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꿈꾸는 여성들(4)-부산성폭력상담소 지영경 상담실장

“사람의 소중함 배운 내 인생의 학교”

상담을 통해 인생 함께 고민해주며 지원해주는 ‘삶의 멘토’

지역내일 2009-12-04 (수정 2009-12-04 오전 10:20:56)


부산성폭력상담소 지영경 상담실장은 상담소 활동을 통해 사람을 대하는 품새,
여유로운 삶의 자세를 늘 새롭게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상담소가 나를 인간 만들어 줬죠. 이곳에서 정말 배운 게 많아요. 사람을 이해하는 폭과 사람을 대하는 품새가 넓어지고 겸손해졌어요.”
부산성폭력상담소 지영경(37) 상담실장에게 상담소는 꿈을 실현해가는 일터이자 사람을 대하는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준 학교다. 그의 청춘과 애정,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그는 11년차 베테랑이지만 “상담은 하면 할수록 어렵다”고 말한다. 다양한 사연의 내담자들을 접하면서 각 개인에 맞는 문제 해결책을 함께 고민하고 지원해주는 일은 늘 어렵다. 하지만 유쾌하고 편안한 웃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그에게 상담을 받다보면 건강한 기운에 바로 감염되지 않을까.

서로의 인생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들이 좋아 시작했던 일

부산성폭력상담소는 성폭력 및 가정 폭력을 비롯한 다양한 여성 및 가족문제를 상담해주고 지원해 주는 곳이다. 성폭력 피해자 치유 프로그램 및 가해자 교정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진행하며 학생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대상별로 눈높이에 맞는 성교육을 실시해 오고 있다.
그는 1997년 우연히 아는 선배의 소개로 상담소와 인연을 맺게 됐다. 무작정 사람이 좋고 재미있어 힘든 줄 모르고 시작했던 일이었다.
“서로의 인생에 대해, 사람을 중심에 놓고 함께 밤 새워 고민해주는 이 곳 사람들이 너무 좋았어요. 대학시절 총여학생회 회장으로까지 활동하며 여성 문제를 접하긴 했지만 그 때는 구호성에 그치거나 얕은 지식으로 신심을 다한 운동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가 정식으로 상담원 교육을 받으며 접한 우리 사회 성문제의 심각성에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이후 4~5년 간 죽기 살기로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어요. 늦은 밤까지 야간 상담하고 이곳 저곳 쫓아다니며 힘든 줄 모르고 정말 신나게 일했죠.”
다양한 내담자들의 사연을 듣고 상담을 하고 그 내용들을 분석 연구해서 다양한 후속 사업들을 고민해서 벌여 오느라 어떤 때는 주 7일 근무, 야근까지 해도 부족할 만큼 많은 일들이 쏟아진다.


부산성폭력상담소에서는 남성, 여성 모두 행복해지는 성평등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행사 사회를 보고 있는 지영경 실장

워킹맘으로, 세 아이의 엄마로 배우며 꿈꾸며 살아가기

1992년 부산여성회 내 부설기관으로 출발했던 부산성폭력상담소는 그동안 외형적으로 많이 확대되고 성장했다. 하지만 그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어떻게 하면 조직을 더 견실하게 다듬고 많은 일꾼들을 키워낼까 고민이다. 아직 고민 많고 발로 뛰며 희망을 꿈꾸는 십 수년 전 대학시절 청년의 모습 그대로다.
그렇지만 현실은 늘 녹록치 않다. 그는 2, 4, 6살 세 아이의 엄마이고, 1년에 10여 회가 넘는 제사를 챙겨야 하는 종손 며느리다.
“저는 두 딸을 가진 엄마예요. 우리 아이들에게 밤길 힐끗힐끗 뒤돌아 보며 가슴 졸이게 만드는 이런 세상을 물려주기 싫어 더 열심히 일하게 돼요.”
일 하느라 세 아이의 육아는 고스란히 친정엄마의 몫이다. 늘 고마운 마음이지만 일상속에서는 “TV 좀 그만 보여줘라, 과자 먹이지 마라” 등 옥신각신 투정도 많이 부리게 된다. 하지만 상담소에서 일하는 인생 선배 주부들에게 “조바심 내지 말아라. 좀 더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고 사람을 대하라”는 당부를 들으며 많이 깨우치며 정작 중요한 게 뭔지 배워가는 중이란다.

오랜 세월 인연 이어온 상담 내담자들의 든든한 삶의 멘토

부산성폭력상담소에는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오는 상담 내담자들도 많다. 초등학생 시절 상담소를 찾았다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서까지 다양한 고민들을 상담원들에게 털어놓는다. 상담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집에도 방문하고 아이들이 당당하고 행복한 삶의 주인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후속 프로그램을 벌여온 결과이다. 상담소를 찾게 된 문제의 해결 뿐 아니라 인생 선배로서 다양한 삶의 문제를 함께 고민해 주는 든든한 삶의 멘토가 돼 주는 것이다. 상담소를 와서 함께 고민을 이어왔던 아이들이 나쁜 길로 간 경우는 거의 없단다.
사실 일 좀 그만 벌이고 쉬며 놀고 싶다면서도 “상담소만으로는 부족함을 느낀다. 집과 학교에서 적응 못하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둥지도 만들어주고, 치유센터도 만들고, 먹거리 및 공동육아를 함께 해나가는 여성공동체도 만들고 싶다”는 그는 천상, 일 욕심 많은 일꾼이다.

박성진 리포터 sj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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