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성씨(남·76세)는 이번 평양 방북길에서 모친을 만난다. 1950년 전쟁으로 헤어진 후 52년만의 일이다.
25년간 살았던 고향땅 황해도 평산군 안성면. 산세며 마을어귀며 기억도 선명하지만 어머니 얼굴은 떠오르지 않는 것이 못내 안타깝다. 1950년 12월 남자는 모두 끌려갔던 시절, 이후성씨는 전쟁을 피해 월남했다. 북에 남겨놓은 모친과 아내. 큰아들은 이미 장성했지만 막상 만나려니 하고싶은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생존이 확인된 모친은 올해로 아흔셋이다. 어쩌면 이번 상봉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당연히 돌아가셨거니 생각했습니다. 벌써 몇 해째 어머님 제사를 모시고 있었는데 살아계시다니..." 말끝이 흐려진다. 하지만 이미 10년째 중풍으로 굳어진 팔 다리를 들어보이며 '힘들더라도 꼭 뵙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후성씨는 북에서 모친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일본 침략시절 징병을 피하기 위해 호적상 나이를 바꾸며 숨어서도 농사를 지었다. 월남후 자리잡은 파주에서도 아직 농사를 짓는 순수 땅꾼이다. 이번 방북에서 지난해 농사지은 쌀을 가지고 갔으면 하지만 소지품이 제한돼 아쉽기만하다.
"살아서는 이번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건데. 서신 왕래라도 빨리 됐으면 좋겠습니다. 돌아가시면 제사라도 모셔야하니까." 이후성씨는 지병인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지만 처음 노모를 만나면 '살아계셔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꼭 안아드리겠다고 말했다.
이후성씨는 월남후 1958년 현재의 부인 박계자(74) 여사와 결혼했다. 북에 있는 부인과 생이별 후 재혼한 경우야 흔하지만 이번 방북에서 전 부인을 만난다니 보내는 맘이 편치는 않다. 박 여사는 "북에 있는 부인을 만난다는 것이 유쾌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살아 있다는 것이 다행스런 일이 아니냐"며 속마음을 내비쳤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북 노모와의 상봉길. 이후성씨는 "마음 같아서는 모친을 모셔 오고 싶습니다"고 말했다.
파주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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