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의 ‘실종’을 부끄러워하라
유 승 삼 (언론인)
대학교 강의 시간에 프랑스 혁명을 잠깐 언급했더니 요새 말로 분위기가 ‘썰렁했다’. 그제야 ‘아차’ 싶어 확인해 봤더니 30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 중·고교에서 프랑스 혁명에 관해 배운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이런 학생들에게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설명해야 할지가 난감했다. 루이 16세, 마리 앙또와네뜨, 1812년 서곡 등을 차례로 늘어놓아 보았지만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끝내는 프랑스 국가의 곡조를 흥얼거려 주기까지 해도 깜깜 절벽이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서야 프랑스 혁명에 관해 읽은 기억을 되살려 낸 학생이 두 명이 나왔는데, 반가워서 무엇을 읽었냐고 물었더니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일본 만화의 번역본이었다.
독서 깨나 한다는 대학생마저 프랑스는 ‘베르사이유의 장미’,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국은 ‘삼국지’를 통해 안 게 거의 전부일 정도이다. 지식의 원천을 하나 더 덧붙인다면 ‘이웃 나라 먼 나라’ 정도이다. 이것 역시 만화이다. 이게 바로 우리 대학생들의 평균적 역사지식 수준이다. 또 그것이 우리 역사 교육의 서글픈 현 주소이기도 하다.
역사 지식은 생존의 필수 도구
유럽 각국은 오래 전부터 초·중·고교 교육에서 역사를, 수학이나 국어와 함께 필수 과목으로 삼아 왔다. 그들은 2세 국민들에게 자기 나라 역사뿐 아니라 전체 유럽사를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자기 나라의 역사가 바로 이웃 나라와의 관계사이며 따라서 이웃 나라의 역사 지식이 곧 생존의 필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사정이 다를까.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경제적 상황도 유럽 국가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싫건 좋건 우리는 중국, 일본, 러시아와 몸을 비비며 살아가야할 운명이다. 북핵 회담이 6자 회담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그것을 웅변한다.
그런데 그런 이웃에 관한 교육에 소홀하다면 대국인 중국이나 러시아, 경제 부국인 일본보다 우리 손해가 클 것이다. 더구나 근래 이들 인근 국가의 국가주의는 팽창일로여서 바야흐로 우리는 중국, 일본과는 역사전쟁중이다. 국가의 존립과 역사 및 영토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국민은 우리 역사를 알고 이웃의 역사를 알아 앞날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강화되기는커녕 최근 10년 동안 역행을 거듭해 왔다. 미국에서 수학한 일부 교육학자들이 종합적·개방적 안목을 기른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 96년 교육과정 개정 때 역사 과목을 일반사회·지리 등과 통합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역사 과목의 필수 교육 시간도 줄어 버렸다.
역사, 지리, 일반 사회 등을 통합해 교육하는 것은 미국의 교육과정을 흉내 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이런 통합교육의 잘못을 깨닫고 80년대부터 역사 교육의 분리 쪽으로 돌아섰다. 일본도 우리보다 먼저 미국 사회과 통합교육과정을 모방했다가 90년부터 통합교과목을 실질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남이 실패해 버린 제도를 뒤늦게 좋은 것인 줄만 알고 흉내를 내고 있는 셈이다.
역사 과목의 홀대는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국가고시에서 국사과목이 차례로 폐지되고 있다. 사법고시·입법고시·행정고시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무고시에서마저 국사과목이 폐지되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리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외교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역사 과목을 사회과에 통합한 96년~2001년까지의 제 6차 교육과정 제정 때 국사를 필수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목 이기주의’로 몰리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기획한 사람들은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세계사 교육이 약화됐다’면서 세계사 교육의 강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국사도, 세계사도 힘없는 더부살이 신세가 됐을 뿐이다.
역사는 미래의 방향타이다
물론 역사 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역사 교육은 본시 그런 눈 앞의 단기적 성과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역사 교육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항구적인 우리 정체성의 확립과 역사성의 재인식일 것이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듯이 정체성 확립과 역사성의 인식만 뚜렷하다면 치열한 국가주의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능히 버티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미래의 방향타이다. 경쟁 시대, 국제화 시대일수록 자기 좌표를 알아야 격랑을 헤쳐나갈 수 있다. 국수주의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경쟁 속에서도 이웃과 평화 공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균형된 역사 감각을 길러야 한다.
유 승 삼 (언론인)
대학교 강의 시간에 프랑스 혁명을 잠깐 언급했더니 요새 말로 분위기가 ‘썰렁했다’. 그제야 ‘아차’ 싶어 확인해 봤더니 30여 명의 학생들 가운데 중·고교에서 프랑스 혁명에 관해 배운 학생이 한 명도 없었다.
이런 학생들에게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 설명해야 할지가 난감했다. 루이 16세, 마리 앙또와네뜨, 1812년 서곡 등을 차례로 늘어놓아 보았지만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끝내는 프랑스 국가의 곡조를 흥얼거려 주기까지 해도 깜깜 절벽이었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서야 프랑스 혁명에 관해 읽은 기억을 되살려 낸 학생이 두 명이 나왔는데, 반가워서 무엇을 읽었냐고 물었더니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일본 만화의 번역본이었다.
독서 깨나 한다는 대학생마저 프랑스는 ‘베르사이유의 장미’, 일본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중국은 ‘삼국지’를 통해 안 게 거의 전부일 정도이다. 지식의 원천을 하나 더 덧붙인다면 ‘이웃 나라 먼 나라’ 정도이다. 이것 역시 만화이다. 이게 바로 우리 대학생들의 평균적 역사지식 수준이다. 또 그것이 우리 역사 교육의 서글픈 현 주소이기도 하다.
역사 지식은 생존의 필수 도구
유럽 각국은 오래 전부터 초·중·고교 교육에서 역사를, 수학이나 국어와 함께 필수 과목으로 삼아 왔다. 그들은 2세 국민들에게 자기 나라 역사뿐 아니라 전체 유럽사를 필수로 가르치고 있다. 자기 나라의 역사가 바로 이웃 나라와의 관계사이며 따라서 이웃 나라의 역사 지식이 곧 생존의 필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사정이 다를까.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경제적 상황도 유럽 국가의 그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싫건 좋건 우리는 중국, 일본, 러시아와 몸을 비비며 살아가야할 운명이다. 북핵 회담이 6자 회담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그것을 웅변한다.
그런데 그런 이웃에 관한 교육에 소홀하다면 대국인 중국이나 러시아, 경제 부국인 일본보다 우리 손해가 클 것이다. 더구나 근래 이들 인근 국가의 국가주의는 팽창일로여서 바야흐로 우리는 중국, 일본과는 역사전쟁중이다. 국가의 존립과 역사 및 영토의 보존을 위해서라도 국민은 우리 역사를 알고 이웃의 역사를 알아 앞날에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역사교육은 강화되기는커녕 최근 10년 동안 역행을 거듭해 왔다. 미국에서 수학한 일부 교육학자들이 종합적·개방적 안목을 기른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 96년 교육과정 개정 때 역사 과목을 일반사회·지리 등과 통합해 버린 것이다. 그 결과 역사 과목의 필수 교육 시간도 줄어 버렸다.
역사, 지리, 일반 사회 등을 통합해 교육하는 것은 미국의 교육과정을 흉내 낸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이런 통합교육의 잘못을 깨닫고 80년대부터 역사 교육의 분리 쪽으로 돌아섰다. 일본도 우리보다 먼저 미국 사회과 통합교육과정을 모방했다가 90년부터 통합교과목을 실질적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는 남이 실패해 버린 제도를 뒤늦게 좋은 것인 줄만 알고 흉내를 내고 있는 셈이다.
역사 과목의 홀대는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국가고시에서 국사과목이 차례로 폐지되고 있다. 사법고시·입법고시·행정고시 등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무고시에서마저 국사과목이 폐지되는 건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우리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어떻게 제대로 된 외교 활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
역사 과목을 사회과에 통합한 96년~2001년까지의 제 6차 교육과정 제정 때 국사를 필수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목 이기주의’로 몰리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기획한 사람들은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해 세계사 교육이 약화됐다’면서 세계사 교육의 강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는 국사도, 세계사도 힘없는 더부살이 신세가 됐을 뿐이다.
역사는 미래의 방향타이다
물론 역사 교육을 강화한다고 해서 그것이 당장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역사 교육은 본시 그런 눈 앞의 단기적 성과를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역사 교육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항구적인 우리 정체성의 확립과 역사성의 재인식일 것이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고 했듯이 정체성 확립과 역사성의 인식만 뚜렷하다면 치열한 국가주의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능히 버티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역사는 미래의 방향타이다. 경쟁 시대, 국제화 시대일수록 자기 좌표를 알아야 격랑을 헤쳐나갈 수 있다. 국수주의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고 경쟁 속에서도 이웃과 평화 공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 역사를 알아야 하고 균형된 역사 감각을 길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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