금은 뜨거운 호떡을 갈라 그 속에 견과류를 넣어준다. 호떡의 퓨전인가? 한층 세련된 맛이긴 한데 그 때 그 맛이 아니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부영극장 앞에서 30분 이상 기다리는 것은 예사였죠. 계단 위에서 하염없이 친구를 기다리면서도 즐거웠던 그 시절, 영화 한 편에 호떡 하나면 충분했어요.”
부드럽고 달콤한 감자샐러드
비엔씨 감자샐러드와 추억 한 접시
첫 아이를 입신하고 입덧으로 고생했던 이정희(36·좌동)씨. 지옥 같던 입덧 중 생각난 음식이 남포동 비엔씨 감자샐러드였다. 빵 사이에 낀 부드럽고 달콤한 감자를 칼로 썰어 한 입 먹으면 차가운 감자 속 아싹 씹히는 오이가 일품이었다. 자리가 없어 2층 입구에서 기다렸다 눈치껏 창가에 앉은 날은 덤으로 사람구경도 실컷 했다.
“남편이랑 도시고속도로를 타고 비엔씨에 가서 감자샐러드를 먹었죠. 친구들이랑 먹던 그 맛은 아니었지만 참 맛있었죠. 지금 또 먹고 싶네요.”
그때 그 시절 폼 잡고 갈 만한 곳이 비엔씨였다. 비록 고기는 아니지만 우아하게 칼질하고 따뜻한 우유(?) 한 잔 마시면 한 끼 식사로 그만이었다. 가격도 2천원을 넘지 않았다. 지금은 3천5백원이다. 가격은 달라졌지만 맛은 여전하다.
남포동 뒷거리를 걷는 날이면 잊지 않고 찾던 감자샐러드. 미각 속에서 추억으로 살아있다. 입덧도 몰아낸 추억의 맛, 잊을 수 없는 남포동의 맛이란다.
김부경 리포터 thebluema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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