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받아달라” 민원성 고소 남용

경찰, 채권추심기관으로 전락 … 인력부족해 필요한 조사 못하기도

지역내일 2003-09-18
최근 경기 악화와 개인 부채 증가로 인한 악의성 고소·고발이 폭증하고 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고소·고발은 지난 2년간 연평균 21% 증가했고, 특히 올 상반기에는 전년에 비해 29.6% 증가해 조사요원들의 업무부담이 과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서 조사계에 근무하는 경찰관들은 “민원인들이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민사절차보다 형사사건화를 선호하고 있다”며 “고소제도의 맹점을 역이용], 경찰의 힘을 빌려 채권을 추심하려는 악의성 고소·고발이 증가해 해결책이 시급하다”며 하소연하고 있다.

◆조사요원 업무 폭증, 외근 엄두도 못내 = 서울 강남경찰서에 근무하는 김태현 경위의 책상에는 각종 고소·고발 사건이 기록된 서류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김 경위가 조사 중인 사건만 해도 한달에 70∼80여건. 하지만 조사를 통해 그 중 70∼80%가 무혐의나 불기소 등으로 처리된다.
최근 조사계에서 담당하는 고소·고발 사건을 보면 채무관계 불이행 등 민사적 분쟁 사건을 경찰에 사기혐의로 고소를 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담당 조사관이 고소인에게 법원에 소액사건 심판 등을 청구할 것을 권유해도 “조사도 안 해보고 어떻게 아느냐”며 진정을 넣겠다고 막무가내로 나오는 통에 조사를 안 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는 것.
이렇듯 민사성 고소·고발이 많아 조사관이 내근에만 시간을 보내다보니 실제 형사사건을 고소한 억울한 피해자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지적이다. 사건을 해결해야할 조사요원들이 참고인 출장조사, 증거수집, 탐문수사 등 외근을 전혀 못하고 참고인 수배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
김 경위는 “사건이 중대하지 않고 피해자가 여러 명이 아닌 경우 참고인 중지로 검찰에 송치하고 있다”며 “민원성 고소 남발로 순수한 형사사건 피해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고소제도 맹점 이용한 악의성 고소 많아 = 경찰서에 고소를 할 경우 형사사건에 등재, ‘입건’이 되기 때문에 민사사건이라도 참고인이 일정한 주거지가 없으면 참고인 수배를 내린다.
중부서 조사계장으로 근무하는 김 재운 경감은 “민사성 고소의 경우 상대방의 주장이 서로 달라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민사분쟁 사건을 경찰에 사기 혐의로 고소하면 일단 피고소인이 경찰에서 조사를 받게돼 겁을 먹고 빚을 빨리 갚을 것이라는 점을 악용한 고소가 IMF때 보다 더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악의성 고소인들도 피해를 당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형법상 무고죄를 적용하는 것도 힘들어 폭증하는 고소·고발을 줄일 수 있는 근본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소·고발의 내용도 가지가지다. 애견센터에서 구입한 강아지가 장염에 걸려 죽었는데 손해배상을 안해준다며 주인을 사기혐의로 고소하는가 하면 애인관계로 지내던 중 돈을 빌렸다가 헤어진 후 갚지 않는다며 사기혐의로 고소한 것, 결혼 정보업체를 통해 결혼한 사람이 결혼 첫날 배우자가 기형이라며 정보업체를 사기혐의로 고소한 것 등 다양하다.
또 최근 카드빚 채무자가 급증하면서 카드사로부터 채권 추심을 목적으로 한 고소의 남발로 무고한 피고소인·참고인 등에 대한 또 다른 인권침해시비가 일고 있다.

◆해결책 시급 = 경찰청은 전과자 양산 방지와 고소· 고발사건 축소를 위해 관련부처와 협의, 향군법, 옥외광고물이용법, 자동차관리법, 도로교통법 등 경미한 행정사범은 과태료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또 검찰과 협의해 단순채권·채무, 음식값, 거래처 외상대금 미지급 사건 등 명백한 불기소사안은 고소를 과감히 각하시켜 수사력 낭비를 방지하는 방법을 추진중이다.
한편 민원을 제기하고 2회 이상 출석에 불응하거나 익명·허무인, 피민원인이 불명확한 민원 등은 경찰에서 자체 종결처리를 할 방침이다.

/ 김장환 기자 polkj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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