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포도서관에 둥지를 튼 성포여성독서대학. 기초반과 중·고급반으로 나눠 한 주에 한 번 수업을 진행한다. 배준석 시인이 진행하는 이 수업에서 주부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키운다. 가끔 유명작가의 문학비를 찾아가는 답사여행도 다니고 인터넷 카페 ‘문산문답’에서 생각을 나누기도 한다.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인원은 18명. 4~5년 씩 필력을 갈고 닦아 이젠 등단 작가도 여럿 배출되었다. 문학의 향기에 취해 ‘먼지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주부들을 만나봤다.
문학에서 새로운 인생을 발견하다
인터뷰를 위해 예쁘게 단장하고 나타난 회원들은 모두 아우라를 발한다. 후광이라고 표현하면 과할까. 이경순 회장과 강문순 총무, 그리고 강미자, 구자선, 김정숙, 양미경 회원이 자리를 함께 했다. “독서대학 안 다녔으면 어딘가 앉아 수다나 떨었겠죠.” 강미자씨는 (수다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수다를 글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문학공부의 장점이라고 말한다. 수다에서 글의 소재를 찾고 글을 쓰며 의사소통 능력이 향상됐다고. 대부분의 회원들은 글을 쓰면서 ‘아줌마가 빠져들기 쉬운 길’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주부들의 특성에 맞춰 문학을 이해하기 쉽게 가르치는 배준석 시인 덕분에 회원 모두가 문학에 ‘푹’ 빠졌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수업을 받으며 수사법과 행갈이 규칙, 의성어와 의태어 등 시를 쓰는데 필요한 기초이론도 배운다. 배 시인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차근차근 3년 쯤 기초를 쌓게 한 다음 잘 따라오는 회원에겐 바짝 고삐를 죄며 호되게 훈련시킨다고. 덕분에 등단하는 회원이 늘고 있고 늦게 시작한 공부에 재미가 들려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한 회원도 많다. “등단하고 보니 작가는 평생직업이네요.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없더라구요.” 2006년 수필로 등단한 구자선씨의 말에 다른 회원들이 내용을 보충해 가며 글자를 막 배우기 시작한 아이들처럼 기쁨 가득하게 지저귄다. 60대에도 글은 쓸 수 있고 계속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으니 머리가 녹슬지 않는다, 수명이 길어져 주체 못하게 시간이 남아도는 데 글이 있으니 우리는 행복한 거다, 수강료도 저렴하다, 외로울 땐 시집을 읽고 글을 쓰니 좋다.... “한 달에 한 번 야외 수업을 가는 데 지난번엔 봉평을 다녀왔어요. 선생님이 미리 답사한 후 철저히 조사하시고 자세히 설명해 주시니까 예전엔 경험하지 못한 대단한 걸 보고 올 수 있죠.” 양미경 회원의 설명이다.
‘문학산책’ 통해 등단하는 회원 꾸준히 늘어
성포독서대학은 올해로 12기 회원을 모집했다. 매년 40명 정도가 모이지만 중간에 탈락하는 사람이 많은 편. 글쓰기는 상당한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 시에서 진행하는 행사에 참석해야 할 때도 있고 행사 참관기나 답사후기를 숙제로 내야 할 때도 있다. 등단하면 책도 내야하고 글타래가 정기적으로 참가하는 시낭송회나 작품발표회에도 함께 해야 한다. 적당히 자극이 될 만큼의, 기분 좋은 의무다. 회원들의 주 등단 잡지는 ‘문학산책’. 심사하는 시인들의 면면이 화려하다. 이문재, 문정희, 이근배, 이재무, 양애경 시인 등이 돌아가며 ‘문학산책’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단다. 회장 이경순씨는 5년 동안 자신을 연마한 후 올해 시로 ‘문학산책’에 등단했다. “학교 다닐 때 작가가 꿈이었는데 결혼을 일찍 하는 바람에 꿈을 이루지 못했어요. 성포독서대학을 다니면 등단이 가능하다는 걸 알고 열심히 했죠.” 처음엔 사람이 좋아 모이다가 차츰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남게 된다고. “같이 (공부)하면 다른 사람의 사고방식을 보며 내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어요. 내 눈 하나로 보다가 다른 사람의 눈을 함께 보게 되니 세상이 넓어지는 거죠.” 김정옥씨는 글쓰기 공부를 통해 얻은 ‘천개의 눈’으로 아이들 독서지도를 하고 있다. 아이 안에 들어 있는 시를 끄집어내는 게 그의 일. 부모들은 ‘우리 아이가 정말 혼자서 이 걸 썼어요?’ 한다고. 총무 강문순씨는 셋이나 되는 자녀를 키우며 생활인으로 살다 4년 째 글쓰기에 빠진 고급독자. 회비는 한 달에 2만원. 여자들로만 이루어진데다 수다도 글이 되니 이 모임은 정말 특별하다고 알려준다. 그러고 보니 카페 ‘문산문답’ 게시판은 댓글도 시다. 실력에 따라 다르지만 화요일 오전 10시에 열리는 기초반을 3년쯤 수강하고 나면 금요일 오전 10시 중·고급반으로 승급한다고. 이들은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후 가장 좋은 점은 ‘글을 쓰는 사람답게 말을 가려서 하게 되고 상대의 마음을 읽게 된 것’이라고 전한다. 이들에게 가는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서영란 리포터 triumv@kornet.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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