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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 올레길을 찾다 지난 9월 11일 오전 9시30분 고양시청 정문 앞. 편한 옷과 운동화 차림의 사람들이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이들은 고양 올레길을 찾아 함께 걷기로 한 고양여성민우회 올레팀과 이들을 안내할 최경순씨였다. 이 날 주교동 밀양박씨 선영을 거쳐 대궐약수로, 사리현동을 넘어 현달산, 고봉동사무소까지 걷는 고양 올레길 1차 코스를 걸었다. 이 코스는 대략 10km로, 총 3시간 30분이 소요되었다. 일행은 중간마다 무덤과 묘비석 등 문화유적이 나타날 때마다 최경순씨에게 그에 얽힌 역사와 인물 이야기를 듣고 사진을 찍었다. 고양 올레길 1차 코스 나들이에 이어, 10월 13일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고양 올레길 2차 코스에 나섰다. 이 때에는 고봉산 습지에서 출발해 황룡산자락 밑 용강서원까지 걸었다. 총 3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비가 오다 그쳤는데, 그것조차 올레길의 준비된 과정같이 느껴졌다. ‘고양 올레길을 만드는 사람들’의 최경순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고양 올레길을 찾게 된 배경과 과정은?“고양시에서 만 10년째 살아요. 제 평소 취미중 하나가 묘지기행인데, 고양시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유명인들 무덤이 많아요. 그 무덤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경치 좋은 곳이 많고, 대체로 야산이어서 걷기에 좋아요. 농촌지역도 제법 남아있고, 식물종도 잘 보호되어 있지요. 전부터 ‘이 좋은 길들을 어떻게 연결시킬까?’를 고민해왔어요. 그러던 중 전국의 올레길을 찾아 걷는 고양여성민우회 올레팀에서 우리가 사는 지역인 고양시를 걷고 싶으니 안내를 바란다는 연락이 와서 반갑게 응하게 되었습니다. 고양시에는 역사에서 흔히 접하는 인물과 집안 무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장희빈 친정아버지인 옥산부원군 장영의 신도비는 300년이 넘었고 그 조각수법과 크기 등 문화적 가치가 큽니다. 그런데 그냥 방치되어 있어요. 경주최씨의 중시조 화숙공 묘도 성석동에 있는데, 알려진다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찾아올 겁니다. 고양시가 만든 문화재 분포지도는 예전 정보를 짜깁기 해 놓은 정도여서, 문화재에 대해 불친절한 도시가 되고 있어요. 좀 더 세밀하고 풍부하게 역사를 설명해 준다면 적은 예산으로 효율적인 체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시의 홈페이지, 안내판을 잘 정비해서 문화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올레길을 찾고 있습니다.”-고양 올레길의 특징은?“가능하면 도시지역은 피했어요. 한적한 길, 걷기 편한 길, 사색에 방해 받지 않는 길, 작은 길을 기준으로 코스를 잡았습니다. 조그만 동산을 다녀보면 폭 1미터짜리 좁은 길도 굉장히 많아요. 길을 찾으면서 힘들었던 점은 군부대 등 접근금지 지역이 많다는 거예요. 인터넷의 항공사진에는 군사시설이 표시되지 않아 실제의 길과 다른 경우도 많지요. 처음 길을 찾아 나섰을 때, 1시간 이상을 헤매면서 철조망을 따라 갔더니 다시 제자리더군요.(웃음) 인쇄된 상세지도가 없어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들어요. 또 험한 길은 제외시켜야 하니까 가다가 되돌아오기도 하지요. 세부적인 길을 지도로 만들고, 구역마다 이정표를 세우고, 유적지도 활용한다면 고양시가 참 풍요로운 곳이 될 거라고 믿어요.” -지금까지 찾은 고양올레길 코스와 구상중인 곳은?“1차는 고양시청~고봉동사무소, 2차는 고봉산~황룡산 자락 용강서원까지 걸었어요. 현재 더 많은 코스를 찾는 과정입니다. 예전에 한양에서 의주 가는 길이 관서대로인데, 중요하고 유서 깊은 길이지요. 지금의 고양동에서 광탄 용미리 넘어가는 길이 주도로입니다. 그 곳과 연결된 내유동으로 난 길도 있고, 행신동의 강뫼 쪽 구릉지대에서 행주산성길, 장항습지가 있는 강변길, 곡릉천길 등 등 머릿속 구상은 꽤 여러 개를 가지고 있어요. 다음 3차 코스도 11월 10일 원당에서 출발해 서삼릉 부근으로 걸을 예정입니다.”-앞으로의 계획은?“고양 올레길 코스를 많이 찾아서 정형화하는 게 우선이겠지요. 걷는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길이지만, 그 주변에서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 ‘꺼리’들을 많이 제공하고 싶어요. 고양시에서 자생하는 식물종을 관찰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어요. 고양 올레길은 어떤 사람에게는 취미생활이 될 거고, 어떤 이에게는 레저와 스포츠, 누군가에게는 학습의 장, 지역적으로는 훌륭한 복합문화자산이 될 거라고 봅니다. 길을 찾는 건 어렵지 않지만, 자료를 만들고 전문화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할거예요. 많은 전문가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하면 좋겠습니다. 전문가뿐 아니라 시민들 각자가 자신이 사는 동네의 걷기 좋은 길 지도를 모아준다면, 퀼트처럼 멋진 작품이 될 것입니다. 시 예산이 투여되는 안정적인 사업의 형태로 진행하거나, 사회적 기업 등 전반적인 기획을 검토하는 중입니다. 고양 올레길을 걷다보면 우리지역에 대한 애정이 깊어질 거고, 문화자원으로 만들면 다른 시도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올 겁니다. 이를 위해 우선 Daum에 ‘고양올레길만드는사람들’이라는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어요. 좀 더 빨리 활성화되어야 좋은 길들이 훼손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정경화 리포터 71khjung@hanmail.net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3
- 청천2동 복합시설 기공식 지난 13일 청천2동 복합시설 기공식이 열렸다. 기존 청천2동 주민센터 부지에 연면적 4,691.44㎡, 지하 2층 지상5층 규모로 건립되어 현대식 동 주민센터 및 보건지소가 함께 들어서게 되는 청천2동 복합시설은 2011년 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윤배 부평구청장은 인사말을 통해 “문화·보건·복지시설을 함께 제공되는 복합시설이 건립됨으로써 청천동 지역주민들의 복지향상은 물론 날로 늘어나는 행정수요에 적극 대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며, 공사관계자에게 추진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했다. 문의 032-509-6223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3
- 부평구보건소, ‘배회가능 어르신 인식표(명찰)’ 보급 부평구보건소(소장 김성종)에서는 치매 등으로 인해 인지력이 상실되어 실종위험이 높은 어르신에게 보다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아 갈 수 있게 하고자 ‘배회가능 어르신 인식표(명찰)’보급 사업을 실시한다. 치매 등으로 인해 실종이 염려되는 어르신을 보호하고 있는 가족 또는 보호자는 신청할 수 있다. 문의 032-509-8234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3
- 부평구 인천나비공원 개장 부평구는 지난 14일 수도권 최대의 나비 생태관인 인천나비공원(청천동 68-12번지)을 개장했다. 인천나비공원은 옛 부평양묘장 자리 장수산 일대 18ha부지에 2004년부터 2009년까지 5년간 총 67억5천만원이 투입되어 조성되었으며 나비생태관 330㎡, 자연교육센터 552㎡, 흙의정원, 들꽃동산 등 각종 편의시설 등을 갖췄다. 나비생태관은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살아있는 나비를 직접 볼 수 있고, 내부에는 애벌레 먹이식물, 성충먹이식물이 식재되어 항상 나비가 날아다니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어 살아있는 체험학습장으로 손색이 없도록 조성되었다. 또한, 자연교육센터는 디오라마 형태의 일반전시실과 생물전시실과 토끼굴 탐험존, 나비표본실 등이 테마별로 다양하게 꾸며져 있으며, 공원 입구에 마련된 “흙의 정원”은 고향의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계절별 다양한 농촌풍경을 재현하고 있어 어른들에게는 소중했던 추억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문의 032-509-8821 장경선 리포터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3
- 가을 … 동네 공원의 재발견 ② 상동 ‘호수공원’ 상동 호수공원 호숫가는 육지인 부천에서 바다의 맛을 음미하는 느낌 있는 쉼터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빠르게 흐르는 물살을 보노라면 짭조름한 비린내가 어디서 몰려온 듯 착각에 사로잡힌다. 호수 속에는 60cm가 넘는 잉어와 가물치, 붕어 떼가 헤엄쳐 다닌다. 곳곳마다 습지식물인 부들이 피어있어서 갈바람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린다. 부천에 다니러 왔다는 충청도 사람 김진수씨는 “도심에 이런 호수가 있다니 놀랍다. 저기 봐라, 야행성인 가물치가 낮에도 나타나다니…. 저들도 이곳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다”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상2동에 사는 오옥희씨도 “아침 저녁으로 산책하며 사색하는 데는 더없이 좋다. 물이 있어서 공기가 맑고 깨끗해서 이곳을 좋아한다”며 웃었다. 인근 벤치에는 부천시니어클럽 호수공원지킴이들이 아이들의 안전사고 예방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김향자, 나승일, 조옥자 어르신은 “예전엔 익사사고도 났지만 지금은 우리가 지키고 있어서 괜찮다. 운동 삼아 벌써 7년 째 이곳을 지키고 있다”며 지나가던 상2동 경남 아파트 털보할아버지를 소개했다. 흰 수염이 인상적인 79세 할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오전에 열다섯 번, 오후에 스물세 번 돌았다”며 “벌써 3년째인데 아침에 나와 보면 자전거족이 100여 명 쯤 몰려들어 장관을 이룬다”고 알려줬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이조광 어르신도 한마디 거들며 “인라인족, 걷기족, 자전거족이 호숫가에 몰려들어 발 디딜 틈 없다. 한꺼번에 몰려들면 충돌 때문에 상당히 위험하다. 호수 바깥 쪽 둑 밑에 자전거 도로를 설치한다면 집중도가 낮아질 것”이라며 “한마디 더! 공원 안에 있는 자동판매기 커피 값이 너무 비싸다. 400원인데 300원으로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호숫가는 수변을 따라 걸을 수 있는 다리가 있다. 그곳에는 물고기도 보고 물살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평에서 걸어왔어요. 여기는 호수가 있잖아요. 바람도 좋고요. 물고기도 보고 돌아다니며 놀기도 해요.” 부개서초등학교 4학년 최소담, 최효주, 김승미, 김소현 어린이도 놀러왔다. 호수 둘레는 벤치가 있어서 쉼터를 제공한다. 그곳에 앉아 친구와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는 우승완씨도 만났다. 심곡본1동에 사는 그는 “인천 바닷가까지 가지 않아도 호수가 있어서 좋다. 일산 호수공원도 있지만 부천 호수공원이 더 좋아서 가끔 이곳에 온다”며 “편의시설이 매우 부족하다. 커피를 마시면서 풍경을 음미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 집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제안했다. 3개의 조깅코스 겸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는 인공호수의 면적은 약 2만3000㎡. 천천히 한 바퀴 돌았더니 30분 정도가 소요됐다. LED조명 오솔길과 조각상, 돌로 만든 벤치, 배추와 벼가 심어진 농업공원을 봤고 현재 조성 중인 억새동산도 지나쳤다. 인라인스케이터 김성복씨는 “가족들과 주말마다 호숫가에 와서 논다. 김밥과 과일을 싸갖고 오면 하루 종일 경제적으로 놀 수 있어서 최고인 장소”지만 “다른 공원에 가면 볼 수 있는 운동기구가 없어서 아쉽다. 설치해놓으면 시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의 상동호수공원관리소 032-625-4727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3
- 작가 김 훈 초청 “한림대 제7회 저자와의 대화” 개최 한림대학교 일송기념도서관(관장: 김인규)에서 주최하고 (주)교보문고에서 후원하는 작가 김 훈 초청 ‘제7회 저자와의 대화” 행사가 10월 7일(수) 오후 4시 일송기념도서관 2층 세미나실에서 열린다. 작가 김훈은 194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오랫동안 신문기자 생활을 했으며, 소설가이자 자전거레이서이다. 지은 책으로 에세이 『내가 읽은 책과 세상』,『선택과 옹호』,『문학기행1, 2』,『풍경과 상처』,『자전거 여행』, 소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칼의 노래』 ,『현의 노래』, 『강산무진』 등이 있으며,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삶의 양면적 진실에 대한 탐구, 삶의 긍정을 내면에 깐 탐미적 허무주의의 세계관, 남성성과 여성성이 혼재된 독특한 사유, 긴장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매혹적인 글쓰기로 모국어가 도달할 수 있는 산문 미학의 한 진경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저자와의 대화 작품집인『자전거 여행』은 1999년 가을부터 2000년 여름 까지 ''풍륜(風輪)''이라는 이름의 자전거를 타고 우리나라 곳곳을 순례한 저자의 자전거 여행기이다. 언어의 주술사로 불리는 저자가 자전거 두 바퀴에 담아온 우리 땅의 풍경을 진실한 언어로 되살려 낸다. 이 책은 저자와 그의 자전거가 발견해낸 아름다운 우리 땅의 풍경은 물론, 이웃의 정을 풀어놓고 있다. 아울러 역사의 위인부터 분교의 아이까지 인간의 흔적을 되돌아보면서, 생태학, 지리학, 역사학, 인류학, 종교학을 다룬다. 사진가 이강빈이 촬영한 우리 땅의 풍경을 곳곳에 담아내 우리의 감성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문의 : 일송기념도서관 도서관운영팀 Tel.) 248-2801, 2802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06
- 고려상호저축은행 센텀지점 “신용등급 A, 고객의 믿음이 우선이죠” 자산건전성 등 재무적 안정성 업계 최상위 수준 유지 한 때 은행권이 저금리 시대를 유지할 무렵 상호저축은행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지도와 이용률이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상호저축은행을 이용하는 주된 이유는 예금 금리가 높기 때문인데 자산규모가 커지고 재무적으로 안전한 우량 저축은행은 최근 고금리를 제시한 제 1금융권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금리변동을 안 보이고 있다.특히 고려상호저축은행은 자산확보와 함께 재무적으로 안전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 금리 인상의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고객의 예수금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신용등급 A, 다산금융상 수상 등 안전성 뛰어나고려상호저축은행 센텀지점에 들어서니 사방이 탁 트인 창 인테리어와 갤러리풍의 대기실이 눈에 띈다. 2007년 6월에 문을 연 센텀지점은 지점 중 가장 많은 예수금을 확보한 우량지점이다. 고려상호저축은행은 1971년 항도흥업주식회사로 설립되어 1978년 태광그룹에 편입되었으며, 2009년 현재 넉넉한 총자산과 예수금을 기록하고 있는 중형 상호저축은행이다. 부산 좌천동에 본점을, 중앙동지점과 센텀지점을 두고 부산, 경남권을 중심으로 영업을 하고 있으며, 2006년 5월 서울과 울산, 거창에 점포를 둔 예가람상호저축은행을 인수하였다. 또한 고려저축은행은 태광그룹(태광산업 등) 산하 흥국금융가족인 흥국생명, 흥국화재, 흥국증권, 흥국투자신탁운용, 예가람저축은행과 함께 금융 Network를 구축하여 고객에게 원스톱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려상호저축은행 센텀지점 김성호 지점장은 “동종업계에서 고수익·고위험의 운용처로 PF대출과 소액신용대출을 많이 활용하고 있는 것에 반해, 소액 예금유치를 다량으로 꾸준히 확보하고 안정성이 높다”며 고려상호저축은행이 우량은행으로 자리잡게 된 계기를 말한다.또한 고려상호저축은행은 동 업계 최고의 신용등급 A를 획득했으며, 동 업계 최초 다산금융상 금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아파트 담보대출 금융권 최저금리 수준고려상호저축은행의 가장 주목할 만한 상품은 아파트 담보대출이다. 금리는 담보비율 및 채무자의 신용도에 따라 차등 적용되는데 최저 연 5.5%부터 시작되며 금융권 최저금리 수준이다.특히 시중은행이 시세의 50~60%를 대출하는데 비해 고려상호저축은행은 시세의 8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그래서 제1금융권에서 담보대출을 받은 후 추가로 대출이 필요한 경우는 이를 활용하면 효과적이다.또한 고려상호저축은행은 설정비용을 당사에서 부담하고 등기부등본 발급서비스도 제공한다.또 다른 인기상품으로는 정기적금을 꼽는다. 1년 만기 적금 금리가 연 5.2%로 일반 시중은행의 적금 금리 3~4%대에 비하면 높은 금리다.고려상호저축은행의 모든 예·적금은 5천만원까지 예금자보호법에 의거 예금보험공사에서 보호된다.미니인터뷰-고려상호저축은행 센텀지점 김성호 지점장“고려저축은행은 1971년 창립 이후 고객님들의 금융서비스 충족과 지역경제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괄목할 만한 성장을 지속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6월 기준 BIS비율12.27%로 금융감독원에서 정한 우량저축은행의 건전성 기준을 충족하고 있습니다. 태광그룹의 긍정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더욱 믿을 수 있는 저축은행이 되도록 고객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Tip. 상호저축은행이란?상호저축은행은 1972년 ''상호신용금고법''에 의해 설립된 금융기관으로 2001년 국회에서 ‘상호신용금고법’을 개정하고 ''상호저축은행법''을 제정함에 따라 2002년 3월 1일부터 기존 상호신용금고들은 대부분 상호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상호저축은행은 중소기업과 서민의 금융편의 및 저축증대를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주식회사의 형태로 설립되는 서민금융기관이다. 상호저축은행의 업무로는 신용계업무, 신용부금업무, 예금과 적금의 수입업무, 자금의 대출업무, 어음의 할인업무, 내·외국환 업무, 보호예수업무, 국가·공공단체 및 금융기관의 대리업무가 있다. 상호저축은행은 금융감독위원회가 감독한다. 금융감독위원회는 상호저축은행에 대하여 거래자의 권익을 해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주의·경고 조치에서부터 영업인가 취소조처까지 취할 수 있다. 상호저축은행 상호간의 업무협조와 신용질서의 확립 및 거래자의 보호를 위하여 상호저축은행을 회원으로 하는 법인체인 상호저축은행중앙회가 있다. 상호저축은행중앙회의 주요 업무로는 상호저축은행에 대한 대출, 상호저축은행이 보유 또는 매출하는 어음의 매입, 상호저축은행에 대한 지급보증, 상호저축은행으로부터의 예탁금 및 지급준비예탁금의 수입 및 운용 등이 있다.김영희 리포터 lagoon02@hanmail.net 2009-10-25
- (사)환경과 자치 연구소 책임연구원 최인화씨 “에너지 절약하는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중요해요”16년간 환경활동가로서 묵묵히 환경 보존, 생태 도시 만들기에 전념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은 뭘까. 강렬함 못지 않은 저력은 꾸준함이다. 십 수년 동안 환경지킴이로서 큰 역할을 해 오고 있는 최인화(42)씨를 만났다. 부산환경운동연합 부설기관인 (사)환경과 자치 연구소 책임연구원인 그에게서는 잔잔하고 단아한 인상이지만 오랜 세월 한 분야에서 일하며 단련된 강한 내공이 느껴졌다.“환경과 자치연구소는 환경운동을 더 잘할 수 있도록 이론적 근거를 연구해서 뒷받침하고 지원하는 곳이에요. 활동가 양성, 강연, 지자체의 환경 정책에 대해 긍정적 방향을 제시하는 세미나 토론회 등을 개최하는 일을 해요.”환경공학 전공 후 1990년부터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 중대학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하고 학생회 활동도 하며 전공과 관련한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한 그는 1990년부터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환경과 자치연구소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5년부터로 육아 문제로 4년간 휴직 한 기간을 빼도 16년째 환경운동을 꾸준히 해 오고 있다. 보람있는 일도 많았다. 연산동 제일화학 석면 노동자 문제를 통해 전국적으로 석면문제를 크게 부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위천 공단 저지 운동, 금정산 골프장 건립 반대 운동 등을 열정적으로 벌여 백지화시켜 내기도 했다.“특히, 1996년 위천공단 저지를 위해 단체의 성격을 총 망라해서 수많은 NGO 단체 회원들이 똘똘 하나로 뭉쳐 한달 내내 시청 앞에서 농성을 벌였던 일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그땐 정말 힘든 줄도 모르고 신바람 나게 일했어요. 지금 4대강 사업 반대 운동도 너무 중요한 현안인데 정부의 시민단체 탄압도 심하고 시민들의 참여도 저조해 매우 안타까워요.”기후변화 에너지 교육 지도자 양성 아카데미 매년 개최해 그는 많은 문제들 중에 특히 온실가스 급증으로 인한 기후 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강조했다. 물에 잠기는 나라가 생기는가 하면 지진 태풍 가뭄의 피해가 급증하고 있다.“최근 10년 새 에너지 소비, 온실가스 증가율이 중국에 이어 한국이 2위를 차지할 정도로 에너지 소비에 대해 무감각해져 펑펑 사용하고 있어요. 대형가전제품의 소비를 줄이고, 가까운 거리는 걷고, 제철 우리 먹거리를 먹는 등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한 생활 속 작은 실천이 중요해요.”지난 9월 4일부터 10월 10일까지 열린 ‘기후 변화 에너지 교육 지도자 양성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이런 기후 변화의 심각성과 재생 가능 에너지에 대한 필요성 등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교육할 수 있는 강사 양성을 위해 지난해부터 ‘기후변화 에너지교육 지도자 양성 아카데미’를 개최해 오고 있다. 수료생들은 지속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복지관, 학교 방과후 교실, 유치원 등에서 교육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엄마의 일 지지해 주는 두 아이와 남편의 사랑이 큰 힘두 아들을 키우면서 NGO 활동가로 오랜 세월 일해 올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일을 이해해주고 지지해 주는 가족이었다. 그는 환경단체에서 주최하는 다양한 생태체험, 캠프 등에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며 자연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키워줬다. 자연의 변화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철마에서 지천에 널린 꽃 보고 새 소리 들으며 자란 아이들은 4대강 사업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가슴 아파 할 줄도 알고 자연을 보고 감동할 줄도 아는 감수성을 가졌다.고입을 앞두고 있는 중3년생 아들은 진로를 미처 구체적으로 고민해 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엄마에게 “대신 엄마는 다른 많은 걸 가르쳐주고 느끼게 해 주셨잖아요”라며 따뜻한 위안의 말을 건넬 줄 아는 착한 아이다. 부산환경운동연합 회원이었던 남편도 환경 운동에 대한 생각을 함께 나누며 아내의 일을 지지해 주는 든든한 버팀목이다. 그는 지금 생태도시 계획 공부를 위해 석사 과정을 밟으며 공부 중이다.“도시가 생태적으로 바뀌는 게 중요해요. 도시든 집이든 계획 단계부터 에너지를 적게 소비하고 친환경적으로 잘 설계하는 것이 중요해요.”지속가능한 생태 도시를 향한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박성진 리포터 sjpark@naeil.com 2009-10-25
- 용호만 매립지 갈등 - 남촌 어촌계 과잉 보상 논란 “소유하기 전 부지로 보상 약속한 것은 위법”매립 계획 1/4 축소 이전 조건으로 100% 보상하는 것은 과잉 보상LG메트로시티 아파트 입주민들은 132동 뒤편 용호공원과 도로 사이 사각형 부지에 친수공원 조성을 요구하고 있다.올해 말 완공 예정인 용호만 매립지 활용에 대해 인근 주민들과 부산시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문제가 되고 있는 땅은 LG메트로시티 아파트 132동 뒤편 옛 컨테이너부지 내 도로예정지와 주변 땅을 합친 2천여 평이다. 부산시는 도로계획이 철회된 예정지와 지난 3월 공공용지로 협의 취득한 주변 땅을 묶어 일반 주거지역으로 도시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900여 평은 남천어촌계에 분양할 예정이고 나머지 땅도 공개매각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대해 LG메트로시티 아파트 입주민들은 이 부지를 자동차 미세 먼지, 소음을 여과하는 50m 이상 완충 녹지 공원으로 조성해 8500세대 주민들의 쾌적한 생활권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주민들, “부산시 소유 아닌 땅으로 매립 계획 축소 이전 그대로 보상 약속은 과잉 보상”부산시에서 남촌어촌계에 900여 평 분양을 약속한 것에 대한 과잉 보상 논란도 거세지고 있다. 입주민들은 “보상 약속 당시 문제의 부지는 부산시 소유의 땅도 아니었고 매립 계획이 1/4로 축소됐기 때문에 권리 없는 땅에 대해 애초 계획대로 보상을 약속 한 부산시의 보상 동의공문서는 위법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산시는 1999년 주거단지 조성과 교통난해소 차원에서 남천동 삼익비치 앞에서 이기대끝자락 65만8천㎡ 용호만을 당초 매립하는 조건으로 2000년 남촌어촌계에 폐업보상액 총 40억7천만원을 지급하기로 약속하고 이 중 70%인 30억3천600만원을 지급 완료했다.LG메트로시티 아파트 친수공원화 대책위원회 이기홍 위원장은 “나머지 현물보상하기로 한 30%인 9억7천100만원은 2002년 당초매립 계획의 1/4로 매립계획이 줄었지만 남촌어촌계 어민들이 APEC개최 때 폐선박과 플랭카드로 대응하자 부산시는 즉흥적이고 땜방식 졸속행정으로 애초 조건 그대로 100% 보상을 약속했다. 이는 시민이 낸 혈세를 낭비하는 무리한 과대 보상이다”고 주장하고 있다.또한 “2005년 11월 8일 부산시건설본부는 용호동167-22, 27, 23번지의 땅 930평을 남촌어촌계에 주기로 상호간 문서로 어쩔 수 없이 응락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이 땅은 중앙건설, 해양청, GS건설 소유의 땅이다. 즉 타인의 땅으로 허위 공문서 조작했으며, 세계 각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위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부산시는 남천어촌계에 상호동의 조건을 권리남용했다. 위 번지의 땅은 올해 2009년 3월 18일 등기법상으로 협의 취득해 부산시에 넘어왔다. 땅의 소유가 부산시로 넘어오고 나서 적법적으로 공문서를 발급해 상호 각서 동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부산시, “용호만 매립지에 충분한 녹지 조성하고 있어 더 이상의 친수공원 조성 계획 없어”이에 대해 부산시건설본부 관계자는 “공유수면 매립법상 항만청에 매립 허가를 받는 조건 중에서 피해 관계인의 동의가 필수이다. 남촌어촌계 분양 문제는 동의 조건 중 하나로 그냥 주는 게 아니라 감정가격으로 매각하는 것이다. 용호만 매립지 사업은 순수한 민자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총 사업비가 1천97억으로 1년 이자만 70~80억이 드는 막대한 규모다. 이렇게 큰 돈을 갚기 위해서는 부지 매각이 불가피하다. 현재 용호만 매립지 도로 양 옆으로 녹지를 조성하고 있고 매립지 내 접안시설에 경관 및 완충녹지공원 등을 조성할 계획이어서 더 이상의 친수공원 조성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주민들은 “관공서에서 도로를 내거나 도시계획으로 민간인의 땅을 보상할 때에는 거의 개별 공시지가 기준으로 보상을 하는 것이 원칙이고 일반화되어 있는데 감정가를 지나치게 부풀려(공시지가 ㎡에 약 530만원) 세금을 낭비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주민들은 부산시가 친수공원 조성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주민감사청구를 신청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여갈 계획이다.박성진 리포터 sjpark@naeil.com 2009-10-25
- 축구의 세계 만화로 담아낸 만화가 오일룡 한국 만화역사 100년. 우리나라에 처음 만화가 소개된 지도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20년 전만 해도 지금의 PC방만큼 많았던 것이 만화책 대여방이었다. 동네 어귀, 지하로 쑥 들어가 있던 만화방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공간이었다. ‘비오는 날 뜨뜻한 아랫목에서 만화책 한 질 쌓아두고 야금야금 읽는 재미’가 학생들의 휴식이자 어른들의 휴가였던 시절이었다. 요즘 텔레비전의 스포츠 채널을 대신했던 ‘스포츠 만화’는 소년과 성인 남성들에게 경기장에 와 있는 듯한 박진감을 안겨주었다. 한국 ‘축구 만화’의 독보적인 존재로는 중견 만화가인 오일룡씨가 있다. 소위 ‘만화전성기’였던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두루 거치고 40년 동안 만화를 그려온 오일룡씨는 한국 만화의 흐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인생의 3분의 2를 바쳤던 세계였기 때문이다. 혼자서 터득한 그림 실력, 미국 출판사에 인정받기도 1949년 평양에서 태어난 오일룡씨는 한국전쟁이 터졌을 때 어머니 등에 업혀 충남 대전으로 피란 내려 왔다. 그 때 집에 남았던 3살 터울의 형은 아직도 평양에서 살고 있고, 지난 2002년 월드컵 기간 중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만났다. 이렇듯 본의 아니게 장남이 되어버린 오화백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자랐다. 그러나 초등학교 때부터 접하기 시작한 만화책은 어느새 그의 습작용 교과서가 되어 버렸고, 부모님의 반대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 독학으로 미술 데생, 만화기법을 터득한 그는 자신의 작품을 미국의 유명 출판사로 보낸다. “그 때가 미국 만화책이 얇게 나오던 때였는데, 전 세계에 파견된 미군들이 한번 보고서 버리고 하는 바람에 만화시장이 굉장히 호황을 누리던 때였어요. 만화가가 많이 필요했던 때였죠. 저는 두 군데 출판사에 그림을 보내고서 모두 초청을 받았습니다. , 을 출판한 ‘마벨 코믹스 클럽’과 , 을 그린 ‘내츄럴 코믹스 클럽’입니다.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을 뿐, 영어도 못하는데 미국 가서 어떻게 만화가를 할까 싶어 포기했지요. 사람은 다 운명에 따라 살게 돼 있는 거죠, 뭐.” 한국 ‘축구 만화’의 독보적 존재 1968년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박광현 선생의 문하생으로 시작한 그는 로 정식 만화가가 된다. 원래 오일룡 선생의 본명은 ‘오일룡’이 아닌 ‘오선일’이다. 성공하기까지 다양한 분야, 즉 SF, 역사, 순정, 스포츠 만화 등을 시도했고 그 때마다 필명을 바꾸었다. 만화 독자들은 ‘만화가 이름을 보고 책을 고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 작품이 실패하면 다른 필명을 만들어 다시 도전했다. 초기 그의 그림체는 미국 만화풍으로 실제처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림 솜씨는 훌륭했지만, 주인공이 뚜렷한 특색이 없어 다른 인물에 묻히는 단점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의 인기도 항상 중간 정도에 머물렀다. 그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것은 1983년 한국청소년대표팀이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뤘던 일이었다. 지금만큼 국민적인 사랑과 관심이 쏟아진 이 경기는 그 열기가 쉽사리 식지 않았다. 오 화백은 이것을 기회로 삼아 축구장의 감동을 지면에 그대로 담아내는 ‘축구만화’를 그렸다. , , , , , , , 등 실제 경기장을 방불케 하는 생생한 축구경기가 수없이 많은 스토리와 함께 탄생했다. 일산 백석동에 ‘오일룡 프로덕션’이 꾸려지고 98명이나 되는 문하생이 모여 만화를 대량생산해내던 시절이 이 때였다. 이 시기 오 화백의 그림은 훨씬 단순해지고 코믹해진다. 특히 주인공의 코가 뾰족해지면서 여러 인물들 사이에서도 단연 돋보이게 되어 독자들이 책장 넘기는 스피드가 빨라졌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과 만화 대본소 등에서 꾸준히 읽혀지는 ‘오일룡 만화’는 이렇게 탄생한 것이다. 축구 마니아의 꿈은 이뤄진다 “데뷔하고 15년 동안 정말 열심히 그렸어요. 컷이 많으면 품이 많이 드는데, 제 작품의 특징이 인물과 배경을 실제처럼 세밀하게 그리면서 컷을 많이 집어넣는 거였어요. 열심히 하니깐 중간정도의 인기는 유지했지만, 그 이상은 힘들었죠. 그런데, 축구 만화를 그리면서 바로 반응이 왔어요. ‘이거다!’ 싶었죠. 한번 감을 잡고 나서는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는 쉽게 떠올랐어요. 그 때부터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오일룡 화백은 축구 마니아다. 십여 년 전 자신이 만화 속에서 꿈꾸었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는 시대가 요즈음이다. 세계적인 축구 구단에 우리나라 선수들이 뛰고 있고, 축구에 대한 열기가 뜨거운 시절인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만화를 그릴 수 있는 환경은 바뀌었다. 대량 생산하여 대본소에 공급하던 체제가 사양길에 접어든 것이다. 기회가 줄수록, 그가 다시 ‘축구 만화’를 그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해진다. 그의 말처럼, ‘만화가는 타고 나는 운명’이기 때문에 그는 그라운드를 다시 그릴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daum.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2009-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