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국경일에 태극기를 게양하지 않는 가정이 의외로 많다. 또 기초법규나 질서를 어기는 사람들도 간간히 눈에 띈다. 한 아파트에 살면서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인사조차 하지 않고 지내는 경우 또한 허다하다.
꼭 지켜야 하고, 또 지키면 우리사회가 아름다워지는 여러 가지 것들이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보며 할아버지들이 나섰다. 잠실5단지 경로당 할아버지들이 바로 그들. ‘국·기·예(1단계-국기사랑·나라사랑, 2단계-기초질서준수, 3단계-예의범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잠실5단지 경로당을 찾아 경로당 회장인 박철(70)할아버지를 만났다.
나라사랑 실천해요
지난 10월3일, 잠실3동 주민센터 앞에 태극기 띠를 두르고 대형태극기를 몸에 두른 할아버지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깨띠에는 ‘국경일에 태극기를 달자!’는 글씨가 뚜렷하다. 이들 30여명은 잠실5단지 경로당 할아버지들로 나라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이들의 선봉에 선 박철 할아버지는 “국경일에 아파트 베란다를 조사해보니 태극기 게양률이 4%도 되지 않았다”며 “국가의 경축일에는 반드시 태극기를 게양해야 하고 조기를 달아야 하는 날에는 또 조기를 게양하여 그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하나, 태극기의 뜻을 알고 제대로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는 것 또한 이들 할아버지들을 슬프게 했다.
“우리나라 태극기가 사실 참 복잡합니다. 그 뜻도 심오하고요. 태극문양의 색과 모양, 4괘의 위치와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알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런 캠페인을 벌이게 됐습니다.”
이들이 만든 전단지만 무려 5000여장에 이른다. 전단지에는 태극기가 상징하는 의미와 모양이 그려져 있고, 국기게양 일자와 게양 방법이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들은 이 전단지를 잠실5단지 전 가정에 배포하고 은행이나 우체국, 주민센터 등에도 보냈다. 신천초등학교에서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국기달기 가정교육을 유도, 이들의 캠페인을 돕고 있다.
몸에 밴 나라사랑
박 할아버지는 은퇴하기 전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육군대령 출신으로 전 국방대학교 교수로도 재직했던 만큼 박 할아버지의 나라사랑과 안보의식은 남다르다.
“1991년 군 생활을 마치고 국방대학교에 몇 년 몸담았습니다. 국방대학교에서 주로 한 일이 장병들의 정신교육이었죠. 그들에게도 나라사랑은 물론 법 준수, 예의범절, 기초질서 지키기 등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평생을 나라를 위해 일한 박 할아버지가 다른 경로당 할아버지와 함께 나라사랑 캠페인을 계획했을 때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이렇듯 만장일치로 캠페인을 펼치게 된 것은 경로당 다른 모든 할아버지들 또한 애국심이 투철했기 때문이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전쟁을 경험한 1930년대 생으로 너나할 것 없이 캠페인에 앞장서고 있다.
박 할아버지는 “예전에는 평소에 애국가도 많이 들을 수 있었고, 태극기를 의무적으로 게양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며 “어릴 때부터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좀 더 길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할아버지의 바람은 크지 않다. 캠페인이 확산되어 도미노현상처럼 온 나라에 퍼지길 바랄 뿐이다.
법과 사람도 사랑할 줄 알아야
이들 할아버지들이 국기사랑·나라사랑과 함께 펼치고 있는 기초질서준수와 예의범절 지키기 또한 생활 속에서의 작은 변화를 바라며 시작한 캠페인이다.
“다 피운 담배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거나, 아이의 손을 잡고 무단횡단을 하거나, 아파트 단지 안에서 너무 빠른 속도로 차를 몰거나 하는 것을 보며 안타까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또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같은 아파트 아래위층에 살면서 서로 인사도 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초질서와 예의범절을 지키면 나 자신은 물론 이웃들 모두에게도 기쁨과 행복을 주는게 됩니다.”
이를 위해 이들은 어깨띠도 두 종류(기초질서를 지키자, 예의범절을 지키자) 더 제작했다. 9~12월까지 이어지는 1단계 국기사랑나랑사랑 캠페인이 끝나면 1~4월에는 2단계 기초질서준수를, 5~8월에는 3단계 예의범절 캠페인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다음 캠페인은 12월 말에 있을 예정이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 즈음이면 잠실에서 또 한 번 태극기의 물결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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