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지쳤을 때, 그의 스승은 그에게 차라리 접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해보라고 권했단다. ‘하루하루 사는 것도 힘든데, 이 상황에 학교를 다시 다니라고?’ 처음엔 가당치도 않았던 그날 스승의 한마디가 그를 지금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 멘토가 되었다. 고난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더 소중하다는 파주시건강가정지원센터 조윤희 (42) 센터장.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여성들을 위해 이젠 자신이 아름다운 맨토가 되고 싶다고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겠지’ 긍정적 희망으로 버텼다
결혼했을 당시 그는 대학원 석사과정 1학기를 마친 상태였다. 곧 다시 학업을 계속하리라 했지만 결혼 후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친정의 형편도 넉넉지 않았지만, 시댁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게다가 첫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늘 긴장상태로 살아야했기 때문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는 것은 점점 더 그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그러던 와중에 IMF가 터지고 남편이 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일을 가져야만 했던 그는 “그래도 대학원 1학기 과정까지 마쳤고 조교경력도 있으니 쉽진 않겠지만 학원 강사는 할 수 있겠지” 생각했단다. 지금은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 대학원 1학기까지 다닌 그의 학력이 ‘아무 것도 아닌’ 현실 앞에서 겪었던 실망과 좌절은 참으로 아팠다. 특히나 결혼한 아줌마에게 지난 시간 쌓아온 경력은 재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막막했던 그는 대학시절 스승을 찾았다.
두 아이를 둔 아줌마, 꼭 일을 해야만 했던 절박한 제자에게 스승은 긴 말없이 복학해서 다시 공부를 하라고 권했다. “지금 당장 얻는 일자리가 생활에 큰 보탬이 되지 않을 바에는 당장은 힘들어도 차라리 접어두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해 확고한 자신의 일을 찾는 것이 살 길”이라는 의미였다.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충고였지만 스승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래서 길을 찾으니 또 길이 보였다. 나중에 갚아야 할 빚이지만 학자금대출제도로 등록금을 마련하고 “죽을 생각을 했으니 그 힘으로 공부를 하자”고 마음먹고 치열하게 공부했다. 수업을 들어야 하는 동안 아이들을 맡겨야 했지만 돈이 없어 어린이집을 보낼 수 없는 형편이라, 수업이 없을 때 어린이집에서 일을 하는 대신 수업 듣는 동안 아이를 맡아준다는 조건으로 학교를 다녔다. 밤에는 아이 하나는 안고, 하나는 등에 업고 어렵게 컴퓨터 키보드를 눌러가며 숱하게 밤을 세워가며 논문을 썼다. “석사과정을 마치기까지 1년 남짓 살아가면서 겪을 고생을 한꺼번에 다한 것 같다”는 그는 ‘주민자치센터 활성화 방안에 대한 연구’란 논문으로 당당히 석사가 됐다. “죽을 만큼 힘들다가도 이상하게 늘 끝에는 긍정적인 생각이 들었다”는 그가 어렵고 힘들었던 그 때 자신에게 했던 위안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믿음이었다고 한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빠른 때
20대 중반에 공부를 접었다가 그가 다시 복학했을 때가 서른다섯 무렵. 10여년 만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격려보다는 “딱하다”는 시선이 더 많았다. 먹고 살기 급급한 처지에 공부라니, 그것도 두 아이를 업고 안고…. 그렇지만 그는 ‘지금 이 나이에 어떻게, 너무 늦지 않았을까’ 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지극히 평범한 조언을 해주고 싶다”고 한다. 자신이 처했던 상황에 비하면 훨씬 유리한 상황임에도 ‘지금 시작해서 뭘 해’라고 포기하는 여성들에게 “나 같은 사람도 도전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사실 그에겐 경제적인 고통보다, 버거웠던 공부보다, 더 큰 아픔이 있다. 첫 아이도 약하게 태어나 고생했지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닐 정도로 둘째 아이가 발달장애를 안고 태어난 것. 아픈 자식을 둔 부모의 마음을 피상적인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어떻게 할까 고민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는 그가 행정학에서 사회복지로 전공을 바꾼 것도 아이 때문. 아픈 아이와 경제적 어려움, 지금은 더 돈독한 사이가 됐지만, 당시엔 남편과의 갈등도 극에 달했었다. 또 동료학우들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에 감당하기 버거운 공부 스트레스 등등 그런 악조건을 견디고 마흔둘의 나이에 파주시건강가정지원센터의 센터장으로 신흥대학 사회복지과 겸임교수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 지금, 오히려 남보다 빠르게 자리 잡았다고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단다.
여자라서, 아줌마라서 살만한 사회 만드는데 초석이 되고 싶다
조윤희 센터장은 “어려움 속에서 더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탄성은 타고난 것 같다”고 말한다. 둥글둥글한 인상이지만 그의 내면은 누구보다 강하다. 둘째 아이의 장애에도 고민은 잠시, 그는 “아이를 세상 밖으로 내던져 기른다”고 한다. 아이가 사회 속에서 살아나가기 위한 공부를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숨기지 않고 어디든 데리고 다니며 강하게 키운다.
또 파주시건강가정지원 센터장으로서 그는 직원들이 자기계발을 위해 공부를 하겠다고 하면 수업시간 등 여건을 최대한 배려해주는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힘들었던 시간을 견뎌 이뤄낸 지금의 결실이, 비록 거창하진 않아도 누군가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그는 센터장으로 교수로 바쁜 일정 속에서도 박사 5학기 과정을 밟고 있다.
요즘 그는 다문화가정 여성들에게 특히 관심이 많다. “그들도 한국에 시집온 우리와 똑같은 아줌마고, 우리 아이들의 엄마임에도 때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선입견을 갖는 현실이 안타깝다”는 그의 꿈은 “남성과 경쟁관계가 아닌, 아줌마라서 행복한 그런 사회를 만드는 일에 초석이 되는 것이다. 열정과 에너지가 팍팍 느껴지는 我줌마 조윤희, 멋지다!
이난숙 리포터 success6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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