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미와 자식을 갈라놓는 나라 “한국인인 게 부끄럽습니다”

조선족 30대 여인 기자회견

지역내일 2001-06-29 (수정 2001-06-29 오후 4:23:43)
“어미와 자식을 강제로 갈라놓는 게 대체 어느 나라 법입니까”
28일 오후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 시민단체들이 마련한 연단에 오른 30대 초반의 조선족 여인은 자식 얘기가 나오자 목이 매여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증언에 나선 조 모씨(32)가 털어놓은 사연은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중국 헤이룽장성이 고향인 조씨가 한국 땅을 찾은 것은 지난 96년 11월. 몇해 전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딸(10)을 키우던 조씨는 주위의 소개로 만난 한국 남성과 결혼을 결심했다.
그러나 조씨는 결혼수속을 밟기 위해 찾은 주중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예상치 못한 요구를 받았다. 대사관 직원은 조씨가 중국에서 낳은 딸을 한국으로 초청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일종의 자식 포기각서를 제출해야 한국행을 허용하겠다고 단서를 달았다.
당혹스러움에 한동안 말문이 막혔던 조씨는 “관련법이 자주 바뀌니 조만간 아이를 데려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믿고 각서를 써줬다.
이 각서가 화근이었다. 조씨와 딸을 5년째 생이별하게 만드는 ‘통곡의 증서’가 됐다.
다섯 살난 딸을 중국에 남기고 한국 땅에 온 조씨는 즉시 아이를 데려오기 위해 나섰으나 당국으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어렵다”는 말뿐이었다. “각서를 제출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는 냉담한 말만 수없이 들어야했다.
얼마 뒤 닥친 IMF의 여파는 조씨에게 경제적 고통까지 보태 전화로 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마저 부담스럽게 했다.
조씨는 “새 인생을 살아보겠다고 찾은 조국이 인륜을 저버리라고 강요할 줄을 상상도 못했다”며 “먼 곳에서 고아 아닌 고아로서 고통받는 딸을 생각하면 가슴이 터지고, 나 살겠다고 이곳까지 찾아온 어미로서 면목이 없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자리를 주선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조선족 불법체류를 막는다는 이유로 부모와 자식을 갈라논 이 나라가 조국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법무부는 이와 관련 “위장결혼이 아니고 자녀가 중국에서 부양하기 어려운 연소자일 경우 인도적 차원에서 입국허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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