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희망(이재원)

지역내일 2009-07-20
사람이 희망이다 - 이재원 소방위 / 서울 노원소방서 수락119안전센터 부센터장

일과후엔 업무개선 고민, 휴일엔 자원봉사
서울시 첫 창의왕 … 가족과 함께 6인조밴드 구성, 공연 준비중

“자전거 바퀴는 가벼우면서도 튼튼해요. 바퀴살을 빼내면 그 자리에 그물을 두를 수 있으니 간편하기도 하구요.”
이재원(59) 소방위는 요즘 버려진 자전거 바퀴와 파이프 그물 등을 수집(?)하고 있다. 동물구조 포획장비를 만드는 중이다. 최근 서울시 직원 창의 아이디어방인 상상뱅크에 등록한 아이디어. 비교적 제작이 간단할 듯 해 직접 실현에 옮기기로 했다.
“커다란 잠자리채를 생각하면 돼요. 기다란 채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유기동물을 잡을 수 있죠.”
동물구조활동이 늘어나고 있는데 장비가 없어 출동대가 맨손으로 구조활동을 벌이다 동물에 역습을 당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가 만드는 장비가 완성되면 그런 위험이 크게 줄어들 거란다.
“폐자원을 재활용해 기구를 만들기 때문에 환경측면에서도 도움이 돼요. 다른 소방서에 보낼 것까지 만들 겁니다.”

상상뱅크 등록 제안만 600여건

이재원 소방위는 서울시 공무원 중 창의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낸 주인공이다. 지난 3월에는 첫번째 ‘창의왕’이 됐다. 상상뱅크에 그가 등록한 창의아이디어만 639건. USB 등에 보관하고 있는 미등록 아이디어까지 합치면 1000건 가량 된다.
“창의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있는 것을 개선하고 응용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하는 도중에 그가 느낀 불편이나 같은 서울시민 입장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글로 옮겼을 뿐이란다. 안전훈련 도중 분말소화기를 사용하면서는 소화기에 일회용 마스크 주머니(고리)를 부착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분말이 호흡기로 들어가거나 초기 소화도중 유독가스를 흡입할 위험이 있잖아요. 소화기 상단에 방수가 되는 마스크 주머니를 걸도록 제작해서 1회용 마스크를 2~3개 넣어 소화기를 사용할 때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거예요. 훈련때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소화기를 사용하도록 해야죠.”
초중학교 안전교실을 진행하면서는 보다 효과적으로 어린이 소방안전교육을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현재 소방차나 각종 장비 구경 정도로 그치는 교육을 구연동화 형태로 바꾼다면 어린이들이 관심과 흥미를 더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다. 이 소방위는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다”며 직접 이야기를 구상할 뜻을 비쳤다.
‘일은 안하고 창의 구상만 했느냐’ ‘글 올리기는 시간만 해도 업무시간 다 가겠다’ 비아냥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었다. 눈총도 많이 받았다. 그러나 이씨는 “관심의 차이가 제안 숫자의 차이를 만들어낸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루 세끼를 먹으면서도 밥 한 공기를 먹을 때 젓가락질을 몇 번씩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거예요. 저는 평균 12번 정도 해요. 너무 빨리 먹는 편인가요?”
일하는 동안 작은 공책을 갖고 다닌다. “100m를 걸으면 100가지 창의제안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24시간 근무를 마친 뒤 집에 돌아가면 적은 내용을 입력한 뒤 다음 근무 시작 전 내부 전산망에 띄운다. 비번일 때 시민의 입장이 돼서 창의 ‘거리’를 발굴하러 다니기도 한다.
상상뱅크에 아이디어를 올리기 전에도 제도개선이나 장비개발 등 제안을 가장 많이 한 직원 중 하나다. 소방호스 꼬임을 방지하기 위해 고리를 붙이자거나 비상소화장치가 들어있는 상자부터 소화전까지 화살표시를 해서 알아보기 쉽게 하자는 등이었다. 아이들도 창의에 관심이 많아 아빠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이씨는 “창의왕이 된 것은 어찌 보면 아이들 덕도 있다”며 웃었다.

봉사하는 가족농악대 꿈꾸며

업무가 끝난 시간 그가 주로 하는 일이 창의제안 구상이라면 비번인 날은 자원봉사를 한다. 아내 정미숙(48)씨와 두딸, 두아들 모두 그와 ‘노선’을 함께 한다.
“1986년에 입사를 했는데 소방서에서 집단으로 봉사활동을 많이 하거든요. 그냥 몸에 밴 것 같아요.”
결혼 후에는 부인과 함께 봉사활동 시작했다. 강북 노원지역 장애인복지관과 노인복지시설 등을 주로 다닌다. 그는 목욕을 돕거나 목욕탕 청소처럼 주로 “힘쓰는 일”을 한다. 아내는 아이들이 태어난 뒤에도 학교를 보내고 나면 복지관으로 출근하다시피 하더니 1999년에는 미용자격증까지 땄다. 대상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서비스 중 하나가 미용봉사라는 걸 체득한 이후다.
네 자녀는 각각 네 살때부터 무술을 배우기 시작, 가족봉사때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안전을 일상에서 고민하는 그다보니 일상안전과 건강을 고려해 태권도와 쿵푸를 배우도록 했는데 각 도합 7단씩 실력을 쌓았다.
“가족 자원봉사활동을 할 때 좋아요. 대개 아이들이 자원봉사를 할 때 짐이 되곤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술시범은 무척 좋아하시거든요.”
5년 전부터는 욕심을 한가지 더 냈다. 음악으로 가족 화음을 연출하면서 자원봉사까지 해보겠다는 구상이다. ‘패밀리 브라스 밴드’라고 이름도 붙여두었다. 이 소방위는 호른, 아내는 드럼, 딸들은 트럼펫과 트럼본, 아들들은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각각 맡았다.
6인조 밴드를 꾸리자고 가족이 합의한 다음 필요한 악기를 검색했다. 수천만원대를 호가하는 튜바는 호른으로 대체했다. 화음을 해치지 않으면서 그 음색을 대신할 수 있는 악기였다. 음악을 전공하는 큰 딸이 전체 지휘를 맡는다.
“호른은 보조음이라 크게 어렵지 않아요. 아내는 강습을 받죠. 아이들은 학교에서 기악부 활동을 하면서 악기를 배웠어요.”
전문가 도움 없이 하다보니 아직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다만 친인척과 동료 결혼식이나 회갑연 등에서 가족 화음을 선보이고 있다.
“가족 모두가 시간을 맞출 수 있는 방학기간을 활용해 본격적으로 공연봉사를 해보려구요.”
밴드가 어느 정도 자리잡고 난 뒤에는 가족 농악대를 꾸리겠다는 목표도 암묵적으로 세웠다. 법이나 문서 장비 등 시민 불편을 덜 방법을 구상하는 건 “일의 연장”이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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