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1시 홍익재활원(창원시 신촌동) 주방. 자주빛 앞치마를 두른 아주머니들의 유부초밥 만드는 손놀림이 저마다 바쁘다. 오늘은 재활원 아이들에게 유부초밥을 만들어주는 모양. 이 속에 섞여 부지런히 초밥을 싸고 있는 한 사람이 바로 김혁규 경남도지사(61)의 부인 이정숙(56)씨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하다
주변 사람들은 이 여사를 "부드러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놀기도 좋아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이나 병든 사람을 돌보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매달 봉사활동을 하는 홍익재활원. 움직이기 힘든 아이들 목욕을 손수 시키기도 하고 아이들이 먹을만한 음식을 장만하기도 한다. "제가 어릴 때부터 다른 사람 돌보는 일은 많이 했어요." 이 여사는 학창시절 재활원과 같은 곳에 가 봉사활동을 많이 했다고 한다. 경북대에서 간호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연민'이 많은 덕이다. 도지사 부인이 된 지금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는 게 일.
고운 모습에 웃음이 스민 눈매. 고생이라곤 한 적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여사는 남편 김 지사를 따라 미국으로 무작정 따라나서야 했던 적이 있고 20여년 그곳에서 온갖 고생을 했다. 형부와 절친한 친구였던 김 지사를 언니의 결혼식장에서 만나고 네 해쯤 지나 결혼을 했다. 김 지사는 부산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향 합천에서 9급 공무원을 거쳐 4년만에 내무무(현 행정자치부)에서 일하게 됐다. 딸 아이도 생기고 생활이 안정됐을 무렵, 김 지사가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그래서 단돈 1000달러를 들고 미국행.
미국으로 건너 간 당시 김 지사는 치킨집에서 닭튀김도 하고 바닥도 쓸었다. 이 여사도 덩달아 이 일 저 일을 했다. 잠시라도 쉴 틈 없는 날들이었다. 김 지사는 한동안 가발을 팔다가 71년 우연한 기회에 가방을 팔게 됐다. 그리고 81년, 옛날 할머니들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전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벨트쌕(BELT SACK)'을 개발했다. 당시 미국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소개될 만큼 인기를 끌었고 이 여사도 어렵게 딴 미국간호사 자격증을 팽개치고 가방장사에 나섰다. 이 여사는 김 지사와 함께 가방사업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주변 사람들은 이 여사를 '부드러운 사람' 이라고 평하지만 김 지사가 이 여사를 '억척스러운 사람'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고된 생활과 그가 벌인 사업들 잘 처리하고 뒷받침해 줄 정도로 부지런하고 민첩했던 사람이 이 여사였기 때문. 이 여사는 미국에서 늘 일에 매달린 탓에 93년 한국에 돌아와 집에 머무는 것이 불안할 정도였다고 돌이킨다.
도지사, '경남주식회사 세일즈맨' '유머러스한 남편'
김혁규 경남도지사는 자신을 '경남주식회사 세일즈맨'이라고 말한다. 미국땅에서 맨주먹으로 시작 가방 하나로 돌풍을 일으켰듯 경남도를 '기업처럼 잘 경영하고 경남에서 생산되는 상품이 잘 팔리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말이다.
경남세일즈로 늘 바쁜 김 지사지만 이 여사에게 유머러스한 남편이기도 하다. 이 여사가 조금이라도 우울한 기색을 보이면 김 지사는 금새 눈치 채고 유머로 기분을 풀어준다고 한다. 오후 2, 3시에 잡힌 강의시간. 졸린 사람들에게 '러시아 비해기조종사와 바람피는 아내' 얘기로 좌중을 흐트러 놓는다는 소문이 확인된 셈. 밖에서는 부지런한 행정가와 사업가로, 안에서는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남편이다.
나는 남편에게 "제1야당"
이 여사는 미국이 다 배울만한 건 아니지만 세금이 아무리 많아도 내야할 거면 꼭 내는 그런 원칙을 지키는 게 보기 좋았다고 한다. "원칙을 지키고 약속을 존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 같다고 말한다.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이동중인 차안에서라도 김 지사는 아내인 이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묻는다는 것. 그러면 이 여사는 매서운 충고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남편에게 늘 "제 1야당."
남편 김 지사와 아침 6시경, 창원 용지 공원에 산보를 나간다. 나가서 시민들도 만나고 서로 일정이나 일과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김 지사는 이 여사에게 어려운 결정이나 상황에 대해 의논하곤 한다. 그러면 이 여사는 늘 소신대로 충고한다. 하지만 김 지사가 일단 결정을 내리면 존중한다. 비판자인 동시에 가장 훌륭한 지지자의 모습이다. 근래 대선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 김 지사의 행보에 대해서도 "김 지사의 결정을 언제나 존중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여사는 공인으로서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가 더 들면 김 지사와 함께 장애인이나 노인복지센터을 직접 운영해보고 싶다고 한다. 홍익재활원 앞 벤치. 시원하게 웃어 보이는 이 여사의 모습은 몸이 불편한 아이들과 노인들에게 명랑하고 다정한 '간호사'가 어울릴 것 같다.
마창 강주화 기자 jhg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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