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군불 피우는 영리병원
김광원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는 공공의료보험과 민영의료보험의 차이를 천당과 지옥의 비교만큼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미국의 영리병원체제인 민영의료보험이 초래한 비정함을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구체화한다. 의학에 대한 평가는 어려울지 모르나 의료보험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다. 이 영화는 그 제도의 좋고 나쁨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기계에 손가락 중 약지와 중지를 잘린 기술자가 접합수술을 받으려 한다. 의료보험이 없는 그는 중지 접합수술비용으로 6만달러, 약지 접합수술로 1만2000달러를 내야 한다. 결국 그는 약지 접합수술 하나만을 선택한다. 그래도 그는 결혼반지를 계속 낄 수 있게 됐다며 한숨을 토해낸다. 미국의 영리병원 체제가 만들어낸 비극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은 이미 선거공약의 최우선 과제로 의료개혁을 내세웠다. 지난 9월 9일에는 상·하 양원 합동연설을 통해 의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의료개혁의 과업을 짊어진 “마지막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오바마를 다시 케냐로”
그만큼 의료개혁은 미국의 숙제다. ‘세계 제일의 나라’ 미국의 의료제도는 37위(세계보건기구 평가)를 오락가락한다. 국민 중 4500만명이 의료보험에서 제외돼 있는 나라, 무보험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12분마다 1명꼴인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도 의료비는 한없이 올라간다.
더욱 눈여겨 볼 점은 미국사회가 의료제도의 개혁을 계기로 겪고 있는 내부갈등이다. 의료제도 자체도 문제지만 이의 개혁을 두고 벌어지는 계층 간의 대결양상은 훨씬 불길해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양원 합동연설 중 공화당 조 윌슨 의원의 ‘거짓말’이라는 고함은 그 전조에 불과했던 셈이다.
며칠 후 워싱턴 한복판에서 벌어진 수만명의 오바마 반대집회에서 나온 구호들은 섬뜩하다. 마치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오바마 케어(의료개혁)를 케네디와 함께 묻어버리자”는 막말이 나왔다. “사회주의 정책을 막아내고 미국식을 되찾자”는 이념구호가 등장하는가 하면 “오바마를 케냐로 돌려보내자”는 플래카드가 보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던 윌슨 의원은 카메라 초점의 대상이 되고, 무려 200만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국민은 국민대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리는가 하면 보혁의 이념대결로 이어진다. 뉴욕타임스가 사설을 통해 공화당 지도층이 미국의 노년층을 상대로 의료개혁안을 거짓으로 악선전하고 있다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미국의 의료제도를 베끼겠다는 우리 정부의 변함없는 태도다. 여론의 거센 저항에 밀리면서 의료민영화는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싶더니 정부는 아예 공론화를 피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면돌파보다는 우회돌파를 통해 여론의 둑을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다. 의료민영화의 문을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열어가는 식이다.
10월 추석연휴 직전인 1일 보건복지가족부(복지부)는 슬그머니 제주도에 주식회사 형태로 영리목적의 병원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민족대이동’이 뉴스의 초점을 이룰 때, 복지부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요청한 도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설립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정부의 꼼수가 매우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민영화에 부정적이던 복지부가 앞장선 것부터가 그렇다. 세상에 어떤 복지부가 민영병원을 도입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아예 입을 닫고 있던 복지부가 서비스 선진화방안에 영리병원 도입검토를 포함시킨 것이 지난 5월이다. 복지부 앞세우기는 정부의 ‘보이는 손’에 의한 조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2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들어선 윤증현 장관이 영리병원 도입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또 그의 2기 경제팀은 추경예산에 의료민영화 예산을 반영함으로써 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영리병원 설립요청의 장본인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도 부결로 마무리됐다. 제주에 영리병원을 삽질할 좋은 기회인 셈이다.
송도 거쳐 전국으로 퍼질 가능성
제주도민들은 이미 지난해 7월 여론조사를 통해 영리병원 도입을 중단시킨 바 있다. 이를 우회해 1년여 만에 복지부가 영리병원 제주상륙의 선봉부대로 나선 것이다. 영리병원 제주상륙은 곧 송도경제자유구역 등으로 이어질 것이고 전국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이 높다. 제주 교두보는 계책이 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영리병원 제주상륙이 미국 의료체제 이상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뿐 아니라 이명박정부에게도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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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원 (참미디어연구소 대표)
미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는 공공의료보험과 민영의료보험의 차이를 천당과 지옥의 비교만큼이나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미국의 영리병원체제인 민영의료보험이 초래한 비정함을 피해자들의 증언으로 구체화한다. 의학에 대한 평가는 어려울지 모르나 의료보험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다. 이 영화는 그 제도의 좋고 나쁨을 단박에 알 수 있게 해준다.
기계에 손가락 중 약지와 중지를 잘린 기술자가 접합수술을 받으려 한다. 의료보험이 없는 그는 중지 접합수술비용으로 6만달러, 약지 접합수술로 1만2000달러를 내야 한다. 결국 그는 약지 접합수술 하나만을 선택한다. 그래도 그는 결혼반지를 계속 낄 수 있게 됐다며 한숨을 토해낸다. 미국의 영리병원 체제가 만들어낸 비극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은 이미 선거공약의 최우선 과제로 의료개혁을 내세웠다. 지난 9월 9일에는 상·하 양원 합동연설을 통해 의료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의료개혁의 과업을 짊어진 “마지막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오바마를 다시 케냐로”
그만큼 의료개혁은 미국의 숙제다. ‘세계 제일의 나라’ 미국의 의료제도는 37위(세계보건기구 평가)를 오락가락한다. 국민 중 4500만명이 의료보험에서 제외돼 있는 나라, 무보험으로 사망하는 미국인이 12분마다 1명꼴인 나라가 미국이다. 그런데도 의료비는 한없이 올라간다.
더욱 눈여겨 볼 점은 미국사회가 의료제도의 개혁을 계기로 겪고 있는 내부갈등이다. 의료제도 자체도 문제지만 이의 개혁을 두고 벌어지는 계층 간의 대결양상은 훨씬 불길해 보인다. 오바마 대통령의 양원 합동연설 중 공화당 조 윌슨 의원의 ‘거짓말’이라는 고함은 그 전조에 불과했던 셈이다.
며칠 후 워싱턴 한복판에서 벌어진 수만명의 오바마 반대집회에서 나온 구호들은 섬뜩하다. 마치 우리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다.
“오바마 케어(의료개혁)를 케네디와 함께 묻어버리자”는 막말이 나왔다. “사회주의 정책을 막아내고 미국식을 되찾자”는 이념구호가 등장하는가 하면 “오바마를 케냐로 돌려보내자”는 플래카드가 보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던 윌슨 의원은 카메라 초점의 대상이 되고, 무려 200만달러의 기부금을 모았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국민은 국민대로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갈리는가 하면 보혁의 이념대결로 이어진다. 뉴욕타임스가 사설을 통해 공화당 지도층이 미국의 노년층을 상대로 의료개혁안을 거짓으로 악선전하고 있다고 지적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미국이 아니라 미국의 의료제도를 베끼겠다는 우리 정부의 변함없는 태도다. 여론의 거센 저항에 밀리면서 의료민영화는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싶더니 정부는 아예 공론화를 피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정면돌파보다는 우회돌파를 통해 여론의 둑을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다. 의료민영화의 문을 마치 도둑고양이처럼 열어가는 식이다.
10월 추석연휴 직전인 1일 보건복지가족부(복지부)는 슬그머니 제주도에 주식회사 형태로 영리목적의 병원을 만들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민족대이동’이 뉴스의 초점을 이룰 때, 복지부는 제주특별자치도가 요청한 도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영리병원) 설립을 수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 과정을 보면 정부의 꼼수가 매우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민영화에 부정적이던 복지부가 앞장선 것부터가 그렇다. 세상에 어떤 복지부가 민영병원을 도입하겠다고 나서겠는가.
아예 입을 닫고 있던 복지부가 서비스 선진화방안에 영리병원 도입검토를 포함시킨 것이 지난 5월이다. 복지부 앞세우기는 정부의 ‘보이는 손’에 의한 조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2월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들어선 윤증현 장관이 영리병원 도입을 다시 강조하기 시작했다. 또 그의 2기 경제팀은 추경예산에 의료민영화 예산을 반영함으로써 자리를 깔았다. 그리고 지난 8월에는 영리병원 설립요청의 장본인 김태환 제주도지사에 대한 주민소환투표도 부결로 마무리됐다. 제주에 영리병원을 삽질할 좋은 기회인 셈이다.
송도 거쳐 전국으로 퍼질 가능성
제주도민들은 이미 지난해 7월 여론조사를 통해 영리병원 도입을 중단시킨 바 있다. 이를 우회해 1년여 만에 복지부가 영리병원 제주상륙의 선봉부대로 나선 것이다. 영리병원 제주상륙은 곧 송도경제자유구역 등으로 이어질 것이고 전국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이 높다. 제주 교두보는 계책이 될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영리병원 제주상륙이 미국 의료체제 이상의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뿐 아니라 이명박정부에게도 불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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