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천년바위’ 하면서 체어맨 한 대 버리고 올해도 자가용 한 대 버렸죠. 시립무용단이나 도립무용단이야 1억2000만원씩 들여 정기공연 올리지만 저는 제 집 담보로 돈 빌려 4000만원씩 써가면서 공연하죠. 그러니 안무하고 기획하는 입장에서 작품이 마음이 들겠어요? 돈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데 못하는데. 그래도 주변에서 해마다 작품 좋아지고 있다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죠. 어떤 분들은 ‘이순림이 올해는 작품에 돈 덜 발랐네’ 농담 삼아 말씀하시지만요. 하하하.”
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것 아닌가
이순림 교수는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생긴 이래 4년 동안 한해도 빼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성남에 시립무용단체가 없어서 자존심 때문에라도 계속하고 있지만 올해는 왠지 벅차다.
올해는 지난해 99세 일기로 작고한 고 김천흥 선생의 ‘춘앵전’을 올렸다. 춘앵전은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가 순종숙황후의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해 만든 궁중무용이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자들이 선생님의 춤을 변형시키는 걸 봤어요. 살아 계실 때는 감히 생각지도 못하더니 이제 자신들이 재현을 해보겠다고 변형에서 추는 거예요. 춘앵전은 180년 전부터 궁중에서 추어졌고 선생님은 그걸 11살에 배우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수십 년 동안 가르쳐주셨죠. 이걸 변형하지 않고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께 드리는 헌정무대라고 보시면 돼요.”
공연에서 이 교수는 자신이 직접 창작한 허수아비도 올렸다. 이 교수는 작품에서 인간의 삶을 허구로 보면서 때마침 올 한해 한국사회를 달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 빗대어 자신의 메시지를 던졌다.
“촛불시위도 살기 위해서 하는 거죠. 내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안 먹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으로 보았어요. 치열한 삶의 한 부분이고, 하지만 그것도 돌아서면 허무한 거죠.”
이 교수는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연이어 아버지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냈다. 10대 청소년 시절에 죽음을 안고 산 것이다.
“사람들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살줄 알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지 않아요. 죽음이 이렇게 눈앞에 있는 건데…. 사랑도 마찬가지에요. 젊은 남녀의 사랑, 아낙네들이 춤추고 사랑하는 것도 그렇죠. 사랑도 한순간 한순간일 뿐이에요.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고등학교 다니는 년이 뭘 안다고
이 대목에서 스승인 정금란(작고)의 춤 세계를 이 교수는 평했다. 정금란은 성남 무용계를 태동시킨 장본인이다.
“그래도 전 희망적이죠. 근데 선생님은 항상 춤을 죽음으로 몰고 갔어요.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죠. 제가 마지막을 희망의 허수아비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게 선생님과 제가 다른 거죠. 기대를 갖고 살아야한다. 항상 밝게 살자. 전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슬픔을 안고 있으면 내안에서 표출해낼 수 있는 게 더 많아진다.
“내가 고등학교 때 살풀이춤을 추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아이고, 저년이 사랑을 해보고 실패를 해봐야 저 춤을 출 수 있는데… 고등학교 다니는 년이 뭘 알겠어’하고 말씀 하셨죠. 지금도 그 말씀이 잊혀 지지 않아요. 내 안에 슬픔이 없으면 그걸 끌어낼 수 없어요. 예능인으로 살아가는 게 그런 거죠. 팔자에요.”
하지만 이 교수의 춤은 영락없는 정금란류다. 성남 춤판에서 정금란류가 아니면 배겨내질 못한다.
“제 뿌리가 정 선생님이죠. 정 선생님께 기본기를 배웠어요. 그 뒤 여러 큰 선생님들께서 제게 춤을 가르쳐주셨는데 그 분들이 ‘네가 정금란에게 배워 춤을 잘 추는구나’라는 말을 많이 하셨죠. 선생님은 춤도 잘 추고 욕심도 많으셨어요. 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분이셨어요. 선생님이 73년부터 성남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성남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그 분을 다 알죠. (외부사람들이) 성남에 뿌리를 못 내리는 건 지역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 이순림이를 넘어서면 그런 이야기 나오겠어요? 건방진 이야기 같지만 성남에서 한국무용을 대중에게 보급시키는데 제가 큰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춤이 뭐야, 도대체
이 교수는 1996년 성남지역 주부들을 모아 횃불무용단을 창단했다.
“저는 성남의 엄마들이 행복하게 춤을 출수 있도록 뿌리를 내려줬어요. 복지관, 문화센터, 동사무소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거의 내 제자니까요. 엄마들은 3개월만 배우면 무대에서 춤을 춰요. 100여 명씩 무대에 설 때도 있어요. 그 분들은 무대 위에서 새로운 행복을 맛보는 거죠.”
이 교수는 춤추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낀다. 춤을 빼면 그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춤이 도대체 뭡니까? 대뜸 이 교수에게 물었다.
“춤이 뭐냐면… 숨이죠. 숨을 쉬는 거예요. 숨을 쉬는 그 자체가 춤이죠. 살아 있는 거죠. 살아 있는 생명체가 움직이는 것이 춤이에요. 하여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춤이라고 보면 돼요. 나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서도 춤을 출거에요.”
정원택 기자 wontae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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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음을 향해 살아가는 것 아닌가
이순림 교수는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생긴 이래 4년 동안 한해도 빼지 않고 자신의 작품을 올리고 있다. 성남에 시립무용단체가 없어서 자존심 때문에라도 계속하고 있지만 올해는 왠지 벅차다.
올해는 지난해 99세 일기로 작고한 고 김천흥 선생의 ‘춘앵전’을 올렸다. 춘앵전은 조선 순조 때 효명세자가 순종숙황후의 보령 40세를 경축하기 위해 만든 궁중무용이다.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제자들이 선생님의 춤을 변형시키는 걸 봤어요. 살아 계실 때는 감히 생각지도 못하더니 이제 자신들이 재현을 해보겠다고 변형에서 추는 거예요. 춘앵전은 180년 전부터 궁중에서 추어졌고 선생님은 그걸 11살에 배우셨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수십 년 동안 가르쳐주셨죠. 이걸 변형하지 않고 보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께 드리는 헌정무대라고 보시면 돼요.”
공연에서 이 교수는 자신이 직접 창작한 허수아비도 올렸다. 이 교수는 작품에서 인간의 삶을 허구로 보면서 때마침 올 한해 한국사회를 달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에 빗대어 자신의 메시지를 던졌다.
“촛불시위도 살기 위해서 하는 거죠. 내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 아이들에게 광우병 쇠고기를 안 먹이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것으로 보았어요. 치열한 삶의 한 부분이고, 하지만 그것도 돌아서면 허무한 거죠.”
이 교수는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연이어 아버지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냈다. 10대 청소년 시절에 죽음을 안고 산 것이다.
“사람들은 천년이고 만년이고 살줄 알지 언젠가 죽는다는 걸 생각지 않아요. 죽음이 이렇게 눈앞에 있는 건데…. 사랑도 마찬가지에요. 젊은 남녀의 사랑, 아낙네들이 춤추고 사랑하는 것도 그렇죠. 사랑도 한순간 한순간일 뿐이에요. 우리는 죽음을 향해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고등학교 다니는 년이 뭘 안다고
이 대목에서 스승인 정금란(작고)의 춤 세계를 이 교수는 평했다. 정금란은 성남 무용계를 태동시킨 장본인이다.
“그래도 전 희망적이죠. 근데 선생님은 항상 춤을 죽음으로 몰고 갔어요. 그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죠. 제가 마지막을 희망의 허수아비로 삼은 것도 그 때문이에요. 그게 선생님과 제가 다른 거죠. 기대를 갖고 살아야한다. 항상 밝게 살자. 전 그런 마음으로 살아요.”
슬픔을 안고 있으면 내안에서 표출해낼 수 있는 게 더 많아진다.
“내가 고등학교 때 살풀이춤을 추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아이고, 저년이 사랑을 해보고 실패를 해봐야 저 춤을 출 수 있는데… 고등학교 다니는 년이 뭘 알겠어’하고 말씀 하셨죠. 지금도 그 말씀이 잊혀 지지 않아요. 내 안에 슬픔이 없으면 그걸 끌어낼 수 없어요. 예능인으로 살아가는 게 그런 거죠. 팔자에요.”
하지만 이 교수의 춤은 영락없는 정금란류다. 성남 춤판에서 정금란류가 아니면 배겨내질 못한다.
“제 뿌리가 정 선생님이죠. 정 선생님께 기본기를 배웠어요. 그 뒤 여러 큰 선생님들께서 제게 춤을 가르쳐주셨는데 그 분들이 ‘네가 정금란에게 배워 춤을 잘 추는구나’라는 말을 많이 하셨죠. 선생님은 춤도 잘 추고 욕심도 많으셨어요. 춤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분이셨어요. 선생님이 73년부터 성남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성남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그 분을 다 알죠. (외부사람들이) 성남에 뿌리를 못 내리는 건 지역에 대한 애착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 이순림이를 넘어서면 그런 이야기 나오겠어요? 건방진 이야기 같지만 성남에서 한국무용을 대중에게 보급시키는데 제가 큰일을 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춤이 뭐야, 도대체
이 교수는 1996년 성남지역 주부들을 모아 횃불무용단을 창단했다.
“저는 성남의 엄마들이 행복하게 춤을 출수 있도록 뿌리를 내려줬어요. 복지관, 문화센터, 동사무소에서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거의 내 제자니까요. 엄마들은 3개월만 배우면 무대에서 춤을 춰요. 100여 명씩 무대에 설 때도 있어요. 그 분들은 무대 위에서 새로운 행복을 맛보는 거죠.”
이 교수는 춤추고 있을 때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느낀다. 춤을 빼면 그에게 무엇이 남겠는가.
춤이 도대체 뭡니까? 대뜸 이 교수에게 물었다.
“춤이 뭐냐면… 숨이죠. 숨을 쉬는 거예요. 숨을 쉬는 그 자체가 춤이죠. 살아 있는 거죠. 살아 있는 생명체가 움직이는 것이 춤이에요. 하여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춤이라고 보면 돼요. 나는 죽어서 다시 태어나서도 춤을 출거에요.”
정원택 기자 wontae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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