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아줌마 네트워크’라는 새 바람이 분당·용인 등 신도시지역 여성들 사이에서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과거 계모임, 육성회 모임 등 초보적 형태의 모임은 거의 사라지고 교육문제를 비롯해 재테크, 육아, 쇼핑, 여행 등 일상생활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 이들 모임은 성남·용인지역 소비, 교육, 문화, 지역 커뮤니티 등에서 강력한 여론 층을 형성하며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아줌마닷컴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혼여성 한 명당 약 3개의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던 과거와 달리 네트워크가 시작되는 시점도 크게 당겨졌다. 산후조리원 동기모임이 자녀들의 축구교실, 수영교실 모임으로, 다시 학교 모임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산후 우울증 날려버린 산후조리원 네트워크
태어난 지 6개월 된 아이를 둔 주부 유은지(35·분당구 구미동)씨는 산후조리원에서 만난 친구들과 ‘아줌마 모임’을 만들었다.
분당의 한 산후조리원에서 하루 이틀 차이로 아기를 낳은 이들은 조리원에서 24시간 내내 함께 생활하다 보니 각별한 정이 싹트게 됐다. 서로 의지하며 마음을 나누면서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나 산후우울증도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유씨는 “밤마다 빵 파티, 족발 파티를 하면서 시어머니 흉을 보며 공감대를 형성한 것 같다”면서 “지금은 가족보다 더 가까운 동지들이 됐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기 아이를 출산했기 때문에 자녀 생일 등 기념일을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들은 출산 50일 파티를 계기로 모임을 공식화했다.
가장 힘든 시기에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는 이들은 날이 갈수록 더 많은 것을 함께 하고 있다.
장난감이며 책, 각종 유아용품을 인터넷에서 함께 공동구매(공구) 하는데 먼저 써본 사람이 사용 후기를 알려주기도 하고 좋은 사이트를 추천해주기도 한다. 함께 주문하면 배송비도 절감될 뿐 아니라 배송 오는 날 한 집에 모여 물건을 나누어 갖고, 파티도 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아이들 백일 즈음에는 셀프촬영 사진관에서 공구로 저렴하게 촬영도 했다. 생후 6개월 차에 이른 요즘엔 함께 문화센터에 다니고 있다.
자신 위한 시간 갖는 50대 아줌마 네트워크
자식을 다 키워 대학에 보낸 50대 이후 중년 주부들은 시간적 여유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에 몰두한다.
우미순(52·분당구 이매동) 주부는 매주 화요일 오전 삼성플라자 문화센터에 들러 디지털카메라 촬영법을 배운다. 하지만 우씨가 더 기다리는 시간은 한 달에 한번 마음 맞는 40~50대 분당 주부들과 어울려 가는 출사여행이다. 이들은 분당과 가까운 광주, 여주, 용인, 양평 등으로 당일코스 여행을 다녀온다.
이들은 사진을 인연으로 만났지만 지역 안에서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는가 하면, 과일이나 채소 등 농산물을 산지와 직접 연결해 주문자 생산방식으로 공동구매하기도 한다.
또 부동산 공동투자 등 재테크 과정에서도 이들 아줌마 네트워크는 힘을 발휘한다.
우씨는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친구끼리 공동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한편 지역 여행업체들은 남편 은퇴, 자식 결혼 등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 중년 아줌마네트워크를 겨냥해 활발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한 온라인여행사는 신혼의 느낌을 되살리고 싶어 하는 중년여성을 위한 리허니문 상품 패키지를 기획하기도 했다.
분당의 한 여행사 대리점 대표는 “관광 비수기를 활용해 저렴하게 여행을 계획하는 중년 아줌마 단체에 할인해주는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며 “동창회, 친목계, 봉사·종교 모임 등에서 국내외 단체여행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아줌마 교육모임 ‘내 아이는 내가 직접’
교육 1번지답게 분당 아줌마들의 관심사는 단연 교육문제다.
그런데 분당 아줌마들은 다른 지역과 다르다. 단순히 교육정보를 주고받는 모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직접 배우고 가르치고 있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선희(43·분당구 구미동)씨는 같은 반 엄마 몇몇이 모이면 공부에 도움이 될까싶어 아이들을 지역의 유적이나 박물관 같은 데에 놀이삼아 데리고 다녔다. 그러다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탐방을 기획하면 학교 공부에도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문화센터에서 문화해설사 과정을 공부해 문화유적 탐방프로그램까지 만들게 됐다.
최씨는 “주로 놀토를 이용해 교과서에 나오는 유적지를 중심으로 탐방을 가는데 담임선생님을 통해 미리 안내문을 돌리면 학생들이 20명까지 모이기도 한다”면서 “같은 반 친구들과 엄마들이 함께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더 편해하고 즐거워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분당정보도서관 어머니 독서회 ‘해오름’은 아줌마 네트워크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도서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 독서회는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하는 모임에서 아이들 독서·논술지도를 위한 모임으로 역할을 확장시켰다.
모임에서 철학과 교수를 초빙해 강좌를 듣고 토론하기도 하고 사회·과학·역사 등 분야로 영역을 넓혀 내공을 다져가고 있다.
독서회에 참여하고 있는 최선옥(40대) 주부는 자신의 자녀를 비롯해 5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논술지도를 직접 하고 있다.
최씨는 “아이들을 지도하다보니 내 아이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 것이 가장 큰 성과”라며 “처음엔 모임에서 단순히 교육정보 차원의 대화를 나눴는데 지금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하는 방법까지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춘희·홍정아·오은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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